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2101
養老宴序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page num="097"/> 洪範五福。一曰壽。封人祝聖。壽居先。蓋以人必<line/> 得其壽然後。能享此諸福也。天之與我以壽福<line/> 者。豈偶然哉。是以。聖人崇德尙齒。而其見於經。<line/> 則所以崇之養之之道。無不僃。此三代之治隆<line/> 俗美。而降及後世。玆道不行출처 : 유교넷 -
72102
硏經書院仁智堂上樑記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건물>硏經書院</건물>。始創於嘉靖癸亥。越明年甲子。功訖。<line/> 爲屋凡四十餘間。府之居進士李公<인명 type="이름">叔樑</인명>。主管<line/> 其事。府使<인명 type="이름">朴侯應</인명>川公。實贊成之。盖四方遊士<line/> <page num="102출처 : 유교넷 -
72103
曆中謾錄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庚申正月。鄭先生奄棄後學。嗚呼痛哉。先生道<line/> 學行義。實爲<지명>陶山</지명>嫡傳。而其嘉惠我中道士林<line/> 者。便同甘雨之於旱穀。顧以大人命。與家兄。往<line/> 拜於門屛者。已十餘年矣。而分志科學。才質又<line/> <page num="105"/> 凡下。未출처 : 유교넷 -
72104
成均生員耽津兪公家狀跋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公諱<인명 type="자호">諧</인명>。字<인명 type="자호">欽哉</인명>。其先<지명>耽津</지명>人也。代有偉人。冠冕<line/> 不絶。而至公之先考。獨早世未顯。公少孤而能<line/> 自盡於送終之禮。哭泣之哀。祭祀之誠。見之者。<line/> 無不矝賞。而奉慈夫人。極其출처 : 유교넷 -
72105
祭旅軒張先生文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嗚呼。惟我先生。道全德僃。千載眞儒。命世君子。<line/> 明誠敬義。傳受心法。恭儉溫良。所性而得。濂洛<line/> 淵源。五賢正脈。妙契岡門。益勵眞實。往在先<line/> 朝。累被優渥。賢路中阻。大道難容。逮我聖明。<line/> 寵眷尢隆。朘切啓沃。占吉玉鉉。位雖歉德。冀或<line/>출처 : 유교넷 -
72106
再祭文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嗚呼。日月代明。節序遷移。霜露旣降。己及初朞。<line/> <page num="005"/> 斯文穼慟。多士增悲。溫溫氣像。秩秩德音。愈夂<line/> 難㤀。熏骨銘心。典刑雖存。何處追陪。慕切羹牆。<line/> 敬奠單杯。長號<인명 type="자호">數聲</인명>。萬古餘哀。출처 : 유교넷 -
72107
祭妹兄鄭[天渉]文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維崇禎十五年九月乙酉。<관직>通德郎</관직>前大君師<line/> 傅<인명 type="이름">崔東㠍</인명>。謹以淸酌之奠。敬祭于故妹兄<관직>忠義<line/> 衛</관직>鄭公之靈。嗚呼哀哉。人之於一世間。莫不有<line/> 死生之命脩短之數。則凡人之死生脩短。不須<line/> 問출처 : 유교넷 -
72108
祭睦方伯[性善]文[爲邑儒作丁亥]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嗚呼。天可恃乎。理可推乎。以公之才之德之美<line/> 且大。宐著龜乎國家。股肱乎左右。八則<인명 type="자호">周公</인명><line/> <인명 type="이름">召公</인명>。<line/> <page num="009"/> 出則方叔召虎。大有施設於斯世者。不得享<lin출처 : 유교넷 -
72109
通訓大夫行河東縣監耽津兪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公諱<인명 type="자호">亨吉</인명>。字<인명 type="자호">會甫</인명>。其先<지명>耽津</지명>人也。世居<지명>靈山</지명>。有<line/> 十三世祖諱<인명 type="이름">寶</인명>。仕麗朝。官至<관직>寶文閣提學</관직>。封<인명 type="이름">耽출처 : 유교넷 -
72110
星山裵公墓碣銘[幷序] / 기록자료>고도서 / 최동집<지명>星山</지명>之裵。世爲著姓。鼻祖諱<인명 type="이름">位俊</인명>。仕<국명>高麗</국명>。爲三<line/> 重壁上。厥後昌衍。相繼貴顯。八世祖諱<인명 type="이름">晉孫</인명>。仕<line/> 我朝。官至<관직>判書</관직>。七世祖諱<인명 type="이름출처 : 유교넷 -
72111
읍청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안동시청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에 만나는 큰 한옥 단지가 ‘오천유적지’이다. 유적지는 산중턱을 깎아서 조성하였으며, 앞 골짜기가 호수를 이루고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유적지 위쪽 산기슭에 옮겨 놓은 여러 채의 건물 가운데 읍청정은 조선중기의 학자인 김부의의 호이자출처 : 유교넷 -
72112
침락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침락정은 예조 예문관 검열을 지냈으며 의병대장이던 김해의 아들 매원 김광계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강학소로 건립하여 의병출신의 선비들을 모아 시모임을 열던 정자이다. 1974년 12월 안동댐 수몰로 예안면 오천동 1번지에서 탁청정, 후조당 등의 건물과 함께출처 : 유교넷 -
72113
탁청정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광산김씨 예안 오천 입향조인 김효로의 둘째 아들 탁청정 김유가 1541년(중종 36)에 세운 종가에 딸린 정자이다. 원래 낙동강에 인접한 예안면 오천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인하여 1974년 현 위치로 옮겨졌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성으로출처 : 유교넷 -
72114
김상헌 / 유교문화>인물 / 김상헌출처 : 유교넷 -
