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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1801

    3월. 1일. 하교하기를, “초계문신 김근순(金近淳)‧신현(申絢)‧조석중(曺錫中)‧홍석주(洪奭周) 4인은 내일부터 주자소(鑄字所)【바로 감인소(監印所)이다.】에 들어가 『정리의궤(整理儀軌)』를 편집, 교정하는 일을 시작하라.” 했다.【을묘년(1795, 정조 19)
  • 651802

    2일. 동료 3인과 함께 새벽에 주자소에 나아가니 바로 『의궤』를 내려주며 하교하기를, “글자에 오류가 많으니 범례도 바로잡은 뒤에라야 인쇄를 할 수 있다. 각별히 더 교정하고 범례도 다시 정하여 가까운 시일에 간행할 수 있는 방도를 기해야 할 것이다.” 했다. 즉
  • 651803

    3일. 조석중과 홍석주 두 동료가 직숙하므로 나와 김근순은 나아가지 않았다.
  • 651804

    4일. 주자소에 나아가 김근순과 함께 직숙했다. 이후로 계속 교정 일을 하느라 밤을 샜다. 하교로 인하여 날마다 두 문신이 직숙하되, 낮에는 모두 모이고 밤에는 두 사람이 직숙했으며, 출직(出直)하는 자도 저물녘에 물러갔다가 다음 날 새벽에 다시 나아갔다.
  • 651805

    5일. 저녁에 김근순과 함께 나왔다.
  • 651806

    6일. 새벽에 김근순과 함께 주자소에 들어갔고, 그대로 홍석주와 함께 반직(伴直)했다. 반직(伴直):두 사람이 당번으로 함께 직숙하는 것이다.
  • 651807

    7일. 저녁에 홍석주와 함께 나왔다.
  • 651808

    8일. 새벽에 홍석주와 함께 주자소에 들어갔고, 그대로 김근순과 반직했다.
  • 651809

    9일. 김근순과 함께 나왔다.
  • 651810

    10일. 새벽에 김근순과 함께 주자소에 들어갔고, 그대로 조석중과 직숙했다.
  • 651811

    11일. 그대로 홍석주와 함께 직숙했다.
  • 651812

    12일. 저녁에 홍석주와 함께 나왔다.
  • 651813

    13일. 새벽에 홍석주와 함께 나아가 그대로 반직했다.
  • 651814

    14일. 저녁에 그대로 함께 나왔다.
  • 651815

    15일. 새벽에 홍석주와 함께 주자소에 나아갔다. 날이 저문 뒤에 이만수(李晩秀)·서용보(徐龍輔)는 네 문신과 함께 입시하라고 명했으므로 곧바로 영춘헌(迎春軒)에 입시하여 문지방 밖에서 엎드렸다. 임금이 말하기를, “신현은 들어왔는가?” 하여【이만수와 서용보는 문지
  • 651816

    16일. 그대로 함께 나왔다.
  • 651817

    17일. 임금이 경모궁(景慕宮)에 행행했다. 새벽에 홍석주와 함께 주자소에 나아갔다. 네 문신이 홍화문(弘化門) 안으로 같이 나아가 출궁하고 환궁할 때 모두 공경히 전송하고 맞이했다. 이후로 동가(動駕)가 홍화문을 경유할 때는 모두 이곳에서 공경히 전송하고 맞이했다
  • 651818

    18일. 대내(大內)에서 『사기영선(史記英選)』 1질을 내리고 말하기를, “이것은 내가 현토(懸吐)를 단 것이다. 오늘부터 네 문신이 함께 입직하여 현토를 단 곳에서 온당치 못한 것은 각각 의견을 내고 찌를 붙여 들이라.” 했다. 이날 4인이 함께 입직하여 찌를 붙
  • 651819

    19일. 아침에 『사기영선』의 일로 나아갔다. 저녁에 대내에서 『팔자백선(八子百選)』 현토본을 내리고 말하기를, “이것도 찌를 붙여 들이되, 어제처럼 하라.” 했다. 곧바로 밤까지 찌를 붙였다. 밤에 또 『사기영선』 1책을 내렸으므로 네 문신이 편을 나누어 현토를
  • 651820

