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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1751

    21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6월의 과송(課誦)을 행했는데,【임금은 소차(小次)에 있었다.】 내가 참석하여 나아가 엎드려 『논어』의 ‘자장문사(子張問士)’부터 ‘재가필문(在家必聞)’까지 암송했다. 시관 심환지(沈煥之)가 말하기를, “문(聞)이라는 것은 이미 실덕(
  • 651752

    22일. 집에 있으면서 ‘한나라 복생이 조조를 보내 『상서』 29편을 받아 온 것에 대해 사례하다.[漢伏生謝遣晁錯受尙書二十九篇]’로 표(表)를 지어 올렸는데【3월의 과강이다.】 차상(次上)을 받았다.
  • 651753

    25일. 집에 있으면서 ‘본조의 『인서록(人瑞錄)』에 있는 노인 75,700여 인에게 589만 8,200세 축수를 올리다.[本朝人瑞錄老人七萬五千七百餘人進壽五百八十九萬八千二百歲]’로 전(箋)을 지어 올렸는데【4월 과강이다.】 삼하(三下)를 받았다. 이달 그믐에 집에서
  • 651754

    11월. 2일. 집에 있으면서 ‘본조 태학생 등이 선정신 김 문정공이 문묘에 배향된 데 대해 사례하다.[本朝太學生等謝躋配先正金文正于夫子廟]’로 전(箋)을 지어 올렸다.【5월 과시이다.】
  • 651755

    4일. ‘본조 규장각에서 새로 간행한 『어정규장전운』을 올리다.[本朝內閣進新印御定奎章全韻]’로 전을 지어 올렸는데【6월 과시이다.】 출방 결과 ‘본조 태학생이 지어 올린 전과 함께 모두 격식에 위배되었다.
  • 651756

    9일. 문정공(文正公) 김인후(金麟厚)가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 651757

    10일. 왕대비전의 탄신일이라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했다.
  • 651758

    17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7월 친시 및 7월·8월의 두 과강을 행하여 곧바로 나아가 참석했다. ‘진풍은 가을의 소리나 아침의 기운과 같다.[秦風如秋聲朝氣]’로 부를 지어 올려 삼중(三中)을 받았고, 또 ‘풀이 뜰에서 나다.[有草生庭]’로 오언율시를 지어 올려【
  • 651759

    18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신구(新舊) 초계문신의 3월 친시 및 시사(試射)를 합하여 시험했는데, 어제(御題)는 ‘남령(南靈)’으로 책(策)을 짓는 것이었다. 어제를 걸어 둔 뒤에 하교하기를, “책문은 집에 돌아가 지어 올리고, 우선 시사를 행하라.” 했다.
  • 651760

    19일. 집에서 ‘남령’으로 책문을 지어 올려 삼하(三下)를 받았다.
  • 651761

    21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친시 및 과강을 행했으므로 여러 신료들과 함께 합문(閤門)에 나아갔다. 곧바로 어제를 써서 내리고 말하기를, “‘문득 대안도를 생각하다.[忽憶戴安道]’로 칠언율시를 지으라.” 했다. 곧바로 지어 올려 삼중(三中)을 받았다.【8월 과시이
  • 651762

    22일.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황장력(黃粧曆) 1건을 하사받았다.
  • 651763

    23일. 동지이다. 만팔문 밖에 나아가 문후하는 반열에 참여하고 콩죽을 하사받았으며, 곧바로 물러났다. ‘명덕(明德)’으로 의제(疑題)를 지어 올렸다.【2월 친시의 갱시이다.】 의제(疑題):원문은 ‘疑心’이나 『일성록』 1796년(정조 20) 11월 21일 기사에
  • 651764

    24일. 갑녀(甲女)와 경녀(敬女) 등이 두창(痘瘡)에 걸리기 시작하여 장동(長洞)의 자형(姊兄) 댁으로 피신하여 있었는데, 연일 입궐하기 때문이었다.
  • 651765

    25일. 동료들과 입궐하여 ‘기꺼이 비단을 파는 낭자나 여종이 되려는가.[肯作賣絹郞婢乎]’로 부를 지어 올렸다.【갱시의 시제이다. 이전 친시와 과시는 모두 삭제되었으므로 한꺼번에 갱시를 보았다.】 저녁에 물러났고, 출방 결과 삼중(三中)을 받았다.
  • 651766

    27일. 입궐하여 ‘만덕전(萬德傳)’을 지어 올렸고,【4월 친시의 갱시이다.】 출방 결과 삼중(三中)을 받았다.
  • 651767

    28일. 명을 받들어 동료들과 함께 내각(內閣)에 나아갔다. ‘명덕의(明德疑)’ 출방 결과 나는 이하일(二下一)로 배획(倍劃)을 받았고, 류이좌(柳台佐)는 이하(二下), 권준(權晙)은 차상(次上)을 받았는데, 나머지 문신들은 모두 순위 밖이었다. 나와 류이좌가 ‘명
  • 651768

