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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6201

    5. 맺는 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聾叟 金孝盧를 入鄕祖로 한 君子里의 光山金氏 가문은 스스로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 묻혀서 학문의 정진과 도의의 함양에만 매진하는 것을 신조로 삼고 이를 실천하였다. 마을 이름이 君子里로 불릴 만큼 이들은 유교적 이념과 규범에 철저한 한편으로,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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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2

    ▶어떤 고택을 지원해야 하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김 원 길 (고택문화보전회장·지례예술촌장)</center> 나는 안동에 탈춤축제가 열리던 2003년 9월 26일 밤 축하 차 안동에 왔던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과 이의근 경북지사 및 관계자들과 환담하던 자리에서 불쑥 이런 제안을 했다.「만약 나에게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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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3

    ■ 民族正統史 수호의 집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단군세기와 북부여기, 태백일사, 환단고기등의 고대사는 단군세기의 저술이 행촌 이암으로부터 비롯되어 금세까지 600여년 동안 고성이씨 후손에 의해 계술 비전되었다. 杏村 李嵒(1297-1364)은 固城이씨로, 고려조 文臣이며, 字 古雲, 鐵城부원군 瑀의 아들, 좌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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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4

    I. 계(稧)의 유래와 목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권 오 인(향토사학자) 권 진 량(향토사학자)</center> <HXMLPIC ID="001"></HXMLPIC>계(稧)는 공통된 이해를 가진 사람들의 지역적 혈연적 상호 협동 조직으로 그 기원은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제도였다. 조선시대 때에는 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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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5

    II. 안동의 우향계(友鄕稧)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우리 고장 안동에는 자그마치 525년을 이어오면서 가장 오래도록 현존하는 우향계가 있다. 이 우향계는 조선조 초기인 성종 9년(1478)에 <HXMLPIC ID="001"></HXMLPIC>수의부위전행좌군사용 권자겸 본안동(修義副尉前行左軍司勇 權自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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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6

    I. 序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류 희 걸 (전 민속박물관장)</center> 전주류씨 수곡파 문중의 고문서 가운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중요한 문건들을 정리해 보면 和會文記 2점, 許與文記 2점, 別給文記 3점, 明文 1점 <HXMLSUP ID="001"></HXMLSUP>, 粘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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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7

    II. 許與文記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許與文記란 재산을 자손에게 분재해 준 문서를 말한다. 이번에 중점 고찰할 문기는 공식 명칭으론 ‘柳復起 妻 鄭氏 許與文記’로 되어 있다. 이 문서는 岐峯 柳復起의 妻 鄭氏가 그의 자식 友潛, 得潛, 知潛, 守潛, 宜潛, 希潛 그리고 사위 鄭榮邦(石門), 李明遠,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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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8

    III. 許與文記 原文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 柳復起 妻 鄭氏 許與文記 = 萬曆四十八年庚申九月二十一日諸子女成文 右成文爲臥乎事段母赤年老寡居病□ 纏身奉 先事重勢合傳家內外邊傳來 奴婢田畓均一分給爲去乎鎭長使用爲 齊後種母子段 家翁遺意導良母□眼前使喚爲 如何後種段置觀其 處身 如何 別樣處置種生段置待以同氣母□ □□永屬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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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9

    IV. 許與文記 國譯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頭書] 만력 48년(1620) 경신 9월 21일 제 자녀에 주는 성문이다. 이 명문을 하게 되는 까닭은 늙은 어머니가 과부살이에 병까지 겹쳐 이젠 몸도 가누기 어려워 재산을 제대로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전하는 집과 내외변두리 재산을 합치고 전래되어오는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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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0

    V. 考察 結果 事項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以上 文記를 고찰한 결과 다음 몇 가지 사항을 이해할 수 있었다. 1. 당시 문기 작성은 이두문자를 많이 사용했다. 가. 숫자의 표시 <pre> 壹 貳 參 肆 伍 陸 柒 叭 玖 拾 일 이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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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1

    VI. 結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상에서 水柳 古文書 중 盈德 정씨(岐峯의 妻)가 자식들에게 分衿한 재산 내용을 고찰해 보았다. 이 문서를 통해 영덕정씨부인은 시외조부이신 내앞의 靑溪(金璡)선생으로부터 서기 1574년(萬曆 2)에 皮穀 100석과 奴 1口(萬鍾)을 別給받은 사실과 이를 근거로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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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2

