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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애선생유애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1580년(선조13) 봄 서애 선생은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고 군민들을 가르친 치적을 남겼다. 약 10개월 뒤에 선생이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되어 상주를 떠나자 백성들은 비석거리에 거사비(去思碑)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당시 선생은 39세였다. 선생이 해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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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하회마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하회마을은 아름답다’는 말은 그야말로 새삼스럽고 그래서 진부(陳腐)한 표현이 되고 만다. 그러나 달리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참신(斬新)한 단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하회마을은 아직도 우리의 마음 속의 그리운 고향 그 자체로 남아 있다. 한문식 표현으로는 화도강산(畵圖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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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애선생어록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독립기념관 어록비(語錄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성상께서 우리 땅을 한 걸음만 떠나셔도 조선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동북의 여러 도가 옛과 다름이 없고 호남의 충신의사가 곧 벌떼처럼 일어날 것인데 어찌 나라를 버리고 압록강을 건너는 의논을 해야 하겠습니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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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경공 겸암선생 도심촌 유적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태백대간(太白大幹) 뻗어내려 뫼와 가람 이룩한 이 땅은 우리 선조(先祖) 피와 땀 스며있고 살과 뼈가 묻힌 터전. 그 한 구비인 이곳 도심촌(道心村)은 풍산류씨(豊山柳氏) 일족(一族)에게 사무치는 그리움을 일깨우는 고장이다. 때는 조선왕조 선조(宣祖) 임금 임진년(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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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의정 문충공 서애유선생 농환재 유적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안동시(安東市) 풍산읍(豊山邑) 서미리(西美里)는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류선생(柳先生)이 그의 위대한 생애를 마감한 역사적 유적지이다. 선생은 조선왕조 500년간 가장 탁월한 대재상(大宰相)으로서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영의정(領議政)으로 도체찰사(都體察使)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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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애관건립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서애관 건립문은 이러하다. 이 서애관(西厓館)은 징전(懲前) 비후(悲後) 지난 일을 되살펴 앞날에 대비하자는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先生)의 높은 가르침을 자라는 호국간성(護國干城)들에게 일깨우고저 건립(建立)된 상무(尙武)의 도장(道場)이다. 문충공(文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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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부인 영양남씨, 공인 문소 김씨 정려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정려각’이란 옛부터 충신이나 효자, 열녀를 포창하여 세상의 모범으로 널리 알리기 위해 세워진 집이다. 이들 각(閣)에는 모두 비가 세워진 것은 아니다. 대개 각이 세워지고 그곳에 그러한 사실을 적은 글을 써두는 것이 보통이다. 하회마을을 들어가자면 넘어야 하는 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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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열녀 풍산 김씨 정려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풍산 류씨 20세 류홍춘(柳弘春)은 집강(執講)으로 가세가 넉넉치 못했다. 세금을 거둬 관에 납부하는 책임인 호수(戶首)의 소임을 맡았던 그는 곤궁한 생활로 공금을 유용하여 마침내는 관에 세금을 내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관(官)에서는 법에 따라 그를 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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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둑으로 퇴치한 일본 밀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임진왜란 직전 일본에서 조선(朝鮮)의 천기(天氣)를 살펴보니 경상도 안동 하회 땅에 서기(瑞氣)가 뻗쳐올랐다. 이는 필시 큰 인물이 있기 때문이니 그 대표 인물인 서애(西厓)를 없앨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 일을 맡은 인물로 겐소[玄蘇]라는 중을 선발해 조선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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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주목사 시절에 있었던 일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선조13년(1580) 봄에 서애 선생은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연로한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간곡히 사양하자 공을 아끼는 국왕은 100여리 떨어진 상주고을을 다스리는 목사직을 내렸다. 약 10여개월간 상주목사(정3품) 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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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출(袖出) 평양도(平壤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겸암 류운룡은 산림(山林)을 좋아하고 사환(仕宦)을 싫어했으나 부친(立巖公)의 명(命)으로 부득이 음사로 내직의 벼슬을 하고 있던 중에 임진왜란을 당하자 상소를 올리고 사직한 뒤 노모를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때 뜻은 동일하나 나라를 위해 잔류하는 아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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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길 머무는 경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하회마을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경치를 이름 지은 것으로, 서애 선생의 맏손자인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 1598~1674)공의 작이라고 전해 온다. 