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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1일. 새벽에 입궐해서 사은했다. 【어제 대전(大殿)에만 사은숙배했으므로 오늘 내전(內殿)에 사은숙배했다.】 대전(大殿) 춘첩자(春帖子)를 지어 올리는 초계문신에 들어가서 즉시 당후(堂后)로 가서 춘첩자를 지었는데 마치지 못했다. 전교하기를, “평안도와 황해도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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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3일. 유시(酉時)에 아내가 분만하여 딸을 낳았다.【불을 켤 때였다.】 평해 군수(平海郡守) 안필제(安必濟)가 역사(歷辭)하러 들렀다. 역사(歷辭):수령이 부임(赴任)하기 전에 각 관아를 돌아다니며 인사하던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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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5일. 황간 현감(黃澗縣監) 김세근(金世根)이 역사하러 들렀다. ‘상참(常參)은 내일 하라’는 하교는 좌의정 윤시동이 내일 연석(筵席)에 나아가기 때문이다. 하교하기를, “근래 상참(常參)과 차대(次對)에 참석하지 않은 양사(兩司)의 관원은 각별히 신칙하도록 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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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6일.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상참 및 초계문신 반상(頒賞)을 행하고, 대신과 비당(備堂)을 인견했다. 나는 아직 숙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 들어가지 못했다.【숙배단자(肅拜單子)가 아직 내려오지 않았기에 숙배하지 못했다.】 숙배하고 입시하라는 명이 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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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7일. 경성 부사(鏡城府使) 홍병신(洪秉臣)·이성 현감(尼城縣監) 정종주(鄭宗柱)가 역사하러 왔다. 다음 날 만경 현령(萬頃縣令) 최시순(崔時淳)·해미 현감(海美縣監) 홍성희(洪聖禧)가 역사하러 왔다. 이날 류이좌(柳台佐)가 안동(安東)에 계신 병든 부모님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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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0일. 새벽에 의정부 이의(肄儀)에 나아가 참석했다. 저녁에 입궐하여 만팔문(萬八門) 밖에서 제석(除夕)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돌아왔다.【현임 대간은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지 않는데 초계문신은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라는 새 특교(特敎)가 있었기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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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월. 1일. 새벽에 궐에 들어가 만팔문(萬八門) 밖으로 나아가 정조(正朝)의 문안에 참석했다. 음식을 하사받고 곧바로 물러나 돌아왔다. 저녁에 예빈시(禮賓寺) 도가(都家)에 가서 재계(齋戒)했다. 다음 날도 그대로 재계했다. 올해는 건륭황제(乾隆皇帝)가 즉위한 지 -
65170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일. 임금이 사직(社稷)에 행행했고, 내가 지평으로서 도가(導駕)를 위해 나아갔다.【사헌부는 이때 장관(長官)이 없었으므로 지평이 도가를 한 것이다.】 임금이 희생(犧牲)과 제기(祭器)를 친히 살피고 곧바로 조복(朝服) 차림으로 나아가 참석했다가 파하고 재실로 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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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4일. 새벽에 기곡대제(祈穀大祭)를 친히 행했다. 아헌(亞獻)과 종헌(終獻) 때 재랑(齋郎)으로 들어가 전작(奠酌)에 참석했다가 환궁하기를 기다려 물러나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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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6일. 수령을 서경(署經)하는 일로 패초(牌招)에 나가지 못하여 추고(推考)만 하라고 명했다. 다시 패초했는데 또 나가지 못했다. 이날 초계문신 조만원(趙萬元)이 부평(富平)으로, 이동만(李東萬)은 은율(殷栗)로, 윤치영(尹致永)은 동래(東萊)로 근친(覲親)하러 가 -
65171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7일. 두 번째 패초에 나가지 않아 승전(承傳)대로 파직되었다. 초계문신 조석중(曺錫中)은 안주(安州)로, 황기천(黃基天)은 용천(龍川)으로 근친하러 가기 위해 정사했다. 전교하기를, “나는 양성(陽城) 사유(師儒)의 가르침에 참으로 부끄러워서 세전과 세후에 근친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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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8일. 근친하러 가는 일로 연달아 엄한 신칙이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제관(祭官)에 차정되어 정사할 수 없었으므로 제향(祭享) 뒤에 상소를 써서 올리려다가 하지 못했고, 이때에 이르러 파직되어 다시 정사를 올리지 못했다. 이날 근친을 위해 귀성하겠다는 뜻으로 각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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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9일. 