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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우리 안동은 선사이래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진취적 기상과 의욕적 삶의 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며 살았던 곳입니다. 따라서 안동에는 한국사의 전개과정에서 발생하였던 모든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고대의 원시문화, 신라와 고려시대의 불교문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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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청동기 문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무문토기는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청동기 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 유물로서 지금까지 많은 유적이 발굴되어 비교적 그 문화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문화를 알려주는 고고학적 유적이나 유물로 대표적인 것은 무덤 유적인 고인돌과 당시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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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무늬 토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지례리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 이 유적은 임하댐 수몰지역인 임동면 지례리의 반변천 계곡에 위치하며, 고인돌떼와 함께 많은 민무늬 토기들이 출토되어 안동지역의 민무늬 토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을 제공해 주었다. 출토된 토기는 주로 소뿔 모양의 손잡이가 붙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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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인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고인돌의 분포 및 출토유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분묘로 알려진 고인돌은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으며, 영남지역에서도 개석식 고인돌과 바둑판식 고인돌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안동지역에도 고인돌은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안동 주변의 영주, 봉화, 영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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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곡리 암각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암각화는 선사시대 바위나 암벽에 사실적인 그림이나 상징적인 도형을 새겨놓은 것이다. 따라서 선사인들이 정신세계와 물질생활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암각화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그 분포지가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가 속한 동북아시아만 해도 중국이나 시베리아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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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한과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우리나라의 고대사 자료상으로 역사시대에 속하면서, 삼국시대가 열리기 이전의 시대를 한강 이남 지역에 한정한다면 삼한시대로 부를 수 있다. 신라와 백제는 각각 삼한 소국들 중 하나인 사로국과 백제국에서 출발하여 진한의 소국들과 마한의 소국들을 점령해가면서 신라와 백제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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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국시대의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삼국시대 초기의 안동 모습을 알려주는 자료는 매우 드물다. 『삼국사기』 파사니사금과 조분니사금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 파사니사금(婆娑尼師今) 5년 여름 5월에 고타군주(古陁郡主)가 푸른 소를 바쳤다. ◦조분니사금(助賁尼師今) 13년 가을에 큰 풍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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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국시대의 고고학 자료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안동에 남아 있는 삼국시대 고고학 자료들은 대부분 고분들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안동지역의 삼국시대 고분들은 임동면 마동 고분, 일직면 조탑동 고분군, 와룡면 중가구동 고분군, 임하면 사의동 고분군, 임동면 지동 고분군, 안동시 태화동 고분군, 안동시 정상동 고분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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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HXMLPIC ID="003"></HXMLPIC> <HXMLPIC ID="004"></HXMLPIC> <HXMLPIC ID="005"></HXML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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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정체제의 변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통일신라시대 경북지역은 크게 다섯 주의 관할 하에 있었다. 당시 지금의 경북지역을 가르고 있었던 다섯 개의 주와 그에 속한 지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상주(尙州):안동군 임하면 일부, 청송군 진보면, 예천군, 영풍군, 의성군, 군위군, 선산군, 문경군, 상주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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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문화의 발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안동지역에 불교가 성했음은 현재 남아 있는 불탑과 불상들로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안동지역의 불교 문화가 가장 발전했던 시기는 역시 통일신라시대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불교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에 광범위하고도 깊이 퍼져 있었음은 물론이지만 남아 있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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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분으로 보는 통일신라시대의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통일신라시대에 안동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려주는 자료는 거의 없다. 다만 몇몇의 고분들이 조사되어, 그 결과로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무덤을 썼는지, 어떤 물건들을 생활에서 사용했는지 등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아래에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고분의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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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통일신라 말기의 안동사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신라말기는 ‘호족(豪族)의 시대’로 일컬어질 만큼 지방세력들이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급격히 성장하여 고대를 마감하고 중세로 진입하는 과도적 성격을 지닌 시대였다. 