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4551

    권재수(權在壽)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재수(權在壽 1882~ ? ) (무관학교생도모집) 본관은 안동(安東). 출신지는 풍서면(豊西面) 가곡리(佳谷里:가일, 현 풍천면 가곡리) 446번지. 1920년 9월 24일 김두칠(金斗七)•배승환(裵昇煥) 등과 함께 무관학교생도(武官學校生徒)를 모집하다가 일본경찰
    출처 : 유교넷
  • 74552

    권재점(權宰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재점(權宰点) (대한광복회) 본관은 안동(安東). 권재점은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가담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가 가입한 대한광복회는 1915년 7월에 결성된 단체로서, 1913년 채기중(蔡基中)을 중심으로 한 의병계열 인사들이 경상북도 풍기(豊基
    출처 : 유교넷
  • 74553

    권재중(權在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재중(權在重 1853~1919.2.12) (전기의병•교육구국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이명은 권재중(權載重). 자는 군집(君執). 호는 석하(石霞).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권재중은 문경•제천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출처 : 유교넷
  • 74554

    권점필(權點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점필(權點弼 1896.1.6~1944.1.18) (안동면 삼일운동) 본관은 안동(安東). 이명은 권점필(權點必).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법상동(法尙洞:현 안동시 법상동). 권점필은 1919년 3월 18일에 일어난 안동면 2차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
    출처 : 유교넷
  • 74555

    권정갑(權鼎甲)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정갑(權鼎甲) (신간회 안동지회) 권정갑은 1927년 8월에 창립된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9년 8월 10일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조선일보》1929.8.14
    출처 : 유교넷
  • 74556

    권정삼(權正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정삼(權正三) (신간회 안동지회) 권정삼은 1927년 8월 창립된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하여, 1929년 1월 대표회원과 간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1929년 8월 10일에는 재정부원을 맡았고, 집행의원에 선출되었다. ▣《조선일보》1929.1.29, 8.14
    출처 : 유교넷
  • 74557

    권정식(權貞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정식(權貞植) (충의사) 권정식은 주로 을미의병에 참여했던 재야 유생층이 1904년 8월 서울에서 조직한 충의사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 『남은선생유집(서명록)』
    출처 : 유교넷
  • 74558

    권정필(權正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정필(權正弼 1886.2.10~1935.12.10) <HXMLPIC ID="001"></HXMLPIC>(의열단) 본관은 안동(安東). 이명은 권재만(權在萬). 자는 종백(宗伯). 호는 동산(東山). 출신지는 안동면(安東面) 율세동(栗世洞:현 안동시 율세동). 권
    출처 : 유교넷
  • 74559

    권정필(權正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정필(權正弼 1890~ ? ) (서울청년회•고려공산당•풍산소작인회•조선공산당 만주총국) 권정필은 1914년 강원도 일대에서 반일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1920년 2월 서울청년회 평의원이 되었고, 1921년 10월 고려공산당에 입당했다.
    출처 : 유교넷
  • 74560

    권제녕(權濟寧)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김희곤
    권제녕(權濟寧 1850~1903.8.17) (전기의병)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문(士文). 호는 구산(龜山). 출신지는 서후면(西後面) 보현동(甫峴洞). 권제녕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1896년 1월 초에 일어난 안동의병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출처 : 유교넷
  • 74561

    발간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다른 지역에서 우리 안동을 이야기 할 때 양반의 고장, 선비의 고장 또는 전통과 문화의 도시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평가는 지난 수 천년 동안 선조들이 남긴 다양하고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역사의 고장이기 때문입니다. 각 마을마다 수 백년의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출처 : 유교넷
  • 74562

    6) 계강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繫舡巖(계강암)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에서 하회마을 쪽으로 돌출된 강 중앙의 바위면에 있다. 글자의 내용은 배를 매는 바위라는 뜻이며 큰 바위가 강가에 누워 있어 배를 매어두기 좋기 때문
    출처 : 유교넷
  • 74563

    7) 옥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玉淵(옥연) 풍천면 광덕리 芙蓉臺 동편 아래의 玉淵精舍에서 남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강가의 바위면에 있다. 자연 바위면을 76cm×46cm 규모로 다듬고, 그곳에 ‘玉淵’이란 글자를 가로로 새겼다. 한 글자의 크
    출처 : 유교넷
  • 74564

