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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6151

    2003 안동문화원 이모저모 그림판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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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유교넷
  • 76152

    2004 안동문화원 이모저모 그림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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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53

    I.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경옥 이보는 퇴계의 학문을 이어 임동에서 처사의 삶을 살아간 인물이다. 그는 처사로 살면서 지방 유학의 토착화를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이와 함께 그는 농촌 정서를 바탕으로 한 한시를 남긴 시인이다. 이러한 시를 전가시라고 한다. 전원에서 느낀 바를 시의 소재로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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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54

    靑蔣館 先生 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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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55

    1. 놋다리 밟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 김 현 옥 눈에 보인다고 다 있는 것이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 또한 아닌 것이 세상이치 한 발짝 내디디면 사라지는 뒷 자국 세월이 지우고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워 늘 깃 짧은 옷깃 같은 바램으로 돌아보는 나무다리 징검다리 또 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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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56

    2. 생일 무렵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 유 연 숙 일흔 되신 어머니 딸의 생일 눈에 밟혀 고기 사다 국 끓이라고 쌈짓돈 통장에 넣어 주시는데 젖은 잉크 사이로 어릴 적 끓여 주시던 미역국 냄새까지 보내셨다 쉬이 변하는 게 마음인데 한 자리에 서서 눈멀도록 혼자 하는 사랑 헤일 수 없이 가을 지나도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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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57

    1. 기독교 선교사(宣敎史)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최 유 근 (수필가)</center> 개신교 복음이 한국땅에 전파된 것은 1884년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리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다. 이보다 18년 앞선 1866년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토머스(Robert Jermain Thomas,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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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58

    2. 문수봉 산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장 두 강 (수필가)</center> 앙상한 나뭇가지 끝 사이로 나란한 돌담이 보이고 햇살은 그 돌담 구멍을 통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손수건을 꺼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도 발걸음은 계속하여 옮기고 있었다. 드디어 아담한 사각형 장군단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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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59

    3. 부전자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박 순 복 (안동대학교 도서관)</center> (Ⅰ) 내 친구, 그러니까 플레이보이인 내 친구 K의 아버님은 유별난 심술꾼 어른이시다.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신 지 서너 해가 되었지만, 살아생전에 심술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무척이나 많으신 분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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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0

    4. 成年의 要件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김 정 걸 (임하면 신덕리)</center> 사람은 누구나 지난 일을 회고하고 미래를 개진하여 추억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바, 지난 성년의 날 행사를 안동문화원 주최로 안동웅부 관아에서 관례 및 계례 의식 행사에 보고 느낀 소감을 기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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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1

    2004 안동문화원 이모저모 그림판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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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2

    II. 강직한 선비의 전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景玉 李簠(1629~1710)의 본관은 진보, 자는 信古 또는 景玉이다. 그는 현 행정 구역상 安東市 禮安面 九龍洞 陽玉에 거주하다가 만년에 거처를 臨東面 大谷으로 옮겼다. 부친 爾樟은 진사•사마시에 합격하고 태학에 유학을 했으며, 글재주와 어진 행실로 칭송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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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3

    III. 농촌의 정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경옥은 농촌 일상의 모습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했다. 이와 함께 농민의 전원적 생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었다. 이러한 경옥의 시 분석에 앞서 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기로 한다. 경옥은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이 농촌에서 전개되는 여러 가지 모습을 자세하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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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4

    IV. 고단한 농민의 삶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경옥의 농민들에 대한 관심은 점차 대사회적인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옥은 여름철 가뭄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농민의 아픔을 시에 담아 내었다. 이는 농민층에 대한 경옥의 관심일 뿐만 아니라 향촌 사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의 표현이다. 이는 그 역시 향촌 사회의 일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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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5

    V.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경옥은 퇴계의 학문을 계승하여 처사의 삶을 살아 간 인물이다. 그는 처사의 삶을 살며 지방 유학의 토착화를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경옥은 농촌 자연 산천에서 전개되는 물상을 세심하게 시에 그려내었다. 경옥은 이러한 관점에 따라 고운 정감의 시를 남겼다. 경옥은 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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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6

