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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51

    33) 향조(約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부모에게 불순한 자(불효한 자는 나라에서 정한 형이 있으므로 아직 그 다음 죄만 들었다.) 형제가 서로 싸우는 자(형이 잘못 되고 아우가 옳으면 균등하게 벌하고, 형은 옳고 아우가 잘못이면 아우만 벌하고, 옳고 그름이 서로 반반이면 형은 가볍고 아우는 그 죄가 무겁다
    출처 : 유교넷
  • 73452

    금단(禁斷) 토호침점장인규(土豪侵占匠人規) 서송유향소서(書送留鄕所書) 우리 예안 고을은 땅이 좁고 백성들이 적어 열집정도로 모양을 내지 못합니다. 그들은 단지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다 장점(匠店)으로 옮겨서 산골에 가까운 곳에 머물러 홍무지를 개간하며 사는 토착 백성
    출처 : 유교넷
  • 73453

    35) 장점결복수(匠店結卜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녹전(彔田) 노은손(盧銀孫) 전답 모두 사결(四結) 이십팔복(二十八卜) ○능점(陵店) 김일봉(金一奉) 십육결(十六結) 구십일복(九十一卜) 사속(四束) ○방해현(防害峴) 송미장(宋美長) 이결(二結) 이십일복(二十一卜) 팔속(八束) 김연수(金連守) 구결(九結) 삼십사복
    출처 : 유교넷
  • 73454

    36) 장면(掌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동상리(東上里) 팔등(八等) 가동(檟洞) 건천동(乾川洞) 피박(皮朴) 고감(顧監) 말곡(末谷) 장원(場院) 청구(請丘) 저동(楮洞) 대사(臺榭)를 처음 지었다. ○동(東) 제천(濟川) 현 동쪽 11리에 있다. 원래 장갈(長碣)과 단속(斷俗)이란 양령(兩嶺)으로부터
    출처 : 유교넷
  • 73455

    37) 교량(橋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삼차교(三叉橋) 월천정 앞에 있다. 사천교(沙川橋) 대사원(大寺院)과 선안역(宣安譯) 사이에 있다.
    출처 : 유교넷
  • 73456

    (1) 부의 동쪽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물야촌(勿也村) 부(府)의 동쪽 10리 동악산(東岳山) 동편에 있다. 산과 시내가 굽이돈다. 사족(士族)이 많이 산다. 가구촌(佳丘村) 부의 동쪽 15리쯤에 있다. 와룡산(臥龍山)은 동쪽에서 우뚝솟고 진봉산(振鳳山)은 서쪽에서 솟아 시내와 우뚝한 산봉우리가 굽굽이
    출처 : 유교넷
  • 73457

    38) 역(驛)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선안역(宣安驛) 현 남쪽 5리 있으며 창락도(昌樂道)에 소속되었다.
    출처 : 유교넷
  • 73458

    39) 원(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대사원(大寺院) 현 서쪽 4리에 있다. 만력 계묘년(1603)에 태수 안욱(安旭)이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무술을 가르치기 위해 세웠는데 설립 당시 다른 지방에서는 설립된 예가 없다. 그로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무인 가운데 덕망이 있는 자를 무학장(武學長)으로 임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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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59

    40) 장원(場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현 동쪽 25리 영해(寧海)와 재사(才山) 갈림길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출처 : 유교넷
  • 73460

    41) 무정원(武亭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현 서쪽 16리 영천(榮川) 갈림길에 있다. 지금의 송우(松隅)가 바로 이곳으로 옛터가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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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1

    42) 불우(佛宇)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용수사(龍壽寺) <HXMLSUP ID="001"></HXMLSUP> 현 북쪽 22리 용두산(龍頭山) 아래에 있다. 고려시대에 성원(誠源)이라는 중이 창건했다. 의종(毅宗)이 석윤(釋胤) 이라는 중에게 용수사로 사액하고 최선(崔詵)에게 기문을 스게 하여 절 안에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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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2

    43) 폐찰(廢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임강사(臨江寺) 하연(賀淵)위에 있다. 을사년 대홍수로 떠내려 갔다. ○동림사(東林寺) 부라촌(浮羅村)에 있었다. 없어진지 오래이기 때문에 겨우 옛 터만 남아 있다. 임유정(任惟靜)의 시가 있다. ○남양사(南陽寺) 현 북쪽 30리 태조봉(太祖峯) 아래에 있었다.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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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3

    44) 동하리(東下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한곡(寒谷) 금곡(金谷) 부라(浮羅) 대라(帶羅) 면계(綿溪) 분천(汾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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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4

    45) 읍내(邑內)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남명(南溟) 지삼(知三) 만리(萬里) 천남(川南) 가락동(加樂洞) 오천(烏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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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5