너무 추워서 출발하지 못했다. 저녁에 평동(平洞) 사익(士益)의 집에 가서 묵었다. 다음 날 새벽에 출발했는데, 전에 없던 극심한 추위로 인해 50리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으므로 세류참(細柳站)에서 묵었다. 며칠 뒤 한기가 조금 누그러져서 닷새 만에 관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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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6일. 1월 초하루의 친시(親試)를 행했다. 어제(御題)는 ‘1월 갑자일에 규성이 열리다.[正月甲子奎開]’로 부(賦)를 지으라는 것이었지만, 지방에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내일은 규성(奎星)이 열리는 갑자일이고, 민간에 전하기를 규성이 열리는 날에 성교를 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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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0일. 현륭원(顯隆園)에 행행했다. -
65171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4일. 환궁했다. -
65171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월. 1일. 중화척(中和尺)을 초계문신들에게 반사(頒賜)했고, 어제(御製) 오언율시도 있었다.【어제가 중화절(中和節)이어서 중화척을 반사하는 고사(故事)를 따랐다.】 이날 파직되었거나 삭직된 사람을 서용(敍用)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나 또한 그중에 포함되었다.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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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일. 별시(別試)에 둘째 형님은 책문(策問)으로 초시(初試)를 보았는데, 응강(應講)에서 낙방했다. -
65171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5일. 병조 좌랑을 서로 바꾸었다. 다음 날 지방에 있어서 개차(改差)하라는 명을 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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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7일. 아버님과 큰형님을 모시고 서울로 출발했다. -
65172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9일. 황주(黃州)에 도착하여 중화척과 어제시(御製詩)를 수령했다는 서울 서신을 받았다. 15일 사이에 화답시를 올리라는 명이 있어서 서울에 도착해서 화답시를 올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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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8일. 정사에서 정언(正言)에 임명되었다.【수의를 하비했다.】 패초에 나가지 않자 추고만 하라는 명을 내렸다. 다음 날 숙배하지 않아 체차되었다. -
651723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0일. 춘당대(春塘臺)에 친림(親臨)하여 문무과(文武科) 중시(重試)를 설행했다. 새벽에 참석했는데 신진 문신 가운데 자원한 자부터 응시하지 않는 것을 허락해 주었으므로 곧바로 물러나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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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월. 23일. 정사에서 정언 부의에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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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4월. 3일. 1월과 2월에 치렀어야 할 과강(課講)을 행했는데, 두 차례 참석하여 모두 순조(純粗)를 받았다.【이해에 『논어』로 응강(應講)을 했는데, 1월에는 「위정편(爲政篇)」을 강하고, 2월에는 「이인편(里仁篇)」을 강했으나, 강장(講章)과 강의(講義)는 상 -
65172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4일. 춘당대에 친림하여 2월에 했어야 할 친시를 행했는데, 어제(御題)는 ‘말술을 마시며 꾀꼬리 소리를 듣다.[斗酒聽黃鸝]’로 시(詩)나 부(賦)를 지으라는 것이었다. 자원하여 부를 지어 올려 차상(次上)을 받았다. 이날 처음 어제를 냈는데 문신들이 모두 제목을 -
65172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1일. 정사에서 박종갑(朴宗甲)을 평안도 관찰사로 임명했다. 웅어[葦魚] 2급‧준치[鰣魚] 1미를 하사받았다.【생선을 하사받은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므로 우선 여기에 붙였다.】 -
65172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4일. 아버님이 강동(江東)으로 돌아가기 위해 행차했는데, 2월부터 반드시 체차되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이때에 이르러 고을로 돌아가기에 둘째 형님이 모시고 갔다. 다음 날 큰형님이 귀천(歸川)으로 갔는데, 사역(舍役)을 시작하여 7월에 마친다고 했다. -
65172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7일. 이문 제술(吏文製述)을 위해 입궐했는데, 명관(命官)이 패초를 어겨 행하지 못했으므로 물러나 돌아왔다. 이문 제술(吏文製述):30세 이상 48세 이하의 당하 문신을 대상으로 시행하던 과시로, 젊은 문신에게 외교 문서의 작성 등을 익히게 하려는 목적에서 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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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5월. 1일. 절선(節扇) 2자루를 하사받았다. 대전(大殿)에 단오첩(端午帖)을 지어 올릴 사람을 뽑아 올렸는데 거기에 포함되어 입궐하여 4수(首)를 지어 올렸다. 이 가운데 3수가 선정되어 각각 5장씩 써서 올렸다. -
