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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학암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정자는 1800년 경 학암(鶴巖) 김중휴(金重休)가 분가 당시 세운 참봉댁(參奉宅)에 딸린 건물로 큰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다. 풍산읍의 서쪽 오미동의 마을 안에 풍산김씨종택과 영감댁 옆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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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학천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정자는 의성김씨(義城金氏)들이 조상을 추모(追慕)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서후면 태장리에 있다. 정자의 명칭은 학가산(鶴駕山)과 천등산(天燈山)에서 머리글자를 취해 학천정(鶴天亭)이라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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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사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한사(寒沙) 조석붕(趙錫朋)의 후손들이 공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 한사정기(寒沙亭記)는 1978년에 퇴계의 16대손인 이동은(李東恩)과 전주(全州) 이진재(李震宰), 한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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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국탄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국탄(菊灘) 김시정(金始精)이 분가시(分家時)인 1757년(영조 33)에 건립한 고택이다. 임하리에서 신덕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는 임동면 지례에 있었으나 임하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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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서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이 서책을 갈무리하고 일상의 수업지소로 삼기 위하여 초당으로 지은 정자이다. 내부에는 송암한서재기(松巖寒棲齋記)의 기문과 한서재창주(寒棲齋唱奏)의 기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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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천정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조성당(操省堂) 김택룡(金澤龍)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사림들이 묘우를 세워 강학하고 춘추로 제향을 받들어 오던 장소이다. 내부에는 조성당(操省堂) 현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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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함벽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함벽당(涵碧堂) 류경시(柳敬時)가 소요하던 정자이다. 서후면 저전리에서 개목사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천등산 동쪽 자락에 가야마을이 있고 마을이 끝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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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향산구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순국의사(殉國義士)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의 고택이다. 안동에서 와룡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작은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는 이 종택은 당초에는 도산면 토계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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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허영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허영정(許영亭) 남응원(南應元)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이다. 일직에서 의성 방면으로 가다가 망호 3리 부근에 미천을 가로지르는 잠수교가 있고 이 잠수교를 건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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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호계서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이곳에는 진학문(進學門)과 숭교당(崇敎堂) 등의 현판이 남아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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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호고와종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조선 정조, 순조 연간의 실학자인 호고와(好古窩) 류휘문(柳徽文)이 지은 가옥으로 원래 안동시 임동면 마령 1동의 가르편(갈편, 渴鞭)에 있었으나, 1987년 임하댐 건설로 구미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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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호암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 이 건물은 안동권씨의 정자이다. 전면 내부 좌우측에 승문원부정자 애성(艾城)의 호암정기(湖巖亭記)와 호암정상량문이 걸려 있다. 풍천면 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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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화악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예천임씨 금소입향조인 임억숙(林億淑)의 증손인 야화(埜窩) 세명(世明)과 농와(農窩) 근명(謹明), 석와(石窩) 순명(順明) 등 삼형제가 서식 강도하던 자리에 그들의 우애를 추모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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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화천서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문경공(文敬公)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림에서 세운 서원이다. 서원에는 경덕사(景德祠), 숭교당(崇敎堂), 주경재(主敬齋), 사성재(思誠齋), 존현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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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귀래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 귀래정 91.0 × 33.5 당호를 귀래정이라 한 것은 이 곳이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뜻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 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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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후산정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 후산정사 89.0×23.5 예쁘장하고 안온하게 그러면서 편안하고 날렵한 기쁨을 주는 예서체이다. 대산의 학문을 계승한다는 뜻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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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후산초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학자였던 밀암(密菴) 이재(李栽)의 강학지소이다. 안동에서 길안방면으로 가다 천지리 조금 못 미쳐서 홍은사를 알리는 푯돌을 따라 좌회전하면 강 건너편에 오대마을이 있고 마을 안쪽에 있는 홍은사 일주문 부근의 산록에 위치하고 있다. 