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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3501

    78) 분천(汾川) 사적(事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마을은 현 동북쪽 10리 쯤에 있으니 곧 낙천의 서쪽 기슭 영지산(靈芝山) 동쪽 기슭이다. 농암 이상공(李相公)이 기록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선대는 영양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후손들이 동도(東都) <HXMLSUP ID="001"></HXMLSUP>에 세
    출처 : 유교넷
  • 73502

    79) 농암(聾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李相公 賢輔의 巖號이다. 시호는 孝節公 <HXMLSUP ID="001"></HXMLSUP>이다.) 이상공이 기록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바위가 집 동쪽 1리 쯤에 있으니 높이가 두어길이 넘고 위에는 수십인이 앉을 수 있다. 앞에는 큰 강이 있고 여울 소리
    출처 : 유교넷
  • 73503

    80) 애일당(愛日堂) 이절(二絶)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작은 고을 예안이 우리 고을인데 선조의 남은 경사가 쌓여 내렸다네 <HXMLSUP ID="002"></HXMLSUP> 백발 쌍친은 벌써 팔십을 넘으셨고 슬하에 자손은 마루에 가득하도다. 어버이 늙으심에 임금 생각 어찌 안날까? 옛사람도 오히려 임금 섬기는 날짜
    출처 : 유교넷
  • 73504

    81) 원석헌수시(元夕獻筵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가정 갑인년(1544) 설날에 모이니 집안에 인과 끈 찬 사람이 셋이 있으니, 청송부사 중량(仲樑), 봉화현감 희량(希樑) 의흥현감 계량(季樑)이었다. 이 해에 나의 나이는 88세였다. 일찍이 어버이가 연로하다는 이유로 중량은 삼척부사로서 청송으로 바꾸었고, 희량은
    출처 : 유교넷
  • 73505

    물에 잠긴 바위가 이름이 들어나 노는 사람 경체를 찾아 봉영(蓬瀛)으로 오네 비 온 다음이라 강물은 불어 물결이 푸르고 밤이 깊어 연기에 잠기니 촛불이 밝도다. 자리는 지세를 따랐고 술놀이는 즐거운 정이 남는다 취하여 다시 중류에 돛대를 띄우니 날리는 서풍에 낯이
    출처 : 유교넷
  • 73506

    83) 당정(堂亭) 각명(各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긍구당(肯構塘) <HXMLSUP ID="001"></HXMLSUP> 분천(汾川)마을 안에 있는 종가의 대청이 바로 이것이다. ○명농당(明農堂) <HXMLSUP ID="002"></HXMLSUP> 마을 안에 있는 효절공(孝節公)이 지어 명농당이라 하였는데, 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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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07

    84) 인물(人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리 선대 <HXMLSUP ID="001"></HXMLSUP>는 영천(永川)에서 시작되었는데 군기소윤(軍器小尹)으로 벼슬하다가 현 서쪽 사천촌(沙川村) <HXMLSUP ID="002"></HXMLSUP>에 이거하여 비로소 예안고을 사람이 되었다. 또 다시 분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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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08

    85) 온계(溫溪) 사적(事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마을은 현 북쪽 15리쯤에 있다. 그곳은 곧 용두산(龍頭山) 산맥으로 낙모봉(落帽峯)이 동쪽에서 솟고 영지산(靈芝山)이 남쪽에서 나 솟았으며 국망봉(國望峯)은 서쪽에서 우뚝하다. 또한 작은 시내는 좌우로 흘러 내려가서 마을 앞에서 만나고, 청음석을 지나 퇴계(退溪)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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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09

    86) 산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용두산(龍頭山) 마을 서북쪽 5리에 있다. ○국망봉(國望峯) 마을 서쪽 5리에 있다. 그 산 기슭은 곧 이농암(李聾巖)의 선영 <HXMLSUP ID="001"></HXMLSUP>이다. ○낙모봉(落帽峯) 퇴계 선생이 친구들과 함께 이 산에 올라을 때 ‘낙모’라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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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10

    87) 당정(堂亭) 각명(各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송당(松堂) 이송재(李松齋) 선생의 대청이다. 퇴계 선생이 ‘송당’이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그곳에 붙혔다. 아직 남아 있는데 바로 어제 쓴 듯 하다. ○사미정(四未亭) 송재의 손자 이빙(李憑)이 계남(溪南) 언덕에 정자를 지었다. 임진왜란을 겪은 뒤에 무너져 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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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11