72115
류원현 / 유교문화>인물 / 류원현출처 : 유교넷 -
72116
류의손 / 유교문화>인물 / 류의손출처 : 유교넷 -
72117
이색 / 유교문화>인물 / 이색출처 : 유교넷 -
72118
이원록 / 유교문화>인물 / 이원록출처 : 유교넷 -
72119
영천이씨 농암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농암종택은 낙동강 상류 청량산 자락,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신비의 명산 청량산을 지나서 가송리의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예로부터 낙동강 700리 가운데 마을 앞에는 강과 바위, 그리고 은빛 모래사장의 강변출처 : 유교넷 -
72120
월천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월천 조목이 1539(중종 34)에 세워서 학생을 지도하고 공부하던 서당이다. 현판은 퇴계 이황선생이 썼다. 강가의 마을 뒤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흙담을 집에 가깝게 두른, ‘일(一)’자형 목조단층 기와집으로 중앙에는 마루를 두고 좌·우에 방을 배출처 : 유교넷 -
72121
마곡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마곡서당은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에 자리하고 있다. 1602년(선조 32)에 사림들의 공론으로 변계손을 비롯한 일곱 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서원이다. 예전엔 규모가 큰 서원이었지만, 대원군 시절 서원철폐령 때문에 지금은 주위에 낮은 담이 둘러진 작은 건물출처 : 유교넷 -
72122
예안향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예안향교는 예안현의 공립학교로 건물은 1420년(세종 2)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541년(명종 2)에 처음 고쳐지었으며, 1601년(선조 24)에 크게 수리하였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다시 지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출처 : 유교넷 -
72123
진성이씨 노송정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도산서원을 지나 고개를 넘어 온혜, 이름 그대로 따뜻한 냇물인 온천이 터져 나온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 쪽을 따라 가다보면 늙은 소나무 사이로 종택의 모습이 보인다. 1454년(단종 2)에 퇴계 이황의 할아버지인 이계양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집출처 : 유교넷 -
72124
분강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분강서원은 1613년(광해군 5)에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뛰어난 문인이자 학자인 이현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향현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후 1700년(숙종 26)에 분강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 제사와 지방 교육을 담당하여 오다가 대원군의 서원철출처 : 유교넷 -
72125
진성이씨 번남댁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도산면 의촌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고종 연간의 대원군 시절에 지어진 주택으로 서울의 창덕궁을 모방하여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사대부의 고대광실을 상징하듯 왕궁 100칸 보다 1칸 부족한 99칸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50칸 정도만 남아 있다. 건물은출처 : 유교넷 -
72126
도산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도산서당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도산서원의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1560년 조선시대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에 의해 설계되고 건축되었으며, 퇴계 선생은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 도산서당은 기본적으로 부엌, 온돌방, 그리고 마루 등 3칸으로 구성되는 단순출처 : 유교넷 -
72127
도산서원 상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도산서원 제일 뒤쪽에 있는 상덕사는 이황의 신주와 조목의 신위를 함께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1574년(선조 7)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에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출처 : 유교넷 -
72128
도산서원 전교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전교당은 보물 제2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고, 팔작지붕 단층의 목조 건물이다. 1574년(선조 7)에 세웠으며, 도산서원의 교육 공간의 중심에 위치한 강당으로, 앞 마당에는 동재인 박약재와 서재인 홍의재가 자리 잡고 있다. 19출처 : 유교넷 -