    ■ 우리나라 역사왜곡 사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989년에 발간된 李丙燾,崔泰榮 공저의 ‘한국상고사입문’에 의하면“우리 한민족 본래의 역사는 일찍이 戰禍와 외적의 강압, 내부 事大主義者들 그리고 폭력으로 정권을 쟁취한 자들의 자기 비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기만책으로 인하여 위조, 피탈된바가 적지 않았다. 거기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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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3

    I.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박 장 영 (안동민속박물관 학예실장)</center> 1998년 여름에 유지삿갓을 조사하기 위해 안동시 옥동 관청골에 살고 있는 김동욱(金東郁, 옥동 893번지)옹을 찾아간 적이 있다. 김동욱 옹을 만나 삿갓을 만드는 재료와 삿갓을 만들었던 이야기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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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4

    II. 조사지역 개관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옥동은 안동시의 1읍, 13면, 10동, 546리, 967자연마을 중 하나로 시내에서 서쪽에 위치하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안동부(安東府) 감옥이 있던 곳이라 하여 옥거리, 옥마, 옥리 등으로 불려졌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옥동이라 하였다. 그리고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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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5

    III. 재료와 도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재료 가. 대나무 대나무는 첫째 속이 비어 있고 곧게 잘 쪼개지고, 둘째 곧고 튼튼하면서도 탄력성이 있으며, 셋째 열을 가하여 원하는 대로 휠 수 있을 뿐 아니라, 넷째 겉대와 속대의 질감이 다르며 채색이 가능하며, 다섯째 대나무는 둥근 통에서부터 얇고 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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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6

    IV. 만들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1. 대나무 쪼개기 통대나무를 쪼갤 때는 먼저 자귀나 낫으로 대나무 마디를 다듬고 <사진 2>와 같이 한쪽 끝을 열 십자(十) 모양으로 쪼갠 다음, 가는 대나무 두 토막을 열 십자에 끼워 밑으로 서서히 훑어 내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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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7

    V. 유지삿갓과 생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옥동 주민들은 온 식구가 매달려 유지삿갓을 만들어 시장(市場)에 내다 팔고 곡식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사온다. 여럿 형제가 한집에서 살기 때문에 손 맞추어 삿갓도 많이 만들 수 있지만 먹는 식량도 무시할 수가 없다. 김동욱(金東郁,86세) 옹을 비롯한 옥동 주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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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8

    VI. 맺는 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옥동 사람들은 다른 마을과 달리 생산 체계가 한 단계 더 있었다. 보리에서 벼, 다시 보리로 돌아가는 생산 체계에서는 배고픔을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벼에서 보리로 가는 긴 기간 속에 유지삿갓을 끌어 들였다. 따라서 유지삿갓에서 보리, 벼로 이어지는 생산 체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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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19

    I.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이 재 곤 (안동한문학회)</center> <HXMLPIC ID="001"></HXMLPIC>도산서원 유물전시관인 옥진각(玉振閣)에 전시된 옛날 책이나 퇴계 선생의 유품(예를 들면 벼루나 지팡이 등)을 둘러본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 유서 깊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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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0

    1.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간재 이덕홍의 혼천의와 선기옥형의 제작에 관하여 논의하기에 앞서 이를 제작한 인물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이덕홍의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이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이름과 자, 호는 모두 퇴계 선생께서 친히 지어주신 것이라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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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단고기 기록의 實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중국연변에 살고 있는 조선족 송상호씨는 동이민족의 유적을 찾아 중국전역을 3년반동인 답사하였고 환단고기나 규원사화등의 고대사 기록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2001년 8월 27일 연변대학의 제2회 蚩尤學術大會에서 발표한 東夷民族論說의 내용이다. 고대 우리 민족사에 대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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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2

    가. 간재집에서 혼천의·선기옥형 관련 내용 검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먼저 간재 이덕홍의 혼천의•선기옥형의 제조와 관련된 기록 중에서 간재 자신의 기록인 『계산기선록』에는 ◦ 선생께서는 덕홍으로 하여금 선기옥형을 만들어서 천상을 관찰케 하셨다. <HXMLSUP ID="001"></HXMLSUP> ◦ 선생께서는 매양 여러 문하생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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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3

    나. 타인의 기록을 통한 혼천의·선기옥형 관련 내용 검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1) 투호:퇴계의 덕성 평가의 도구 <HXMLPIC ID="001"></HXMLPIC> 도산서원 유물전시관인 옥진각에 가면 다소 낡아 보이는 허름한 투호를 만날 수 있다. 보통 일정한 거리에 항아리를 두고 화살을 던져서 내기나 하는 사대부들의 놀이 정도로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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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4

