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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6101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1711-1781)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
    대산 이상정은 ‘소퇴계(小退溪)’로 추앙받은 정치가요 학자이다. 우선 선생을 배향한 고산서원(高山書院)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 서원은 경상북도기념물 제56호(1985.8,5)로 지정되었고 현재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산10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이 서원은 18세기의
    출처 : 유교넷
  • 76102

    먼저 정재종택을 먼저 둘러보자. 종택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52호(1985.8.5)로 지정되어 있는데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1037-3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임동면 이주단지 조금 못미처 오른편 산 위에 종택과 선생의 강학지소(講學之所)였던 만우정(晩愚亭)이 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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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03

    저자의 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
    역사를 알면 유물 유적이 보인다. 그러나 역사라고 하면 좀 딱딱해 질 것 같다. 그렇다면 이야기로 바꾸어보면 어떨까. 이야기를 알면 유물 유적이 보인다. 한결 부드럽다. 이야기를 들을 때는 대개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 그냥 교실에서 듣기보다는 따뜻한 온 돌방 아랫목이
    출처 : 유교넷
  • 76104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1827-1899)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
    서산 김흥락 선생은 퇴계 선생의 마지막 적전(嫡傳) 제자이다. 의성인(義城人)으로 조선 후기의 대학자요 징사(徵士)이다. 자는 계맹(繼孟) 서산(西山)은 선생의 호이다. 퇴계의 수제자였던 학봉 김성일 선생의 11대 종손으로 가학의 연원을 바탕으로 정재 류치명의 문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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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05

    석주(石州) 이상룡(李相龍:1858-193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
    석주 이상룡 선생은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國務領)을 지내신 분이다. 석주는 고성 이씨가 안동에 입향 이후 대종손이기도 하다. 안동 고성 이씨의 종택은 보통 ‘임청각(臨淸閣)’이라고 부르는데, 임청각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냈고 청백리이기도 한 용헌(容軒) 이원(李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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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06

    퇴계 선생에 대해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
    안동을 이해하는데 퇴계 선생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선생은 많은 제자를 길렀다. 제자들을 개괄해보자. 제자 명단이라 할 수 있는 『도산급문제현록』 상으로만 보더라도 제자가 368분이나 된다. 이들 제자들은 모두 한 집안 또는 한 지역의 큰 선생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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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07

    인물을 잘 기억하는 방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
    그 중의 하나는 어떤 기준 인물을 설정하고 그 분의 태어나고 돌아가신 해를 기억한 뒤 그 분과 비교하는 방법이 있다. 일종의 연상법(聯想法)이다. 예를 들면 퇴계 선생이 1501년 태어나 1570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던 해에 청음 김상헌이 선생이 태어났고,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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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08

    자료의 보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
    안동을 말할 때 일반적으로 ‘문헌지방(文獻之邦)’이라고 한다. 이는 문헌이 많이 있는 고장이라는 의미이다. 문헌이란 문물 제도의 전거(典據)가 되는 기록, 또는 학술 연구의 자료가 되는 문서를 말한다. 안동이 문헌의 고장으로 남을 수 있었던 기반은 ‘이향즉천(移鄕則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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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09

    우리나라의 과거 제도는 많은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와는 반대로 ‘세계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특히 조선왕조의 과거제도는 완벽에 가까웠는데, 이는 이 제도를 통해 왕조 500년을 지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공부를 통해 산간 벽지의 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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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0

    씨족별로 문과에 얼나마 급제했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서수용
    안동 권씨가 단연 으뜸인데, 63인이 급제했고, 다음으로는 진성 이씨가 48, 의성 김씨가 43, 진주 강씨가 24, 풍산 류씨 13, 전주 류씨 16, 안동 김씨 13, 풍산 김씨 12, 흥해 배씨 10, 고성 이씨 10, 영양 남씨 8, 상락 김씨 8, 광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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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1

    3. 달빛과 어울린 매화의 운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퇴계와 매화는 고결한 벗님으로, 은은한 향기를 흩날리는 꽃일 뿐만 아니라 달빛과 어울려 한층 더 멋스러움을 드러낸다. 달이 오른 정원의 매화를 감상하며 지은 시이다. 홀로 산 창에 기대니 밤 기운 차가운데 매화 가지에 달이 올라 밝고도 둥글구나. 가을바람 살랑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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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2

    4. 매형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퇴계는 매화를 인격화하여 자기 심정을 전해주고 매화가 자기에게 마음을 표현한 시를 남겼다. 이러한 시에 퇴계와 매화와 다정한 교감을 느낄 수 있다. 부귀와 명리는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고 티끌세상으로 나간 이후 해마다 그대 생각 간절했다오. 오늘에야 다행히도 물러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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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3

