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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끝자리의 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몇 가지 생각을 이야기해 보았다. 첫째 우리는 安東學의 기본 전략이 人文學 쪽에 있음을 살폈다. 그와 아울러 방법론에 있어서 우리 고장의 연구는 역사주의를 주조로 삼아야 할 것임을 알았다. 安東學의 여러 요소는 매우 緊切하게 상관관계로 얽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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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의 '지방'사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한국사에서의 ‘지방’사 -조선시대 읍지 편찬에 나타난 ‘지역’ 인식을 중심으로- 김 현 영 <HXMLSUP ID="001"></HXMLSU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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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최근 지방사 대신 지역사라는 용어를 제창하는 경향이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필자는 용어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데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방사라는 것은 중앙사에 대한 지방사라는 양자대립적인 용어가 아니라 전근대 동양 사회(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지방과 중앙은 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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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찬읍지 편찬에 나타난 '지역' 인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국가에서 지리지를 편찬하는 전통은 국가에서 지방을 파악하려는 시도로서 일찍이 중국 고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班固가 쓴 『漢書』에 지리지가 있으며 이러한 체제는 역대 우리나라의 역사서에도 도입되어 『三國史記』나 『高麗史』에도 지리지가 포함되어 있다. 고려시대와는 달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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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산록」의 편찬 과정과 그 특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호산록』은 1619년(광해군 11)에 韓汝賢이 편찬하였다. 충청도 서산군의 사찬읍지로 2권 2책으로 되어 있는데 여러 번 轉寫한 듯한 필사본만 남아 있고 간행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호산록』을 편찬한 한여현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데, 『호산록』의 내용을 통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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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雲窓誌」의 편찬과정과 그 특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단성의 사찬읍지인 『雲窓誌』는 단성의 재지사족인 李時馩이 1650년 경에 편찬한 것으로 파악된다. 『운창지』는 관찬의 단성읍지와 달리,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체재의 하나의 모델로 하고 있는 다른 지역의 사찬읍지의 기재와도 대폭 다른 독자의 기술 방식을 취하고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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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용성지」의편찬과정과 그 특징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다음은 전라도 남원의 사찬읍지인 『용성지』의 편찬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1699년(숙종25)에 崔是翁(1646~1730)이 쓴 서문에 의하면, 『용성지』는 남원부사 李耈徵이 국가의 명을 받아 읍지를 편찬하게 되어 여러 사람들과 의논한 결과 李燾와 崔與天이 편찬에 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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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永嘉誌」편찬에 나타난 '지역' 인식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여기에서는 조선시대 사족지배체제가 가장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안동이라는 지역사회 또는 지역사회의 지식인이 중앙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안동의 읍지인 『영가지』의 편찬 과정을 통하여 안동이라는 지역사회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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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맺음말 : 조선시대 '지방'의 위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이상 한국학에서 지역학의 위상과 관련하여 지리지와 읍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지방의 위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우리 역사에서 지방의 위상과 관련하여 음미할 수 있는 사료로 우리는 몇 가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안동 향안 입록을 둘러싼 중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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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학의 범주와 향후 연구과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지역학의 범주와 향후 연구과제 -지역학연구 관점에서 보는 안동학- 이 해 준 <HXMLSUP ID="001"></HXMLSUP> 본고는 (1)‘지역학 연구의 방법론적 모델’로써 안동을 주목하고, (2)지역학 연구가 연구실의 연구로 한정되지 않고 미래지향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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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역학과 안동학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한국의 지역학 연구방향과 모델의 제시, 시험의 과정에서 안동은 매우 의미있는 대상지역이다. 전제하였듯이 안동은 우리나라 국학의 특징적인 제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으면서, 또 전통문화 기반을 강하게 보존한 곳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기에 더하여 안동은 문화권으로서의 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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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역학의 시각과 연구관점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장맛만 보아도 그 집의 문화를 알 수 있다고 했듯이 사람마다, 집집마다 각기 다른 특성과 내음이 있다. 