    (6) 길안현(吉安縣)의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모현촌(茅峴村) 현(縣)의 서쪽 10리 의성현(義城縣)의 경계에 있다. 산하촌(山下村) 옛 지명은 산달리(山達里)이다. 현(縣)의 동쪽 3리에 있다. 망고음촌(望古音村) 현(縣)의 남쪽 5리에 있다. 오락촌(烏落村) 현(縣)의 남쪽 10리에 있다. 산사람이 산다.
    출처 : 유교넷
  • 73512

    88) 풍속(風俗)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옛부터 법도가 있었고 백성들은 시례(詩禮)를 숭상하였는데 하물며 선생이 태어나셨음에라. 그 풍습이 더욱더 아정(雅正)하여 집집마다 효우(孝友)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그러하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세상이 멀어지고 사람은 없어진 탄식만 남았다. 어찌 지령(地靈)이 옛과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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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13

    89) 성씨(姓氏)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진보(眞寶) 이씨(李氏), 봉화(奉化) 금씨(琴氏), 함안(咸安) 오씨(吳氏), 달성(澾城) 서씨(徐氏), 永川(영천) 이씨(李氏), 의성(義城) 김씨(金氏), 서하(西河) 임씨(任氏)
    출처 : 유교넷
  • 73514

    90) 등과(登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우(李堣) 홍치 임자년(1492)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무오년(1498)에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청해군(靑海君)에 봉군되었으며 향년은 49세이다. 진사의 둘째 아들이다. ○이해(李瀣) 식(埴)의 아들이다. 가정 을유년(1525)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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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15

    91)이정자우(李正字堣) 경석즉사(慶席卽事) 팔운(八韻)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수헌(睡軒) 권오복(權五福) <HXMLSUP ID="002"></HXMLSUP> 운수는 오백년을 열고 문성(文星)이 모였는데 집집마다 공맹(孔孟)을 읽고 책은 숲처럼 쌓였다네 방정하고 현량(賢良)한 사람들 이곳으로부터 나오나니 백년동안 문교(文敎)의 공이 깊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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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16

    92) 사마(司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계양(李繼陽) 영락 갑진년(1424) 안동 주촌(周村)에서 태어났다. 경태 계유년(1453) 진사시에 합격하여 안동 주촌으로부터 예안 부라촌으로 이거하였고, 또다시 온계로 자리를 옮겨 살았다. ○이식(李埴) 계양(繼陽)의 맏아들이다. 홍치 신유년(1501)에 진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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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17

    93) 남행(南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수령(李壽苓) 우의 아들이다. ○이징(李澄) 식(埴)의 아들이다. 찰방을 지냈다. ○이교(李교) 해(瀣)의 아들이다. 대흥현감(大興縣監)을 지냈다. ○이굉(李宏) 하(河)의 아들이다. 습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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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18

    94) 부라(浮羅) 사적(事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마을은 현 동쪽 10리쯤에 있다. 곧 낙동강 동쪽 모퉁이 청량산 남쪽 자락이다. 주일봉(主一峯)이 북쪽에서 솟아 주봉(主峯)이 되고 묵봉(墨峯)이 동쪽에서 솟았으며 부용봉(芙蓉峯)이 서쪽에서 솟았고 파둔산(破鈍山)이 웅장하게 남쪽에 있어서 안산(案山)이 된다. 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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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19

    95) 각명(各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주일봉(主一峯) 마을 북쪽에 있는데 곧 마을의 주산(主山)이다. ○호소곡(虎嘯谷) 마을 동북쪽에 있다. 그 골이 가장 깊고 긴데 좌우에 있는 조그마한 골의 이름은 모두다 기록할 수 없다. ○웅정(熊井) 추곡(楸谷) 동쪽에 있다. 세속에서 전해오기를 곰이 이 굴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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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0

    96) 인물(人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권간(權簡) 경력(經歷)에 이르렀다. 이마을에 시거했다. 묘는 가화산(加火山)에 있는데 산은 곧 마을의 북산(北山)이다.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의 「청량산록(淸凉山錄)」 <HXMLSUP ID="001"></HXMLSUP>에서 이른바, ‘예안 부라촌(浮羅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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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1

