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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효행(孝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황재(黃載) : 고려 때 지인(知印) <HXMLSUP ID="001"></HXMLSUP>으로 서울에서 벼슬할 때 어머니가 병에 걸린 꿈을 꾸었다. 하루도 안 되어 이르니 어머니가 과연 병에 걸렸다. 크게 소리내어 울면서 약시중을 들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삼년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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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열녀(烈女)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권씨(權氏) : 직장 이안도(李安道)의 아내. 문순공 황(滉)의 손부. 시부모를 효성으로 섬겼다. 남편이 죽자 홑옷을 입고 띠자리를 깔고서 주야로 곡함을 끊이지 않더니 대상(大祥)이 지난 뒤에 병이 더욱 심하여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났다. 일찍이 말하기를 “내가 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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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제영(題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추 흥 정 은여림의 시 사방 창으로 비단에 수놓은 듯 산빛은 가깝고 이 일대에 유리같은 물빛은 깊구나 관 심 루 조사수의시 백날을 바깥에 다니다 꿈에 궁궐을 보오니 한 줌 돌아가고픈 마음 짧은 병풍에 기대네 해는 지고 홀로 누에 올라 머얼리 바라보니 수도 없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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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비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우탁의 유허비 : 참판 이휘재가 었음. 고을의 남쪽 5리에 지삼리(知三里)에 있는데 곧 우탁이 거하던 유지이다.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된 이계양의 국망봉단비 : 승선 이만도가 지었다. 효절공 이현보 묘 신도비 : 강녕군 흥섬이 지었다. 정민공 이해 묘 신도비 :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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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책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소학언해판 : 관에서 소장하여 지금은 없다. 주서절요판 : 흰종이 스물 셋 묶음을 들일 만한 용량이다. 이학통록판 : 흰 종이 열 다섯묶음 석장을 들일 만한 용량이다. 계몽전의판 삼경석의판 : 닳았다. 사서석의판 : 닳았다. 어부사판 : 닳았다. 송재집판 농암집판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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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발(跋)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國家에 史記가 있는 것과 같이 州郡에 邑誌가 있는 것이 常例라 할 수 있다. 나라의 史書가 여러 가지 政治·行政·敎育의 거울이 되는 것과 같이 한 고을의 邑誌 또한 地域社會의 發展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우리 宣城誌는 櫟亭 權公是中이 光海 昏朝때에 杜門蟄居하여 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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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발문(跋文)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우리 선성 고을은 지역이 협소하여 ‘십실지읍(十室之邑)’을 면치 못했지만 산천이 수려하고 유현들이 배출되어 본래부터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고 불리어 왔다. 풍속이 순후하고 ‘현가지성(絃歌之聲)’이 각 마을마다 끊어지지 않았으며, 효제(孝悌)하는 도가 각 가문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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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영춘정(迎春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동쪽 5리에 있다. 옛 이름은 천재정(千載亭)이다. 영락(永樂) 18년(1420)에 부사 최관(崔關)이 천태종의 스님 의호(義湖)에게 명령하여 시주를 모아서 세웠다. 매년 입춘(立春)에 여기서 제사를 차리고 해를 맞는다. 만력(萬曆) 정유년(1597)에 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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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호구(戶口)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호구(戶口) 5,587호 전결(田結) 밭 8,906결(結) 7부(負) 3속(束), 논 3,496결 93부 9속, 합계 12,403결 1부 2속, 안으로 세금 없는 것이 582결 81부 3속. 나라에서 쓰는 것이 11,820결 19부 9속이다. 진기(陳起)는 해를 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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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영은정(迎恩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북쪽 5리에 있다. 고려 충렬왕이 일찍이 여기 올라 현액을 제명하였다. 만력 정유년(1597)에 명나라 군사에게 허물어졌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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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귀래정(歸來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동남쪽 5리 와부탄(瓦釜灘) 위에 있다. 유수(留守) 이굉(李浤)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와 여기에다. 지었다. 이우(李堣)의 시 인끈을 풀어놓고 일찍 돌아와 두 물이 나누이는 곳에 정자를 지었네. 시내와 산은 주인있음을 알겠고 갈매기와 해오라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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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천(山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영남산(映南山) 부(府)의 동북(東北) 1리쯤에 있으며 안동부의 주산(主山)이다. 산허리에 고정(古井)이 있으니 속칭 성재정(聖齋井)이라 한다. 