여기서 호족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재지지배세력(在地支配勢力)을 의미한다. 호족들은 주로 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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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의 성립과 안동지역의 호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0세기에 접어들자 신라는 쇠망의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정치기강의 문란은 심각한 것이어서 왕위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렇게 되자 중앙 정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 결과 각 지방에서는 유력한 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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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방제도 개편과 안동부의 기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고려시대의 지방제도는 군현제(郡縣制)를 바탕으로하여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는 중앙집권적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건국 초기에는 왕권의 한계로 지방 군현에 수령이 파견되지 못하고 조세를 수취하는 금유(今有) 등의 사자를 두었을 뿐 실제로는 지방의 유력자인 호족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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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외적의 침입과 안동의 대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고려말기에 이르면 내우외환이 번갈아 찾아들어 국가 존립을 위협하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의 배경은 12세기말에 발생한 경인의 난 이후 무신들이 정권을 잡으면서부터 정치상의 파행이 계속되면서 그 싹이 트는 지도 모른다. 여하튼 국내적으로는 강압정치에 대한 하층민의 저항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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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려의 문화와 안동지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고려시대의 문화는 아직 중앙집권이 성숙되지 못한 탓인지 국가의 통제가 적어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풍수지리설을 비롯한 민간신앙과 불교는 상당한 성장을 가져왔으며 성리학도 고려말에 전래되어 신흥사대부의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수용되기 시작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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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내용은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그 서술과 표현은 고등학교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였다. 2. 본문은 한글 전용을 원칙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에 한하여 한자를 ( )안에 넣어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3. 인용원문은 정확하고 평이하게 번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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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선의 성립과 지배체제의 정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고려 말에 이르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왕조 말기적 현상이 계속 드러나기 시작하자 일각에서는 이를 시정해 보려고 노력하기도 했으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고려 왕조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하면서 새로운 왕조 건설에 부심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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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재지사족과 지역사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재지사족(在地士族)이라 하면 지방에 정착하고 있는 사대부 족속을 지칭하는데 주지하는 바와 같이 각 지방에는 유학적 소양을 지닌 독서층이 고려후기 이래 존재하고 있었으며 특히 영남지역 그 가운데서도 안동을 비롯한 지역에 많았다. 영남지방은 역사적으로 신라와 가야문화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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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안동지방의 유학교육 보급과 그 영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조선왕조는 고려말기 불교가 권문세족과 일부 결탁하면서 문제를 일으키자, 그것을 구실로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국시의 하나로 삼고 유학을 정치•사회•문화 등의 지도 이념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성리학은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이기론(理氣論)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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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임진왜란과 안동지방의 의병투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4세기말에 건국한 조선왕조는 창업에 따른 긴장 때문에 사회 전반에 걸쳐 일정한 개혁을 추진한 결과 다방면에 걸쳐 상당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정치•사회상의 제도 개선으로 정국의 안정을 유지하는 한편 신분제에 있어서도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전대보다는 나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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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회경제 구조와 안동지방 교통통신의 발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조선이 건국되면서 토지제도가 정비되고 새로운 농법이 보급된 결과 농업생산력도 전대에 비하여 증대하기 시작하였으며, 상업과 수공업에 있어서도 이러한 현상을 찾아볼 수가 있다. 즉 과전법(科田法)의 실시로 종래 권문세족에 집중되었던 토지가 현직관리와 전직관리에게 두루 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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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 조선후기의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조선후기는 중세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기존의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사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19세기 폭발적으로 일어났던 농민항쟁은 바로 중세사회가 안고 있던 모순을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으로, 그것이 외형상으로는 삼정(三政:전정•군정•환곡)의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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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구조의 변화와 동족부락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향촌사회의 구조변화 조선전기 사림파의 등장 이후 조선왕조 지방통치의 방식은 재지사족과 향촌사회의 성장 추세, 왕권의 강약과 집권화의 신장여부 및 집권세력의 성장에 따라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척신(戚臣)들과 함께 관직에 일차적인 세력기반을 두고 막대한 토지와 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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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업(産業)의 발달과 경제적 성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농업생산력의 증대 임진왜란을 겪은 뒤 조선왕조의 산업은 전기의 사회가 도달했던 수준을 뛰어넘어 기존의 사회체제 전반을 뒤흔들만한 힘을 갖고 급속도로 발전해가고 있었다. 