    97) 부라촌(浮羅村) 수골(壽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호군(護軍) 권겸(權謙) 93 ○만호(萬戶) 금치소(琴致韶) 89 ○첨지(僉知) 금희련(琴希槤) 88○금헌(琴憲) 83 ○첨지(僉知) 금응각(琴應角) 86 ○유학(幼學) 권기(權沂) 87 ○첨지(僉知) 금응우(琴應羽)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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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2

    (7)일직현(一直縣)의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현내(縣內) 세족(世族) 대가(大家)가 옛날부터 많이 있었다. 이제껏 인물이 매우 많다. 운산역촌(雲山驛村) 현(縣)의 동쪽 4리에 있다. 안기도(安奇道)에 예속된다. 구미촌(龜尾村) 현(縣)의 동쪽 8리에 있다. 산을 두르고 물을 안아 마치 거북이나 뱀이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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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3

    98) 금조대(琴釣臺) 실록(實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금조대(琴釣臺)의 이름은 금각(琴恪), <HXMLSUP ID="001"></HXMLSUP> 자는 언공(彦恭) 호는 조대(釣臺), 부는 금난수(琴蘭秀)로 봉화현감을 지냈다. 모는 횡성(橫城) 조씨(趙氏)요 증참판 대춘(大椿)의 따님이니 즉 조선생 <HXMLSUP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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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4

    99) 북계(北溪) 사적(事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마을은 현 동쪽 9리 쯤에 있는데 속명은 화왕산(火王山)이다. 만력 을해년(1575)에 내가 <HXMLSUP ID="002"></HXMLSUP> 면계(綿溪)로부터 이 마을로 터를 옮겨 ‘화왕(火王)’이라는 명칭은 매우 용렬하고 평범하여 진로(陣老) 두 선생이 사시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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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5

    100) 각명(各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광문봉(廣文峯) 마을의 주봉(主峯)이다. (훈도 남륙이 일찍이 봉우리 아래에 살았기 때문이 일시에 광문봉이라고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이 봉우리 아래에다 장사지냈다.) ○강동초사(江東草舍) 평소에 권경달(權景達)이 재사(齋舍)를 짓고 ‘강동초사’라고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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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6

    101) 인물(人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권경달(權景達) 문과에 급제했다. 함창현감을 지냈다. ○권인(權仞) 권경달(權景達)의 아들이다. 무재(武才)가 일찍 성취되었다. 1남 2녀가 있다. ○권임(權任) 권인의 아들이다. 유로(儒老)가 되었다. ○권기수(權耆壽) 권임의 아들이다. 선비로서 대대로 이곳에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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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7

    102) 양로낭설(養老囊說)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선곡현(善谷縣) 북계(北溪)땅에 권생(權生) 시중(是中) <HXMLSUP ID="001"></HXMLSUP>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정성껏 섬겼다. 집이 매우 가난하여 죽조차 있지를 못하였고 직접 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하였으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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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8

    103) 발(跋) 구방재(求放齋) 양로낭설(養老囊說)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지령(芝嶺) 윤의정(尹義貞) <HXMLSUP ID="001"></HXMLSUP> 한 고을에서 어버이를 모시는 사람은 한 고을에서 그 마음을 다하고 한 집에서 어버이를 모시는 사람은 한 집에서 그 마음을 다한다. 나는 이와 같은 사람을 보았으나 그러나 주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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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29

    104) 둔곡(鈍谷) 사적(事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현 북쪽 20리 요성산(邀聖山) 동쪽 자락에 있다. 황장산(黃腸山)은 북쪽에 있고 북망봉(北望峯)은 동쪽에 솟아 있다. 작은 시내는 북쪽으로부터 흘러서 남쪽으로 내려가니 이 마을은 예안 고을에 궁벽한 골로서 김을방(金乙邦) <HXMLSUP ID="002"></HX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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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0

    105) 가야(檟野) 사적(事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현 서쪽 15리에 있다. 녹전산(祿轉山) 한 갈래가 뻗어내려와 주봉이 되었다. 북쪽으로 지령(芝嶺)이 높이 솟았고 동쪽으로는 홍산(洪山)이 우뚝하고 남쪽으로는 안산(鞍山)이 웅건하게 섰으며 서쪽으로는 의산(蟻山)이 둘러쳐 있다. 봉산(鳳山)과 고산(孤山)이 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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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1