    29일. 아침을 먹고 내각에 들어가 갱재가를 차운한 것을 올렸는데 삼상(三上)을 받아 수석을 차지했고, ‘얕은 물가에 갈대꽃만 남아 있네.[只在蘆花淺水邊]’의 오언절구는 이하(二下)를 받아 수석을 차지했는데, 어필로 ‘웅심(雄深)’ 두 글자를 시권에 써서 내렸다.
  • 651769

    30일. ‘양두섬섬(兩頭纖纖)’으로 사(詞)를 지어 올려【8월 친시이다.】 삼중(三中)을 받았고, ‘한가해도 바쁜 듯하고 바빠도 한가한 듯하며, 귀해도 천한 듯하고 천해도 귀한 듯하다.[閑似忙忙似閑貴似賤賤似貴]’로 사를 지어 올려【비교 시험이다.】 삼중을 받았다.
  • 651770

    12월. 1일. 아침에 물러나 장동(長洞)으로 돌아갔다. ‘중화척(中和尺)’으로 지은 명(銘)과 ‘폐습(弊習)’으로 책(策)을 지어 올린 것은 출방 결과 모두 삼하(三下)를 받았다.
  • 651771

    2일. 감인소(監印所)에 들어갔다. ‘진나라 난침이 자중에게 술을 보내기를 청했다.[晉欒鍼請攝飮子重]’로 전(箋)을 지어 올렸고,【11월 친시이다.】 출방 결과 삼상(三上)으로 수석을 차지했다. 밤에 음식을 하사했고, 그대로 감인소에서 직숙했다. 다음 날 물러났다.
  • 651772

    5일. 집에서 ‘공자를 술에 취하게 하여 보냈다.[醉遣公子]’로 부(賦)를 지어 올렸고,【12월 과시이다.】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았다. 저녁에 또 ‘백유가 연장자이다.[伯游長]’로 부를 지어 올렸지만【비교 시험이다.】 나는 제출 시간이 지난 뒤에 지었고 권준
  • 651773

    7일. 동료 4~5인과 함께 감인소에 나아갔는데, 영춘헌(迎春軒)으로 입시하라는 명이 있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신현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었는가?”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읽었습니다.” 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꽤 숙달되도록 익혔는가?” 하여 내가
  • 651774

    9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11월·12월의 과강을 행했는데, 김근순(金近淳) 등 몇 사람이 먼저 들어갔으나 모두 제대로 강을 하지 못하여 엄한 하교가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아가자, 임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제술을 하면 글을 잘 짓고 강을 하면 잘
  • 651775

    10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12월의 친시 및 추등 시사(秋等試射)를 행하여 참석했다. ‘현규(玄圭)’로 오언율시를 지어 올려 차중(次中)을 받았다. 이해 친시를 마치고 곧바로 시사를 행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앞으로 과녁 시사(貫革試射)는 추위가 이와 같으니
  • 651776

    11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나와 권준에게 상을 나누어 주었으므로 전문(箋文)을 올려 사례했으며, 여러 문신이 따라 들어왔는데 나는 말과 표피를 받아서 나왔다.【받은 말은 매우 크고 잘 달렸는데, 몇 년 뒤에 병으로 죽었다.】 이날 류이좌와 김희락이 근친(覲親)하
  • 651777

    12일. 청파역에서 인마가 와서 관아로 출발했고, 20일 즈음에 관아에 이르렀다.
  • 651778

    15일. 내각의 전최 방목(殿最榜目)에서 나에 대한 제목은 ‘전강과 제술에서 함께 수석을 차지했으니, 초계문신을 선발하고 처음 있는 일이다.[講製雙魁設選初有]’였다.【일제학(一提學) 정민시(鄭民始)가 썼다.】
  • 651779

    20일. 도목정사에서【이조 판서 심환지(沈煥之)가 주관했다.】 아버님이 청도 군수(淸道郡守)로 옮겨 임명되었다.【청도는 평소 좋은 고을로 일컬어졌으나 이번 정사에서 전임 수령 어재소(魚在沼)가 하등(下等)을 받아 공석이 되자, 이조 판서가 입시했을 때 임금이 말하기
  • 651780

    27일. 임금이 숙장문(肅章門)에 나아가 친국(親鞫)을 행하여 성덕우(成德雨)는 장을 치고 유배했고 정호인(鄭好仁)은 원지(遠地)에 찬배(竄配)했다. 성덕우(成德雨)는 … 유배했고:1796년(정조 20) 12월 16일 이조 참의 성덕우가 홍봉한의 손자인 홍수영을 제
  • 651781

