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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8일. 네 문신은 중희당(重熙堂)에 입시하라고 명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근래 너희들이 꽤 수고했다.” 했다. 또 하교하기를, “4인 중에 2인을 경시관으로 삼았는데 왕래하는 기간에 날짜가 조금 길어지면 윤직이 허술해질 텐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 사이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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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9일. 그믐.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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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8월. 1일. 저녁에 출직했다. 다음 날 또 나아갔다가 저녁에 물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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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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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4일. 저녁에 물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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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5일. 주자소에 나아갔다가 저녁에 물러났다. 다음 날 또 나아갔다가 저녁에 물러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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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7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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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8일. 직소에서 합문(閤門) 밖으로 나아가 김근순과 함께 시관으로 행차하는 일로 같은 날 하직 인사를 했다. 각각 납약(臘藥)을 하사받고 바로 물러나 돌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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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9일. 저물녘에 영남으로 시관 행차를 출발했는데, 사헌부 서리 주경운(朱景雲) 및 천돌(千乭)과 용복(龍福)이 따랐다. 저녁에 용인(龍仁)에서 묵었는데, 수령 정우태(丁遇泰)가 와서 만나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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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0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양지(陽智)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수령 신석상(申奭相)이 와서 만나보았다. 바로 출발하여 좌찬역(佐贊驛) 참사(站舍)에 도착했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큰형님을 만나 뵈었다. 저녁에 죽산(竹山) 숙소에 이르자 수령 심갱(沈鏗) 어른이 찾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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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1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저녁에 음성(陰城)에서 묵었는데, 아사(雅士) 박화문(朴和文)이 방문했고, 수령 노숙(盧橚)이 와서 만나 보았다. 계축년(1793년, 정조 17) 가을에 음성에서 올라온 뒤에 다시 볼 방편이 없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길을 조금 우회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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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2일. 출발하여 저녁에 충주(忠州)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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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3일. 출발하여 연풍(延豐)의 안보역(安保驛) 참사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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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4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수옥정(漱玉亭)을 보고 나서 고개를 넘었는데, 영리(營吏) 김우량(金遇良) 및 문경(聞慶)의 하인 등이 고개 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문경에 이르러 묵었는데, 수령 송윤재(宋倫載)가 와서 만나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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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5일. 그대로 문경에 머물러 고을에서 시험을 거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항목으로 글을 지어 관문(關文)을 보내 시험장[試場]에 방(榜)을 내걸어서 거자(擧子)들이 삼령오신(三令五申)을 보고 금령을 범하지 말게 했다. 하나, 영남은 평소 추로지향(鄒魯之鄕)으로 일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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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6일. 출발하여 함창(咸昌)에서 묵었는데, 문경의 통인(通引) 5인과 함창의 통인 2인이 일 때문에 상주(尙州)로 옮겨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시험장을 연 뒤에 다른 고을의 통인을 시켜 함께 간사한 폐단을 막고자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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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7일. 