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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 파쇼통치의 강화와 전시수탈체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1)일제의 전시체제로의 전환 1929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 국가였던 미국에서 시작된 공황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안정되어 가던 자본주의 체제를 크게 뒤흔들었다. 미국의 주가폭락으로 시작된 공황의 근본 원인은 공업과 농업 생산품의 비약적 증대에 반하여 구매력이 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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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시체제기 안동의 사회 · 경제적 상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앞에서 언급했듯이 1929년에 발생한 세계경제공황과 1930년 대풍작으로 인한 농산물의 가격폭락은 전체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들의 생활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안동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 당시 안동군의 인구는 약 154,000명이었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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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30 ·40년대 민족운동의 특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1930년대 국내에서는 신간회 해체 이후 독립운동의 중심이 학생운동과 농민·노동운동으로 계승되어 갔다. 일제의 정책으로 자작농이 몰락하고 순소작층이 50%를 넘게되자, 농촌은 황폐해졌다. 1930년대 초기에는 자연발생적인 소작쟁의와 함께 조직적인 농민운동이 활발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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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운동노선의 변화와 '안동콤그룹'의 결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1930년을 전후한 시기 국내·외 상황과 국제혁명운동을 이끄는 지도기관의 노선이 변화함에 따라 국내 사회주의운동세력의 노선도 바뀌게 되었다. 즉 이 시기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계급운동을 지향하는 혁명적 농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이란 192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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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콤그룹'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농민운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안동콤그룹’을 결성한 후 세 사람은 적극적인 활동에 나섰다. 먼저 안동읍의 세포조직을 결성하기로 책임을 맡은 권중택은 동지들을 규합하여 1931년 4월에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였다. 적색노동조합의 책임자는 권중택이었고, 그 산하에 양화직공조합과 인쇄직공조합을 두어 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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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일제 강점기에 전국의 각 도시와 마을마다 일제 식민지배의 상징물로 ‘신사’(神社)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일본인이 일정한 양식의 건물에 특정의 신령(神靈)을 모셔 놓고 그곳을 성스러운 터전으로 신앙하고 제사지내는 곳이다. 신사의 기원은 일본의 농경생활과 밀착한 원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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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사참배 · 창씨개명 거부운동과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한인에 대한 황민화정책을 본격화하여 매월 6일을 애국일로 정하였다. 이날은 신사참배뿐만 아니라 국방헌금·국기게양·황거요배(皇居遙拜 :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하여 큰절을 하는 의식) 등을 실시하도록 강요하였다. 이것은 기독교인에 대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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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의 학교 군사병영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곧이어 1941년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였다. 우리 나라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군수기지로 전락하였고, 민족의 현실은 암담하기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제의 패망이 예견되어 독립에 대한 희망이 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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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동농림학교의 조선회복연구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1933년 4월 개교된 안동농림학교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군사교육기관으로 변하였다. 만주군 출신의 일제 군인이 학교에 배치되어 군사교육과 근로봉사를 강행시켜 나갔다. 학생들에게 소년비행대, 전차대 지원을 강요하고, 군사훈련과 낙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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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중국지역 안동인의 항일투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1930·40년대에 중국지역에서 활약한 인물로 아나키스트 유림(柳林)과 저항시인 이육사가 대표적이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으로 활약한 몇몇 인사가 있었다. 아나키스트로 성장한 유림은 광주학생운동에 관련된 학생들이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만주로 탈출해 오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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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동지방 독립운동의 성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안동지방의 독립운동사는 다른 지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나름대로의 특수성도 가지고 있다. 첫째, 안동은 독립운동사의 발상지이다. 한국독립운동사의 첫 막이 의병항쟁으로 시작되었고, 갑오년(1894)에 일어난 갑오의병이 그 출발점이다. 이 갑오의병 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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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이제 우리 안동은 새로운 문화의 장을 열어가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안동은 전통문화의 고장으로 선현의 얼과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선비의 고장이라는 찬사에 만족하면서 살아온 것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이 같은 안동문화의 전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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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1운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1) 3•1운동의 전개 양상 전국적으로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부터 5월 7일까지 전개되었다. 경북지방은 3월 8일부터 4월 28일까지 시위가 전개되었고, 3월 16일에서 25일 사이가 절정기였다. 그런데 안동의 3•1운동은 바로 경북지역의 절정기에 해당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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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표(權鍾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종표(權鍾杓) (우리청년회) 권종표는 1920년에 창립된 우리청년회에 참여하여, 1921년 7월 22일 우리청년회의 주관으로 개최된 강연회에서 ‘신문명의 발휘’란 주제로 연설하였다. ▣《동아일보》1921.7.3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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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표(權準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준표(權準杓 1896~1950) (풍산소작인회) 본관은 안동(安東). 출신지는 풍서면(豊西面) 가곡리(佳谷里:가일, 현 풍천면 가곡리). 권준표는 가곡에 설립된 원흥의숙(元興義塾)에서 교사로 활동하였고, 1923년 11월 11일에 열린 풍산소작인회(豊山小作人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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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흥(權準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준흥(權準興 1881~1939.4.6) (풍기광복단•대한광복회•원흥의숙)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맹인(孟仁). 출신지는 풍서면(豊西面) 가곡리(佳谷里:가일, 현 풍천면 가곡리) 407번지. 권준흥은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에 참가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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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權準羲)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준희(權準羲 1849.9.14~1936.9.19) <HXMLPIC ID="001"></HXMLPIC>(풍기광복단•대한광복회)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상(啓象). 