    5. 고향의 매형을 그리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퇴계는 객지 생활 가운데서도 고향 매화를 늘 잊지 못했다. 고향은 마음의 안식처이며 두고 온 매화가 있기 때문이다. 고향 매화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이다. 시냇가 집의 작은 매화나무에 납일 전에 꽃망울이 가지마다 맺혔다 하네. 봉오리 꼭 붙들고 내 가길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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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4

    6. 추위에 상한 저 매화를 어찌하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위에서 고향 매화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은 시를 보았다. 그러나 퇴계는 애써 찾은 고향 매화가 추위로 인해 손상되었음을 보고 매우 슬퍼하며 안타까워하였다. 다음 시의 제목에 의하면, 시인이 삼월 중순에 도산에 이르러 매화가 추위에 피해를 입음이 심해 온실에 넣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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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5

    III.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매화의 고결함을 사랑한 퇴계는 인간애가 넘치는 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순수하고 고결한 매화를 극진히 사랑하며 인격화했다. 이러한 퇴계 인품이 문학으로 형상된 것이 매화시이다. 퇴계는 매화를 시로 표현하면서 그에게 인격을 부여하였다. 매화는 퇴계에게 고결한 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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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6

    II. 전탑이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전탑은 구운 벽돌인 전(塼)으로 만든 탑이다. 전탑 역시 중국에서 비롯된 것으로 숭악사(崇嶽寺) 전탑, 자은사 대안탑(慈恩寺 大雁塔), 천복사 소안람(薦福寺 小雁塔) 등이 가장 유명하다. 한국에 전래한 것으로는 안동시 법흥동 7층 전탑이 대표적이다. 수차의 개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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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7

    ▶近始齋 金垓의 義兵 活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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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8

    I. 序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592년(선조 25) 4월 왜군의 부산 공격을 시작으로 2차에 걸쳐 8년 간이나 계속된 임진왜란은 우리 국토 전체가 왜군의 말발굽 아래 처참하게 유린된 치욕의 대참화였다. 당시 일본은 豊臣秀吉이 전국을 통일한 뒤 노골적으로 동양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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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19

    II. 김해의 가계와 仕宦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金垓는 자는 達遠, 호는 近始齋이며 본관은 光山으로 1555년(명종 10) 禮安縣 烏川里(현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서 挹淸亭 金富儀의 아들로 태어났다. 김해의 선조는 조선 초에 개국공신으로 봉해진 金天利가 그의 아들 金務와 경기도 고양에서 안동에 내려와 처음에는 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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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0

    III. 김해의 의병 활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선조 25년(1592) 4월 14일, 小西行長을 선봉장으로 한 16만의 대군이 釜山浦에 상륙하므로 인진왜란은 시작되었다. 전쟁이 일어날 기미가 어미 보여 栗谷 李珥같은 이는 十萬養兵說을 주장하였고, 조정에서도 黃允吉, 金誠一을 通信使로 일본에 보내어 왜의 실정을 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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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1

    IV. 김해의 죽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각지의 왜군을 토벌하며 또 왜군에게 포위된 고을을 구하기 위하여 열읍향병은 잠시도 쉴 겨를이 없었다. 일신의 안녕을 돌볼 새도 없이 향병을 이끌고 경상 좌도의 곳곳을 동분서주하며 왜군을 토벌하던 김해는 6월 19일 갑작스럽게 병을 얻어 경주 진중에서 殉國하니 향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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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2

    I. 文學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매창은 이른바 ‘穆陵盛世’로 불리웠던 선조년간에 영남의 안동출신으로 중앙문단에서 활동한 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목릉성세’의 문예사조는 대체로 宋詩偏向이 극복되고 唐詩風이 풍미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른바 ‘三唐詩人’으로 불리웠던, 고죽 최경창, 옥봉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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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3

    1. 梅窓詩의 特徵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문집에 수록된 매창의 시는 모두 220여 題, 280여 首에 달한다. 권1에는 진사초시에 응시하던 해인 1575년(18세)부터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인 1617년까지의 작품이 창작시기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임란을 전후한 몇 년간(1589-1595)의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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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4

    2.「陽山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양산가」는 1576년, 매창이 19세 때 지은 작품이다. 초년의 작품이 대개 그러하듯, 「양산가」도 唐詩學習에서 오는 거센 정감의 유로가 현저한 작품이다. 먼저 작품을 제시해 본다. 陽山山頭日欲暮 양산 산머리엔 날이 저물려 하고 陽山山下江自波 양산 산 아래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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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5

    III. 안동의 전탑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우리나라의 전탑은 대부분 경북에 분포하며 특히 안동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이 지역에 전탑이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탑이 넓은 지역에 유행하지 못한 이유는 재료의 획득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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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6