저물녘에 출발하여 상주의 경계에서 묵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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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8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상주에 이르렀다. 예전부터 시관이 시험장에 들어갈 적에는 으레 시읍(試邑)에서 군사를 보내 호위해서 거자들이 길을 막고 소란을 피우는 폐단을 방지했는데, 이번에는 모두 철거하게 하여 가마만 타고 시험장에 들어갔다. 참시관(參試官)인 현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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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9일. 참시관‧부시관과 함께 시험장을 열었다. 부제(賦題)는 ‘제나라와 노나라의 도읍에서 학업을 하다.[講業齊魯之都]’였고, 시제(詩題)는 ‘처음으로 제후대장군으로 삼다.[始爲諸侯上將軍]’였다.【장(將) 자 압운이다.】 새로운 정식대로 3시각을 한도로 두되, 묘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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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0일. 환약을 특별히 하사받았는데, 서울에서 내려온 것이다. 두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하는 일은 밤이 되어서야 마쳤다. 오후에 문을 열고 거자들을 들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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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1일. 종장(終場)을 설행했는데 의제(義題)는 ‘오백리미(五百里米)’이고, 의심제(疑心題)는 ‘문심성정(問心性情)’이었다. 거두어들인 시권은 1,600여 장이었고, 두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했는데 밤이 되도록 마치지 못했다. 상주(尙州)의 부유한 상인이 시지(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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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2일. 두 시관과 함께 시권을 채점하여 저녁이 되어서야 마쳤다. 밤에 출방(出榜)하여 100인을 뽑았다.【내년 회시(會試)까지 방목(榜目)에 든 자가 25~26인으로 매우 많았는데, 대부분 우등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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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3일. 네 수령과 함께 음악을 베풀고, 방목 및 과작(科作)을 수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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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4일. 방목 및 과작을 정서(正書)하여 두 시관 및 금란관에게 보내 각각 해당 고을로 돌아가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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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5일. 방목과 과작을 봉계(封啓)하고 그대로 관아에서 출발했다. 저녁에 선산(善山)에서 묵었는데, 수령 윤문동(尹文東)이 와서 만나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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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6일. 저녁에 대구(大丘)에서 묵었는데, 수령 홍이간(洪履簡) 및 관찰사 이형원(李亨元)이 찾아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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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7일. 새벽에 출발하여 경산(慶山)에서 점심을 먹었고, 수령 김인주(金仁柱)가 와서 만나 보았다. 곧바로 출발하여 관아에 이르러 부모님을 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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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8일부터 30일까지. 관아에 머물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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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9월. 1일. 작별을 하고 동당시(東堂試)를 행하러 출발하여 경산에서 점심을 먹었고, 수령 김인주가 와서 만나 보았다. 저녁에 대구에서 묵었는데 수령 홍이간이 와서 만나 보았고, 관찰사는 순시(巡視)를 나가서 만나 보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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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일. 새벽에 출발하여 성주(星州)에 이르러 곧바로 시소(試所)에 들어가자, 부시관인 칠원(漆原) 수령 박명섭(朴命燮), 참시관인 김천(金泉) 찰방 정원선(鄭元善), 금란관인 성주 수령 윤광수(尹光垂)가 와서 만나 보았다. 동당시의 규정은 초시(初試)에서는 제술(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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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일. 두 시관과 함께 봉강(捧講)을 하여 밤이 되어서야 마쳤다. 처음에 와서 응시한 거자(擧子)가 수백 인이었는데, 강경의 규정이 꽤 엄격하다는 것을 듣고 떠난 자가 과반이었고 100여 인만 강경에 응시했지만, 강경에 응시한 자들도 대부분 낙방하고 강경을 잘한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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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4일. 두 시관과 함께 시험장을 열어 좌도와 우도의 동당 초시를 합설했다.【감시(監試)는 좌도가 감영에서 설행하고, 동당시는 좌도와 우도가 경시관이 있는 곳에서 합설했다.】 