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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52,310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651951

    28일. 네 문신은 중희당(重熙堂)에 입시하라고 명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근래 너희들이 꽤 수고했다.” 했다. 또 하교하기를, “4인 중에 2인을 경시관으로 삼았는데 왕래하는 기간에 날짜가 조금 길어지면 윤직이 허술해질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 사이에는
  • 651952

    29일. 그믐.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1953

    8월. 1일. 저녁에 출직했다. 다음 날 또 나아갔다가 저녁에 물러났다.
  • 651954

    3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1955

    4일. 저녁에 물러났다.
  • 651956

    5일. 주자소에 나아갔다가 저녁에 물러났다. 다음 날 또 나아갔다가 저녁에 물러났다.
  • 651957

    7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1958

    8일. 직소에서 합문(閤門) 밖으로 나아가 김근순과 함께 시관으로 행차하는 일로 같은 날 하직 인사를 했다. 각각 납약(臘藥)을 하사받고 바로 물러나 돌아왔다.
  • 651959

    9일. 저물녘에 영남으로 시관 행차를 출발했는데, 사헌부 서리 주경운(朱景雲) 및 천돌(千乭)과 용복(龍福)이 따랐다. 저녁에 용인(龍仁)에서 묵었는데, 수령 정우태(丁遇泰)가 와서 만나보았다.
  • 651960

    10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양지(陽智)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수령 신석상(申奭相)이 와서 만나보았다. 바로 출발하여 좌찬역(佐贊驛) 참사(站舍)에 도착했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큰형님을 만나 뵈었다. 저녁에 죽산(竹山) 숙소에 이르자 수령 심갱(沈鏗) 어른이 찾아왔다
  • 651961

    11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저녁에 음성(陰城)에서 묵었는데, 아사(雅士) 박화문(朴和文)이 방문했고, 수령 노숙(盧橚)이 와서 만나 보았다. 계축년(1793년, 정조 17) 가을에 음성에서 올라온 뒤에 다시 볼 방편이 없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길을 조금 우회했지만
  • 651962

    12일. 출발하여 저녁에 충주(忠州)에서 묵었다.
  • 651963

    13일. 출발하여 연풍(延豐)의 안보역(安保驛) 참사에서 묵었다.
  • 651964

    14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수옥정(漱玉亭)을 보고 나서 고개를 넘었는데, 영리(營吏) 김우량(金遇良) 및 문경(聞慶)의 하인 등이 고개 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문경에 이르러 묵었는데, 수령 송윤재(宋倫載)가 와서 만나 보았다.
  • 651965

    15일. 그대로 문경에 머물러 고을에서 시험을 거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항목으로 글을 지어 관문(關文)을 보내 시험장[試場]에 방(榜)을 내걸어서 거자(擧子)들이 삼령오신(三令五申)을 보고 금령을 범하지 말게 했다. 하나, 영남은 평소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일컬어
  • 651966

    16일. 출발하여 함창(咸昌)에서 묵었는데, 문경의 통인(通引) 5인과 함창의 통인 2인이 일 때문에 상주(尙州)로 옮겨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시험장을 연 뒤에 다른 고을의 통인을 시켜 함께 간사한 폐단을 막고자 했다.
  • 651967

    17일. 저물녘에 출발하여 상주의 경계에서 묵었다.
  • 651968

    18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상주에 이르렀다. 예전부터 시관이 시험장에 들어갈 적에는 으레 시읍(試邑)에서 군사를 보내 호위해서 거자들이 길을 막고 소란을 피우는 폐단을 방지했는데, 이번에는 모두 철거하게 하여 가마만 타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참시관(參試官)인 현풍
  • 651969

    19일. 참시관‧부시관과 함께 시험장을 열었다. 부제(賦題)는 ‘제나라와 노나라의 도읍에서 학업을 하다.[講業齊魯之都]’였고, 시제(詩題)는 ‘처음으로 제후대장군으로 삼다.[始爲諸侯上將軍]’였다.【장(將) 자 압운이다.】 새로운 정식대로 3시각을 한도로 두되, 묘시
  • 651970

    20일. 환약을 특별히 하사받았는데, 서울에서 내려온 것이다. 두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하는 일은 밤이 되어서야 마쳤다. 오후에 문을 열고 거자들을 들였다.
  • 651971