이는 전후복구 과정에 정부와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결과로 특히 농업상에 있어 발전은 조선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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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행정체제의 변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행정구역의 개편과 면리제(面里制) 조선왕조 행정조직 체계는 왕조가 건립되기 전인 위화도회군(1388) 직후부터 간헐적으로 추진되기는 했으나, 그 골격은 태종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갖추어지기 시작해 성종대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반포하게 되면서 일단 마무리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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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학문적 전통과 사림(士林)의 공론형성(公論形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학문동향과 정치철학 조선후기, 특히 17세기는 우율종사(牛栗從祀) 논쟁으로 비화된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과 복상(服喪)논쟁을 유발한 예론(禮論)을 둘러싸고 학파를 매개로 한 정치세력의 대립이 전개되고 있던 시기였다. 이러한 논쟁의 역사적 평가는 성리학의 현실성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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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호개방과 영남만인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19세기 서세동점과 조선의 정세 19세기 중엽부터 1910년까지의 조선사회는 커다란 역사적 변동기였다. 흔히 이 시기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조선사회가 식민지화되어 갔다고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는 조선이 중국중심의 세계질서로부터 이탈하여 근대적 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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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오개혁과 의병항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갑오개혁과 동학농민운동 (1) 갑오개혁과 안동 1894년 7월 27일(음 1894. 6. 25) 군국기무처의 설치로부터 1896년 2월 11일(1895. 12. 28) 아관파천으로 갑오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1년 6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갑오개혁’은 동학농민운동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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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제의 국권침탈과 계몽운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일제의 국권침탈 청일전쟁 이후 러일전쟁까지는 세계열강의 식민지 영토분할ㆍ재분할경쟁이 최고에 이른 시기였다. 특히 동아시아지역에서는 산업혁명을 끝내고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접어든 서구열강의 이권침탈과 영토분할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여기에 당시 산업혁명을 수행하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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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 식민통치와 안동사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일제강점과 1910ㆍ20년대의 식민통치 (1) 1910년대 일제의 식민지배체제와 통치이념 일제는 의병항쟁과 같은 한국인들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식민지로 만든 결과 헌병에 의해 전 국토를 감시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억압적인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때문에 흔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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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의 항일투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1910년대 교육구국운동 (1) 교육구국운동의 배경 일제하 안동지역의 항일투쟁에 큰 영향을 미친 요소 중의 하나는 교육운동이었다. 구한말 교육 근대화의 의지는 교육대상ㆍ교육이념ㆍ교육과정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신ㆍ구 교육의 교체기에 있어서 가치관의 갈등과 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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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출향 인사의 항일투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국내항일투쟁 안동인들이 벌인 독립운동은 당연히 독립운동사의 첫머리인 의병항쟁에 참가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가한 인물로 김현동(金賢東)ㆍ김택진(金澤鎭)ㆍ류시연ㆍ권재중(權在重)ㆍ김규헌(金奎憲)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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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안동의 위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안동지역이라 하면 안동시•군 만이 아니라 안동과 인접해 있는 지역들 곧 봉화, 영양, 청송, 의성, 영주, 예천 등지를 두루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일단 안동시•군만을 대상으로 서술하기로 한다. 안동은 경상북도의 정중앙에서 약간 북으로 치우쳐 있으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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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 파쇼통치의 강화와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일제 파쇼통치의 강화와 전시수탈체제 (1) 일제의 전시체제로 전환 1930년대 일제의 식민통치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하나는 산미증식계획의 실시와 중단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몰락한 한국 농민들의 피폐에 대한 대책이 절실했다는 점이다. 1929년 시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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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의 항일투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비합법적 농민운동 1930년대 농민들은 토지를 상실하고 화전민이나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지주ㆍ일제의 통치기구와 갈등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들의 생활상태를 대변하는 권익옹호를 위한 농민단체ㆍ신간회활동은 중앙이나 지방단체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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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출향 인사의 국외 항일투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930ㆍ40년대 출향 인사의 활동은 자료가 미비하여 정확하게 파악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국내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저항시인으로 유명한 이육사(李陸史), 중국본토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류림(柳林)이 있다. 