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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627년(인조 5) 만주에 본거를 둔 후금(後金:淸)의 침입으로 일어난 조선과 후금 사이의 싸움이다.<br/><br/>후금은 명을 침공하기에 앞서 조선을 정복하여 후환을 없애려는 의도로 아민을 대장으로 하여 3만의 병력으로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공하여 왔고, 조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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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명을 무너뜨린 후금은 나라이름을 청(淸)으로 바꾸고, 그동안 후금이 보낸 국서를 거절하는 등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던 조선을 침략하였다. <br/><br/>12만 청군이 쳐들어와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청군에게 포위되었고, 왕족들의 피난지인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결국 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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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통보 유통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시대의 화폐로 1633년(인조 11) 김신국ㆍ김육 등의 건의에 따라 상평청을 설치ㆍ유통하였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br/><br/>이 해(1678) 정월에 다시 허적, 권대운의 주장에 따라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전국에 유통하기 시작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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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안용복은 조선 후기의 민간외교가로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일본에 주장한 사람이다.<br/><br/>그는 울릉도에 출어했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독도에 정박시킨 후, 일본이 우리 나라의 바다에 침범해 들어와 고기를 잡은 사실을 문책하고 일본 호키주에 가서 사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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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의 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장길산은 조선 숙종 때 해서 지방의 구월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한 도둑의 우두머리로서, 본래 광대 출신이나 도당을 모아 세력을 늘리면서 활동하였다.<br/><br/>이후 그는 어려워진 사회조건 속에서 하층민인 서얼ㆍ승려ㆍ농민 등을 결합하여 왕조를 창건하려는 모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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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확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대동법은 조선시대 선조 이후 공물(貢物: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로, 경기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실시 이후 1708년(숙종 34) 황해도에 대동법을 모방한 상정법을 시행하면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br/><br/>세액도 12말로 통일되었고, 산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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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정계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백두산에 세운 조선과 청(淸) 사이의 경계비로, 백두산의 귀속을 주장하던 청의 접반사가 백두산 남동방 4km, 해발 2,200m 지점에 일방적으로 세운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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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평책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7세기 후반부터 한쪽 당파가 권력을 얻으면 다른 파를 제거하는 등 붕당의 폐단이 극심해지자 1687년 박세채가 왕이 한쪽 세력에 치우치면 안된다는 탕평책을 제시하였다. <br/><br/>이후 영ㆍ정조 때 실현된 탕평책은 같은 당파내 결혼을 금지하기도 하였으나 큰 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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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역법 실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균역법은 16개월에 2포씩 내던 군포를 1포로 축소시킨 것으로, 군역으로 농민들의 생활이 힘들자 1750년 제정하였다. <br/><br/>군포가 줄자 토지세를 늘리고 어전세와 염세, 선박세를 국가가 징수하였다. 그러나 마을 단위로 군포 총량이 있어 여전히 골칫거리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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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예원 혁파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장예원은 조선 건국 이래 노비를 관장하여 오던 곳으로, 1764년 비총제의 실시로 업무가 줄어들었고 노비사송도 장예원 관리들의 수탈을 피해 한성부나 형조에 주로 청원하게 되어 폐지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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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전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784년(정조 8) 이승훈이 연경에서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귀국하였고, 권철신이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는 등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되었다.<br/><br/>권철신ㆍ정약전ㆍ정약종ㆍ정약용ㆍ이승훈 등이 조선교회 창설의 주동 인물이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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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 금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서학이란 조선 중기 이후 조선에 전래된 서양사상과 문물을 말하며, 좁은 의미에서는 천주교를 일컬었다. <br/><br/>서학은 조선시대 지배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유교와 상치되는 점이 많아서 사교(邪敎)로 인정되었다. 이 해 처음 서학이 금지 되고 지속적인 탄압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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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신유박해는 1801년 천주교도 300명이 처형된 사건을 일컫는다. 이는 천주교가 기존 사회질서와 대립하기도 했고, 특히 순조 즉위로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대대적인 남인 토벌의 하나로 남인들이 대다수였던 천주교도 색출작업을 벌였던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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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의 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833년 평안도에서 홍경래를 중심으로 기존 체제에 불만을 품은 농민과 몰락 양반들이 봉기하였다. <br/><br/>봉기군은 농민들의 호응으로 청천강에서 의주까지 10개 지역을 손에 넣었으나 정부군과의 격전으로 4개월 만에 진압되고 전체 3천 명 중 2천 명이 즉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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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세도정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813년(순조 13) 순조의 친정(親政)이 개시되어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국정의 최고실력자로 부상하였다.<br/>그는 국왕에게 위임을 받아 정권을 잡고 이때부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br/><br/>그 뒤 조만영에 의한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이어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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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박해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839년(헌종 5)에 일어난 제2차 천주교박해사건으로 기해사옥이라고도 한다. <br/><br/>이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천주교를 박해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시파인 안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탈취하려는 벽파 풍양 조씨가 일으킨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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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창시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동학이란 서학(천주교)에 반대하여 경주 사람 최제우에 의하여 창립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신흥종교이다. <br/><br/>최제우는 전통적인 유학자로 서학에 대처하여 민족의 주체성과 도덕관을 바로 세우고 국권을 다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풍수사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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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대동여지도는 조선 후기 김정호가 제작한 한국지도로 보물 제850호로 지정되어 있다. <br/><br/>1861년 김정호에 의해 초판이 발간되고, 1864년 재간되었다. 