    21일. 종장(終場)을 설행했는데 의제(義題)는 ‘오백리미(五百里米)’이고, 의심제(疑心題)는 ‘문심성정(問心性情)’이었다. 거두어들인 시권은 1,600여 장이었고, 두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했는데 밤이 되도록 마치지 못했다. 상주(尙州)의 부유한 상인이 시지(試
  • 651972

    22일. 두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하여 저녁이 되어서야 마쳤다. 밤에 출방(出榜)하여 100인을 뽑았다.【내년 회시(會試)까지 방목(榜目)에 든 자가 25~26인으로 매우 많았는데, 대부분 우등이었다.】
  • 651973

    23일. 네 수령과 함께 음악을 베풀고, 방목 및 과작(科作)을 수정했다.
  • 651974

    24일. 방목 및 과작을 정서(正書)하여 두 시관 및 금란관에게 보내 각각 해당 고을로 돌아가게 했다.
  • 651975

    25일. 방목과 과작을 봉계(封啓)하고 그대로 관아에서 출발했다. 저녁에 선산(善山)에서 묵었는데, 수령 윤문동(尹文東)이 와서 만나 보았다.
  • 651976

    26일. 저녁에 대구(大丘)에서 묵었는데, 수령 홍이간(洪履簡) 및 관찰사 이형원(李亨元)이 찾아왔다.
  • 651977

    27일. 새벽에 출발하여 경산(慶山)에서 점심을 먹었고, 수령 김인주(金仁柱)가 와서 만나 보았다. 곧바로 출발하여 관아에 이르러 부모님을 뵈었다.
  • 651978

    28일부터 30일까지. 관아에 머물렀다.
  • 651979

    9월. 1일. 작별을 하고 동당시(東堂試)를 행하러 출발하여 경산에서 점심을 먹었고, 수령 김인주가 와서 만나 보았다. 저녁에 대구에서 묵었는데 수령 홍이간이 와서 만나 보았고, 관찰사는 순시(巡視)를 나가서 만나 보지 못했다.
  • 651980

    2일. 새벽에 출발하여 성주(星州)에 이르러 곧바로 시소(試所)에 들어가자, 부시관인 칠원(漆原) 수령 박명섭(朴命燮), 참시관인 김천(金泉) 찰방 정원선(鄭元善), 금란관인 성주 수령 윤광수(尹光垂)가 와서 만나 보았다. 동당시의 규정은 초시(初試)에서는 제술(製
  • 651981

    3일. 두 시관과 함께 봉강(捧講)을 하여 밤이 되어서야 마쳤다. 처음에 와서 응시한 거자(擧子)가 수백 인이었는데, 강경의 규정이 꽤 엄격하다는 것을 듣고 떠난 자가 과반이었고 100여 인만 강경에 응시했지만, 강경에 응시한 자들도 대부분 낙방하고 강경을 잘한 7
  • 651982

    4일. 두 시관과 함께 시험장을 열어 좌도와 우도의 동당 초시를 합설했다.【감시(監試)는 좌도가 감영에서 설행하고, 동당시는 좌도와 우도가 경시관이 있는 곳에서 합설했다.】 이날 초장(初場)의 의심제(疑心題)는 ‘문학사명성(問學仕明誠)’이고, 논제(論題)는 ‘자막이
  • 651983

    5일. 중장(中場)을 설행했는데, 부제(賦題)는 ‘이남이 왕도의 기본이다.[二南王道之基本]’이고, 표제(表題)는 ‘당우의 신하들이 사관이 군신 간의 아름다운 말씀과 선정을 기술하여 「요전」과 「순전」에 미비된 것을 갖춤을 하례하다.[虞群臣賀史臣敍君臣之間嘉言善政以備二
  • 651984

    6일. 종장을 설행했는데, 책제(策題)는 ‘문경서전주(問經書箋注)’였고, 시권 35장을 거두었다. 아침에 또 사람을 보내 부시관을 불렀더니 부시관도 경솔하고 망령된 행동에 대해 스스로 뉘우치고 즉시 자리에 나와 서로 사과했다. 그대로 함께 시권을 채점했는데, 밤이
  • 651985