호는 우암(友巖). 출신지는 풍서면(豊西面) 가곡리(佳谷里:가일, 현 풍천면 가곡리). 권준희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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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동(權重洞)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동(權重洞) (진명학술강습회•교육구국운동) 1921년 길안면(吉安面)에 창립된 진명학술강습회(進明學術講習會)에 참여하여, 1925년 5월 8일 제4회 정기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동아일보》1925.5.15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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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봉(權重鳳)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봉(權重鳳 1891.10.19~1967.10.15) <HXMLPIC ID="001"></HXMLPIC>(신흥중학교•부민단) 본관은 안동(安東). 이명은 권중철(權重哲). 자는 덕원(德元). 호는 학안(學安). 출신지는 서후면(西後面) 명동(鳴洞:현 서후면 명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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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석(權重錫)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석(權重錫 1922.5.14~ ) <HXMLPIC ID="001"></HXMLPIC>(조선회복연구단) 본관은 안동(安東).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尙洞:현 안동시 법상동). 권중석은 안동농림학교에서 결성된 조선회복연구단(朝鮮回復硏究團)에 가입하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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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식(權重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식(權重植 1893~ ? ) (대한광복회) 본관은 안동(安東). 권중식은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가입한 대한광복회는 1915년 7월에 결성된 단체로서, 1913년 채기중(蔡基中)을 중심으로 한 의병계열 인사들이 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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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열(權重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열(權重烈 1895~1963.10.5) (신간회 안동지회)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무일(武一).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율세동(栗世洞:현 안동시 율세동). 권중열은 1927년 7월 9일 신간회 안동지회 창립 준비위원 2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출되어 지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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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용(權重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용(權重龍) (태오서당 교사•교육구국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권중용은 1919년에 월곡면 사곡동에 설립된 태오서당(台塢書堂)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 『안동의 독립운동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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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1차 유림단의거와 경북유림단의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1) 제1차 유림단의거(파리장서운동)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자, 이를 뒷수습하는 파리강화회의가 열렸다. 1919년 3ㆍ1운동 직후 일부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면서 길게 쓴 독립청원서를 보냈는데, 이를 ‘파리장서(巴里長書)’ 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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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윤(權重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윤(權重潤 1900.2.3~1928.1.31) (대구 삼일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尙洞:현 안동시 법상동) 427번지. 1919년 3월 8일 대구 서문시장부근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당시 계성학교(啓聖學校) 재학 중이던 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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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인(權重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인(權重仁) (신간회 안동지회) 권중인은 1927년 8월 창립된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9년 1월 간사로 1929년 8월 10일에는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조선일보》1929.1.29, 8.1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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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준(權重准)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준(權重准) (신간회 안동지회) 권중준은 1927년 8월 창립된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9년 1월 간사로 1929년 8월 10일에는 조사부장으로 선출되었다. ▣《조선일보》1929.1.29, 8.1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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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택(權重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택(權重澤 1909~ ? ) (안동청년연맹•신간회 안동지회•안동콤그룹) 권중택은 안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5월 안동청년연맹(安東靑年聯盟)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1927년 8월 신간회 안동지회가 설립되자 여기에 참여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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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호(權中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호(權中鎬) (안동면 삼일운동) 권중호는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시위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 「안동의 3•1운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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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희(權重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중희(權重熙 1890.7.25~1946.7.11) (임동면 삼일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순여(舜汝). 출신지는 임북면(臨北面) 사월리(沙月里:현 임동면 사월리). 권중희는 1919년 3월 21일 임동면 중평동 편항시장(鞭巷市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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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동(權泰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동(權泰動) (신간회 안동지회) 권태동은 1927년 8월에 창립된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8년 1월 18일 총회에서 간사로 선출되고, 대표위원과 서무부를 역임하였다. 또한 같은 해 3월 6일에는 강좌개설 실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조선일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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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동(權泰東)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동(權泰東) (신간회 안동지회) 권태동은 1927년 8월에 창립된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8년 1월 18일 총회에서 간사로 선출되었다. ▣《조선일보》1928.1.26, 2.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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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봉(權泰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봉(權泰奉) (중방사숙 교사•교육구국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권태봉은 1912년에 남후면(南後面) 중방동(中坊洞)에 설립된 중방사숙(中坊私塾)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 『안동의 독립운동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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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석(權泰錫)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석(權泰錫 1887~1939.8.20) (교육구국운동•화성회•정광단•안동기자단•신간회 안동지회) 본관은 안동(安東). 