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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2501

    라. 제비원과 연이 처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안동시에서 북쪽으로 6킬로미터 정도 영주(榮州)방향으로 국도를 따라가면, 오른쪽편에 이천동(泥川洞) 태화산(太華山) 기슭의 소나무 우거진 곳에 제비원의 석불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전설을 남긴 채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이 제비원 석불은 자연적으로 생긴 화강암
    출처 : 유교넷
  • 72502

    마. 제비원 미륵불을 벤 이여송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제비원 미륵불의 머리 부분은 지금부터 350여년 전 조신시대에 다시 올려 놓은 것이라 한다. 그것은 이여송이 미륵불의 머리부분을 칼로 쳐서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관한 전설을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에 청병으로 명나라에서 온 이여송(李如松)은 난이
    출처 : 유교넷
  • 72503

    바. 제비원 미륵불을 조각한 형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제비원 미륵불에 대한 전설로는 아래와 같은 것이 또 있다. 어떤 형제가 일세(一世)에 뛰어난 조각가가 되려고 열심히들 노력을 하였다. 형제는 서로 뒤질세라 쉬지 않고 조각하는 일을 계속 하던 중 문득 일세에 제일 가는 조각가는 둘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출처 : 유교넷
  • 72504

    사. 제비원과 법룡사의 절 짓기 시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안동시에 법룡사(法龍寺)라는 절이 있다. 6.25때 타버려서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신라 때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법룡사 뒷편에 천년도읍지(千年都邑地)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 걸 보아서 추정한 것이다. 옛날에는 다래 덩굴이 절 둘레를 에워싸고 있어서 사람들이
    출처 : 유교넷
  • 72505

    아. 제비가 된 목수와 욱바우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제비원은 유명한 전설도 많다. 제비원에 얽힌 간단한 전설 두 가지를 묶어 본다. 제비원 절에는 난간이 있었다. 목수가 이 절을 훌륭하게 짓기 위하여 난간집을 짓기로 구상하였다. 목수는 절의 밑부분부터 정성을 들여 차례차례 지어 올라갔다. 절을 짓는데 너무 몰두했기 대
    출처 : 유교넷
  • 72506

    자. 선어대(仙魚臺)와 마뜰과 용상(龍上)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늙은 총각 머슴이 살았다. 언제나 남의 집 살이를 해도 섣달 그믐께 그 집을 나오고 보면 이듬해 또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겨우 남은 것은 떨어진 목도리 버선 정도였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머슴 생활에 질린 총각은 비관한 나머지 모든 생활을
    출처 : 유교넷
  • 72507

    차. 선어대(仙魚臺)의 용싸움과 마씨(馬氏) 총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선어대는 경북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현재 안동시 용상동 마뜰과 송천동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명주꾸리를 세 낱 풀어 밑바닥까지 닿지 않을 정도로 선어대 소가 깊다고 한다. 선어대에 얽힌 전설은 마뜰의 이름이 생긴 유래담(由來譚
    출처 : 유교넷
  • 72508

    카. 관운장(關雲長)의 사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우리나라에서는 몇 군데 안 되는 관왕묘(關王廟)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안동시 태화동(太華洞) 서악사(西岳寺) 옆 동쪽 언덕 위에 있다. 이 관왕의 사당을 모시게 된 내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임란(任亂) 때 명나라 후원군(後援軍)이 온다는 소
    출처 : 유교넷
  • 72509

    4. 김자수(金自粹) 선생의 충효(忠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평생 충효의 뜻 금일에 뉘알리요. 한 번 죽어 원한의 눈 감으면 저승에서라도 알아 줄 이 있으리.” 이 시는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선생이 고려의 유신(遺臣)으로서 이조 태종의 부름에 응할 수 없어 죽음으로써
    출처 : 유교넷
  • 72510