    3.「松巖祈雨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매창은 「양산가」를 지은 지 12년만인 1587년, 서사가 우세한 작품을 다시 짓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송암 권호문을 주인공으로 하는 「松巖祈雨歌」이다. 永嘉高士有松巖 영가에 덕이 높은 선비, 송암이 있거늘 世居洛北天燈南 낙수 북쪽 천등산 남쪽에 대대로 살아 年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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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7

    4.「億老病長」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매창 생애의 최고의 해는 아마도 1610년일 것이다. 그 해에 매창은 평생 처음 중국 땅을 밟아보는 영광을 맛보았다. 그가 남긴 시의 절반 가량이 당시에 중국을 다녀오면서 지은 작품들이다. 이 때 매창은 맏누이를 생각하며 시를 짓기도 하였다. 이제 소개할 작품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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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8

    5.「俠士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작품의 제목이 너무 길기 때문에 편의상 본고에서는 「협사행」으로 줄여 부르기로 한다. 이 작품은 서술적인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이, 동지사행으로 북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언 강을 건너다 달자(子;서북방 오랑캐 족속) 두 놈의 습격을 받았다가 중국인들의 구원을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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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29

    III. 散文世界-「趙完璧傳」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朝天錄』은 비록 기행문이기는 하나 매창의 글솜씨가 마음껏 발휘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매창의 산문은 일반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상소문과 같은 政論散文이 우세하다. 그러나 정론산문은 議論이 주가 되기 때문에 문예적 敍事를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매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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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0

    IV. 批評世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古文眞寶前後集註釋正誤」 한문학 비평은 그 범위가 좁게는 품격론에서부터 넓게는 작품론, 작가론, 사조론에 이르기까지 일정하지 않다. 매창은 전문적인 비평저작을 남겼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문진보』주석에 대한 비평을 통해 그가 지닌 비평적 견해를 제출하였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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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1

    V. 結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본고는 조선중기 안동의 저명한 문장가 매창 정사신(1558-1619)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문학세계를 검토하였다. 정사신은 청주 정씨로 안동에서 출생하였다. 청주 정씨는 고려조에 크게 가세를 떨쳐 명망이 있었으나,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이전보다 중앙정계에 진출하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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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2

    부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 飜譯 「梅窓先生年譜」 ◎ 명종대왕 13년 무오년 (1558년) 팔월 십칠일 亥時에 공은 안동부 북쪽 마암리 집에서 태어나다. 공의 선조 鄭尹公은 개국초 외가 丈英公 金恂의 別業을 따라 안동으로 옮겨왔다. 부친 右尹公은 모사동에서 마암리로 이거했다. ⊙ 기미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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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3

    ■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류희걸(전 안동민속박물관장, 수필가) 무실에 사는 류씨는 관향을 전주로 쓴다. 진주 류씨는 전주의 삼성[전주 최씨, 전주 이씨, 전주 류씨]의 하나이다. 안동에 세거하는 전주 류씨는 고려말 완산백 류습을 시조로 벼슬길에 올라 서울에서 줄곧 살았다. 2세는 류극서(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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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4

    ■ 류복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선생의 자(字)는 성서(聖瑞), 호는 기봉(岐峰), 본관(本貫)은 전주(全州)이다. 시조 습(濕)은 선생의 8대조이며 적덕누인(積德累仁)으로 완산백(完山伯)을 지냈고 배위(配位)는 전주 최씨(全州 崔氏)인데 묘소는 전주에 있다. 7대조 극서(克恕)께서는 직제학(直提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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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5

    IV. 양지 법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삼국유사 권 제4(卷第4) 의해(義解) 제5(卷5) ‘양지사석(良志使錫)’조의 기록 내용 1. 양지법사는 승려•서예가•조각가로 그 조상과 출생지는 자세히 알 수 없고 오직 신라 선덕왕때에 자취를 나타냈을 뿐이다. 이 문헌사료로 인하여 양지법사의 미천한 신분의 경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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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6

    ■ 初年 不運으로 外家에서 訓育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기봉(岐峰)은 6세가 되던 해(1560년)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또 3년 만에 어머니를 잃게 되는 불운을 당하였으니 아우 복립(復立)과 함께 고아의 신세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서도 상중(喪中)에는 호곡(號哭)하며 보상(報喪)함이 극진하여 성인과 같아서 보는 이들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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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7

    ■ 中庸을 아는 仁厚한 性稟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그러나 선생은 성품(性稟)이 인후(仁厚)하여 타(他)에 모범이 되었고 범백(凡百)이 모두가 특출하였으며 신중(愼重)을 기하여 중용(中庸)을 아는 분이었다. 선생은 19세(1574년)때 영덕(盈德)에 사는 정씨(鄭氏) 가문에 장가를 들어 참봉 潛의 사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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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8