65173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4일. 단오(端午)의 신부(新符) 탁본 1장을 하사받았으므로 문의 처마에 걸어 두었다. 열흘 후에 또 소금에 절인 밴댕이[蘇魚] 2급을 하사받았다. 신부(新符):복숭아 나무판 위에 써서 행복을 기원한 글로, 춘련(春聯) 즉 입춘첩(立春帖)을 말한다. -
651732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6월. 18일. 만팔문 밖에 나아가 혜경궁(惠慶宮)과 원자궁(元子宮)의 탄신일에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음식을 하사받았다. -
651733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7월. 4일. 입궐하여 근친하러 가기 위해 정사(呈辭)를 올렸다. 말과 납약을 지급하라는 명이 있으면 바로 하직하고 귀가하려고 했는데, 이날 정사에서【이조 판서 김재찬(金載瓚)이 주관했다.】 지평에 임명되었다.【수의를 하비했다.】 저녁에 평동(平洞) 사익(士益)의 -
651734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6일. 청파역(靑坡驛)에서 인마가 와서 관아에 가기 위해 일찍 출발했다. 사익이 출발한 뒤에 대간의 계사로 인하여 역마를 타고 올라오라고 하유(下諭)했기 때문이다. 대간의 … 때문이다:이틀 전인 7월 4일 정사에서 신현이 사헌부 지평에 제수되었는데, 지방에 있으면서 -
651735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0일. 평양(平壤)에 도착하여 평안도 관찰사 어른에게 인사했다. 다음 날 관아에 이르러 부모님을 뵈었고, 하유가 뒤이어 도착했다. -
65173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5일. 어버이의 병으로 소명(召命)을 받들 수 없다는 뜻으로 상소를 써서 봉하여 발송했다. -
65173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7일. 지방에 있어 체차되었고, 상소는 서울에 도착한 뒤에 관직에서 이미 체차되었으므로 올리지 않았다. -
65173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9일. 도목정사에서 이조 판서 김재찬, 이조 참의 성덕우(成德雨)가 나아가 참석했다. -
65173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8월. 3일. 친시를 행했고 어제(御題)는 ‘금사당에 상량문을 쓰다.[金絲堂上樑文]’였는데, 지방에 있어 참석하지 않았다. -
65174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1일. 『규장전운(奎章全韻)』 1책을 하사받았다. 규장전운(奎章全韻):규장각에서 정조의 명령에 따라 편찬한 운서(韻書)이다. 사성(四聲)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를 구분했으며, 한글로 한자의 음을 달았다. 1796년(정조 20)에 간행했다. -
65174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9월. 1일. 서울로 출발했다. -
651742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7일. 서울에 도착한 즉시 내각(內閣)에 들어가 입래단자(入來單子)를 올렸다. -
651743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7일. 4월에 치렀어야 할 친시와 3월에 치렀어야 할 과강을 행했다. ‘한나라 급암이 불러도 오지 않은 죄를 묻지 않은 데 대해 사례했다.[漢汲黯謝不問招之不來之罪]’로 표(表)를 지어 올려 차상(次上)을 받았다. 과강에 입시하여 내가 나아가 엎드려 『논어』 ‘자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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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8일. 관풍각(觀豐閣)의 벼 1두(斗)를 하사받았다. 어제 문신들이 지은 것은 모두 출제한 뜻에서 벗어났으므로 ‘한나라 급암이 떠나지 않을 것을 청했다.[漢汲黯乞不去]’라는 어제(御題)로 표를 다시 시험 보았는데, 집에 있으면서 지어 올려 차하(次下)를 받았다. -
651745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9일. 입궐하여 이문원(摛文院)에 입시했는데, 소유재(小酉齋) 앞뜰에서 술과 고기를 하사받았다. 어제 지은 것은 출제한 뜻에 어긋나므로 다시 시험을 보라고 명했는데, 최광태(崔光泰)가 명을 받들어 출제한 것은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으리.[不醉無歸]’로 사운율 -
65174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2일. 만팔문 밖에 나아가 탄신일에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음식을 하사받았다. -
65174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0월. 16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일차 유생(日次儒生) 전강(殿講) 및 상재생(上齋生) 전강을 행했다. 참고관(參考官)으로 봉강(捧講)에 참석했는데 응강을 하는 자가 100여 인이었다. 밤이 되어서야 마치고 물러나 돌아갔다.【이날 고관(考官) 3명은 윤시동(尹 -
65174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7일. 친시에 참석하여 ‘서도 손님이 동도 주인에게 묻다.[西都賓問東都主人]’로 부(賦)를 지어 올렸고,【5월의 친시는 차중(次中)을 받았다.】 과강을 행했는데,【4월 것이다.】 내가 나아와 엎드려 『논어』의 ‘가아수년(加我數年)’부터 ‘무대과의(無大過矣)’까지 -
65174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8일. 집에 있으면서 ‘높은 곳이 가장 먼저 붉게 물든다.[高處最先紅]’로 10운(韻) 7율(律)을 지어 올렸고,【1월의 과시이다.】 출방(出榜) 결과 차중(次中)을 받았다. -
65175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9일. 집에 있으면서 ‘육국이 소진을 종약장으로 삼았다.[六國敎蘇秦爲從約長]’로 서(書)를 지어 올렸고,【2월의 과시이다.】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