    타. 관운장의 석상(石像)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우리나라에는 관왕묘가 네 군데 있다. 경북의 성주(星州)와 안동에 임란(壬亂) 때 세운 관왕묘가 있고, 그 뒤에 세운 것으로는 서울의 동묘(東廟)와 남묘(南廟)의 2묘가 있다. 이것은 모두 중국의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운장의 석상을 안치(安
    출처 : 유교넷
  • 72511

    파. 뽕밭과 경주 김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안동 시내 북쪽에 지금 성당이 자리잡고 있는 나즈막한 산을 목성산(木城山) 이라 한다. 목성산을 다른 말로 잠두산(蠶頭山) 이라고도 하는데, 왜정 초기만 하더라도 이 산 주변 기슭은 뽕나무 밭으로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 서당골과 법석골 일대에는 경주 김씨
    출처 : 유교넷
  • 72512

    하. 사돈의 묘터에 묘를 쓴 유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이조 때 경상북도 안동 땅 안동 김씨 문중에 한 여자가 안동 유씨 가문에 시집을 갔었는데, 어느 해 같은 날, 친가집 아버지와 시집 아버지의 초상을 함께 당하였다. 이리하여 양쪽집에서는 모두 좋은 묏자리를 찾게 되었는데, 김씨 집은 돈 많은 부자였으므로 팔도에 풍수
    출처 : 유교넷
  • 72513

    거. 동채싸움의 유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동채싸움의 기원은 후삼국(後三國) 시대를 보고 있다. 후백제(後百濟) 견훤왕(甄萱王)이 신라를 멸(滅)한 여세로 안동에 진격하였을 때, 당시의 성주 김선평(金宣平), 형관 권행(權幸), 장길(張吉) 세 사람이 향토민 전체와 고려(高麗) 왕건(王建)에 합세하여, 인해전
    출처 : 유교넷
  • 72514

    너. 영남산(映南山)의 음양풍설(陰陽風說)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안동시의 동쪽을 싸고 안은 산을 영남산이라고 한다. 이 산을 낙동강 제방에서 바라보면 그 모습이 마치 여자의 성기 모양과 흡사한 곳이 있다. 이조 세종(世宗) 때 우의정(右議政)까지 지낸 맹사성(孟思誠)이 잠시 안동부사(安東府使)로 와 있을 때, “安東 여성들이 화
    출처 : 유교넷
  • 72515

    더. 학의 마을 하이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고려 말기에 서(徐)씨 문중이 세력을 떨치며 이 고을에 살고 있었다. 서씨 일가가 살았던 마을은 하이마(안동시 옥동)의 건너 편에 있는 마을이었다. 서씨 문중의 정승 한 분이 돌아가자 상주들은 훌륭한 풍수를 모셔다가 명당(明堂)을 고르게 하였다. 풍수는 인근의 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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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16

    러. 욕심많은 낙양촌의 신승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시대임은 틀림없다. 현재 안동시 옥동(玉洞) 건너편에 낙양촌이라고 하는 동네가 있었다. 그 마을에 신승지라고 하는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살림이 부자였을 뿐 아니라, 일찍이 과거길에 올라 높은 벼슬까지 한 터이라 권세 또한 대단했다
    출처 : 유교넷
  • 72517

    머. 송하동(松下洞)의 호걸(豪傑) 바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안동시 송하동에 호걸바위라고 불리우는 큰 바위가 있다. 호걸바위는 마을 동편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는데, 양편에 키가 큰 바위가 둘 우뚝 서있고 그 가운데에 넓직한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바위가 넓어서 펀펀하고 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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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18

    버. 시부모를 따라 죽은 열녀 서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현재 안동시 성곡동 민속촌에 이천 서씨 열녀비(利川徐氏 烈女碑)가 있다. 이 열녀비에는 다음과 같은 애달픈 전설이 전해 온다. 이 고을의 향리(鄕吏)인 김창경(金昌慶)은 곤궁한 중에 이천 서씨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못하고 시부모는 소경과 앉은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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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19