    1. 그가 살던 시대 상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권 오 신 (경안중학교 교사)</center> <HXMLPIC ID="001"></HXMLPIC>13세기의 고려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내우외환의 크나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안으로는 문(文)만 숭상하고 무(武)를 멸시하는 데에 반감을 품고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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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7

    2. 출생과 성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김방경은 본관은 안동(安東 : 김선평의 안동김씨와 구분하여 구안동 또는 상락김씨로 불림)이고, 자(字)는 본연(本然)이며,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안동김씨보’에 의하면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은열(殷說)의 둘째 아들인 숙승(叔承)을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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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8

    3. 벼슬길에 나아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김방경은 1227년(고종 14년) 16세의 나이로 음보(蔭補) <HXMLSUP ID="001"></HXMLSUP> 산원(散員) <HXMLSUP ID="002"></HXMLSUP> 겸 식목녹사(式目綠事) <HXMLSUP ID="003"></HXMLSUP>로 관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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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69

    4. 위도(葦島)의 개펄에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징기스칸의 뒤를 이어 등극한 오고타이가 1230년 친히 금(金)나라를 치는 한편 다음해인 1231년(고종 18) 살레타이(撒禮塔)에게 군대를 주어 제1차 고려 침공을 감행하게 하였다. 고려군은 구주(龜州:현 평북 龜城)와 서경(西京:현 평양) 등에서 완강히 저항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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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0

    책을 펴내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한 지역의 일정한 범위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이나 사상 등을 통틀어 한지역문화라고 한다면, 지역문화의 특수성은 어디까지나 주민의 공감대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만약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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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1

    5. 사직을 지키기 위하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257년(고종 44) 몽고와의 전쟁을 주장하던 실권자 최항(崔沆)이 죽고, 그의 비첩(婢妾) 소생인 최의(崔竩)가 뒤를 이었으나, 이듬해 유경(柳璥), 김준(金俊:일명 仁俊) 등에게 살해당했다. 이에 4대 60년에 걸쳤던 최씨 무단 정치는 종막을 고하고 형식적으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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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2

    6. 몽고와 삼별초 사이에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삼별초(三別抄)는 원래 당시의 권력자 최우가 모아 기른 그의 사병들이었다. 처음에는 도둑을 막기 위하여 설치된 야별초(夜別抄)에서 시작한 것인데 수가 많아짐에 따라 좌별초(左別抄)•우별초(右別抄)로 나누었으며, 몽고와 싸우다가 포로로 되었던 귀한병들이 신의대(神義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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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3

    7. 일본 정벌에 참가하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274년 쿠빌라이는 홀돈(忽敦)을 일본정토 도원수(日本征討都元帥), 홍다구를 동정우부원수(東征右副元帥), 유복형(劉復亨)을 좌부원수(左副元帥)로 임명하였다. 김방경도 고려군 8천 명을 이끌고 도독사(都督使)로서 참여하였다. 그해 10월 3일 고려와 몽고의 연합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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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4

    8. 벼슬에서 물러남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283년(충렬왕 9년) 김방경은 다시 욍에게 글을 올려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기를 청하였다. 이에 이에 충렬왕은 추충정난정원공신 삼중대광 첨의중찬 판전리사사세자사(推忠靖亂定遠功臣三重大匡僉議中贊判典理司事世子師)로 치사(致仕)하니,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에 식읍(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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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5

    9. 영욕이 교차된 90 생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고려사의 기록에 의하면, “김방경은 충직하고 신후(信厚)하였으며 그릇이 커서 작은 일에 구애받지 않았다. 위엄이 있고 말수가 적었으며 자질(子姪:아들과 조카)을 대하여도 예(禮)로써 했다. 전고(典故) <HXMLSUP ID="001"></HXMLSUP>를 알아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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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6

    I. 서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김 성 규 (안동공업고등학교 교사)</center> 조선 후기 문학사의 흐름은 문학이 중세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체의 본래 영역으로 복귀하려는 거센 몸부림의 양상을 보인다. 壬辰•丙子 兩亂을 겪고 난 뒤 조선 후기 사회는 정치•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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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7

    II. 조선후기 중인문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中人文學의 槪念 가. 中人의 用例와 槪念 중인 문학은 조선후기 17-19세기 문학사에 새로이 등장한 技術職 中人, 胥吏, 庶流등 중인계층의 문학을 일컫는 것이다. 중인문학에 대하여 지금까지 委巷文學, 閭巷文學, 平民文學, 中人文學등의 용어가 학계에서 사용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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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8