타지인들이 모르는 지역만의 이야기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지역사나 지역문화에서 기대하는 기본적 당위성과 요구도 바로 그런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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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역학 연구의 과제와 방향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1) 철저한 문화콘텐츠의 수집과 정리 21세기가 문화 경쟁시대이며, 바야흐로 그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기는 방법으로 문화가 활용되는 시대가 강조된다. 그런가하면 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도 유행처럼 우리 주변을 맴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지역의 역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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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地誌的 硏究의 源流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일본에서 지역학의 현황과 과제 -지방사‧지역박물관‧자연경관- 金田章裕(Kinda Akihiro) <HXMLSUP ID="001"></HXMLSUP> 「지역학」의 용어를 「어떤 地域문화에 관한 연구」의 의미로 사용한다면 그 기원은 地誌的 연구가 될 것이다. 일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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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동학의 미래와 향후 과제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앞 절에서 필자는 현황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지역학의 범주와 향후 과제에 대하여 일반론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과제들은 분야별 편차는 있으나, 현장중심의 지역학을 하는 연구자들이 대개 공감하는 논의들이기도 하다. 안동의 경우 여러 연구자들의 오랜 자료수집 노력과 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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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을 맺으며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이상에서 필자는 안동학을 염두에 두면서 지역학의 향후 과제와 방향을 정리하여 보았다. 필자의 생각은 주관적인 것이고, 특히나 지역문화의 형성기반과 특성은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논리로 접근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의를 전개한 까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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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1987, 「향토사연구의 현안과제」, 『한국학논총 12』, 한양대 한국학연구소. 1996, 『조선시기 촌락사회사』, 민족문화사. 1997,「지역박물관과 지역사자료정리」, 『박물관학연구』 2집, 대전보건대 박물관학연구소. 1997, 「지역사연구의 과제와 방향」, 『웅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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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문화권 유교문화의 현황과 진로모색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안동문화권 유교문화의 현황과 진로모색 주 승 택 <HXMLSUP ID="001"></HXMLSUP>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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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退溪와 安東 儒敎文化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조선은 유교를 國是로 창업된 왕조인 만큼 조선시대의 유교문화란 전국 8도에 골고루 퍼져 있는 보편적인 문화현상이었다. 유교식 通過儀禮라고 할 수 있는 冠婚喪祭는 양반 계층뿐만 아니라 서민 계층에게까지 널리 확산되어 나갔고, 그 결과 巫覡이 주관하던 마을 굿도 祭官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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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退溪學派와 안동 유교문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퇴계에 의하여 학문적 師承집단, 곧 학맥으로 묶여진 퇴계학파는 퇴계의 死後 크게 네 갈래의 흐름으로 분기된다. 예안현을 중심으로 한 북부의 趙穆학맥, 臨洞縣(안동의 속현)을 중심으로 한 동부의 金誠一학맥, 豊山縣을 중심으로 한 서부의 柳成龍학맥, 星州牧을 중심으로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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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남학파와 婚班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영남학파는 불천위 제사나 書院 享祀, 書院의 講會 같은 대규모 집회를 통하여 자신들의 결속을 다져 나갔다. 그런데 영남학파를 전대의 영남 사림파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집단으로 묶어 주는 힘은 이 같은 대규모 집회보다도 婚班이라는 끈끈한 인척관계를 더 중요한 요인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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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동과 전통문화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지금까지 우리는 안동 유교문화의 찬연했던 과거의 모습을 회고하여 보았다. 그런데 현재의 안동은 어떠한가? 날로 인구가 줄어드는 위기의 지방도시 가운데 한 곳일 뿐이다. 그러면 과거 안동을 수도인 서울과 대등한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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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신문화의 보존과 계승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안동사람들은 가문의 門地를 따질 때 그 집안에서 홍패(문과급제)가 몇 장이고 문집이 몇 권이냐를 가지고 비교의 기준을 삼는다. 이에 비하여 近畿지방 사람들은 정승‧판서‧大提學 같은 벼슬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를 가지고 비교의 근거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근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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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安東과 漢文-그 숙명적 관계 / 유교문화>지역간행물 / 국학진흥원안동은 흔히 글이 일찍 끊어진 곳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글로 양반질 한다’고도 했고, “벼슬은 끊어져도 글은 끊어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이 영남 선비 집안의 家訓이었다. 