    서. 공주를 맞이했던 놋다리밟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놋다리밟기는 안동지방에서 전하여지고 있는 젊은 부녀자들이 즐기는 놀이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날 밤에 리동(里洞) 부녀자들이 설거지를 마친 후에 몸을 곱게 단장하고 “어느년에 놋다리 청계산에 놋다리 이 지래는 누지랜고 나랏님의 옥지래지 이 터전은 누터인고 나랏님의 옥
    출처 : 유교넷
  • 72520

    <HXMLPIC ID="001"></HXMLPIC>조선 순조(純祖)임금 때의 일이다. 안동시 노하동(鷺下洞)에 김해 김씨(金海金氏) 성을 가진 진대란 사람이 처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가장인 진대가 갑자기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 부인인 손씨는 남편의 병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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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21

    어. 놋가마솥이 묻힌 놋감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조선시대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보기 드문 훌륭한 원님 한 분이 이 고을을 다스리고 있었다. 원님은 늘 고을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돌아보며 불편함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한편, 한 사람도 억울한 일을 당하고 사는 일이 없도록 각 별한 배려를 하는 것이었다. 송사(訟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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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22

    저. 현모양처가 많이 나는 천리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안동시 천리동(泉里洞)은 맑은 샘이 있어서 샘마을로 불리던 곳이다. 지금은 샘이 모두 메워져 버렸지만 샘에 얽힌 이야기는 아직도 전해 오고 있으며, 동명(洞名)으로도 남아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임진왜란(壬辰倭亂)당시로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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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23

    처. 영호루의 현판글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영호루는 진주 촉석루와 함께 영남의 제2대 누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영호루는 안동 시내에서 대구로 나가는 낙동강 인도교 건너편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원래 영호루는 안동 시내, 즉 낙동강 이쪽의 인도교와 철교 사이에 있었던 것이다. 잦은 홍수로 영호루가 유실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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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24

    커. 안묘당(安廟堂)의 유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안동시 옥정동 태사묘(太師廟) 안에 안묘당이란 당이 있다. 이 당은 순흥(順興) 안씨(安氏)를 모셔 놓은 당으로써 태사묘에 제사를 올리고 난 다음에 그 남은 제수로 안묘당에 제사를 올린다. 이렇게 제사를 올리게 된 내력이 이야기로 전한다. 안묘당에 모셔진 순흥 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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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25

    가. 용성동의 성황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안동시 용성동(龍城洞)에는 여신(女神)을 모셔둔 성황당(城隍堂)이 있다. 해마다 음력 정월 14일 밤이 되면 여기서 동제사를 겸한 당제(堂祭)를 올린다. 당신(堂神)과 성황당에 대한 유래는 다음과 같다. 고려 공민왕(恭愍王)때의 일이었다. 왕이 홍건적(紅巾賊)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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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26

    가. 효자가 된 불효자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가난한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어서 늘 외로와 보였다. 그러다가 늙으막에 아들 하나를 얻었다. 부부는 너무나 기뻐서 아들을 금지옥엽으로 키웠다. 아들이 하고자 하는대로 무엇이든지 다하게 하였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아이로 받들어 키웠다. 부부는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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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27

    나. 적서를 구별하지 않은 본 부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외아들을 가진 선비가 있었다. 그 아들이 커서 어느덧 장가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들은 공부할 생각은 않고 늘 장터에 가서 구경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곤 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구석진 방에 가두어 버리고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아들은 늘 방에서
    출처 : 유교넷
  • 72528

    다. 상객가서 실수한 바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딸 4형제를 둔 바보가 살았다. 바보는 딸을 잘 키워서 시집을 보내게 되었다. 맏딸과 둘째딸, 셋째딸을 시집 보낼 때는 바보의 형님을 상객으로 보냈다. 왜냐하면 혹시 바보가 상객으로 가서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내딸을 시집 보낼
    출처 : 유교넷
  • 72529

    <HXMLPIC ID="001"></HXMLPIC>가. 석주(石洲) 선생의 생애 “삭풍은 칼보다 날카로와 나의 살을 에이는데, 살은 깎이어도 오히려 참을 수 있고 창자는 끊어져도 차라리 슬프지 않다. (중략) 그러나 이미 내 전택(田宅)을 빼앗고 또다시 나의 처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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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0