    III. 金奭準의 懷人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人物考 김석준(1831-1915)은 조선 후기의 시인이며 서도가이다. 본관은 선산, 자는 嬉保, 호는 小棠, 孝里齋, 墨指道人 또는 硏白堂이다. 본래 중인출신으로 아버지는 역관인 繼運이며, 어머니는 漢陽劉氏로 運吉의 딸이다. 당대에 명성을 떨친 서도가 金繼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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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79

    IV. 김석준의 회인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懷人詩는 처음부터 나와 他人과의 관계에서 존재한다. 또 여기서의 타인이란 현재 작자 앞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나 과거 작자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을 생각하며 읊은 시가 곧 회인시가 되는 것이다. 약 이백수에 달하는 이 일련의 회인시는 당시 문학사의 인적 구성상황을 엿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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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0

    V. 결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최근 들어 중인 문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중인 문인들의 개별적인 자료는 많이 부족한 듯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중인문학의 마지막 시기를 이끌어간 소당 김석준의 회인시를 중심으로 교유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중인들의 활동범위와 문학사적 상황을 알아 보고자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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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1

    I.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김 시 백 (안동시조문학작가회 부회장)</center> 안동이란 지명은 고려 태조가 그를 크게 도운 3태사(三太師)의 공을 기리면서 고창군이던 이 고장을 안동부로 높인 데서 비롯된다. 청담 이중환(淸潭 李重煥) <HXMLSUP ID="00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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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2

    1. 역동우탁(易東 禹倬)의 작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위의 4수가 전해오고 있으나 ①③만이 역동의 작이라 객관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HXMLSUP ID="001"></HXMLSUP> 우탁(1262~1342)의 본관은 단양, 자는 천장(天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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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3

    2.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의 작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현보(1467~1555)의 본관은 영천, 자는 비중(棐仲), 농암은 그의 호요, 흠(欽)의 장자이다. 1498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 정언, 안동부사, 우부승지, 경상도관찰사, 형조참판을 지내고 호조참판 때 정계를 은퇴했다. 시호는 효절(孝節)이요, 청백리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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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4

    3.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작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一云 “이듕에 고온 한 니믈 더옥 닛디 몯하뇌” <HXMLPIC ID="003"></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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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5

    4. 매암 이숙량(梅巖 李叔樑)의 작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이숙량(1519~1592)의 본관은 영천, 자는 대용(大用), 호는 매암(梅巖)이며 농암의 제6자로 퇴계의 문인이다. 1543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출사의지를 버리고 성리학에 전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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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6

    5.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의 작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2"></HXMLPIC><br clear=all> <HXMLPIC ID="003"></HXMLPIC><br clear=all> 권호문(1532~1587)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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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7

    ▶民族史 守護의 執念 固城李氏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이 동 수 (안동유교문화교류협회 회장)</center> 근간 高句麗史를 中國史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역사 왜곡사건은 우리민족의 歷史와 正統性을 부정하는 歷史侵奪 행위로서 정부는 강력한 대응과 함께 국민들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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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8

    6. 선오당 이시(善迂堂 李蒔)의 작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 시(1569~1636)의 본관은 영천, 자는 중립(中立), 호는 선오당이다. 덕홍(德弘)의 장자로 농암의 종증손자가 되며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과거를 포기하고 집 서편 냇가에 서당을 짓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증직으로 사복시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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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89

    1. 갈봉 김득연(葛峯 金得硏)의 작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김득연(1555~1637)의 본관은 광산, 자는 여정(汝精), 호는 갈봉이요, 언기(彦璣)의 장자로 서애의 문인이다. 1614년 생진 양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출사를 단념하고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 임란 때는 원군인 명병(明兵)을 지원하여 명장 장무덕(張懋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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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0

    2. 표은 김시온(瓢隱 金是榲)의 작품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김시온(1598~1669)의 본관은 의성, 자는 이승(以承), 호는 표은이다. 철(澈)의 장자로 청계(靑溪)의 증손자가 된다. 병자호란을 겪고 나서 출사를 단념하고 와룡산 밑 도연 위에 와룡초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경학과 제자백가서에 전념하였다. 1651년 광릉참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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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1