    46) 서면(西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조곡(條谷) 지례(知禮) 가야(檟野) 서현(鋤峴) 봉산(鳳山) 녹전(祿轉) 사천(沙川) 의현(蟻峴) 능곡(陵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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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6

    47) 북면(北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원당(元堂) 골매((골)梅) 오천((오)川) 둔벌(屯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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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7

    (2) 부의 남쪽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신석촌(申石村) 부(府)의 안쪽 15리쯤에 있다. 부(府)의 동쪽 솔마촌(所乙磨村)과 서로 마주 본다. 내림촌(內林村) 신석촌(申石村)의 서쪽 15리쯤에 있다. 본부(本府)와는 15리 떨어진다. 노곡(蘆谷), 무심(無心), 구화(仇火) 의 세 마을이 있다. 진답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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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8

    48) 의동(宜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대리방(大里方) 박석(搏石) 담릉(潭陵) 일동(日洞) 백운지(百雲池) 항곡(項谷) 천사(川沙) 단사(丹砂) 토빈계(吐(빈)界) 의인(宜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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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69

    49) 의서(宜西)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온계(溫溪) 사곡(斜谷) 귀래곡(貴來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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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0

    50) 장점(匠店)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금곡(金谷)(갓바치 대그릇 버들) 말곡(末谷) 사리곡(沙里谷) 원흑(元黑) 용동(鎔洞) 피박(皮朴) 물매(勿每) 사곡(沙谷) 항곡(項谷) 백운지(白雲池) 박석(博石) 소두들(所頭들) 능동(陵洞) 녹전(祿轉) 골매(㐔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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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1

    51) 영현(嶺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령(鞍嶺) 현 서쪽 20리에 있다. ○성고개(城古介) 현 서북쪽 2리에 있다. 길 빽빽이 소나무가 심겨 있다. ○송현(松峴) 현 동북쪽 5리에 있다. ○광현(廣峴) 현 북쪽 10리에 있다. ○대현(大峴) 현 북쪽 29리에 있다. 용두산(龍頭山)이 바로 이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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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2

    52) 승처(勝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비암(鼻巖) 위에 보임. ○월명담(月明潭) 옛부터 용추(龍湫)라고 전해온다. 퇴계 선생께서 지금 명칭으로 고쳤다. 가뭄이 들면 관가에서는 이곳에서 가우제를 지낸다. ○고산(尻山) 현 동북쪽 25리에 있다. 그곳의 주인은 현감 금난수(琴蘭秀)이다. 퇴게 선생의 시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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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3

    53) 사묘(祠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사직단(社稷壇) 현 서쪽 5리 쯤 되는 산 위에 있다. ○문묘(文廟) 현 서쪽 4리에 있다. ○성황사(城隍祠) 현 뒷산 성 안에 있다. 신증(新增) 매년 단오날에 관리들이 술과 고기를 정갈하게 장만하여 무녀나 광대로 하여금 크게 풍악을 잡히고 그곳에 제사 지낸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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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4

    54) 고적(古跡)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의인(宜仁) 폐현(廢縣) 현 동쪽 9리에 있다. 본래는 안덕현(安德縣) 지도보부곡(知道保部曲)이었다. 고려 공민왕이 승격시켜 현으로 만들어 지금의 명칭으로 고치고 안동에 복속시켰다. 공양왕 때에 다시 예안현에 복속되었다. 신증(新增)『여지승람』을 살펴보면 이 일이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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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5

    55) 지군사(知郡事)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고려 태조가 견훤을 토벌할 때에 태수 이능선(李能宣)의 의(義)를 쫓아 그에게 귀순하였기 때문에 선성군(宣城郡)으로 승격시켰다. 현종(縣宗) 때에 길주(吉州)에 소속시켰는데 신우(辛禑)가 현 동쪽 20리에 태를 묻었기 때문에 다시 군을 만들었다. 얼마 뒤 주로 승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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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6

    56) 역관(歷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능선(李能宣) 고려 태조가 남방으로 적을 공격하여 영토를 확장할 때에 태수 이능선이 창의(倡義)하여 귀순하였기에 태조가 그것을 가상하게 여겨 선곡과 예안을 없애고 ‘선성(宣城)’이라 이름 지어 군으로 승격시켰다. 그것은 바로 그곳 사람들이 의리를 따라 교화가 펼쳐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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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7

    57) 감무(監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감무(監務)(고려 恭讓王이 홍무 22년 기사년(1389)에 즉위하여 감무를 설치했다.) 승봉랑(承奉郞) 홍제도(洪濟道) 신미년(1391) 2월 부임 임신년(1392) 3월 체직됨. 공양왕 3년 ○정몽상(丁夢祥) 홍무 임신년(1392) 5월 부임 9월 체직됨. 고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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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8

