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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00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4일. 미동에서 성복(成服)한 뒤에 하교로 인해 궐에 나아갔지만 초상집을 드나들었기 때문에 밖에서 물러나 돌아왔다. 이날 정사에서 겸 장령(兼掌令)이 감하(減下)되었다. -
652002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5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2003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6일. 임금이 춘당대에 나아가 신구 초계문신의 9월 친시(親試) 및 시사(試射)를 합시(合試)했는데, ‘파릉에서 술을 마시고 동정의 가을에 취하다.[巴陵酒醉洞庭秋]’로 부(賦)를 지어 올려 삼중(三中)을 받았다. 곧바로 시사를 행하여 소포(小布)에 5순(巡)을 쏘 -
652004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7일. 아침에 물러났다. -
652005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8일. 주자소에 나아갔다. 『정리의궤』는 편(編)을 나누어 문신들에게 주고 언해로 번역하여 들이라고 명했는데, 자궁(慈宮)에게 들여 살피게 할 것이었다. 나는 「영흥본궁제향편(永興本宮躋享編)」을 받았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 번역해 오라고 명했으므로 즉시 문신들과 -
65200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9일. 그믐. 이날부터 『의궤』를 번역했다. 초계문신 동료들은 모두 이달 중에 『중용』으로 조대(條對)를 지어 올렸지만, 나와 김근순은 그사이에 시험을 주관하는 일로 지어 올리지 못했으므로 다시 기한을 늦추어 지어 올리게 했다. -
65200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0월. 1일. 『의궤』를 번역했다. -
65200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일. 『의궤』를 번역했다. ‘신명사 상량문(神明舍上樑文)’을 지어 올렸는데【9월 과시이다.】 출방 결과 삼하(三下)를 받았다. -
65200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일. 『의궤』를 번역했다. -
65201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4일. 『의궤』를 번역했다. -
65201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5일. 『의궤』를 번역했다. 이날 정사에서【이조 참판 서매수가 주관했다.】 동지사 서장관(冬至使書狀官)에 임명되었다.【말의를 하비했다. 수의 정동관(鄭東觀)과 부의 유하원(柳河源)은 모두 이미 홍문관 직임을 거쳤다.】 -
652012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6일. 『의궤』 번역을 마쳤다. 전교하기를 “서장관 신현이 인출을 감독하는 일은 배표(拜表) 전까지 마칠 수 없으니, 전 서장관 홍낙유(洪樂游)가 그대로 맡으라.” 했다. 〔두주〕 번역한 『의궤』를 올린 뒤에 전도(剪刀)·인도(引刀)·소성(梳省)·편서(片絮)·호초( -
652013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7일. 주자소에 나아가 번역한 『의궤』를 올리고 그대로 직숙했다. 다음 날 새벽에 물러났다. -
652014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0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10월삭 친시를 행했는데, 어제(御題)는 ‘회계의 비석은 거의 곱절이나 된다.[會稽之石幾倍之]’로 부(賦)를 짓는 것이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희들은 이 해제(解題)를 알고 있는가?” 하자 모두 대답하기를, “모릅니다.” 했다. 임 -
652015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1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201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2일. ‘약이비어(若以鼻語)’로 부를 지어 올려【1월의 친시를 다시 시험 본 것이다.】 삼하(三下)를 받았다. 저물녘에 출직(出直)했다. -
65201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5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다음 날 물러났다. -
65201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7일. 입궐했다. 초계문신을 2대(隊)로 나누어 한쪽은 내각에 나아가고, 한쪽은 주자소에 나아가라고 명했다.【신현‧조석중(曺錫中)‧김근순(金近淳)‧홍낙준(洪樂浚)‧류이좌(柳台佐)‧이영발(李英發)‧홍명주(洪命周)‧김처암(金處巖)‧강준흠(姜浚欽)은 내각에 나아갔고, -
65201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9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다음 날 아침에 물러났다. -
65202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1일. 지난날 제술에 응시한 문신은 자리를 바꾸라고 명하여【내각에서 제술에 응시한 자는 주자소로 나아가고, 주자소에서 제술에 응시한 자는 내각으로 나아갔다.】 즉시 주자소에 나아가 ‘성이 곧 이이다.[性卽理]’로 설(說)을 지어 올려【3월의 친시를 다시 시험 보는 -
65202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2일. ‘본조의 도총제 황형이 「나라가 위급할 때 황형이 잠에서 깨어났다」라고 유시한 것을 사례하다.[本朝都摠制黃衡謝於御樓之辰諭以黃衡眠起矣]’로 전(箋)을 지어 올려 삼하(三下)를 받았다. 저녁에 문신들 모두 물러나라고 명했다. -
652022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3일. 정사에서【이조 참판 서매수가 주관했다.】 장령에 임명되었다.【말의를 하비했다. 수의 홍수만(洪秀晩)과 부의 박윤수(朴崙壽)는 모두 홍문관 직임을 거쳤던 사람들이다.】 이날부터 집에서 「중용강의조대(講義條對)」를 지었다. -
652023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5일. 주자소에 입직하는 일이 어려워지자 권준(權晙)에게 이날부터 돌아가며 입직하라고 명했다. -
652024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7일. 패초에 나아가지 않아 추고만 받았다. -
652025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9일. 그믐. 패초에 나아가지 않아 승전에 따라 파직되었다. -