십육경 하나하나가 모두 수채화를 연상케 할 만큼 하회마을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경치이지만 잠깐 스쳐가는 길손들에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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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갈교(葛橋)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제독인 이여송이 구원병 사만 대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탈환한 뒤 수일 내에 임진강을 건널 수 있게 하라는 군령(軍令)이 내렸다. 당시 임진강에는 십여 인이 탈 수 있는 배 몇 척만 준비되어 있어 대군을 도강시키자면 몇 개월이 걸려도 불가능한 형편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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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하재조지공(山河再造之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임진왜란 당시 평양성마저 함락되고 국왕인 선조가 평양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하자 명나라에서는 칙사를 보내 선조의 폐위와 함경북도를 점유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이에 서애 선생은 칙서를 받는 자리에서 그러한 명나라의 통보를 단호히 거절하고 임진왜란을 슬기롭게 평정하자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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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예습맥반(豫習麥飯)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겸암ㆍ서애 형제는 진작 퇴계 선생의 문하에 나아가 선생으로부터 두 사람의 장래는 한량이 없다는 칭찬을 받았다. 하루는 겸암이 겸상으로 꽁보리밥을 차려와 먹자고 했다. 서애는 차마 그 밥이 넘어가지 않아 억지로 먹고 있었다. 그러자 겸암은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우고는 ‘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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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겸암굴(謙菴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예천군 최북단에 위치한 상리면 고항리(古項里, 고루목) 산중에 ‘겸암굴’이 있다. 이 굴은 현행 5만분의 1 지도에도 명시되어 있다. 거대한 자연 암석에 천연으로 만들어진 이 굴은 천혜의 피난처였다. 필자가 고항리 마을에서 굴이 있다는 지점을 손끝으로 확인하고 2시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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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부름으로 상대의 인물을 알게 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약포(藥圃) 정탁(鄭琢:1526, 중종21~1605, 선조38)은 퇴계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분으로 서애보다는 16년 연장자였다. 약포는 명종13년(155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그해에 서애는 17세로 광평대군(廣平大君, 세종대왕의 아들)의 5세손 이경의 딸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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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서애 선생 안광(眼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약포(藥圃)의 비범함을 가르쳐 후일을 도모케 했다는 취지의 이야기에서도 ‘안광(眼光)’이 소개 된 바 있다. 과학적인 근거는 차치하고, 선현들 가운데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능력이 지금껏 우리 고장에서는 이야기 되곤 한다. 안광에 얽힌 이야기는 서애 선생에게도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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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능동(陵洞) 묘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안동 권씨 시조 묘소가 있는 능동에 풍산 류씨들의 묘소가 있다. 그런데 안동 권씨들이 시조 묘소를 쓰고서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의 태사의 16대손 평창군사(平昌郡事)를 지낸 권옹(權雍)이란 분이 잃어버린 묘소를 찾기까지의 6~700년이란 실전(失傳) 기간이 있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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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비운의 겸암·서애 형제분의 매부(妹夫) 부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임진왜란은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함이 극에 달한 전쟁이었다. 승리의 전쟁으로 기록되기는 했어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도처에서 생긴다. 당시 계엄사령관 격인 도체찰사 직에 있던 서애 선생의 매부 부부까지 모두 전쟁으로 인해 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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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노모와 많은 식솔을 무사히 피난시켰던 도심촌(道心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1592년 4월 13일 고니시가 인솔한 제1번대가 병선 700여척에 나누어 부산포에 침입하면서부터 7년여에 걸친 임진왜란은 시작되었다. 조선의 비극은 겸암 선생 형제분에게도 똑같이 닥쳤다. 당시 겸암이 54세로 그해 봄에 사복시첨정 직에 승진했었고, 서애는 51세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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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물금장(勿禁葬)을 명(命) 받은 우헌(寓軒) 류세명(柳世明)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우헌 류세명(1636, 인조13~1690, 숙종16)은 겸암의 증손자로 태어나 조부인 서애의 기대와 총애를 한몸에 받은 졸재 류원지에게 배워 사마시를 거쳐 문과에 급제한 뒤 호당(湖堂)과 교리(校理)를 역임하는 등 문신으로서의 에리트 코스를 거쳤다. 그래서 하회에서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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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옥연십영(玉淵十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서애집』을 보면 서애 선생은 옥연정사를 짓고 그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10수의 오언율시(五言律詩)로 노래하고 있다. 필자는 아직도 하회는 물론 옥연정사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나 신기한 사실은 그 아름다움을 찾아보려고 마음먹고 나서 나룻터에서 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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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청백하게 살다 간 낙동대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하회마을에 뿌리를 둔 인물들의 전기를 읽다보면 충(忠)과 효(孝) 그리고 청백(淸白) 등과 같은 단어가 자주 눈에 뜨인다. 물론 겸암과 서애 형제분의 거룩한 삶 때문에 후대에 그렇게 추앙하기도 하겠으나 후손들이 그러한 가문의 명예를 추락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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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하회마을의 슬픈 이야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일화’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말한다. 