근기지방에서는 4대만 벼슬이 끊겨도 몰락하지만, 영남지방에서는 10대가 벼슬을 못해도 글하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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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 / 유교문화>인물 / 김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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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국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태조 이성계가 1392년 7월 16일 개성의 수창궁(壽昌宮)에서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恭讓王)으로부터 선양(禪讓)의 형식으로 왕위를 물려받아 조선을 개국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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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천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는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겼다.<br/><br/>이는 한양이 풍수지리학상 명당임을 고려하여 고려 말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려 한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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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 설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신문고는 대궐 문에 달린 북을 치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것으로, 송(宋)의 제도를 모방해 설치하였다.<br/><br/>그러나 의정부나 사헌부에서 거절한 사건이어야 하고 북을 치는 절차도 복잡한 데다 자칫하면 처벌을 받아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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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패법 실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호패법은 세금부과, 병력ㆍ공사 동원에 필요한 16세 이상 남성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주민등록증법이다.<br/><br/>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부담이 너무 커서 도망치거나 부잣집 노비가 되기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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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소 설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주자소는 조선시대에 활자를 만들던 곳으로, 승정원에 소속시키고, 예문관 대제학 이직, 총제 민무질, 지신사 박석명, 우대언 이응 등으로 하여금 활자를 만들도록 하였다.<br/><br/>이것이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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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설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집현전은 유교적 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설치된 연구기관이다. 집현전 학자들에게는 휴가를 제공하는 등의 특권을 제공하여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훈민정음 창제와 같은 업적을 남겼다. <br/><br/>이들은 여러 종의 책을 발간하고 경연과 서연도 담당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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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편찬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고려사』는 조선 초기 김종서ㆍ정인지 등이 세종의 교지를 받아 만든 고려시대의 역사책이다.<br/><br/>총 139권으로 되어 있으며, 내용과 서술에 문제가 많아 1414년 하륜ㆍ남재ㆍ이숙번ㆍ변계량에게 공민왕 이후의 사실을 바로잡고, 특히 태조에 관한 내용을 충실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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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 편찬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전기 농사에 관한 기술을 해설한 가장 오래된 농법서로, 목판본으로 되어 있으며 1책이다. 1429년 간행된 것으로 세종이 정초ㆍ변효문 등에게 명하여 국내 실정에 맞게 만든 것이다. <br/><br/>종자와 토양 다루기, 각종 작물 재배법 등을 서술하였고 우리 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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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반포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훈민정음은 1443년(세종 25) 창제된 우리 나라 말이다. <br/><br/>의학ㆍ농업 등에 많이 사용된 훈민정음은 한자에 밀려 부녀자와 아이들의 문자로 낮게 평가되었으나, 1894년 대한제국을 세운 후 국문을 채택하여 일제 강점기 때 주시경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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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일으킨 사건으로, 세종의 뒤를 이은 병약한 문종은 자신의 단명을 예견하고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에게 어린 왕세자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하였다.<br/><br/>그러나 수양대군은 문종의 유탁을 받은 삼공 중 지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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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 설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홍문관은 궁중 서적보관소였는데, 성종 때 국왕 자문기관이 되면서 언론역할이 강화되었다.<br/><br/>이는 성종이 훈구파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훈구파가 차지하고 있던 사헌부와 사간원 외의 사림을 등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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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완성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시대의 기본법전으로, 조선 왕조는 개창과 함께 법전의 편찬에 착수하여 고려 말 이래 각종 법령 및 판례법과 관습법을 수집하여 1396년(태조 5) 『경제육전』을 제정, 시행하였다.