    29일. 서울 인편이 있어 청도로 옮겨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행장을 꾸렸으나 섣달그믐을 기다렸다가 출발하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위광진(魏光軫)이 강동(江東) 수령이 되었다.
  • 651782

    1월. 2일. 정사(政事)에서【이조 판서 심환지(沈煥之)가 주관했다.】 정언에 임명되었다.【말의를 하비(下批)했다.】 이날 아버님과 큰형님을 모시고 서울로 출발했다.
  • 651783

    4일. 이조 판서 심환지가 승전(承傳)을 거행하지 않은 일로 엄한 하교가 있자 사직소를 올려 체차되었다. 나를 승진시켜 서용하라는 명이 있었는데 의망을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651784

    6일. 탁본한 춘첩(春帖) 4장을 하사받아서 앞 기둥에 붙였다.
  • 651785

    10일. 행차를 모시고 서울에 이르렀다. 이날 신천(信川)의 형은 해주(海州)에 옮겨 임명되었다.
  • 651786

    13일. 아버님이 청도 군수(淸道郡守)로서 사은숙배하자, 재촉하여 내려 보내라고 하교했다.
  • 651787

    16일. 하직했다.
  • 651788

    18일. 아버님이 청도로 가는 행차를 동대문(東大門) 밖까지 모시고 가서 작별을 고하고 돌아왔다. 대사간 오태현(吳泰賢) 등과 함께 조방(朝房)에 나아가 이명연(李明淵)의 일로 연명 차자(箚子)를 올렸다.【이명연이 상소를 올려 작년에 정호인(鄭好仁)과 성덕우(成德雨
  • 651789

    26일. 경상도 관찰사 이태영(李泰永)을 파직하고 이서구(李書九)를 경상도 관찰사로 삼았다.
  • 651790

    27일. 정사에서【이조 판서 이병정(李秉鼎)이 주관했다.】 장령으로 승진하여 임명되었다.【수의를 하비했다.】
  • 651791

    28일. 저녁에 노량(鷺梁)으로 나갔다. 사경(四更)에 임금이 현륭원(顯隆園)으로 행행하여 강머리에서 공경히 전송했다.
  • 651792

    29일. 아버님이 이날 임소(任所)에 도착했다.
  • 651793

    2월. 1일. 밥을 먹은 뒤에 노량에 나아가 동료들과 함께 육신서원(六臣書院) 및 노강서원(鷺江書院)에 참배했다. 저녁에 임금이 화성(華城)에서 환궁했으므로 즉시 강가에서 공경히 맞이했고, 그대로 어가를 수행하여 돌아왔다.
  • 651794

    5일. 삼각산(三角山) 제관 단자(祭官單子)를 아뢰자, 헌관(獻官)에 나를 추가로 써서 내렸다. 다음 날 예빈시(禮賓寺)에 나아가 재계했다.
  • 651795

    7일. 입궐하여 장령으로서 사은숙배하고 향과 축문을 받아 북악(北嶽)에 나아갔다.【삼각산 제향을 북악에서 행했기 때문이다.】 승지 이면긍(李勉兢)과 주서 조석중(曺錫中)이 적간(摘奸)을 하기 위해 나왔다.
  • 651796

    8일. 새벽에 예를 행하고 바로 내려왔다. 사간원의 대간들과【사헌부에는 나 한 사람만 있었다.】 조방(朝房)에 나아가 이명연의 일로 새로 논핵하는 계사를 올리고자 초계(草啓)를 작성할 때, 전교하기를, “대간 중에 지금 초계문신의 직임을 띠고 있는 사람은 체차하라.
  • 651797

    10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1월의 친시(親試)를 행하여 동료들과 참석했는데, 전정(殿庭)에서 ‘본조의 주자소에서 올린 『향음의식』과 『향약조례』[本朝鑄字所進鄕飮儀式鄕約條例]’로 전(箋)을 지어 올렸고, 출방(出榜) 결과 삼하(三下)를 받았다.【홍석주(洪奭周)가
  • 651798

    16일. 경상도 관찰사 이서구(李書九)를 체차해주고, 이형원(李亨元)을 경상도 관찰사로 삼았다.
  • 651799

    19일. 큰형님이 내행차(內行次)를 모시고 청도(淸道)로 출발하는데, 달경(達庚) 모자(母子)도 따라서 모시고 갔다가 서빙고(西氷庫) 나룻가에 이르러 돌아왔다. 내행차(內行次):부인의 행차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큰형인 신진(申縉)이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가 부임해
  • 651800

    28일. 친림하는 춘도기(春到記)와 2월의 친시를 아울러 행하는 데 참석했다. 이날 내행차가 관아에 도착했다. 〔두주〕 28일. 어제(御題)는 ‘초나라 임금에 대해 진나라 극지가 갑주를 입고 있으므로 감히 사자에게만 숙배하겠다고 청했다.[楚晉郤至請蒙甲冑敢肅使]’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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