    (3) 부의 서쪽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용산촌(龍山村) 속명은 진산(辰山)이다. 부(府)의 서쪽 15리에 있다. 옛날에는 사족(士族)의 집이 없었는데 이휘(李輝)가 율생(律生)의 아들로서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니 도주(道主)가 친히 경하하는 잔치를 이 마을에서 베풀었다. 상계곡(上桂谷) 속명은 상조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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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79

    58) 조선초에서 지금까지 선치관명(善治官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성 로(成 路) 강우덕(姜友德) 정 계(鄭 係) 이 수(李 수) 이 축(李 軸) 채 호(蔡 顥) 정개보(鄭介保) 권경행(權景行) 홍의손(洪義孫) 곽회근(郭懷瑾) 이문명(李文命) 조 범(曹 範) 조변흥(曹變興) 최 결(崔 決) 신지제(申之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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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0

    59) 현감(縣監)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변옹(卞雍) 태조대왕 원년 임신년(1392) 10월 부임 계유년(1392) 6월 체직됨. ○선무랑(宣務郞) 정초(鄭肖) 계유년(1393) 11월 부임 을해년(1395) 6월 감찰(監察)에 배명됨. ○통덕랑(通德郞) 성로(成路) 을해년 6월 부임 병자년(1396) 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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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1

    60) 현감(縣監)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태종대왕 영락 11년 계사년(1413)에 감무를 없애고 현감을 부활했다. 각 도의 감무를 현감으로 개칭했다.) 승훈랑(承訓郞) 김길덕(金吉德) 임지년(1412) 10월 부임 을미년(1415) 9월 내섬시 주부로에 배명됨. 청렴하고 근실하였으며 백성들의 송사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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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2

    61) 예안(禮安) 역관록서(歷官錄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무릇 『역관록(歷官錄)』이라는 것은 한 고을에 관원(官員)들이 고금(古今)에 부임하고 교체된 년월일을 기록한 책이다. 오직 우리 예안 고을은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 일컬어 왔는데 다른 여러 고을과는 매우 달라서 일찍이 이런 기록이 없었다. 나의 소원으로 이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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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3

    62) 선성(宣城) 제영(題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개울을 따라 한갈래 길은 산을 따라 굽었는데 일만 구렁 일천 숲에는 숨은 안개 깊어라 홍여방(洪汝方) <HXMLSUP ID="001"></HXMLSUP> 멀리 보기에는 희미하나 가까이 보니 많으니 눈 앞에 산수가 있어 병풍을 기다릴 필요 없네. 김보륜(金輔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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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4

    63) 전조(前朝) 우거(寓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탁(禹倬) 자(字)는 천장(天章). 단양군(丹陽郡) 사람이다. 고려 충선왕(忠宣王)이 잘못이 있었는데 감찰규정(監察糾正)으로서 백의(白衣)를 입고 도끼를 가지고 돛자리를 메고서 대궐로 나아가 상소하니 근신들이 계속 읽어내려가지 못하였다. 그가 우렁차게 말하기를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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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5

    64) 제안동영호루(題安東映湖樓) 우선생(禹先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영남을 몇해동안 실천 구경하였더니 산과 호수의 경치가 가장 아름다워라 꽃다운 풀 핀 강나루엔 길이 나누어졌고 푸른 버드나무 제방엔 농가가 있구나. 바람은 강물에 일고 아지랑이 푸른데 해가 오랜 닻머리에 흙꽃이 피었어라 비개인 뒤 교외에선 격양가 부르리니 앉아서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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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6

    65) 전조(前朝) 우거(寓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황재(黃載) 고려시대 사람이다. 벼슬하여 지인(知印)에 이르렀다. 효성이 뛰어났고 당세에 이름이 알려졌다. 신증(新增) 이헌(李軒) 영천(永川) 향인(鄕人) 대영(大榮)의 5세손이다. 이헌은 서울에 가서 벼슬하여 군기소윤(軍器少尹)이 되었다. 늙어서 현 서쪽 사천(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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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7

    66) 전후(前後) 우거(寓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단양(丹陽) 우탁(禹倬) 12대. 평해(平海) 황재(黃載), 영양(英陽) 김성검(金成劒), 광주(光州) 김효지(金孝之) 5대, 영천(永川) 이헌(李軒) 7대, 안동(安東) 권겸(權謙) 5대, 봉화(奉化) 금숙(琴淑) 5대, 경주(慶州) 손의형(孫義亨) 4대, 울진(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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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8

    67) 각면(各面) 우거(寓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부포(浮浦) 손의형(孫義亨), 권수(權秀), 신광위(申光渭), 구순(具純), 류의(柳誼) 서촌(西村) 변계손(卞季孫), 변청원(卞淸源), 류공지(柳公智), 송영(宋瑛), 박사희(朴士熹), 윤관(尹寬), 이희형(李希亨) 온계(溫溪) 오언의(吳彦毅), 금보(琴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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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89