    20일. 하교하기를, “네 문신이 전적으로 편하게만 하려고 하는구나. 어제 내린 『사기영선』 현토본은 더 바로잡아 고치려고 했던 것인데 지금 한 군데도 바로잡아 고친 곳이 없이 단지 대내에서 내려준 현토본을 베껴 내기만 하고 그대로 자러 갔으니 그 행위는 밥을 먹을
  • 651821

    21일. 하교하기를, “『사기영선』의 현토를 바로잡는 일은 네 문신이 전부 할 수 없으니, 다른 초계문신 8인을 들어가게 해서 일을 돕게 하라.” 했다. 이날 8인의 문신이 들어와 함께 일했다. 저녁에 모두 나갔고, 네 문신은 모두 직숙했다.
  • 651822

    22일. 8인의 문신이 들어와 함께 일을 하고 그대로 같이 입직했으며, 홍어(洪魚) 1미를 하사받았다.
  • 651823

    23일. 저녁에 『사기영선』 현토를 바로잡는 일을 마치고 올렸다. 음식을 하사받아 매우 감동했다. 곧바로 이만수는 네 문신과 함께 입시하라고 명했으므로 곧바로 영춘헌에 입시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일 신구(新舊) 초계문신에 대해 합시(合試)를 하고자 하는데, 너
  • 651824

    24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갔다. 신구 초계문신의 친시(親試) 및 시사(試射)를 합시(合試)하는 데에 나아가 참석하여, ‘한나라 신하들이, 승상 조참이 후원에서 노니는 중에 이사에서 술에 취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자 도리어 술을 가지고 가서 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 651825

    25일. 새벽에 세 동료와 함께 주자소에 나아가 『의궤』를 편집하고 교정했다. 저녁에 대내에서 내린 『팔자백선』 1건에 현토를 달아 올렸다. 저녁에 김근순과 함께 나갔다.
  • 651826

    26일. 새벽에 김근순과 함께 주자소에 나아갔다. 다른 초계문신 8인이 들어가 대내에서 내린 『사기영선』에 현토를 달아 올리라고 명했다. 저녁에 동료들이 모두 나가고 그대로 김근순과 함께 직숙했다. 이날 정사에서 정언으로 말의에 들었다.【수의 이희갑(李羲甲)과 부의
  • 651827

    27일. 이만수는 네 문신과 함께 영춘헌에 입시하라고 명하고 하교하기를, “다른 초계문신 20인을 들어가게 해서 『사기영선』에 현토를 달아 올리되 네 문신이 그 일을 주관하고, 1인마다 각각 1권을 맡고 1권마다 다섯 문신이 현토를 달아 올려라.” 했다. 즉시 현토
  • 651828

    28일. 새벽에 김근순과 함께 주자소에 나아갔다. 어제 현토를 단 것이 정밀하지 않았는데도 문신들이 지레 나갔기 때문에 ‘이만수는 체직(遞職)하고 문신들은 모두 추고(推考)한 다음 다시 현토를 달아 올리라.’는 엄한 하교가 있었다. 어제처럼 으레 저녁이 되어서야 일
  • 651829

    29일. 저녁에 교정을 마치고 올렸다. 문신들이 모두 나가고, 나만 김근순과 함께 직숙했다.
  • 651830

    30일. 네 문신에게 당지(唐紙)로 만든 『팔자백선』 1건을 하사하고, 또 점심으로 쌀 1석(石)·절인 준치[眞魚醢] 3미·절인 밴댕이[蘇魚醢] 2급을 하사했다.【당시 네 문신이 연일 입직했는데, 혹 집이 멀어 점심을 먹지 못한다는 것을 임금이 듣고서 특별히 하사한
  • 651831

    4월. 1일. 새벽에 김근순과 주자소에 들어가 이만수·이시원(李始源)과 함께 『주서백선(朱書百選)』 현토본을 교정하여 올렸다. 종묘(宗廟) 하향 대제(夏享大祭) 제5실(室) 집준(執尊)에 임명되었다.【주자소에 있는 네 문신은 특교가 아니면 제관에 차정하지 말라는 명
  • 651832