    IV. 작가 중심의 선비 맥락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작자 중심의 선비 맥락 영남의 시가문학 발전에 크게 공헌하게 된 안동선비의 작품들을 앞에서 살펴 보았다. 이어서 여기서는 작자 중심의 선비 맥락을 짚어 보기로 하겠다. 흔히들 고려말인 14세기에 활동한 역동을 영남지방 최초의 시조 작가로 꼽는다. 한글이 없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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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2

    V. 맺는 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상으로 안동선비를 통해 시조가 작품화되고 그것이 유풍과 향토성을 통해 사상적 맥락이 이어졌음을 살펴보았다. 고려 말엽의 역동에서 비롯된 이 고장 시조의 맥락은 농암과 퇴계로 이어지면서 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곧 시조문학사의 형성과 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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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3

    1.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김 순 일 (釜山大學敎 名譽敎授, 工學博士) 서 치 상(釜山大學敎 敎授, 工學博士)</center> 安東 禮安의 君子里에 있는 光山金氏 가문의 後彫堂과 濯淸亭은 조선 사대부들의 유교적 이념과 歸去來士의 생활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전형적인 別堂과 別墅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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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4

    가. 朝鮮士大夫의 歸去來精神과 生活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조선시대의 別堂과 別墅는 사대부들의 江湖詩歌의 주제처럼 歸去來에 대한 간절한 의지의 산물이었다. 그 동기가 당쟁을 피하여 明哲保身을 꾀했든 致仕客의 老來에 宦路를 벗어나서 향리에 묻혀 지냈든 歸去來는 조선사대부들의 淸風高趣로서 높게 평가되었다. 강호로 돌아가자는 歸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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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5

    ■ 상고시대 역사기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리나라 역사는 일반적으로 왕조사와 民間이 야사로 기록한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전부인양 알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 이전에 기술된 古代史는「단군기」「해동고기」「先史」「고조선비기」등의 민족정통의 史記가 있지만 이들의 역사서는 日帝의 정통사 말살책에 의하여 없어지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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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6

    나. 君子里七君子와 別堂·別墅建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신라 왕실의 후예인 光山金氏는 신라 말의 혼란 중에 전라도 光山으로 피신한 이후 고려 후기에는 중앙으로 진출하여 벼슬길에 오르면서 王京에 기반을 둔 명문으로 성장하였으며, 그 한 파가 이곳으로 옮겨온 후 5백여 년간을 대대로 복거해 왔다. 그러다가 1974년에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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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7

    가. 後彫堂과 濯淸亭의 初創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後彫堂의 初創 後彫堂은 光山金氏 禮安派 가문의 宗宅에 딸린 別堂이다. 건립 연대가 임란 이전으로 소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初創에 관한 上樑文이나 造營記錄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이 初創 당시에는 어떤 규모와 용도로 지어졌는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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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8

    나. 後彫堂과 濯淸亭의 重修와 現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後彫堂의 重修와 現況 初創 이후 後彫堂은 언제, 어떤 형태로 重修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를 확인해 주는 기록이 전혀 없다. 따라서 지금의 건물 형태가 1567년에 金富弼이 初創했던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지, 또는 이후 몇 차례의 重修가 있었으며, 어느 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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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199

    가. 後彫堂과 濯淸亭의 建築 類型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後彫堂과 濯淸亭의 平面 類型 後彫堂과 濯淸亭은 각기 祭廳과 別墅로서 기능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翼廊 부분을 제외한 後彫堂의 평면은 大廳에 온돌방이 부가된 점에서 濯淸亭과 기본적으로 같은 평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즉 後彫堂은 그 몸체만 보면 서쪽에 도리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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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0

    나. 後彫堂과 濯淸亭의 特性과 價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後彫堂의 特性과 價値 後彫堂은 光山金氏의 종가를 상징하는 祭廳으로서 1567년의 初創 때부터 살림집과는 별도의 영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宣城誌』烏川 各名堂亭臺 조에 後彫堂은 光山金氏 禮安派 大종가의 門會를 여는 장소 <HXMLSUP ID="001"></HX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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