    106) 처사(處士) 류공(柳公) 실록(實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공(公)의 휘(諱)는 빈(贇)이요 자는 미숙(美叔)으로, 정덕 경진년에 태어나서 만력 신묘년에 몰하였다. 향년은 72세이다. 그 선조는 안동 풍산인(豊山人)이요 부친의 휘는 공지(公智)로 진보훈도(眞寶訓導)를 지냈는데, 처음으로 예안 서쪽 마을에 와서 살았다. 모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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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2

    107) 생원(生員) 윤의정(尹義貞) 실록(實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공의 휘(諱)는 의정(義貞)이요 자는 이직(而直)이며 그 선조는 덕산인(德山人)이다. 부친 관(寬) <HXMLSUP ID="002"></HXMLSUP>이 가야촌 북쪽 지례(智禮)라는 곳에 시거하였다. 가정 신사년에 사간 변청원(卞淸源)의 손녀에게 장가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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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3

    (8) 풍산현(豊山縣)의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상리(上里) 현(縣)으로부터 북쪽은 상리(上里)라 한다. 정승 권진(權軫)이 우거(寓居)하고 그후에 효자 김시좌(金時佐), 열부(烈婦) 유천계(兪天桂)의 처 김씨(金氏)가 살았다. 선비 권순(權詢) 또한 효행이 있었다. 마을 가운데 딴 이름으로 고산내(孤山內), 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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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4

    108) 한곡(寒谷) 사적(事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마을은 현 동쪽 15리에 있다. 일월산(日月山)의 한 지맥이 서쪽으로 100여리를 달려 나솟은 것이 동강(東岡)인데 이것이 마을의 주봉이다. 물은 수청산(水淸山)이 왼쪽에 서 있고 능운산(凌雲山)이 오른쪽에 우뚝하며 봉선산(奉先山)이 서쪽에 웅장하게 서 있으며 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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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5

    109) 각명(各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능운대(凌雲臺) 마을 서쪽 2리에 있다. 퇴계 선생이 역동서원을 이곳에 창립하고자 하여 이리저리 두루 유람하였는데 경치가 온갖 형상을 모두 갖추고 있으나 지세가 기울어져 있어 물이 몰려들까 위태로웠기 때문에 이곳에다가 서원을 짓지 않고 낙동강 가로 옮겨 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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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6

    110) 인물(人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김효우(金孝友) 서촌(西村)의 사천(沙川)으로부터 이사와서 시거했다. ○김숭조(金崇祖) 김효우의 아들이다. 4남 2녀를 낳았다. ○김흠조(金欽祖) 문과에 급제하여 제주목사를 지냈다. 영천(榮川)으로 이거했다. ○김계조(金繼祖) 역시 효우의 아들이다. ○김몽석(金夢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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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7

    111) 운교(雲郊)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凌雲臺 아래에 있다. 儉隱洞 건너편은 종이를 만드는 장인들이 사는 마을길로서, 예날에는 운교라고 불렀다.) 지장리(紙匠里) 양민 송영(宋英), 송단손(宋丹孫)등이 이 마을에 세거하고 있다. 자손들은 지금도 있다. 지장(紙匠) 권을승(權乙承), 권논산(權論山)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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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8

    112) 지삼촌(知三村) 사적(事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마을은 현 남쪽 5리에 있다. 왼쪽으로 비암(鼻巖)이 솟아 있고, 오른쪽으로는 오천(烏川)을 끼고 있으며 앞으로는 낙수를 바라보고 있어서 땅이 매우 고명하다. 고려 성균관(成均館) 좨주(祭酒) 우탁(禹倬)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으로 물러나 초가집을 짓고 살면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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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39

    113) 인물(人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탁(禹倬) 고려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이원백(李元伯)의 사위가 되어 이곳에 살기 시작하였다. 사적은 위에 나옴. 충선왕때 벼슬을버리고 이곳으로 물러나 살았다. ○우원광(禹元光) 문과에 급제하였다. ○우원명(禹元明)우탁의 아들이다. 봉상정을 지냈다. ○우침(禹沈) 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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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0