    7일. 시권 채점을 마치고 출방하여 좌도와 우도의 30인을 뽑았다. 출방할 때 이세백은 방목에 들지 못했다. 이세백은 좌도의 유생인데, 좌도의 합격자 가운데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한 자가 없었고 또 추후 합격자에도 들지 못했다. 내가 말하기를, “곤궁한 유생의 사정이
  • 651986

    8일. 두 시관이 해당 고을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했다. 방목과 과작(科作)을 수정하는 일을 마치지 못했다.
  • 651987

    9일. 수령과 함께 음악을 베풀고, 방목과 과작을 수정했다.
  • 651988

    10일. 방목과 과작을 봉계(封啓)하고 즉시 출발하여 강창(江倉)에서 점심을 먹었다.【인동(仁同) 소속이다.】【40리를 갔다.】 인동에서 말에게 꼴을 먹였으며,【30리를 갔다.】 수령 최헌중(崔獻重)이 와서 만나 보았다. 저녁에 효령창(孝令倉)에서 묵었으니,【군위(
  • 651989

    11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군위에서 점심을 먹었고【30리를 갔다.】 수령이 와서 만나 보았다. 저녁에 의성(義城)에서 묵었고【50리를 갔다.】 수령이 와서 만나 보았다. 이날 큰형수가 분만하여 딸을 낳았다.【불을 켤 시간이었다고 한다.】
  • 651990

    12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일직창(一直倉)에서 점심을 먹었다.【안동(安東) 소속이다.】【40리를 갔다.】 저녁에 안동에 이르러【30리를 갔다.】 영호루(映湖樓)에 올랐으며, 어둑어둑해질 즈음에 고을 안에 이르자 수령 오태현(吳泰賢)이 음악을 베풀고 술과 안주를 갖
  • 651991

    13일. 출발하여 예안에서 점심을 먹고【40리를 갔다.】 수령 이영하(李永夏)가 와서 만나 보았다. 즉시 출발하여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배알했는데,【10리를 갔다.】 퇴계 선생이 강학하던 옛 재실이다. 재실이 있던 터에 서원을 세웠는데 정사(精舍) 한 칸을 두고 청
  • 651992

    14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암대(巖臺)를 두루 관람하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곧바로 출발했다. 저녁에 봉화(奉化)에서 묵었는데【30리를 갔다.】 수령이 와서 만나보았다.
  • 651993

    15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부석사(浮石寺)에 이르렀다.【순흥(順興) 소속이다.】【40리를 갔다.】 부석(浮石)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돌 모양이 기괴하여 공중에 떠 있는 형상이므로 부석이라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한 덩어리의 큰 돌이 땅에 웅크린 듯 박혀 있는 것을
  • 651994

    16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풍기(豐基)에서 점심을 먹었다.【20리를 갔다.】 수령 이면제(李勉齊)가 소소한 음식상을 베풀었다. 고개 아래에 이르러 영리(營吏) 김우량(金遇良) 등이 뒤쳐졌다. 죽령(竹嶺)을 넘을 때 비바람을 만나 밤중에서야 단양(丹陽)에 이르러 묵
  • 651995

    17일. 출발하여 저녁에 충주(忠州)의 아사(雅士) 이면눌(李勉訥) 집에서 묵었다.
  • 651996

    18일. 출발하여 저녁에 죽산(竹山)에서 묵었고, 수령 심(沈) 어른이 왔다. 이날 하교가 있었는데, 신현은 언제 들어오는지 알아보고 들어오라는 명이었으니, 대체로 다른 도의 경시관은 모두 올라왔기 때문이다.
  • 651997

    19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용인에서 묵었다.
  • 651998

    20일. 늦은 오후에 서울에 도착하여 복명(復命)한 즉시 나왔다. 다른 도의 경시관은 모두 방목과 과작을 봉계한 것 중에 격식을 어긴 것이 있어 잡아 가두었지만, 영남의 봉계는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한다.
  • 651999

    21일. 미동(尾洞)에 사는 이(李) 이모의 상을 당하여 가서 곡했다.
  • 652000

    22일. 탄신일에 문후하는 반열은 복제(服制)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 날, 미동의 입관(入棺)하는 날이라 가서 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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