    2일. 이시원·이만수·김근순과 함께 『주서백선』 현토본을 교정하여 올렸다. 저녁에 김근순과 함께 나갔다.
  • 651833

    3일. 이만수·한만유(韓晩裕)·김근순과 함께 『팔자백선』 현토본을 교정하여 올렸다. 그대로 김근순과 함께 직숙했다. 이날 삭서(朔書)에 대한 출방 결과 제3인이었다. 세 동료와 함께 각각 장지(壯紙) 3속 10장을 상으로 받았다.【제3인은 으레 2속을 상으로 받는데
  • 651834

    4일. 저녁에 물러났다.【이 해가 끝날 때까지 주자소에 사진(仕進)했는데 정중한 하교와 성대한 하사품이 기억나는 것이 많은데, 무오년(1798년, 정조 22) 화재 이후 더 상고할 만한 것이 없고 이후로는 사진한 일기만 있어서 누구와 반직했고 무슨 책을 교정했는지
  • 651835

    5일. 의정부(議政府)에 나아가 이의(肄儀)에 참석하고 그대로 주자소에 가서 직숙했다. 다음 날 그대로 입직했다.【김근순과 반직하다가 제관에 차정되었으므로 겸하여 재숙(齋宿)한 것이다.】
  • 651836

    7일. 김근순과 함께 종묘의 향소(享所)에 나아갔다. 임금이 종묘에 행행하여 향관들과 함께 반열을 이루어 공경히 맞이했다.
  • 651837

    8일. 새벽에 임금이 종묘의 하향 대제를 친히 행할 때 집준으로서 나아가 참석했고,【집준은 달리 하는 것이 없어서 준소(尊所)에 나아가 서 있었을 뿐이다.】 제향을 파하자 물러나 돌아왔다. 아침에 주자소에 나아가 교정 일을 하고 저녁에 물러났다. 다음 날 또 아침에
  • 651838

    10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1839

    11일. 저녁에 물러났다.
  • 651840

    12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1841

    13일. 저녁에 물러났다.
  • 651842

    14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1843

    15일. 저녁에 물러났다.
  • 651844

    16일. 주자소에 나아갔다. ‘우서자 한유가 잔을 들고 말하다.[右庶子韓愈執盞言曰]’로 부(賦)를 지어 올렸는데,【4월 친시이다.】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았다. 그대로 직숙했다.
  • 651845

    17일. 어제 지은 것이 좋지 못하여 모두 다시 시험 보았다. ‘순 임금이 역산에서 밭 갈고, 하빈에서 질그릇을 굽고, 뇌택에서 고기잡이를 했는데 백성들이 순을 선택한 것에 대해 사례하다.[虞歷山河濱雷澤民人等謝取諸人]’로 표(表)를 지어 올렸고, 출방 결과 차중(次
  • 651846

    18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이날 개강을 위한 습의(習儀)를 했는데, 사부(師傅) 송환기(宋煥箕)가 소명을 받들고 서울에 올라왔다.
  • 651847

    19일. ‘여종을 돌아보고 시시콜콜 여러 가지 당부를 하여 마지않는다.[丁寧顧婢子語刺刺不能休]’로 부를 지어 올렸고,【그저께 지은 것이 좋지 못하여 모두 다시 시험 보았다.】 출방 결과 차상(次上)을 받았다. 저녁에 물러나 돌아왔다.
  • 651848

    20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1849

    21일. 원자궁(元子宮)이 집복헌(集福軒)의 외헌(外軒)에서【바로 영춘헌이다.】 개강(開講)하여 사부 송환기와 유선(諭善) 윤득부(尹得孚)가 나아가 참석했다. 원자궁이 『소학(小學)』의 편제(篇題)를 강했는데, 음성이 크고 또렷했으며 구두가 분명했고, 어려운 뜻풀이
  • 651850

    22일. 주자소에 나아가 그대로 직숙했다. 25일 저녁이 되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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