말암은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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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후조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광산김씨(光山金氏) 예안파(禮安派) 종택(宗宅)에 딸린 별당(別堂)이다. 이 별당은 광산김씨의 유적들이 모여 있는 안동시 와룡면의 오천유적지 내에 있다. 원래는 낙동강에 인접한 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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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창재사중수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가창재사중수기 우리 재사는 처음 성화15년 경자년(1479)에 창건되었고, 가정40년 신유년(1561)에 중수하였으며, 순치13년 병신년(1656)에 또 중수하였고, 강희54년 을미년(1715)에 다시 중수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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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갈운정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갈운정기 정자는 누구를 위하여 지었는가? 증 사복시정 이세충 공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갈운이라 명명한 것은 지명을 따른 것이다. 단사 마을은 도산의 제7곡에 위치하는데 도원별계(桃源別界)라 칭한다. 앞에는 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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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겸암정사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겸암정사기 정사가 하회마을의 입암 위에 있으니 겸암 류선생이 거처하면서 자호로 삼던 곳이다. 영가는 옛부터 이름난 산수가 많은데, 동남쪽이 더 수려하고 기절하며, 그 중에도 하회 일대가 가장 드러났다. 강물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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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겸재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겸재기 겸재란 월천 조선생의 아우 의사 정(禎)의 자호이다. 공은 타고난 바탕이 순수하고 실하며 그릇이 컸다. 어려서부터 월천옹에게 수학했는데, 근실하게 힘써 노력하니, 고을에서 칭송하여 기렸다. 나이 23세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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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경당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경당기 내 친구 장행원(장흥효)군은 영가의 학가산 남쪽에 살고 있는데, 소시적부터 군자의 뜰에 거닐면서 고인의 도를 배우더니 난을 겪은 뒤에도 그 뜻이 변하지 않았고 집은 가난하였으되 뜻은 더욱 굳었다. 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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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귀암정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 귀암정사 115.0 × 47.0 탄탄하고 박력이 있으며 강한 힘이 엿보이는 해서체이다. 이 건물은 의성김씨 귀미 입향조인 오우당(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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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경류정노송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경류정노송기 우리 종가 경류정 옆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가지와 줄기가 뱀이 서리듯이 얽혀서 엄연히 화개(華蓋)처럼 되었다. 높이는 두어 길 정도이고 그 아래는 백여 명이 둘러앉을 만하여 참으로 기품(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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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모루중건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경모루중건기 영남 70주에서 안동이 가장 웅건한 진으로 예전 것이 많고 이름난 누각과 큰 집이 많은데, 각각 건립한 사연에 따라서 이름도 다르거니와 경모루는 그 중의 하나이다. 생각해보니 옛날 삼태사가 이 곳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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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경함정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경함정기 영가부의 동쪽 삼십리쯤 되는 곳에 금수리가 있으니 진산인 약산이 북쪽에 우뚝하게 솟아 있고, 청부 경내에서부터 흘러 오는 강물이 구불구불 드넓게 흘러 들을 적시며, 비봉산 자락과 삼백호 큰 마을을 감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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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계암정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계암정기 문정공 계암 김선생은 퇴계 선생을 사숙하였다. 선부군인 설월당은 일찌기 퇴계 선생의 문하에 노닐면서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이 가장 오래되어 나아간 경지가 매우 정밀하고 깊었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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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성이씨삼세유허비음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고성이씨삼세유허비음기 지난번 내가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각 고을을 순찰할 때 안동에 이르러 이씨의 임청각에 올랐던 적이 있다. 그것은 이씨의 조상 명이 창건한 바로, 낙동강을 바라보고 각을 지었는데, 그 청쇄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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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곡강정중건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곡강정중건기 삼가 생각건대, 우리 선조이신 종사랑 부군께서는 선대부 근재공의 은거하라는 유지를 받들어 벼슬살이에 마음 두지 않고 사시던 곳인 낙동강 상류, 남산 아래에 정자를 지어 한가롭게 노니는 장소로 삼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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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관물당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관물당기 내가 소시에 계상의 작은 뫼를 사랑하여 띠풀을 엮어서 집을 짓고 왼편에 거문고, 오른편에 책을 쌓아 백 년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그 속에서 살리라 기약했다. 임술년에 또 뫼 아래 터를 잡아 푸른 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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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광풍당중건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광풍당중건기 안동부 서쪽 10리 쯤에 송파라는 마을이 있다. 천등산의 한 줄기가 비스듬하게 남쪽으로 뻗어가 산수금대의 형세를 이루어 동산과 수풀이 서로 바라다보니 이 곳이 바로 권씨들의 집성촌이다. 그 곳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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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광풍정중건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광풍정중건기 경당 장선생이 도산 심학의 전통을 학봉 김선생에게 배워 금양의 학문을 열어 주자, 영남의 학자들은 약속이나 하듯 그를 종주로 삼아, 무릇 선생께서 평소 지팡이를 짚고 신을 끌며 노닐던 곳을 애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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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구계서당이건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구계서당이건기 구계서원은 고려 문희공 우좨주(禹祭酒)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전에는 안동부 동쪽 30리쯤에 위치한 미질 마을에 있었다. 