그렇게 보면 하회마을 수변(水變)은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좋은 이야기도 많은데 하필 슬픈 그 이야기를 들춰서 쓰는 이유는 뭣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하회마을을 아는데 다소나마 도움을 주고자 하기 때문에서다. 하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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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낙고사(洛皐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겸암과 서애 형제분이 전서공(典書公)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고개 밖[峴外]에 낙고사라는 세덕사(世德祠)를 세우고 입향조인 전서공을 위시한 입암(立巖)ㆍ귀촌(龜村)ㆍ권옹(倦翁) 제종반(諸從班) 분들을 배향하여 300여년 동안 춘추로 향사를 받들어 오다가 대원군의 철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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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금계재사(金溪齋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풍산(豊山) 류씨(柳氏)의 큰 재궁이다. 1982년 2월 14일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안동숭실재(安東崇室齋)’라고 명명되었으나 그보다는 문중에서는 ‘금계재사’로 통용되고 있다. 숭실재라는 이름은 문중에서 조차 그 유래를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숭실재라는 현판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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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풍송석(風松石)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풍송석은 서후면 능동의 금계재사 오른쪽에 있는 하나의 자연 암석에 불과하지만 풍산 류씨들에게는 추모의 정이 저절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뜻 깊은 유적이다. 『서애집』 권2에 보면 이런 기록이 보인다. 齋寺東 有大石 可坐十餘人 余於癸酉 與兄居先考憂 廬其側 其下大松 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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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조전서입향기적비(工曹典書入鄕紀蹟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하회마을을 찾는 이라면 매표소를 지나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유적이 공조전서기적비다. 정확한 명칭은 가선대부 공조전서 풍산류공 기적비(嘉善大夫工曹典書豊山柳公紀蹟碑)다. 이 기적비는 단기 4310년(1977) 정사(丁巳)년 10월에 20대손 류장하(柳長夏)옹의 글과 경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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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수동재사(壽洞齋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수동재사는 서애 선생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한 재사다. 서애 선생의 묘소는 안동시 풍산읍 수(壽)2리 도로변에 ‘서애선생묘동입구(西厓先生墓洞入口)’라는 안내 표지석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 왼편 산록에 정향(丁向)으로 자리잡고 있다. 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골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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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삼동재사(三洞齋舍)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봉화군 명호면 삼동리 314번지에 있다. 서애 선생의 장손 졸재 류원지공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한 재사다. ‘풍산류씨재사’라는 명칭으로 1989년 5월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9호로 지정되었다. 공의 아들로 익찬(翊贊) 벼슬을 지낸 의하(宜河)공이 이곳에 장사지내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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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맑디맑은 물, 새 그리고 물고기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하회마을을 자주 찾으면서 차츰 만나는 풍경이 하나 더 있다. 여름과 겨울철이면 더욱 그러하다. 겨울의 철새와 여름의 물고기가 그것이다. 철새로는 청둥오리와 원앙새 그리고 산을 끼고 있어 꿩도 많다. 입향시조 묘소를 보기 위해서 화산(花山)에 모셔진 전서공의 묘소를 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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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정십조(新定十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전국 어느 지역보다 향약(鄕約)이 잘 시행된 곳이 안동(安東)이었다. 큰 선생들이 대를 이어 나서 고을의 풍속을 아름답게 만들었는데, 서애 선생 역시 꼭 실천해야 할 열 가지 약속을 정해 가르쳤다. 이 가르침은 조선 중기 안동에서 시행되었던 향인(鄕人)들의 약속이기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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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록(語錄) 초(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1) 간성군수 류공작(柳公綽) 河回舊第 有先世祠宇三間 制甚樸陋 觀察使府君 以享祀之處 欲稍加彩飾 公蹙頞曰 此亦持守足矣 曾見人丹靑之家 能久保者乎 前後居官廉謹 每對食輒曰 國恩罔極 家屬 或有言及産業者 公怒曰 吾與汝輩 無事而食於官 已是國恩 又欲使我盜官物乎 하회 본가에 선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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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훈(內訓)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1) 입조향 21대 종부 김명규(金明圭) 여사 풍산 류씨 큰종가의 대종부로서 선산 김씨로 친정은 선산군(善山郡) 고아면(高牙面) 원호리(元湖里)다. 속명은 ‘들성[坪城]’으로 명문 선산 김씨의 집성촌이다. 큰종가 종부는 18살에 하회로 시집 온 뒤로부터 평생을 입암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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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의 민속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하회의 민속놀이는 크게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유(船游)놀이 그리고 화전(花煎)놀이를 들 수 있다. 하회마을 민속놀이의 특징은 계급이나 계층간의 조화로움에 있다. 다만 하회탈놀이를 제외하고는 그 명맥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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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회별신굿과 탈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1) 별신굿의 유래 하회마을에는 처음 정착한 허씨 때부터 성황신을 받드는 상당과 (화산 중턱) 하당(국시당, 화산 자락) 그리고 삼신당(마을 중심에 있는 고목인 느티나무)이 있었다. 이들 세곳의 당에는 정월 보름날마다 정기적으로 동제를 모셔 오고 있고 700여년이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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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회선유(河回船遊) 줄불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의 탈놀이와는 대조적으로 내려온 450년 역사를 지닌 양반풍류인 줄불놀이가 있다. 