    114) 만리촌(萬里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마을은 현 북쪽 3리 영지산 남쪽 자락에 있다. 여제산(厲祭山)이 서쪽에 있고 백림산(柏林山)이 동쪽에 있는데 산성(山城)이 수구(水口)로 진압하고 있다. 관리들이 주위에 많이 산다. 낭장(郎將) 남강(南剛) 및 연기현감 남화완(南和緩), 흡곡현령 남서운(南瑞雲)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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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1

    115) 면계촌(綿溪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마을은 현 동쪽 7리에 있다. 영지산의 한 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와 운봉(雲峯)이 되었고 또 불쑥 솟아 부용봉(芙蓉峯)이 되었다. 낙수는 분수(汾水) 북쪽으로부터 흘러내려 풍월담(風月潭)이 되었다. 토지는 낮아서 해마다 물이 들어와 그 피해가 컸다. 직장 이균(李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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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2

    116) 각명(各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유정(柳亭) 마을 앞에 20여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는데, 그 아래에다 단을 만들었다. 선군(先君)께서 이매암(李梅巖), 조월천(趙月川), 이벽오(李碧梧)와 함께 봄이 와서 꽃이 피고 가을 달밤에 이곳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가사를 읊조렸다. 을사년 대홍수로 무너져 떠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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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3

    117) 인물(人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권수복(權受福) 부라촌(浮羅村)으로부터 이사하여 이곳에 시거하였는데 마을 이름을 ‘면계(綿溪)’라고 지었다. 공의 재주는 활쏘기와 말타는데 뛰어나서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처음에는 벼슬에 나아가 차례로 선전과, 충훈위 도사를 거침에 장수다운 기상이 드러났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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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4

    (9) 감천현(甘泉縣)의 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현내(縣內) 사는 백성이 조금 많다. 열부(烈婦) 김응상(金應商)의 처 권씨(權氏)가 살았다. 산동촌(山洞村) 현(縣)의 동쪽 10리에 있다. 생원(生員) 권건남(權乾男)이 처음 살았다. 유동역촌(幽洞驛村) 산동촌(山洞村) 동쪽 몇 리쯤에 있다. 현(縣)에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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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5

    118) 남명촌(南溟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현 서쪽 5리에 있다. 광산(廣山)으로 주산을 삼고, 서산에 내려와 마을의 안산이 되었다. 골현과 사천(沙川) 두 물줄기가 마을 앞에서 합해져서 낙천 서쪽으로 들어간다. 정인원(鄭仁元)이 그곳에 시거하였는데 자손들이 다른 곳으로 옮겼다. 남우(南祐), 남지(南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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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6

    119) 오천(烏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현 남쪽 7리에 있다. 녹전산(祿轉山)이 서쪽으로부터 내려와 구불구불하게 다시 솟아 금학봉(金鶴峯)이 되었고, 또 동쪽으로 달려서 높이 우뚝한 것은 산남봉(山南峯)이다. 이 봉우리가 마을에 주봉이다. 동쪽으로 어탄산(魚呑山)을 마주보고 있으며 방잠산(方岑山)이 서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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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7

    120) 산천(山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산남봉(山南峯) 마을에 主峯이다. ○방잠산(方岑山) 마을 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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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548

    121) 각명(各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후조당(後彫堂) 김효로의 옛집이다. 지은지 오래되어 무너지니 그 손자 김부필(金富弼)이 새롭게 고치고서 당을 ‘후조’라고 이름 지었으니, 이 당은 곧 오천 김씨 문중의 대종가이다. 자손들이 춘추로 모두 그곳에 모인다. ○읍청정(揖淸亭) 주인은 김부의(金富儀)이다. 시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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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 풍속(風俗)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며 형은 우애하고 아우는 공손하며 시비를 분명히 하여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가 되었다. 악을 미워하고 선으로 좋아하며 성품이 엄정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모두 글을 잘 지었으니, 참으로 군자다웠다. 집집마다 사마(司馬)요 또 집집마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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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 인물(人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김효로(金孝盧) 자 순경(舜卿). 고려 지문하성사 광산인(光山人) 광존(光存)의 후예이다. 처음에 오천(烏川)에 살기 시작하여 예안 고을 사람이 되었다. 성화 경자년(1480)에 생원시에 합격한 이후로 과거시험에 종사하지 않았다. 이 마을에 살면서 청렴결백함으로 스스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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