비록 날이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붉은 무지개가 때때로 보인다. 저수산(猪首山) 안동부(安東府) 서북(西北) 1리쯤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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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품(土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내(府內) 한전(旱田) 이 많고 수전(水田)이 적다. 토질은 숙속상마(菽粟桑麻)를 재배하는데 적합하다. 부동(府東) 흰 토양이 메마르고 척박하며, 간곡(澗谷)이 많다. 토질은 도(稻), 속(粟), 직(稷)을 재배하는데 적합하다. 부남(府南) 한전(旱田)이 많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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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토산(土産)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내(府內) 은구어(銀口魚), 해송자(海松子) 안막곡, 안기, 법흥, 성황당에서 생산된다. 설면자(雪綿子), 완초(莞草), 백화사(白花蛇), 지황(地黃), 황어(黃魚) 진상품으로 정해 있는 까닭에 어장이 납오탄에 있다. 지금은 어장을 없애고 민호(民戶)에 명하여 자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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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우(館宇)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대청(大廳) 9칸. 동서로 행랑이 각 4칸이다. 대청 : 9칸이다. 동헌(東軒) 안방은 한 칸이고 바깥방은 2칸이다. 안(內)청사는 6칸이고 바깥청사는 14칸이다. 사예(司藝) 김숙자(金淑滋)의 시 티끌이 묻지 않아 날은 더욱 밝은데 하물며 거기에다 사특함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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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풍루(觀風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성 안에 있다. 김수온(金守溫)의 가문에 고개(鳥嶺)의 남쪽에 웅번(雄藩) 거목(鉅牧)이 마치 안개처럼 벌여서 솔밭처럼 나란히 있는데 대도호(大都護)란 이름에 이르러서는 오직 영가부(永嘉府)에 일컬을 것이다. 다른 군(郡)이 함께하지 못함은 무슨 까닭이냐. 전조(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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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제(解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지방지(地方誌) 영가지(永嘉誌)는 조선(朝鮮) 선조(宣祖) 말년(末年)에 완성된 안동지역(安東地域)의 정치, 행정, 경제, 사회, 교통, 국방, 인물 등 역사적 변천상황과 사회적 문화상황을 기술한 사찬(私撰) 읍지(邑誌)이다. 이러한 서책(書冊)들을 지방지(地方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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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영호루(映湖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의 남쪽 5리에 있다. 공민왕이 남으로 복주(福州)에 순수하여 묘주(廟主)를 향교에다 모시고서 영호루로 행행하여 드디어 배를 타고 노닐며 구경하고 호수가에서 그대로 활을 쏘았다. 안렴사(按廉使)가 왕께 음식을 대접하니 구경꾼들이 담같이 둘러섰는데 혹 소매를 돌이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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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누선(樓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영호루 아래에 있다. 정사룡(鄭士龍)의 시 평생토록 영호선에 오르지 못하다가 멀리 새로운 글에 화답하려니 뜻이 원만하지 못하구나. 교묘히 만든 초정(草亭)은 채색한 익수(鷁首) 배에 편안하고 펼쳐진 가을 비단은 개인 하늘에 떨어진다. 생황의 노래는 흥을 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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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모은루(慕恩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의 서쪽 5리에 있다. 세조때의 부사 한치의(韓致義)가 세웠다. 권반(權攀)의 기에 말하기를 읍에 누대와 관사가 있음은 심부름 오는 손님을 편리하게 하고자 함이요 아름다움을 보고자 함이 아니다. 그리하여 조정을 높이고 사신의 명을 공경하고자 함이다. 우리 고을 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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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진남문루(鎭南門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성의 남쪽 문이다. 만력(萬曆) 을사년(1605) 7월 큰 물에 떠내려갔는데 부사 김륵(金玏)이 다시 짓고 그대로 진남이라 이름하였으며 현액은 인성군(仁城君) 미(嵋)가 썼다. 상량문은 이러하다. 하늘의 재앙은 성세(聖世)에 경계하는 것이라서 이름난 성읍이 홍수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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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임청각(臨淸閣)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성 동쪽 법흥리(法興里)에 있다. 참의(參議) 이명(李洺)이 지은 것이다. 고경명(高敬命)의 시 시원한 누각 찬 기가 오르는데 바라봄은 새롭고 한 두 산이 감추어졌는데 다시 사람도 머물렀더라. 꽃다운 잔치 밤에 잡아 기쁨은 흡족하고 좋은 일 천륜에 맺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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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반구정(伴鷗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조사수(趙士秀)의 시 화려한 집 푸른 누에처럼 높이 얹혔는데 맑고 차가운 물 굽어보니 푸른 구슬처럼 흐르네. 시내에 비 올때 쌍리어(雙鯉魚) 뛰고 골짝에 구름 밖으로 비끼어 어지러운 산에 빽빽하다. 맑은 술잔은 스스로 홍우(紅友)를 맞을 수 있고 고운 곡조는 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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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침벽루(枕碧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동쪽 25리 백련사(白蓮社) 앞에 있다. 현액은 조맹부(趙孟頫)의 글씨였으나 잃어버렸다. 