미질 마을은 선생의 예안 구택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후손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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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귀은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이 정자는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귀은(龜隱) 김령(金鈴)의 정자로 후손들이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1958년에 귀미리의 음지마을에 건립하였으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반의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문소인(聞韶人) 김정모(金正模)와 11대 종손 시년(蓍年)이 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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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귀은정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귀은정기 복주의 동쪽, 갈라산 아래 귀미동이 있으니 아름다운 곳이다. 산은 그윽하고 물은 깨끗하여 은자가 배회하며 거처하기에 적합하다. 가선대부 지중추부사 귀은 김령 공이 스승과 벗을 따라 서울에 갔다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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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금곡재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금곡재기 이제 세상이 쇠퇴하고 도가 상실되어 세속의 학문은 갈래가 많고, 하늘의 이치는 밝지 않아 인심이 자못 편벽됨이 이보다 심한 때는 없다. 옛부터 글방은 백륙의 운세를 만나면 곤궁하여 채마밭이 된다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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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금오정중건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금오정중건기 영가의 고을을 명승지라 하는데, 도계가 그 중의 한 부분을 차지함은 대개 유현이 많이 나와서 남긴 향기와 아름다운 풍습이 존속되기 때문이다. 의정공의 아들 야옹공은 충정공의 백형으로 아름다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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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금하재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금하재기 안동부의 동쪽 60리 지경에 용암산이 있으니, 한 지맥이 북으로 돌아 금당산이 되었다. 산 모양이 심히 높거나 크지 아니하나, 언건하게 홀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뜻이 높은 사람 같다. 그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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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호정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나호정기 매화가 경전에 출전한 것이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되니, 대체로 심상한 화초나 초목에 비할 바 아니다. 『시경』의 「표매」 시는 열매만 언급하고 꽃은 버리어, 시절 사물에서 느낀 애틋함을 다루었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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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낙암정중창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 낙암정중창기 안동부 서남쪽 수십 리에 건지산이 있으니, 우뚝이 강 위에 서 있고, 산허리로 험한 돌길이 있는데, 돌길을 따라 내려가면 작은 언덕이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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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호정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대호정기 낙동강 가에 박리라는 마을이 있으니 지경은 외지면서 깊숙하며, 민가 몇 가구가 사는데 또한 순하고 소박하다. 침랑 이상오 씨가 이 곳에 정자를 짓고 이름을 대호라 하니, 우리말로 호(瓠)를 일컬어 박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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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계서원명륜당상량문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도계서원명륜당상량문 선생이 돌아가시자 서원에 제사를 모심은 옛날의 공의가 이미 이루어졌음이요, 지형이 한적한 곳에 문인들이 모임은 오늘 명륜당을 옮겨 지음이 늦지 않아서이다. 내가 이에 생각건대 옥봉 선생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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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근성서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 건물은 조선 개국공신인 의암(毅庵) 김인찬(金仁贊)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사당에는 원훈사(元勳祠)의 현판이 걸려 있다. 안동에서 남안동 I.C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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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계정사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도계정사기 온계의 상하를 통틀어 ‘도계’라 이르니, 곧 우리 집안의 근원이 되는 곳이다. 도계의 하류에 너럭 바위가 물에 임하여 있는데 매우 맑고 깨끗하여 사랑함 직하다. 옛날 중종 신미에 선조 송재 선생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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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도산서원이주부공사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도산서원이주부공사적 경자년 10월에 『도산문집』 중간의 일로 고을 사림들이 서원에서 회합을 했는데, 이주부의 고사에 감회가 있어 상의하기를, ‘재물을 출연하여 비석을 세워서 그 묘소를 드러내자’고 하였다. 또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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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령초당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만령초당기 나의 벗 류이겸 군은 성품이 담박하여 세상에 구하는 것이 없다. 일찍부터 고요한 것을 좋아하여 드디어 만령촌의 남쪽 절벽에 은거하여 수백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집을 빙둘러 싸게 했다. 소나무 사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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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취재중건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만취재중건기 안동 동쪽 50리에 한 마을이 있어 마령이라 하는데, 박씨가 세거한다. 산은 그다지 높고 험하지 않으나, 가지와 줄기는 쭉 뻗고 엉클어져 얽히어 용이 틀고 범이 웅크린 듯 좌우에서 에워싸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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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회당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 만희당기 안동부의 서쪽 천등산의 남쪽에 산과 시내가 맑고 고우며 수풀샘이 그윽하고 고요하여 우리 영남의 눈과 눈썹이 되는데, 의론을 숭상하는 자들이 산수는 말하지 않고 보통 추로의 마을이라 일컬음은 무슨 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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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말산재사중수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민속박물관<HXMLPIC ID="001"></HXMLPIC> <HXMLPIC ID="002"></HXMLPIC> ■ 말산재사중수기 복주 서편 40리 밖에 조골산이 있다. 한 가지가 북쪽으로 떨어져 꿈틀꿈틀 기복하면서 수리를 뻗어 덕산이 되고, 동쪽의 한 가지는 끊어질 듯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