65202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1월. 1일부터 그믐까지. 파직되어 집에 있으면서 『중용』으로 조대를 지어서 나아가 올리고 아울러 『주서백선(朱書百選)』을 읽었으며, 다른 공무는 없었다. 동짓날이라 황장력(黃粧曆) 1건과 중력(中曆) 1건을 하사받았고, 그 후에 또 숯과 땔나무를 하사받았으며, -
65202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2월. 1일. 파산(罷散)된 자들을 세초(歲抄)하여 모두 서용(敍用)했는데, 나도 그 중에 포함되어 즉시 주자소로 나아갔고, 토시[吐手]를 만들 양가죽 2장 및 토시를 만들 옷감을 하사받았다. 이후에 또 생치(生雉)·산귤(山橘)·곶감을 하사받았고, 또 별도로 공책 -
65202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8월삭 과강을 행했는데, 참석하여 『주서백선』을 면강(面講)하여 순략(純略)을 받았다. -
65202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203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4일. 아침에 물러나 집에서 ‘눈[雪]’으로 율부(律賦)를 지어 올려【9월 친시를 다시 시험 본 것이다.】 삼중(三中)을 받았다. -
65203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5일.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감제(柑製)를 설행했으나, 선비들의 습속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다시 시험을 보라고 명했다. -
652032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6일. 동료들과 함께 주자소에 나아가 ‘현주의 맛이 담박하다.[玄酒味方淡]’로 오언율시를 지어 올려【1월 과시이다.】 차상(次上)을 받았다. 또 ‘섣달에 모두 사냥을 나가다.[二之日其同]’를 육운(六韻)으로 칠언율시를 지어 올려【3월 과시이다.】 차중(次中)을 받았 -
652033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7일. 임금이 편전에 나아가 감제를 다시 시험 보았고 아울러 친시를 행했는데, ‘제나라 신하들이 즉묵에서 붉은 비단을 소에게 입혀 세운 전공을 경하한 것은 흔종할 소를 양으로 바꾼 마음이다.[齊群臣賀卽墨絳繒之功因釁鍾易羊之心]’로 전(箋)을 지어 올려【7월 친시이다. -
652034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8일. 주자소에 나아가 직숙했다. -
652035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9일. 아침에 퇴청했을 때 인편이 올라왔는데, 아버님의 병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내각에 나아가 정사(呈辭)를 올려 말미를 주고 납약을 하사하라는 명을 받았다.【말을 지급하는 규정은 연초에 대신의 건의로 인하여 없어졌다.】 이후에 또 세화(歲畫) 2장을 -
65203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0일. 관아로 출발하여, 15~16일 사이에 관아에 도착하고 부모님을 뵈었다. -
65203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9일. 이날 초계문신의 강경과 제술을 마쳤다. 전교하기를, “이번 정사년 친시의 도계획(都計劃)에서 수석을 차지한 김이재(金履載)는 36분 반이고 과시의 도계획에서 수석을 차지한 김희락(金熙洛)은 16분 반이니 모두 6품으로 승진시키고, 과강의 도계획에서 수석을 -
65203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0일. 도목정사에 이조 판서 심환지(沈煥之)가 참석했는데 조석중과 홍석주를 주서(注書)로 삼았다. 이날 『춘추좌씨전』의 인출을 마쳐서 1건을 춘추관(春秋館)에 보관하도록 명했다. 총재관인 채제공(蔡濟恭)과 이병모(李秉模)에게 표피(豹皮)를 하사하고 이하 관원들에게 -
65203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30일. -
65204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월. 1일. -
652041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1일. 조참(朝參)에서 우의정 이병모(李秉模)가 아뢰기를, “지난 동짓날에 원자궁 요속(僚屬)의 일로 성상의 하교를 받들었습니다. 전하가 세자이셨을 때 계방(桂坊)에는 충청도 관찰사 한용화(韓用和)‧전 목사 정일환(鄭日煥)‧전 부사 이술원(李述源) 3인만 있었는데 -
652042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7일. 이조에서 원자궁 요속 7인을 대신이 아뢴 대로 써서 올리자 윤허했다. -
652043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8일. 아버님의 병환이 오랫동안 회복되지 않아 연이어 사장(辭狀)을 올렸다. 이날 경상도관찰사가 아버님의 파직을 청하는 장계(狀啓)를 봉하여 보냈다. 경상도관찰사:이형원(李亨元, 1739~1798)을 가리킨다. -
652044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3일. 경상도 관찰사의 장본(狀本)을 아뢰자 전교하기를, “본읍의 민사(民事)가 강행하기 어렵지 않았다면 어찌 체차를 청하는 장계를 올리기에 이르렀겠는가.” 하고, 특별히 체차를 명하여 파직하지 않았다. 다음 날 전례에 따라 부사과에 임명했다. -
652045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4일. 아버님과 큰형님을 모시고 서울을 출발하는데 아내가 따랐다. 저녁에 경산(慶山)에서 묵었다. -
652046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5일. 대구에 이르자 관찰사 이형원(李亨元)이 찾아왔다. 다음 날에도 대구(大丘)에서 머물렀는데 장계에 대한 비지(批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652047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7일. 장계에 대한 비답(批答)이 오고 신임 관원 김이교(金履喬)도 도착했다. 당일 서울을 향하여 출발했다. -
652048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2월. 10일. 행차를 모시고 서울에 이르렀는데 아버님의 병환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참을 미리 배정하여 행차할 수 없어서 대구에서부터 14일이 걸려 서울에 도착했다. 즉시 내각에 나아가 입래 단자(入來單子)를 올리고 주자소에 들렀다가 나왔다. -
652049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3일. 새벽에 주자소에 들어갔다가 저물녘에 나왔다. -
652050
실재일승(實齋日乘)-일(一) / 미상
14일. 주자소에 나아가 저물녘에 물러났다. 밤에 불이 나서 서적 및 기물이 모조리 불에 타 재가 되었다. 어고 정초(御考正草) 및 하사한 책 등은 다락 깊은 곳에 소중히 보관해두었기 때문에 하나도 구해내지 못했고 발을 다친 것이 자못 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