    다. 혼천의와 선기옥형의 명칭 문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선 만든 사람인 간재의 자신의 기록인 『계산기선록』과 그의 「묘갈명」 및 만들도록 명한 퇴계의 기록인 김부의에게 보내는 편지를 살펴보자. ◦ 선생께서는 덕홍으로 하여금 선기옥형과 혼천의를 만들게 하셨다.<HXMLSUP ID="001"></HXMLSUP> ◦ 하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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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5

    Ⅲ. 간재 이덕홍이 제작한 혼천의·선기옥형의 영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여기선 간재 이덕홍이 제작한 혼천의•선기옥형이 간재의 생존시는 물론 사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간재가 만든 천문의기를 활용한 경우나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고한 경우, 또는 연대 고증에 필수적인 경우 등에 한정하여 논하였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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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6

    1. 간재 생존시의 영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가. 퇴계 이황의 활용 간재가 입문하기 전에도 퇴계는 선기옥형의 제도에 대해서 강의를 하였고, 일부 제자들 사이에선 이에 대해서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퇴계선생연보보유』와 『학봉연보』를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이황의 후손인 광뢰(廣瀨) 이야순(李野淳,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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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7

    가. 병곡(屛谷) 권구(權榘, 1672~1749)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권구 <HXMLSUP ID="001"></HXMLSUP>의 『병곡속집(屛谷續集)』 권2, 잡저 「쌍환설(雙環說)」에서 당시 도산서원에 소장되어 있던 선기옥형과 관련된 부분을 일부 살펴보자. 선기옥형의 제도는 도형을 살펴보고 해설을 고찰해 보면 또한 대략 깨달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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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8

    나.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1759~1789)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배상열 <HXMLSUP ID="001"></HXMLSUP>의 나이 15세 때에는 이미 『역학계몽』•『율려신서』 등의 서적을 탐독해 상수지학(象數之學, 역학)에 깊은 조예를 보였다. 이 무렵 하루는 잠을 자다가 한 노인에게서 ‘태고천토(太古天土)’라는 네 글자가 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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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29

    다.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연암 박지원이 북경에서 보았다는 ‘혼천의’ <HXMLSUP ID="001"></HXMLSUP>는 담헌 홍대용의 정자인 ‘농수각(籠水閣)’에 설치한 것과 같은 것이다. 담헌은 당시 3년이라는 세월을 소비하고 여기에다 많은 경비를 들여 ‘혼천의’ 한 개를 만들어서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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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0

    ▶경옥의 삶과 농촌 일상의 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center>이 원 걸 (안동문화원 회원·문학박사)</center> <HXMLPIC ID="001"></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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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1

    라. 호고와(好古窩) 유휘문(柳徽文, 1773~1832)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유휘문 <HXMLSUP ID="001"></HXMLSUP>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평생 학문에 종사하여 성리학은 물론 역학•예악•천문•지리•의복 등 다방면에 깊이 연구한 학자로 방대한 저술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선기옥형에 관해 깊이 있게 연구하여 직접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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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2

    1. 혼천의(혼상)의 경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삼국사기』나 『고려사』에도 혼상에 관한 기사는 전혀 없다. 고구려에 석각된 천문대가 있었고, 신라에는 첨성대까지 있는데, 혼상이 제작되지 않았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혼상에 관한 기록은 『세종실록』에 처음 나온다. 세종 때에 만든 혼상은 혼의와 함께 경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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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3

    2. 선기옥형의 경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우리 나라의 경우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도 물론 선기옥형(혼천의라고도 함)이 제작되었을 것이나 이와 관련된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혼천의’를 제작한 기록이 『세종실록』에 보인다. ◦ 『세종실록』 권60, 장38, 세종 15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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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4

    V. 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이상에서 논의한 바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간재 이덕홍은 19세에 퇴계 선생에게 급문한 이래 퇴계선생이 돌아가실 때까지 12년간 독실히 학문을 닦았다. 그는 혼천의와 선기옥형을 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퇴계 선생이 돌아가실 때 명(命)으로 서적도 관리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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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5

    부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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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6

    하선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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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7

    단천리의 가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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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8

    affection-animation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안동문화원
    <HXMLPIC ID="001"></HXML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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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39