72129
진성이씨 퇴계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건물은 퇴계 이황의 생가가 있는 온혜와 가까운 토계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황의 후손 동암공이 한서암 남쪽에 지은 집으로 대를 이어 살아오다가 일제시대인 1907년 일본군의 방화로 두 곳의 종택이 모두 불타버렸다. 지금의 집은 1926년∼1929년 사이에 13출처 : 유교넷 -
72130
진성이씨 수졸당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이 집은 토계의 물이 상계를 거쳐 조용히 흘러가다 낙강과 만나는 곳인 하계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퇴계 이황의 손자인 동암 이영도가 분가할 때 처음 지은 집이다. 종택은 본채, 정자, 사당, 재사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좁은 바깥마당이 있고출처 : 유교넷 -
72131
갈암금양강도지 / 유교문화>유적 / 미상갈암금양강도지는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 터는 갈암 이현일이 만년에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죽은 뒤에 제자들이 뜻을 이어가기 위해 지은 곳이다. 대청 상부 상량문에 따르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건물은 1901년(고종 38)에 지출처 : 유교넷 -
72132
의성김씨 귀봉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의성김씨의 본산인 내앞의 마을 중앙도로를 따라 조금만 마을로 들어가면 의성김씨 큰종택이 나오고 그 옆에 귀봉종택이 있다. 귀봉종택은 청계 김진의 둘째 아들인 귀봉 김수일의 종택으로 현재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 연대는 1660년(현종출처 : 유교넷 -
72133
의성김씨 청계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안동시내에서 영덕 방면으로 가다보면 길가 왼쪽에 웅장한 고가들이 즐비한 남향마을이 나타나는데 여기가 바로 5백 년 동안 대를 이어온 의성김씨의 본산인 내앞이다. 내앞에 정착한 의성김씨는 청계 김진 때부터 문중이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여러출처 : 유교넷 -
72134
운곡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운곡서당은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의성김씨 천전종택을 지나 200여m 골 안쪽으로 들어가면 야산을 의지하여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은 금옹 김학배가 1669년(현종 10)에 옛집 위 시냇가에다 초가집 3칸을 얽어 ‘운계초당’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 김학배가 죽은 뒤출처 : 유교넷 -
72135
전주류씨 무실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무실종택은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자리 잡고 있다. 수곡리는 전주류씨의 동성 마을로 속칭 무실이라고도 부르는데, 임하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현재 마을의 아래쪽에 있었다. 입향조 류성이 이곳에 정착할 당시, 마을 뒤 아기산의 골짜기에서 물줄기가 마을을 둘러싼 형상으로출처 : 유교넷 -
72136
전주류씨 정재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수곡은 전주류씨 수곡파 일족이 500여 년에 걸쳐 번성해온 동성마을로 우리말로 무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1987년 임하댐이 세워지면서 수몰되어 일족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각처로 이주하였다. 그 가운데 차마 고향을 떠나지 못한 이들은 수몰되지 않은 마을 주변에 새로출처 : 유교넷 -
72137
기양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기양서당은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당으로 유의손과 유복기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전주유씨 수곡파의 세덕사이다. 처음에는 유복기가 1615년(광해군 7)에 서재로 건립하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었으나 1716년(숙종 42)에 후손들이 서당으로 새출처 : 유교넷 -
72138
묵계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묵계서원은 묵계마을의 옛 고갯길을 올라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보백당 김계행과 응계 옥고를 봉향하는 서원으로 1687년(숙종 13)에 창건되었다. 보백당 김계행은 조선 초기 성종 때 대사성을 역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헌이다. 응계 옥고는 세종 때출처 : 유교넷 -
72139
의성김씨 운암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운암종택은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에 자리하고 있다. 청계 김진의 셋째 아들인 운암 김명일 선생의 종택이다. 이 집은 1754년(영조 30)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암종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가옥으로 평면은 사대부가의 □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침은 팔작출처 : 유교넷 -