뒤에 절은 폐하여지고 여강서원(廬江書院)을 세웠다. 양호루(養浩樓)가 바로 그 터이다. 배환(裵桓)의 시 성 동쪽에 정사(精舍)가 있더니 내 옛날 소년 때에 놀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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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침호정(枕湖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서쪽 작현(鵲峴)에 있는데 좌로는 아호(鵝湖)를 당기고 우로는 성산(城山)을 누른다. 고을 사람 류종례(柳宗禮)가 지었는데 지금은 세마(洗馬) 김집(金潗)이 이어서 가지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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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감원정(鑑源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의 동쪽 가구촌(佳丘村)의 안 물 입구 서쪽 기슭에 있다. 사간(司諫) 권춘란(權春蘭)이 지은 것이다. 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또 작은 집을 못 가운데 지었는데 구백담(具栢潭)이 감원이라고 이름을 짓고 시를 지었다. 손수 소나무 섰는 낭떠러지 깎으니 앞이 트인 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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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산정(權山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서쪽 35리에 있다. 교수(敎授) 권질(權耋)이 살던 집인데 마을 사람들이 인하여 이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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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가지서(永嘉誌序)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만력(萬曆) 임인(壬寅, 1602, 宣祖 35)년 겨울에 권씨 족보 제작을 마치려함에 진사(進士) 권군종윤(權君終允) 이 서애(西厓) 류선생(柳先生 : 柳成龍, 1542~1607) 의 명령으로 와서 말하기를, “우리 안동은 일도의 웅번(雄藩)인 바라 고려 태조와 같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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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환골대(換骨臺)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동쪽 가탄촌(嘉灘村) 아래 낙동강 가에 있다. 한번 올라 노닐어보면 몸이 마치 나래를 단 것 같다. 구백담(具栢潭)이 이로써 이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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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정(江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상락대(上洛臺) 아래 공수포(公須浦) 위에 있다. 판서(判書) 권예(權輗)가 지은 것이다. 퇴도(退陶) 선생의 시 작은 배로 한 강을 비껴 건너던 날 초가집 가운데서 물러난 어진 이를 찾아뵈었네. 상락대(上洛臺) 앞 천 길의 물 이제부터 판서(判書)의 못이라 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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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하계곡리정(下桂谷里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서쪽 건지산(蹇芝山)을 마주하고 있다. 상락담(上洛潭)이 앞으로 비끼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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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상단지리정(上丹地里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서쪽에 있다. 또한 강에 임하여 시원한 땅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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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송원정(松院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서쪽 12리에 있다. 명나라 병사가 불태웠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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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압각정(鴨脚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서쪽 가야곡촌(佳野谷村)에 있다. 절충(折衝)장군 강희철(康希哲)이 지은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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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함경당(涵鏡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部)의 서쪽 가야곡촌(佳野谷村)에 있다. 절충(折衝)장군 강희철(康希哲)이 지은 것이다. 부사 권응정(權應挺)의 시 암자도 숨기어진 산기슭 궁벽한 외로운 마을 누워 쉬며 진실로 독락원(獨樂園)을 이루었다. 마음이 고요하니 곧 그윽한 지경이 고요함을 알겠고 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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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송파정(松坡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서쪽 소야촌(所夜村)에 있다. 땅은 그윽하고 형세는 트이었으며 곁에 대나무집이 있다. 교수(敎授) 정이청(鄭以淸)이 날마다 그 위에서 살았다.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의 시 글도 칼도 풍진 세상에 끝내 이루지 못하고 밤 초당에 높이 누워 평생을 만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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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의의정(依依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부(府)의 북쪽 익우리(益友里)에 있다. 부사 남우량(南佑良)이 지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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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경류정(慶流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옛날 주촌(周村) 남쪽 2리 정동(亭洞)에 있었다. 