    8) 신암폭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新巖瀑布(신암폭포) 녹전면 매정리 담말(또는 담마)에 있다. 務安 朴氏 富豪가 긴 담을 쌓고 지냈으므로 담마라 했다고 한다. 「담밖千石·담안千石」이란 말이 전해 온다. 신암폭포는 담마 동쪽에 있는 폭포로서 퇴계 이황
    출처 : 유교넷
  • 74565

    9) 단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丹巖(단암) 녹전면 죽송리 유빈골(또는 柳墳洞·柳殯洞)에 있다. 도로에서 500m 쯤 마을 안쪽으로 가면 산기슭 논 가운데 각자된 바위가 있다. 이 바위를 일명 ‘虎巖’이라고 한다. 옛날에 柳氏라는 사람이 묘지를 찾
    출처 : 유교넷
  • 74566

    10) 이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伊溪(이계) 와룡면 이상리에 있는 폐교된 문천초등학교 앞 노거목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폭 150cm, 높이 140cm, 두께 140cm인 자연석의 측면에 폭 42cm, 높이 20cm로 다듬은 다음 ‘伊溪’라는 지명
    출처 : 유교넷
  • 74567

    11) 중용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中庸巖(중용암) 와룡면 지내리 속칭 청골(淸谷)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5m, 둘레 15m의 크고 거친 바위로 모삿골(또는 茅山)에서 서쪽으로 1㎞ 지점에 있다. 가로 50cm, 세로 57cm로 다듬은 면에 가로 1
    출처 : 유교넷
  • 74568

    12) 지주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지주석(砥柱石) 북후면 도진리 석류동에 있다. ‘石溜洞門’을 지나 계곡 중간쯤 오르면 맑은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는데, 그 물 가운데 큰 바위가 있고 바위 가운데 쯤에 ‘砥柱石’이라고 각자되
    출처 : 유교넷
  • 74569

    13) 보백당 만휴정 천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寶白堂晩休亭泉石(보백당만휴정천석) 길안면 묵계1리 晩休亭 정자 아래의 수직 암반에 있다. 보백당 김계행 선생이 만휴정에서 산수를 즐기던 곳이란 의미의 ‘寶白堂晩休亭泉石’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묵계서원에서 묵계
    출처 : 유교넷
  • 74570

    14) 추월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秋月潭(추월담) 풍천면 광덕리 부용대에 있다. 凌波臺에서 서남쪽으로 3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부용대 절벽의 작은 길 아래쪽 절벽에 새겨져 있다. 이 곳은 높이가 높고 험해서 어떻게 글자를 새겼을까 하는 의문이
    출처 : 유교넷
  • 74571

    15) 낙연현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洛淵縣流(낙연현류) 낙(落)과 현(懸)은 모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는 의미로, 낙연과 현류는 바로 폭포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도연폭포를 말하는 것이다. 도연(陶淵)을 낙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永嘉誌』 산
    출처 : 유교넷
  • 74572

    서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일년이 넘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겨울 서리 추위와 한 여름 뙤약볕에 산과 골짜기를 일일이 다니며 이루어낸 작업입니다. 새로운 것들이 가득 차고 넘치는 지금 그 자리 대신 허물어지듯이 사라져 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과 앞으로 또 우리의 향수를 자아낼 것들을 늦으나마
    출처 : 유교넷
  • 74573

    16) 표은고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瓢隱高風(표은고풍) 표은(瓢隱) 김시온(金是온, 1598∼1669)의 高節한 풍모를 기리기 위해 각자된 것이다. 임하댐 건설로 인해 지금은 물밑에 잠겨 있어 볼 수가 없다. 김시온은 본관이 義城으로 병자호란을 겪고
    출처 : 유교넷
  • 74574

    1) 마고동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麻姑洞天(마고동천) 안동시 운안동 대성맨션 옆 대성수퍼 골목 가정집 대문옆에 있다. 뒷부분은 시멘트로 고정하여 세웠으며 호패형으로 크기는 폭 40.5cm, 높이 132cm, 두께 15.5cm
    출처 : 유교넷
  • 74575

    2) 용암동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龍巖洞天(용암동천) 안동시 태화동 어개골에 있는 一源亭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폭 30cm, 높이 90cm, 두께 40cm의 비석형태로 잘라진 돌에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돌의 모양으로
    출처 : 유교넷
  • 74576

    3) 운안동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雲安洞天(운안동천) 안동시 운안동 동산주택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지나서 있는 자연 암반에 있다. 90도 이상으로 기울어진 부분의 오목한 부분에 각자하였다. 폭 45cm, 높이 145cm
    출처 : 유교넷
  • 74577