이날 초장(初場)의 의심제(疑心題)는 ‘문학사명성(問學仕明誠)’이고, 논제(論題)는 ‘자막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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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5일. 중장(中場)을 설행했는데, 부제(賦題)는 ‘이남이 왕도의 기본이다.[二南王道之基本]’이고, 표제(表題)는 ‘당우의 신하들이 사관이 군신 간의 아름다운 말씀과 선정을 기술하여 「요전」과 「순전」에 미비된 것을 갖춤을 하례하다.[虞群臣賀史臣敍君臣之間嘉言善政以備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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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6일. 종장을 설행했는데, 책제(策題)는 ‘문경서전주(問經書箋注)’였고, 시권 35장을 거두었다. 아침에 또 사람을 보내 부시관을 불렀더니 부시관도 경솔하고 망령된 행동에 대해 스스로 뉘우치고 즉시 자리에 나와 서로 사과했다. 그대로 함께 시권을 채점했는데, 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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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7일. 시권 채점을 마치고 출방하여 좌도와 우도의 30인을 뽑았다. 출방할 때 이세백은 방목에 들지 못했다. 이세백은 좌도의 유생인데, 좌도의 합격자 가운데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한 자가 없었고 또 추후 합격자에도 들지 못했다. 내가 말하기를, “곤궁한 유생의 사정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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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8일. 두 시관이 해당 고을로 돌아가는 것을 전송했다. 방목과 과작(科作)을 수정하는 일을 마치지 못했다. -
65198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9일. 수령과 함께 음악을 베풀고, 방목과 과작을 수정했다. -
65198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0일. 방목과 과작을 봉계(封啓)하고 즉시 출발하여 강창(江倉)에서 점심을 먹었다.【인동(仁同) 소속이다.】【40리를 갔다.】 인동에서 말에게 꼴을 먹였으며,【30리를 갔다.】 수령 최헌중(崔獻重)이 와서 만나 보았다. 저녁에 효령창(孝令倉)에서 묵었으니,【군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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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1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군위에서 점심을 먹었고【30리를 갔다.】 수령이 와서 만나 보았다. 저녁에 의성(義城)에서 묵었고【50리를 갔다.】 수령이 와서 만나 보았다. 이날 큰형수가 분만하여 딸을 낳았다.【불을 켤 시간이었다고 한다.】 -
65199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2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일직창(一直倉)에서 점심을 먹었다.【안동(安東) 소속이다.】【40리를 갔다.】 저녁에 안동에 이르러【30리를 갔다.】 영호루(映湖樓)에 올랐으며, 어둑어둑해질 즈음에 고을 안에 이르자 수령 오태현(吳泰賢)이 음악을 베풀고 술과 안주를 갖 -
65199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3일. 출발하여 예안에서 점심을 먹고【40리를 갔다.】 수령 이영하(李永夏)가 와서 만나 보았다. 즉시 출발하여 도산서원(陶山書院)에 배알했는데,【10리를 갔다.】 퇴계 선생이 강학하던 옛 재실이다. 재실이 있던 터에 서원을 세웠는데 정사(精舍) 한 칸을 두고 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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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4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암대(巖臺)를 두루 관람하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작은 암자에서 잠시 쉬었다가 곧바로 출발했다. 저녁에 봉화(奉化)에서 묵었는데【30리를 갔다.】 수령이 와서 만나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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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5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부석사(浮石寺)에 이르렀다.【순흥(順興) 소속이다.】【40리를 갔다.】 부석(浮石)을 보았는데, 처음에는 돌 모양이 기괴하여 공중에 떠 있는 형상이므로 부석이라 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한 덩어리의 큰 돌이 땅에 웅크린 듯 박혀 있는 것을 -
651994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6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풍기(豐基)에서 점심을 먹었다.【20리를 갔다.】 수령 이면제(李勉齊)가 소소한 음식상을 베풀었다. 고개 아래에 이르러 영리(營吏) 김우량(金遇良) 등이 뒤쳐졌다. 죽령(竹嶺)을 넘을 때 비바람을 만나 밤중에서야 단양(丹陽)에 이르러 묵 -
651995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7일. 출발하여 저녁에 충주(忠州)의 아사(雅士) 이면눌(李勉訥) 집에서 묵었다. -
65199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8일. 출발하여 저녁에 죽산(竹山)에서 묵었고, 수령 심(沈) 어른이 왔다. 이날 하교가 있었는데, 신현은 언제 들어오는지 알아보고 들어오라는 명이었으니, 대체로 다른 도의 경시관은 모두 올라왔기 때문이다. -
65199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9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용인에서 묵었다. -
65199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0일. 늦은 오후에 서울에 도착하여 복명(復命)한 즉시 나왔다. 다른 도의 경시관은 모두 방목과 과작을 봉계한 것 중에 격식을 어긴 것이 있어 잡아 가두었지만, 영남의 봉계는 다행히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한다. -
65199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1일. 미동(尾洞)에 사는 이(李) 이모의 상을 당하여 가서 곡했다. -
65200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2일. 탄신일에 문후하는 반열은 복제(服制) 중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 날, 미동의 입관(入棺)하는 날이라 가서 곡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