훈도(訓導) 이연(李演)이 지은 것이다. 퇴도(退陶) 선생이 오시어 구경하시고 이름과 시를 지으셨다고 한다. 착하게 쌓여온 유래 복과 경사가 불어나고 얼마나 어질고 후함을 전하여서 종파와 지파에까지 퍼지나. 그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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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가지 권 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center>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center>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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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한송정(寒松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임하현(臨河縣) 북쪽 비리연(飛鯉淵) 위에 있다. 김예범(金禮範)이 지은 것이다. 정자 아래 강가에 한 돌이 있는데 그 모습이 흡사 대나무 상자와 같아서 이를 일러 농암(聾巖)이라 한다. 물을 따라 몇 리를 내려가면 돌이 말안장(盤陀) 같은 것이 있는데 이름하여 의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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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은정(壺隱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임하현(臨河縣) 북쪽 천전리(川前里) 두 시냇물 가운데 있다. 참봉(參奉) 김정(金珽)이 지은 것이다. 정자 위에서 노닐며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며 스스로 즐겼다. 옥산(玉山) 이우(李堣)의 시 외로운 정자 이끼 낀 산골짜기에 있는데 한번 오르면 차가움을 느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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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백운정(白雲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임하현(臨河縣)의 북쪽 이리 부암연(傅巖淵)에 있다. 증판서(贈判書) 김진(金璡)이 지은 것이다. 아들 수일(守一)이 옛 제도에다 보태어 개축하였다. 김진(金璡)의 시 푸른 봉우리 가에 벽을 뚫고 정자를 여니 그대로 풍경이 두 눈에 모여드네. 해 비치는 거울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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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선유정(仙遊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임하현(臨河縣) 동쪽 선찰사(仙刹寺) 앞에 있다. 김진(金璡)이 지은 것이다. 동쪽에 있는 산을 봉일(捧日)이라 하고 뒤에 있는 것을 무학(舞鶴)이라 하며 앞에 있는 것을 장륙(藏六)이라 하고 왼쪽에 있는 것을 옥병(玉屛)이라 하며 오른쪽에 있는 것을 취병(翠屛)이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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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퇴산정(退山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임하현(臨河縣) 북쪽 5리 쯤 무릉도(武陵島) 아래에 있다. 농선(農船)을 가지고 있으며 위에는 세 그루 나무가 있다. 생원(生員) 정교(鄭僑)가 손수 심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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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구계정(龜溪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임하현(臨河縣) 북쪽 광탄(廣灘)위에 있다. 벽동(碧潼) 군수 권시좌(權時佐)가 세운 것이다. 후인들이 이를 이름지어 벽동정(碧潼亭)이라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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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금역당(琴易堂)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임하현(臨河縣)의 북쪽 도목촌(桃木村)에 있다. 내한(內翰) 배용길(裵龍吉)이 살던 곳이다. 명나라 절수(浙水) 사명학림(四明鶴林) 주원조(朱元兆)의 시 한 집 네 벽은 하늘로 확 트이고 완연히 그림같아 하늘이 지었더라. 처마 앞에는 먼 산빛을 보내어 오고 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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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만류정(萬柳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길안현(吉安縣) 산하리(山下里)에 있다. 송후은(宋後殷)이 지은 것이다. 김팔원(金八元)의 시 담담한 한 시내위 침침한 일만 버들 가운데더라. 띠집 좋은 술 알려고 하는가. 얼굴에 불어오는 화한 바람 있으리라. 마을은 봉우리 그늘속에 있고 정자는 나무 그림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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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백암정(白巖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귀미촌(龜尾村) 동남쪽 몇 리 쯤에 있다. 효자 남응원(南應元)이 지은 것이다. 곁에는 돌 대(臺)가 있는데 강 복판에 갑자기 일어나 삼면은 깍아지른 듯하고 서서 깊은 연못을 굽어본다. 팔, 구인이 앉을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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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삼수정(三樹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풍산현(豊山縣) 북쪽 3리에 있다. 류서애(柳西厓)의 시 푸른 시내 골짝골짝 구름 낀 녹나무를 가리고 오월 서늘한 그늘 특별한 땅에 휩싸였다. 들나물 산의 술로 저녁 자리 함께 하니 파란 얼굴 희 머리 매인 비녀(簪)에 비치네. 한(漢) 나라 네 늙은이 숨었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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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혁(沿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본디 고타야군(古陀耶郡)이다. 삼국사(三國史).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고창군(古昌郡)로 고치었다. 전한(前漢) 선제(宣帝), 오봉(五鳳) 원년(元年 BC 57) 갑자(甲子)에 염상도사(念尙道士)가 길지(吉地)를 찾아 처음으로 창녕국(昌寧國)을 세웠다. 다음으로는 일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