그리고 광복군에 다수의 인원이 참가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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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방후의 상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후 8월 24일 소련군은 북한에 진주하였고 미군은 9월 8일 미 태평양지구 사령부의 제24군 휘하부대 3개 사단이 사령관 하지중장의 인솔하에 인천에 상륙하여 이튿날 서울에 진주하였다.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자 즉시 총독부의 대표로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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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초대대통령선거와 정부수립 1948년 5월 10일에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는 1948년 5월 31일에 개원식을 거행하였다. 국회에서는 헌법기초위원회가 제출한 헌법초안을 축조심의한 끝에 7월 12일에 국회통과를 보았고, 7월 17일에 국회의장 명의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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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회의원 선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제헌국회의원 선거 1947년 9월 17일 제82차 U.N. 총회에서 미국대표에 의하여 “U.N. 감시하에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는 동시에 국회가 수립케 하기 위하여 U.N. 감시한국위원단을 한국에 파견한다”라는 제안이 있었고, UN소총회는 동년 11월 14일 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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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건국 초기의 지방자치 선거(1952~1960)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우리 나라 지방자치제도는 헌법 제97조(1948. 7. 17 공포)와 1949년 7월 4일 공포된 지방자치법에 의거 1950년 12월에 지방자치를 위한 선거를 실시토록 하였으나 6ㆍ25 동란으로 선거를 실시하지 못하고 2년 뒤인 1952년 4월 25일에 읍ㆍ면의원 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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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안동의 산과 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안동은 동쪽과 동북쪽에 태백산맥을 접하고, 북으로는 소백산맥에 닿아 있는 태백과 소백이 갈라지는 곳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서쪽 경사면은 영양의 일월산(1,218m)을 중심으로 하여 급격하게 낮아지는데 이는 다시 안동 제1봉이라 하는 학가산(840m)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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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방자치의 부활과 지방선거(1991~ )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5ㆍ16 혁명으로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가 부활되기까지는 3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87년 6ㆍ29 선언 이후 확산되기 시작한 민주화의 물결은 지방자치법의 조속한 개정을 불가피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민주화의 추세 속에서 정부는 지방자치법의 전면개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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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정구역의 변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해방이후 현대 안동의 정치ㆍ행정편의 시대구분은 편의상 1945년부터 1962년까지를 제1기, 1963년부터 1994년까지를 제2기, 1995년 이후를 제3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선 행정구역상 1963년 1월1일부터 안동시가 안동군에서 분리하여 나와서 그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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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안동군의 청사는 안동시 동부동 65-2번지에 위치해 있었으며 1995년 1월 1일자로 시군이 통합될 때까지 있었다. 안동시의 청사는 북문동 58번지에 대지 6,107㎡(1,847평)를 신축하여 안동읍 청사로 사용하던 중 ’63. 1. 1. 안동읍이 안동시로 승격되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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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행정기구 및 인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행정기구의 변천 (1) 안동군의 행정기구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당시 군은 군수 아래에 내무, 산업, 보건후생의 3課로 되어 있었다. 1970년에는 군수 아래에 2실 6과로, 1991년에는 군수, 부군수 아래에 2실 16과로 늘어났고 안동시ㆍ군이 통합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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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재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지방재정은 중앙정부재정과 함께 정부부문을 형성하는 재정주체의 하나로서, 각급 지방정부가 관할구역내에서 공공욕구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재화ㆍ서비스를 공급하기 위하여 행하는 재원의 확보, 관리, 사용 등 일련의 공경제적 작용을 의미한다. 1) 재정규모의 변천 안동군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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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분야별 행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1) 기획 및 행정관리 (1) 시정발전 및 기획업무 정동호 민선시장의 취임이후 북부지역 행정협의회 구성운영, 서울대외사업소 설치운영, 조선조유교문화권 개발계획수립, 한국국학진흥원설립 추진, 21세기발전위원회 운영, 경영수익사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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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의 변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안동은 역사적으로 오랜 전통을 지닌 도시였다. 경북 북부 사회경제의 중심도시이지만 지금의 현실은 경제적 기반이 약한 낙후지역으로 정부가 특정개발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정부가 대도시중심의 집중투자에만 치중한 국토개발정책의 결과로 인하여 경제성장 및 국토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