    ■ 孝의 대상 없자 忠誠으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전술한 바와 같이 선생은 학봉(鶴峰)의 문하(門下)에서 수학(修學)하여 경서(經書)와 예학(禮學)에 밝았고 孝와 忠을 겸비한 인물이다. 조모 박씨는 연세가 70이 넘었는데 갈력(竭力)으로 봉양해서 해이(解弛)됨이 없었고 숙모(垣의 配)가 초년에 홀로되어 갈 곳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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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39

    ■ 同生 잃은 슬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선생은 어릴 적에 아팠던 고난과 상처를 잊기도 전에 임란(壬亂)이 일어나 孝의 대상을 恨하여 우국진충(憂國盡忠)으로 나라 위해 최선을 다했음은 이미 주지된 바이다. 그런데 또 하나 불행한 것은 하나밖에 없던 동생[復立]을 전장에서 잃게 된 슬픔을 감내해야만 하는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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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0

    ■ 飢民 救恤로 積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기봉(岐峰)은 임란이 끝나고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기아(饑餓)선상에서 수없이 죽어감을 안타깝게 여겨 넉넉하지도 못한 가산(家産)임에도 불구하고 친히 노천(露天)에 가마솥을 걸고 죽을 끓여 기민(飢民)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먹여 많은 인명을 구제하였다. 이처럼 선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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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1

    ■ 權門出入을 禁하고 爲先事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당시 영상(領相)인 류영경(柳永慶)은 겨우 시복족친(緦服族親)이었는데 기봉(岐峰)의 행의(行誼)를 듣고 한번 만나기를 원하며 적당한 벼슬자리에라도 기용시키고자 하였으나 선생은 권문(權門)에 드나드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라면서 혹 남의 혐의(嫌疑)라도 받을까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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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2

    ■ 지극한 행실 후세의 모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선생은 만년(晩年)에 와서 주택의 남록(南麓)에 서재를 세워 각종 서적을 탐독하였다. 이곳에서 자기수양은 물론 후생들의 교육에도 진력하였고 때로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시주(詩酒)를 즐기면서 여생을 자락(自樂)하였다. 선생은 봉선(奉先)에는 성(誠)으로 하였고 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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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3

    1. 숲속의 이야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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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4

    2. 푸른바다의 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 이춘은은 기획초대전시에 120여회 출품하였고,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 경북청년작가회 회원, 안동조각회 회원이며 한국예총안동지부 사무국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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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5

    V. 법림사에 관한 기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안동의 법림사에 관한 기록은 경상도속찬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영가 지, 여지도서, 경상도읍지, 안동읍지 등 많은 책에서 찾아볼 수 있으나 여기에서는 경상도속찬지리지의 기록, 영가지의 기록, 현 법림사유지에 관한 기록을 거론하기로 한다. 1. 경상도속환지리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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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6

    3. 팔괘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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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7

    4. 퇴계선생 시 '守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 한국서가협회경북지회장, 한국서가협회(국전)초대 심사위원, 경상북도 도전 초대 및 심사•운영 심사위원, 기외묵림회원, 한국미협 회원, 한국서예가협회 회원,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 회원, 교남서단 회원, 오늘의 전각 초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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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8

    머리가 아픈 이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토요일 오후 3시의 미용실 수세기전 클레오파트라나 썼음직한 거울 앞엔 벽에 붙은 광고지의 서양 모델을 판박이 한 듯한 빨강머리 노랑머리 소녀에 은발의 소년까지 귀고리 코걸이에 배꼽걸이 혀걸이까지 하고서는 귀청을 때리는 락 음에 발장단을 맞추며 저마다 흥에 겨운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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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49

    아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가슴 가득 안겨서 뿌듯했던 생명 귓볼마저 신기해서 조심스레 더듬는다 우렁찬 기운으로 기어이 함박 울음 운다. 조각조각 삶의 향기를 지닌 고운 숨결이여! 둔한 몸뚱아리 부지런을 떨게 만드는 또하나의 내 안의 연인이여! 부디 온 세상 기쁨 안고 무지개꿈을 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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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50

    유산(遺産)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빈소판인동 뭔동 퇘기쳐뿔라! 씨팔!” 아버지의 산역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먼저 떠나는 손님부터 전송하느라 숨 돌릴 겨를이 없었다. 빈소상이 있는 방에 들어와 막 앉으려고 하는데, 조카가 방문을 사납게 열며 함부로 지껄였다. 조카의 망나니 행동은 진작부터 예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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