    (4) 부의 북쪽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가수천촌(嘉水川村) 속명은 역수천(逆水川)이다. 부(府)에서 10리 떨어진다. 미동촌(美洞村) 부(府)에서 10리 떨어진다. 서가현촌(西可峴村) 지금은 서지(西枝)라고 바뀌었다. 부(府)에서는 12리 떨어진다. 전리판서(典理判書) 남휘주(南暉珠)가 처음 터잡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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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0

    68) 둔벌(鈍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김을방(金乙邦), 민소(閔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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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1

    69) 정문(旌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효자(孝子) 황재(黃載) 지인(知印)으로써 고려에 벼슬을 하였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니 병환이 위중한지라 곧바로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과연 큰 병이 들었다. 울면서 곁에서 모시고 밤낮으로 약을 달이며 줄곧 하늘에 빌었다. 석달이 넘도록 옷을 벗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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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2

    70) 선성(宣城) 명현헌호(名賢軒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낭곡(浪谷),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송재(松齋) 이우(李우), 운암(雲巖) 김연(金緣), 퇴계(退溪) 이선생(李先生), 쌍계(雙溪), 제월(霽月) 권운(權雲), 하연(賀淵) 이중량(李仲樑), 후조(後彫) 김부필(金富弼), 읍청(挹淸) 김부의(金富儀), 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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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3

    71) 선성(宣城) 묘소재사(墓所齋舍) 총명(總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봉선암(奉先菴) 동지 권수익(權數益) 부모 참판공 및 전실(前室) 정부인(貞夫人) 김씨, 후실(後室) 정부인 반씨(潘氏)는 갈전산(葛田山)에 장사했다. 가정시대에 재사를 지었다. 재사는 29간인데 봉선암이라고 이름짓고 중에게 명하여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중 20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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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4

    72) 시거(始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부라촌(浮羅村) <HXMLSUP ID="001"></HXMLSUP> 경력 권간(權簡) 상세(上世)로부터 시거했다. 금숙(琴淑)은 봉화로부터 들어와 권경력의 사위가 되어 역시 이 마을이 시거하였다. 호군(護軍) 권겸(權謙)은 안동으로부터 이 마을로 이거하였다가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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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5

    73) 본거(本居) 인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김준(金惷) 대대로 이곳에 살았고 자손들이 아직 남아 있다. ○이성(李筬) 본현 최초의 급제자이다. 지금은 후사가 없어서 어느 해에 급제하였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나 고로(古老)들이 서로 전해오는 말에 우리 고을이 본래부터 ‘산현(山縣)’이라고 불려오는데 그곳에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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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6

    74) 일동록(日洞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선성(宣城) 북쪽에 산이 있으니 청량(淸凉)이요, 청량산 남쪽에 봉이 있으니 축융(祝融)이다. 축융봉 아래는 바로 일동(日洞)이다. ‘일(日)’이라고 하는 것은 동리에 월담(月潭)이라는 연못이 있어서 그 병처럼 좁은 골에 일월(日月)을 어느 하나만 들어 쓸수 없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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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7

    75) 송권백어서(送權伯魚序)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하늘이 태어나게 하고 딸이 길러주는 바는 오직 사람이 가장 큰 데 사람이 가장 크게 되는 까닭을 강구하고 추구하여 그 큰 것을 지극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한 번 동정(動靜)하고 한 번 어묵(語黙)하는 사이로부터 밥 한끼를 먹고 반 걸음을 걷는 사이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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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8

    76) 권교리(權校理) 실록(實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권운(權雲)은 자가 산룡(山龍)이요, 가서대부 수익(受益)의 둘째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기골이 범상하지 아니라혀 공부하기를 즐기매 게으르지 않았다. 사서삼경(四書三經) 및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에 있어서 한 번 보면 문득 기억하였다. 사장(詞章)이 더욱 뛰어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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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499

    77) 권교리전(權校理傳)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하늘이 인재를 낳음은 많지 않는데 몇 대만에 태어날 수 있는 인재는 더욱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다. 대개 산천은 간기(間氣)를 모아서 그를 태어나게 하니 그의 태어남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세상에서 많이 볼 수 없는 것이다. 다행히 그를 태어나게 하더라도 혹 그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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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00

    (5) 임하현(臨河縣)의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도림촌(道臨村) 현(縣) 동쪽 3리쯤에 있다. 다추월촌(多秋月村) 현(縣)의 서쪽 6리쯤에 있다. 고리곡(古里谷) 현(縣)의 서쪽 8리쯤에 있다. 천전촌(川前村) 또한 대현(大峴)이라고 이름한다. 현(縣)의 북쪽 4리에 있다. 증판서(贈判書) 김진(金璡)이 여기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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