    라. 자식을 낳게 한 강아지의 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착하지만 가난한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늘 쓸쓸하게 지냈다. 아내는 자식이 없음을 한스러워하였고, 남편은 그러한 아내를 측은하게 생각하였다. “자식이 없는 것은 우리에게 자식복이 없는 탓인데 너무 한탄스러워 하지 맙시다.” 하고
    출처 : 유교넷
  • 72531

    마. 호랑이의 은혜갚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힘센 장수가 있었다. 그 장수는 큰 가마솥에 밥을 지어 한 번에 다 먹어 치우는 사람이었다. 워낙 가난한 집안이라 부인이 식량을 댈 수 없으니 나가서 혼자서 벌어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쫓겨 난 장수는 어느 대갓집에 머슴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너무도 많이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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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2

    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사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턱에 혹이 달린 사람이 있었다. 어른이 되어도 혹은 없어지지 않더니, 늙으니까 점점 더 커졌다. 동네 사람들은 그 영감을 ‘혹부리 영감’이라고 불렀다. 어른도 아이도 ‘혹부리 영감’ ‘혹부리 영감’하고 놀리니 영감은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어떻게 하면 혹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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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3

    사. 절을 짓게 한 보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 아주 깊은 산중에 다 허물어져 가는 절이 있었다. 그 절은 너무나 깊은 산중에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별로 찾아오지 않았다. 찾는 이가 뜸하자 자연히 그 절은 가난하게 되어갔고, 가난한 절은 나날이 더욱 퇴락해 갔었다. 추녀도 떨어져 나가고, 단청도 하얗게 빛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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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4

    아. 처녀와 두꺼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간난이라는 처녀가 있었는데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아버지를 일찍 여윈 간난이 모녀는 남달리 정이 두터웠다. 함께 밭을 메면 간난이는 어머니 보고 쉬라고 하고 어머니는 간난이에게 쉬라고 하였다. 하루는 간난이가 밭을 메다가 점심을 지으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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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5

    자. 오해 받고 쫓겨난 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 어떤 양반집에 예쁜 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 머슴으로 있는 하인이 그 딸을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 하루는 하인이 딸의 방문 앞에서 문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때마침 대감이 딸의 동정을 살피려고 딸에게 오고 있었다. 이 기척을 안 하인이 문을 열다말고 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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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6

    차. 도둑을 용서해 준 주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 안동에 어떤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덕망이 높아서 동네에서는 존경을 받고 있었다. 어느날 달이 훤하게 밝은 밤이었다. 할아버지는 창가에서 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건너편 수수밭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할아버지는 하도 이상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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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7

    카. 제삿날에 찾아 온 혼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통행 금지 시간이 거의 가까워지고 있었다. 운전수는 12시전에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택시를 몰고 있었다. 저녁 늦게서야 시외까지 가야하는 손님이 있었기 때문에 그날은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운전수의 집은 재를 하나 넘어야 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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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8

    타. 다시 살아난 착한 며느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아주 가난한 집에 착한 며느리가 시집을 왔다. 어찌나 가난하였는지 끼니 때마다 며느리는 양식 걱정을 하였다. 그래서 어쩌다 양식이 생기면 아끼느라고 밥을 조금 밖에는 하지 못했다. 시부모와 남편의 밥을 차례로 뜨고 나면 자기는 밥이 없었다. 그래서 늘 누렁지를 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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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39

    파. 호랑이 굴에서 빠져 나온 장삿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먹고 살기가 어려운 사람이 있었다. 워낙 살림이 없어서 장사라도 해 볼까 싶어서 길을 나섰다. 한참 가다보니 날이 저물었다. 주위를 살펴보니 첩첩산중에 무아지경이라 자꾸만 앞으로 나아갔다. 갈수록 길은 더욱 험해지고 가시덤불이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간신히 몸을 빼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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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0