음력 7월 16일 야음이 깔리면서 시회(詩會)를 곁들인 오락인 선유(船遊)를 해왔다. 추칠월 기망(旣望)이 되면 계선암(繫船巖)에 매어두었던 배를 띄워 만경창파(萬頃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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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화전(花煎)놀이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화전놀이는 화전을 지져 먹고 가사(歌辭)도 지으며 자신의 소회를 푸는 부녀들의 놀이다. 이 놀이는 여류 문사가 많았던 하회마을에서 특히 사랑을 받았다. 화전(花煎)이란 꽃을 붙여 부친 꽃지지미다. 찹쌀가루로 반죽을 잘 해 기름을 두르고 지진 떡으로 계절에 따라 진달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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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附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1. 조선 시대의 풍산 류씨 인물 <pre> 불천위(不遷位) 입암 류중영 7. 13(비위 8. 21) 귀촌 류경심 6. 2(비위 7. 2) 파산 류중엄 12. 25(비위 4. 8) 겸암 류운룡 3. 5(비위 9. 16) 서애 류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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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문집류 류중영, 『입암선생문집』 류운룡, 『겸암선생문집』 류운룡, 『겸암집』, 아세아문화사, 1981. 류성룡, 『서애선생문집』 류성룡, 『서애전서』, 서애선생기념사업회, 1991. 류중엄, 『파산선생일고』 권 기, 『영가지』 단행본 류성룡 저, 민족문화추진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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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院長 金俊植 안동은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산을 잘 활용하려는 생각을 갖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치해둔 감마저 없지 않습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 유산을 잘 가꾸고 배워서 우리의 문화역량을 키워날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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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易東) 우탁(禹倬:1263-134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HXMLPIC ID="001"></HXMLPIC>『주역(周易)』을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가장 먼저 도입해 전파했다는 역동 우탁도 안동에서 만년을 보냈다. 와룡면 소재지를 지나 정산방면으로 가 안동호를 가로질러 놓인 주진교를 지나 ‘솟(鼎) 우물(井) 고개’를 막 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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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공(靖平公) 손홍량(孫洪亮:1287-1379)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현재 안동시 일직면 송리 일대에는 정평공의 유촉지가 남아 있다. 그곳에는 선생이 20여세 때 심은 은행나무가 지금도 남아 있다. 손 정평공은 일직(一直) 손씨(孫氏)의 지소로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몽진했을 때 받들어 모시니 왕은 ‘ 그대는 참으로 곧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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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농암 선생은 149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32세에 벼슬길에 나아간 분으로 문과에 올라 안동부사,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 등직을 거쳐 1542년에는 72세로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사임한 뒤 고향으로 내려와 후진을 양성하고 자연과 벗하며 은거했다. 1612년 향현사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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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안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을 손꼽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퇴계 선생의 유촉지는 안동 일원에 아주 골고루 퍼져 있다. 그 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장소는 도산서원과 선생의 종택 그리고 묘소라고 생각한다. 도산서원은 그 일원이 사적 제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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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조당(後彫堂) 김부필(金富弼:1516-157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관향은 광산(光山)이다. 후조당은 자신의 당호처럼 눈 속에서 오히려 더욱 푸른 기상을 지닌 분이셨다. 선생은 운암(雲巖) 김연(金緣)의 아들로 태어나 퇴계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스승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다. 순조 조에 이조판서에 증직되고 문순공(文純公)이라는 시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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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1538-1593)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학봉은 퇴계 선생의 수제자로 뿐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충절을 바친 충신으로도 추앙을 받고 있다. 종택은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856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HXMLPIC ID="001"></HXMLPIC>종택 별호는 ‘문충고가(文忠古家)’ 또는 ‘풍뢰헌(風雷軒)’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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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HXMLPIC ID="001"></HXMLPIC> 서애는 퇴계 선생의 수제자일 뿐 아니라 역사상 보기 드문 경세가(經世家)요 전략가(戰略家)였으며 충신이었다. 서애는 임진왜란 발발당시 51세의 나이로 좌의정으로 재임하면서 병조판서를 겸했다. 또한 계엄사령관 격인 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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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貞夫人) 안동(安東) 장씨(張氏:1598-1680)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HXMLPIC ID="001"></HXMLPIC> 정부인 안동 장씨는 안동시 서후면 춘파리에서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선생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정부인이 태어난 경당고택은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있다. 정부인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요 학자며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