<br/><br/>이후 지속적인 법전의 보완작업과 편찬작업으로 『경국대전』이 만들어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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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무오사화는 사림파와 훈구파의 갈등으로, 당시 스승 김종직의 글 <조의제문>을 김일손이 <성종실록>에 실으려 하자, 훈구파들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난하는 글이라고 몰아붙여 죽은 김종직의 목을 베고 사림파가 대대적으로 숙청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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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사화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갑자사화는 1504년 10월 연산군이 친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을 알고 제헌왕후로 높이려 했으나, 대신들이 반대하자 아버지의 후궁을 죽이고 폐비 죽음을 주장하거나 반대하지 않은 이들을 모두 벌준 사건이다.<br/><br/>결국 훈구파가 제거되고 외척과 궁중파 관료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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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반정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연산군의 폭정이 계속되자 박원종 등은 연산군의 왕위를 빼앗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을 일으켰다. <br/><br/>중종반정 후 연산군 시절 폐지되었던 사간원과 경연 등을 부활시켜 정치체제를 재정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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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왜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3포(부산포ㆍ내이포ㆍ염포)에서 일어난 왜인 거류민의 폭동사건으로, 경오(庚午)의 난이라고 한다. <br/><br/>중종의 즉위 후 제정개혁으로 왜인에 대한 통제가 심해지자 3포의 왜인들은 쓰시마 왜인의 원조를 얻어 폭동을 일으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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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사화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기묘사화는 사림파 수십 명이 처벌당한 일로, 중종반정 후 훈구파들이 재등용되었는데, 이들과 사림파와의 마찰 속에서 훈구파들은 사림파가 붕당을 만들어 정치를 어지럽혔다고 주장하여 발생한 사화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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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 건립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최초의 서원이라 할 수 있는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을 풍기군수 주세붕이 건립하였다. <br/><br/>서원은 지방민들의 계몽과 교육, 제사 기능을 담당했으며, 향촌 사림이 번성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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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인종의 세자책봉을 둘러싸고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과 경원대군의 외삼촌 윤원로ㆍ윤원형 형제가 비밀리에 암투를 벌였다. <br/><br/>이후 인종이 일찍 죽고 경원대군이 명종이 되어 왕위에 오르자, 윤원형이 윤임 일파를 역적으로 몰아 약 1백여 명을 처형한 사건이 바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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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의 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시대의 의적으로 일명 거정. 양주의 백정이었으나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불평분자들을 규합,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창고를 털어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는 등 활약을 하였다. <br/><br/>1562년 남치근의 토벌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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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 전쟁을 정유재란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 중국에서는 만력의 역이라고 부른다.<br/><br/>7년간의 전쟁은 조선ㆍ명나라ㆍ일본의 인명 및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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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일본은 임진왜란이 막바지에 이른 1597년 다시 한 번 조선을 공격하였다. <br/><br/>이는 명(明)과의 협상에서 일본이 조선의 4개 도를 일본에 주고, 인질로 조선왕자와 대신 12명을 요구하자 명의 교섭담당관 심유경이 명 조정에 다른 내용을 보고했고, 이를 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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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실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시대 선조 이후 공물(貢物: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이다. <br/><br/>본래 조선시대의 공물제도는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게 했었는데 조세부담이 불공평하고, 수송과 저장에 불편이 많으며, 농민 부담 또한 가중되어 오히려 국가의 수입은 감소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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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반정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광해군은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왕권이 불안정하자 영창대군과 임해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켰다. <br/><br/>이에 서인들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위에 올린 사건이 바로 인조반정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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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평안병사 이괄이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반란이다. <br/><br/>인조반정에 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2등공신 대접을 받은 것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이수백ㆍ기익헌 등과 함께 개천을 점령하고 평양으로 진격하였다. 한때 반란군이 승승장구하였으나 장만이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