    4) 대현동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大峴洞門(대현동문) 도산면 운곡리에서 녹전면 갈현리로 넘어가는 한티고개(또는 龍壽재·龍壽峴·大峴)에 위치한다. 길가의 비스듬한 바위에 글자를 새기기 위해 가로 100cm, 세로 30cm로 다듬은 후에 각자를 하였다.
    출처 : 유교넷
  • 74578

    5) 영지동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靈芝洞天(영지동천) 도산면 분천리에 있다. ‘聾巖先生亭臺舊庄’이라는 각자 바로 조금 못미쳐 왼편으로 난 오솔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도산서원 야외 주차장에 도달하게 된다. 오솔
    출처 : 유교넷
  • 74579

    6) 국망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國望峯(국망봉) 도산면 운곡리 국망봉 정상 세 개의 바위에 한 자씩 새겨져 있다. 글자의 크기는 30cm 이다. 국망봉 아래 온혜리는 眞城李氏 溫惠 입향조인 老松亭 李繼陽(1488∼1524)이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후
    출처 : 유교넷
  • 74580

    7) 전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前坪(전평) 도산면 분천리에 있다. 글자가 새겨진 바위의 앞 들이 넓고 편평하다고 해서 전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杏巖臺에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삐죽하게 튀어나온 바위 산이 있다. 바위면에 남쪽을 보고 새
    출처 : 유교넷
  • 74581

    8) 광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廣峴(광현) 도산면 분천리 넙티에 있다. 글자의 크기는 가로 30cm, 세로 40cm 가량된다. 분천에는 영천이씨들이 집단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입향 시조인 軍器寺少尹을 지낸 李軒公(고려말엽)이 동네를 둘러보
    출처 : 유교넷
  • 74582

    1. 해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div align=right>임 세 권 안동대학교 사학과</div> 우리나라의 산과 들의 큰 바위가 있는 곳에는 웬만하면 글자 몇자씩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거나 자연 풍광에 선비의 기개를 읊은 싯 구절들, 그리고 지방관이
    출처 : 유교넷
  • 74583

    9) 석류동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石溜洞天(석류동천) 북후면 도진리 석류동에 있다. ‘砥柱石’을 지나 물길을 따라 물을 따라 올라가면 물 가운데 있는 큰 바위를 만나게 되는데, 그 허리쯤에 손바닥만한 글씨로 ‘石溜洞天’이라 각자되어 있다. 慄齋 李秀
    출처 : 유교넷
  • 74584

    10) 석류동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石溜洞門(석류동문) 북후면 도진리 석류동에 있다. 보리고개와 저전동 중간쯤에 있는 제2서후교를 건너기 전 오른쪽 개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앞쪽 산자락에 치마를 펼쳐놓은 듯한 바위가 보인다. 그 앞으
    출처 : 유교넷
  • 74585

    11) 작산동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鵲山洞門(작산동문) 북후면 물한리에 있다. 전체 가로 43cm, 세로 160cm로 다듬은 면에 35cm 크기로 새겼다. 鵲山精舍 및 可倉齋舍(경상북도 민속자료 제21호)는 眞城李氏 안동
    출처 : 유교넷
  • 74586

    12) 봉강동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鳳岡洞天(봉강동천) 풍산읍 막곡리 속칭 ‘아랫막실’ 마을에서 ‘붓닥골’ 쪽으로 500m 정도 되는 곳의 도로 오른편에 있다. 이것은 현재 도로의 가운데에 있었으나 1970년대 도
    출처 : 유교넷
  • 74587

    13) 해동수양산남율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海東首陽 山南栗里 (해동수양 산남율리) 풍산읍에서 청음 김상헌 유허비가 있는 서미리를 가기 전 약 1km 지점 오른쪽에 있는 속칭 ‘은자바위’ 왼쪽 허리쯤에 새겨져 있다. 내용은 ‘海東首陽 山
    출처 : 유교넷
  • 74588

    14) 도화동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桃花洞天(도화동천) 안동시 성곡동에 있다. 안동가톨릭상지대학 내에 있던 것을 학교를 지으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큰 글자는 30cm 가량 되고 작은 글자 중 왼편의 것은 가로 9cm, 세로 12cm,
    출처 : 유교넷
  • 74589

    15) 하남삼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河南三絶(하남삼절) 도연삼절(陶淵三絶)을 일컫는 듯 하다. 도연삼절이란 도연폭포(陶淵瀑布)·격진령(隔塵嶺)·선유창벽(仙遊蒼壁) 세 곳의 뛰어난 경치를 일컫는 말이다. 도연폭포는 망천에서 반변천을 따라 10㎞쯤 올라가
    출처 : 유교넷
  • 74590