이명은 권석한(權錫漢). 호는 회계(會堦). 출신지는 풍산면(豊山面) 막곡동(幕谷洞:현 풍산읍 막곡리). 권태석은 안동면 화성동에 설립된 지방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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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물산장려운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조선물산장려운동은 1920년대 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전개된 경제자립운동으로, 1923년 1월 조선물산장려회가 결성되면서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조선물산장려회의 주요 활동은 민족자본의 육성을 강연회나 유인물 및 회지 발간을 통해 홍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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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섭(權泰燮)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섭(權泰燮 1911~1949) (사회과학연구회•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권태섭은 경성제국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6년 도쿄[東京]에서 공산주의그룹에 가담하여 사회과학연구회 결성에 참여했다. 이 활동으로 1939년 1월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1941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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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성(權泰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성(權泰晟 1908~ ? ) (육십만세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출신지는 풍산면(豊山面) 안교동(安郊洞:현 풍산읍 안교리) 80번지. 1926년 당시 중앙고보(中央高普) 3년에 재학 중이던 권태성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6년 6월 10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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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염(權泰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염(權泰琰 1927.7.10~ ) <HXMLPIC ID="001"></HXMLPIC>(명성회) 본관은 안동(安東).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서부동(西部洞:현 안동시 서부동) 177-2번지. 안동농림학교(安東農林學校) 농과(農科) 9회생으로서, 재학시 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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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환(權泰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환(權泰煥 1872.8.7~1946.6.18) <HXMLPIC ID="001"></HXMLPIC>(임동면•임북면 삼일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관(聖觀). 출신지는 임북면(臨北面) 사월리(沙月里:현 임동면 사월리). 권태환은 1919년 3월 21일 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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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훈(權泰勳)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훈(權泰勳 1890~1976.2.11) (안동불교청년회)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이건(而建). 호는 석아(石啞).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尙洞:현 안동시 법상동). 권태훈은 1920년 8월 22일 창립된 안동불교청년회에 참여하여, 창립총회 때 평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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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희(權泰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태희(權泰熙) (동흥강습소 교사•교육구국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권태희는 안동면(安東面) 법흥동(法興洞:현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臨淸閣) 내에 설립된 동흥강습소(東興講習所)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 『안동의 독립운동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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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헌이(權憲伊)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권헌이(權憲伊 1897.9.15~1980.6.1) <HXMLPIC ID="001"></HXMLPIC>(예안면 삼일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출신지는 도산면(陶山面) 토계동(土溪洞:현 도산면 토계리). 권헌이는 1919년 3월 17일 예안면 1차 시위에 참여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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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명석(琴明石)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금명석(琴明石 1894.8.19~1961.5.5) <HXMLPIC ID="001"></HXMLPIC>(임동면•임북면 삼일운동)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병원(秉元). 출신지는 임북면(臨北面) 사월리(沙月里:현 임동면 사월리). 금명석은 1919년 3월 21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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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술(琴鳳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금봉술(琴鳳述) (의병활동) 출신지는 예안면(禮安面). 1896년 1월초에 단발령이 전해지자, 1월 13일(음 1895. 11.29)에 안동지방의 의병봉기를 도모하는 첫 통문이 예안에서 나왔다. 이때 금봉술은 이만응(李晩鷹)•목사(牧使) 이만윤(李晩允) 등 220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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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용문(琴鏞文)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금용문(琴鏞文 1882.8.27~1961.11.18) <HXMLPIC ID="001"></HXMLPIC>(예안면 삼일운동) 본관은 봉성(鳳城). 자는 우명(禹命). 호는 청원(淸園). 출신지는 예안면(禮安面) 귀단리(歸團里). 금용문은 1919년 3월 17일 예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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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와 안동 노우회(노동운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1920년대 안동에서 노동운동이라는 말 자체가 낯선 것이었다. 공업이 발달되지 않은 곳이었으므로 노동자 계층이 제대로 형성될 리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에 노동단체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급진적인 변화였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지 못했으니, 자연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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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金建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김건수(金建洙 1905~1958.4.10) (와룡청년회)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공서(公瑞). 출신지는 동선면(東先面) 가구리(佳邱里:현 와룡면 가구리). 김건수는 1925년 2월에 열린 와룡청년회(臥龍靑年會)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동아일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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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식(金建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김건식(金建植) (신간회 안동지회) 김건식은 1927년 8월 창립된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8년 1월 간사로 선출되었다. ▣《조선일보》1928.1.21, 2.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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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우(金健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김건우(金健佑 1926.7.21~1999.8.26) <HXMLPIC ID="001"></HXMLPIC>(명성회) 본관은 안동(安東). 이명은 김원현(金元顯). 호는 응천(應天).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尙洞:현 안동시 법상동) 153-1번지. 김건우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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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金慶漢)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김경한(金慶漢 1904.1.14~ ? ) <HXMLPIC ID="001"></HXMLPIC>(안동청년연맹•정광단•고려공산청년회•신간회 안동지회•조선공산당•안동기근구제회) 본관은 안동(安東).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옥정동(玉井洞:현 안동시 옥정동). 김경한은 1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