72140
호계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호계서원은 1575년(선조 8) 사림들이 여산촌 오로봉 아래 백련사 절터에다 세운 서원으로 퇴계 이황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학을 강론하였다. 원래는 풍광이 아름다운 월곡면 도곡동 낙동강 굽이에 안겨 있었는데, 1973년 12월 안동댐 수몰로 안동호에 자리를 내주고출처 : 유교넷 -
72141
의성김씨 양동댁 / 유교문화>유적 / 미상의성김씨 양동댁은 안동시 임하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8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보통 수산재나 지례동 양동댁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고택이다. 지촌 김방걸의 형인 김방형 공의 자택으로 1663년(현종 4)에 임동 지례에 세웠으나 1988년 현재의출처 : 유교넷 -
72142
의성김씨 오류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오류헌은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자리하고 있다. 지촌 김방걸의 셋째 아들인 목와 김원중이 분가했을 당시인 숙종 4년(1678)에 건립한 가옥이다. 이 건물이 원래 있었던 곳은 지례리 천곡이다. 옛 집터는 서북쪽에서 뻗어 내린 산세를 의지하여 동남에서 서북간으로 흘출처 : 유교넷 -
72143
사빈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사빈서원은 청계 김진과 그의 아들 5형제의 유덕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685년(숙종 11)에 사림과 자손들의 공동의견으로 세워졌다. 1709년(숙종 35) 동구밖 사수가로 옮기고 ‘사빈서원’이라 하였다가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1882년(고종출처 : 유교넷 -
72144
의성김씨 지촌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지촌종택이 있었던 지례마을은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례란 지명도 원래는 뛰어난 풍경에 아름다운 풀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었으나 후에 예절을 잘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변하였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시조는 조선 중기 때 대사헌을 지낸 지출처 : 유교넷 -
72145
지산서당 / 유교문화>유적 / 미상지산서당은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숙종 때 대사헌을 지낸 지촌 김방걸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800년(정조 24) 후손 및 지방사림의 발의로 건립되었다.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1926년 복원된 바 있으나 임하댐 건설로 말미암아출처 : 유교넷 -
72146
고산서원 / 유교문화>유적 / 미상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서원으로 이상정이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창건한 고산정사 터에 자리 잡고 있다. 고산서원은 1789년(정조 13)에 이상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 지방 선비들이 건립하였으며, 창건된 이후 선현 제출처 : 유교넷 -
72147
귀암정사ㆍ생담정사 / 유교문화>유적 / 미상귀암정사는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서 고운사 방향의 산 중턱에 있다. 경상북도기념물 제94호로 지정되었다. 오우당 김근의 덕행을 추모하고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김근은 진사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여 장현광이 칭찬해 마지 않았던 유출처 : 유교넷 -
72148
대구서씨 소호헌 / 유교문화>유적 / 미상소호헌이란 당호는 고려시대 말기 마을에 살던 소시랑이라는 사람의 이름과, 마을 앞에 호수가 있어서 붙여진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집은 보물 제47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물을 지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시대 중종 때의 선비인 서해가 거처한 집이라고출처 : 유교넷 -
72149
한산이씨 수은종택 / 유교문화>유적 / 미상안동에서 5번 국도를 따라 대구 방향으로 가다보면 고운사로 가는 길이 나오면서 마을이 나타나는데 바로 이 마을에 한산이씨 종택이 있다. 멀리 황학산에서 근원하여 의성 옥산을 거처 80리를 누벼 내린, 이름도 예쁜 미천의 살진 냇물이 마을을 안아 굽이치고, 들녘 저출처 : 유교넷 -
72150
한산이씨 대산종가 / 유교문화>유적 / 미상대산종가가 위치하고 있는 이 마을은 한산이씨와 대구서씨 동성 마을로 전통 고가가 많다. 본래 마을의 문중 어른들이 자제의 교육을 위해 마을 뒤 대석산 절벽 아래 서당을 지었는데, 이상정이 고향으로 돌아와 대산서당이라 하고 학문에 깊이 심취하여 후진을 가르쳤다. 대산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