    16) 도연선창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陶淵仙倉(도연선창) 사의마을 동남쪽 반변천가 岳沙마을 건너편에 한말의 대유학자 정재 유치명 선생의 강학의 자리인 만우정이 있었는데 댐이 되면서 임동면 중평리로 옮기
    출처 : 유교넷
  • 74591

    1) 김상철 · 이병모영세불망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金尙喆·李秉模永世不忘碑 (김상철·이병모영세불망비) 안동시 성곡동 안동민속박물관 내에 있다. 원래 안동시 이천동 산 154번지 국도 7호변 암반에 새겨져 있던 것을 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현재 위
    출처 : 유교넷
  • 74592

    2) 퇴계선생유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退溪先生遺囑(퇴계선생유촉) 녹전면 매정리 담말(또는 담마)에 있다. ‘新巖瀑布’(28쪽)라고 새겨진 바로 뒤편 바위면을 가로 80cm, 세로 45cm로 다듬어 새겼다. 퇴계선생의 발길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의미의 ‘退
    출처 : 유교넷
  • 74593

    3) 만석유허백세청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萬石遺墟 百世淸風 (만석유허 백세청풍) 풍산읍 서미리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의 유허비가 세워져 있는 속칭 ‘빗집바우’ 옆면에 새겨져 있다. 아마도 청음 김상헌의 유허가
    출처 : 유교넷
  • 74594

    4) 고풍남신성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古豊南申城浦(고풍남신성포) 풍천면 신성리 창암정 아래의 오른쪽 절벽에 있다. 글자의 크기는 가로 10cm, 세로 12cm정도이다. 내용은 ‘古豊南申城浦我洪氏三世墓 源遠流長不崩益固 後孫嶺左御史行世孫講書院左贊讀樂純銘石
    출처 : 유교넷
  • 74595

    5) 금학당구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琴鶴堂舊庄(금학당구장) 도산면 운곡리 琴鶴堂 동쪽 30여m 되는 지점의 자연 암반 위에 80여년(?) 전에 새긴 것으로 전해진다. 도산온천을 지나 운곡리에서 황정마을로 올라와 골짜기의 마지막 부근에 위치해 있다. 가
    출처 : 유교넷
  • 74596

    6) 농암선생정대구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聾巖先生亭臺舊庄(농암선생정대구장) 도산면 분천리 愛日堂 아랫쪽에 있다. 산림박물관이 있는 고개 정상부근에서 우측으로 난 도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애일당이 나오며 애일당의 바로 앞에 있다. 聾巖 李賢輔의 유적으로
    출처 : 유교넷
  • 74597

    7) 행암유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杏巖遺園(행암유원) 도산면 분천리에 있다. 각 글자의 크기는 27cm정도이다.‘杏巖’은 『宣城誌』 <汾川 史蹟>條에 ‘마을 서쪽 2리에 酒塘洞이 있는데, 동네 오른편에 산이 갑자기 끊어진 곳에 있다. 孝節公(聾巖 李
    출처 : 유교넷
  • 74598

    1) 선성이씨묘하동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宣城李氏墓下洞天 (선성이씨묘하동천) 풍산읍에서 만운리 모선루 가기 전 약 400m 지점의 왼쪽에 있다. 호암과 마주보고 있다. 각자의 내용은 ‘宣城李氏墓下洞天’이고, 형태는 8자
    출처 : 유교넷
  • 74599

    2) 광산김씨세장지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光山金氏世葬之地 (광산김씨세장지지) 풍천면 신성리 재터마을의 동쪽 야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네모난 바위의 2면에 각각 4자씩 각자되어 있다. 한 글자의 크기는 가로 41cm, 세로 35cm 정도이다. 풍천면
    출처 : 유교넷
  • 74600

    3) 풍산홍씨세장지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시
    <HXMLPIC ID="001"></HXMLPIC> 豊山洪氏世葬之地 (풍산홍씨세장지지) 풍천면 구담리 신성포(申城浦) 탑평촌(塔坪村) 서쪽 두암(斗巖) 암벽에 있다. 내용은 ‘豊山洪氏世葬之地’라고 두줄의 큰 글씨가 엄정한 해서로 새겨져 있고, 그 오른쪽엔 ‘洪重默丙
    출처 : 유교넷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