    창간호를 내면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최근 ‘안동’이란 이름은 ‘순수 우리 것’ 혹은 ‘한국의 전통’이라는 이미지와 동일시되고 있다. 안동소주, 안동포, 안동간고등어, 안동찜닭, 안동칼국수 등 접두어에 안동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이익을 추구하는 상품일지라도 투박한 순수성이 깃든 원래의 우리 것으로 받아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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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0

    안동 역사의 유가중심적 전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조선시대 이후 안동 역사의 개관- <div align="right">조 동 걸 <HXMLSUP ID="*"></HXMLSUP> </div> 머 리 말 안동이 역사 표면에 부상하는 것은 후삼국 때부터가 아닌가 한다. 그것이 왕건(王建)을 도와 견훤군을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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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1

    1. 조선전기의 안동과 안동지방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조선시대를 흔히 양반봉건사회라 하고 안동을 양반의 고장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양반이 역사를 주도한 고장이라는 뜻이 있고 또 양반 봉건제도가 모범적으로 정착한 고장이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양반과 향리(중인)와 상민의 신분이 전형적으로 분화된 곳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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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2

    2. 성리학을 꽃피운 조선중기의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조선중기는 사림정권의 등장이 시도된 연산조부터라고 할 수 있다. 사림의 성장이 좌절된 모습이 사화로 나타났다. <HXMLSUP ID="024"></HXMLSUP> 중종때 조광조가 훈구세력을 거세하고 집권을 시도하다가 1519년에 반격을 받아(기묘사화) 실패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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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3

    3. 조선후기에는 정치에서 밀리고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조선중기 숙종 때 기존질서가 무너지고 있었다면 사람들은 보호색을 칠하거나 아니라도 생존의 방도를 찾기 마련이다. 그때 양반들은 나름의 봉건적 조직을 강화하였다. 족보 간행을 서두르며 문중조직이나 향약과 이동계와 장학계 같은 양반중심의 사회조직을 강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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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4

    1) 옛 바람은 쉽게 잦아지지 않았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근대란 특권계급이 없는 사회를 말한다. 조선시대로 보면 양반과 중인의 특권이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반봉건주의를 앞세운다. 반봉건이란 어떠한 특권도 없애자는 꿈을 말한다. 그런 꿈이 근대에 비로소 일어난 것은 아니다. 만적의 난, 임꺽정이나 홍길동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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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5

    2) 새바람은 신분별로 일어났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한국사에서 봉건계급에 대한 비판론은 숙종때부터 민간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정조때에 오면 『추관지(秋官志)』 노비조에서 보듯이 정부 간행물에서 원래 노비란 없었다고 인간 평등을 말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19세기 사회 모순이 심화되면서 반봉건의 기치를 들고 신분제타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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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6

    1) 식민지시기의 안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는 서양의 식민통치와 다른 특징이 있었다. 첫째가 식민지 경제를 자기 본국의 생활경제와 밀착시켰다는 점이다. 서양 제국주의는 식민지에서 경제적 이익을 올리면 됐지 억지로 본국과 직결시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일본은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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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7

    2) 안동을 지키며 독립운동에 이바지하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안동에서는 자결 순국자가 속출했다는 점이 남달랐다. 1907년 김순흠이 자결한데 이어 1910년에는 이만도‧이중언‧유도발‧이현섭‧권용하‧김택진‧이면주(봉화)‧김성진(영주), 그리고 김도현(영양;1914)‧유신영(1919)‧이명우(1919)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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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8

    3)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몸바친 사람들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되자, 일본을 하늘을 함께 할 수 없는 원수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몇백 년 살아온 집을 버리고 망명한 사람이 안동지방에서 특별히 많았다. 아기를 가진 임부가 식민지 일본인으로 태어날 아기의 처지를 거부하고 만삭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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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49

    6. 안동의 역사를 반성하며(맺음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먼저 안동의 역사를 회고하며 특징을 짚으면 다음과 같이 회상된다. 1) 고려사를 밀고 이끈 안동 2) 유교를 일으켜 조선왕국을 건립하고 퇴계학으로 조선 성리학을 개척한 고장 3) 조선 중기부터 200년간 남인당을 고집하여 야당성이 강한 고장 4) 사족의 문중 결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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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50

    安東士林의 政治的 分化와 婚班形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
    <div align="right">薛 錫 圭 <HXMLSUP ID="*"></HXMLSUP>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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