    7. 현대 음악의 선구자 권태호(權泰浩) 선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우리 나라 현대음악의 선구자 권태호(權泰浩)선생은 1903년 9월 16일 안동시 율세동 17번지에서 이 지방 초창기 기독교인이자 나중 평양신학교를 거쳐 목사가 된 권중한(權重漢)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예배당(현재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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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1

    하. 임금이 된 독장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가난한 독장수가 있었다. 워낙 살림이 없어 장가를 늦게 들었다. 그런데 각시가 행주를 짜 놓은 듯이 인물이 없었다. 그러나 곧 아들을 낳아 주어서 독장수를 기쁘게 하였다. 그 아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서 아버지를 따라 다니게 되었다. 어느 여름날, 독장수는 아들을 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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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2

    거. 피리 부는 나뭇군과 호랑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피리를 잘 부는 나뭇군이 있었다. 잠 잘 때도 피리를 안고 자고, 나무 하러 갈때도 피리를 갖고 갔다. 하루는 나무를 정신없이 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호랑이 한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뭇군은 미처 피할 틈이 없어서 바로 옆에 있는 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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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3

    너. 아무렇게나 잡은 명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나이 많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들이 있었다. 이들 아버지와 아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근근히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돈이 모이지를 않아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덜컥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아들은 너무나 가난하여서 아버지를 옳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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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4

    더. 돈이 변해서 된 괴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아주 큰 저택이 있었다. 그 집은 오래 전에 만석꾼이 살던 집이었다 한다. 그러나 이제는 집도 다 허물어지고 여기저기 거미줄만 쳐져 있을 뿐 사람은 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은 몽땅 죽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집에 사람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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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5

    러. 육모초의 효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딸 하나만 가진 과부가 있었다. 남편은 없고 어린 딸과 함께 목숨을 연명해 나가자니 자신이 직접 힘든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매일 남의 집에 품삯 일을 하여서 겨우 겨우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과부의 몸은 점점 약해져 갔다. 그 때 과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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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6

    머. 삼년 고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 어떤 산골에 숯장수 노인이 있었다. 그 숯장수 노인은 언제나 산에서 나무를 해서 그것으로 숯을 구어 산너머있는 장에 내다 팔고는 보리쌀 몇홉을 받아다가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날, 언제나처럼, 그날도 숯을 팔러 장에 갔는데 그날따라 장에는 사람도 많고 신기한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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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7

    버. 구미호 이야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옛날에 아들이 귀한 집이 있었다. 그 집에서는 아들을 낳으려고 온갖 치성을 다 들였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아들 하나를 얻었다. 하루는 스님이 와서 시주를 하라기에 어머니가 쌀을 한 바가지 퍼 주었다. 그때 스님이 아들은 열다섯이 되기 전에 큰 봉변을 당하겠으니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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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8

    서. 쥐의 앙갚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커다란 저택을 혼자 지키고 사는 청년이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모두 다른 나라로 이민 가버렸으나, 청년은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이 싫어서 혼자 살고 있었다. 집이 워낙 커서 청년은 하루 종일 집안 구석 구석을 돌아보고 지내는 것을 낙으로 삼으며 지냈다. 그 집 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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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2549

    어. 고양이의 저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 국민들을 못살게 굴던 때였다. 일본인들은 남의 것을 함부로 빼앗고 심지어는 농민들을 학살하여, 많은 사람들이 집과 재산과 가족을 잃어버리곤 하였다. 그래서 저희들은 배불리 먹고 잘 살았으나 우리나라 국민들은 늘 굶주려 있었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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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저승사자와 동방삭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삼년고개에서 일부러 1000번도 더 넘어진 삼천갑자 동방삭이는 3천년을 살고도 더 살았다. 한편 저승에서는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를 모아 놓고 회의를 했다. 다른 사람은 100년도 채 못살고 저승으로 불려오는데 동박삭이는 삼천년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니 염라대왕이 화가 났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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