전국을 답사하여 실측한 것의 결정체로서 이는 현행의 지도와도 큰 차이가 없는 정확함을 갖추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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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봉기(임술민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삼남의 약 71개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으로, 중세사회 해체기에 사회모순이 전면화되는 상황에서 일어났다. <br/><br/>농민들의 조직적인 봉기로 일시에 민란은 확산되었고, 농민들은 중세적인 조세제도의 철폐와 통환의 혁파를 주장하였다. <br/><br/>이 임술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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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즉위ㆍ흥선대원군 집권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후기의 왕족ㆍ정치가로 이름은 이하응이며, 고종의 아버지이다. <br/>1843년 흥선군으로 봉해지고, 안동 김씨의 주류를 숙청하고 당파를 초월하여 인재를 등용하였으며, 중앙집권적인 정치기강을 수립한 공헌이 있다. <br/><br/>그러나 그의 무차별적인 쇄국정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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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셔먼호 사건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미국의 무역선 제너럴셔먼호가 1866년 대동강 유역에서 불탔다.<br/><br/>이는 제너럴셔먼호가 함부로 대동강 입구까지 와서 약탈과 폭행을 일삼고 무리한 요구를 하자, 평안감사 박규수 등이 화공으로 배를 불태우고 선원들을 처형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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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프랑스 군함이 병인박해 때 프랑스 선교사 사살 책임을 물으며 1866년 두 번이나 침입해 왔다. <br/><br/>이들은 처형배상,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점령하였다. 대원군의 통상거부와 지쳐 버린 프랑스군은 강화도의 중요서적과 귀중품을 약탈한 후 철수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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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미국 함대는 제너럴셔먼호 소각을 빌미로 조선과 통상관계를 맺기 위해 1871년 강화도를 침범하였다.<br/><br/>로저스 제독은 대원군이 교섭을 거절하자 수도와 가까운 강화도를 공격ㆍ점령했으나 결국 완강한 쇄국정책에 철수하고 말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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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요호 사건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운요호사건은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해협에 불법적으로 들어와 조선군과 전투를 벌인 일이다. <br/>근대 문물을 수용해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은 초지진전투의 책임을 조선에 전가하며 개항을 요구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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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운요호사건의 배상으로 1876년 조선은 일본과 굴욕적인 외교조약을 맺었다. 조약은 인천과 부산, 원산항의 강제개항, 일본의 치외법권 인정 등 불평등한 내용이다.<br/><br/>이에 따라 조선은 강제적으로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게 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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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임오군란은 굶주림과 신식군대와의 차별 속에서 구식군대가 봉기한 사건이다. 구식군인들은 선혜청을 뒤엎고, 일본공사관을 습격했다. 이 군란으로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하는 계기가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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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는 왕조의 내정을 새롭게 고치기 위해 우정국 개국 축하연회에서 개혁의 걸림돌이었던 사대당을 암살하고 정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br/><br/>이들은 고종에게 거짓으로 보고하고 사대당을 처치하여 진취적 정치를 폈지만 청군의 개입으로 실패로 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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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사건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러시아가 조선 침략의도를 보이자 영국은 이를 견제하려고 1885년 거문도를 점령하였다. 이후 러시아와 협정을 체결하자 영국군은 물러갔는데, 중재 역할을 했던 청(淸)이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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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894년부터 설치된 집강소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을 때 농민들의 각 마을 행정을 위한 지방자치기구를 말한다. <br/><br/>일시적으로 호남 일대 집강소에서 집강 1인과 서기ㆍ성찰ㆍ집사 등을 두어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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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88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 세력 강화를 획책한 정변이다.<br/><br/>청일전쟁 이후 러시아에 접근하는 친러파의 주동인 민비의 시해는 항일의병활동의 원인이 되었고 아관파천의 계기가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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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987년 8월 12일부터 1910년 10월 22일까지의 조선 왕조의 명칭으로, 갑신정변을 계기로 개화당은 국왕의 지위를 중국의 황제와 대등한 위치로 올리려 하였다. 대한제국은 한일합병조약이 강제 체결됨으로써 멸망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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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러시아의 강경한 태도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1904년~1905년에 만주, 한반도, 동해를 무대로 러시아와 전쟁을 일으켜 러시아를 제압하였다.<br/>러일전쟁의 결과는 포츠머스강화회담과 을사조약으로 이어져 우리 나라는 망국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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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을사보호조약은 1905년 일본이 조선의 외교를 대신한다는 내용이다. 을사오적이라 부르는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이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조선은 자주국가임을 상실한 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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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독립운동가 안중근은 1909년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 맹세한 뒤, 그 해 10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사살한 후 러시아경찰에 체포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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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압 아래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우리 나라와 일본과의 조약이 공포되었다. 이후 실질적인 통치권을 모두 일본에 빼앗겼고,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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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사 김곤(金稇)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개국 후 처음으로 김 곤이 안동부사로 부임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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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牧隱 李穡) 졸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고려 말의 문신ㆍ학자. 본관 한산(韓山). 영해(寧海) 출생.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 한산군 곡의 아들이다.<br/><br/>이제현의 문인으로,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난 때 임금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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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헌 유의손(檜軒 柳義孫)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 전주(全州). 자 효숙(孝叔). 호 회헌(檜軒)ㆍ농암(聾巖)이다.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 검열을 거쳐 감찰ㆍ수찬을 역임하고, 1436년(세종 18)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직제학에 올랐다. <br/><br/>문장이 뛰어났으며 안동의 기양서당(岐陽書堂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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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계 하위지(丹溪 河緯地)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 진주(晉州). 자 천장(天章)ㆍ중장(仲章). 호 단계(丹溪)ㆍ연풍(延風).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br/><br/>1435년(세종 17) 생원을 거쳐 1438년 식년문과에 장원을 하였다.1454년(단종 2) 부제학ㆍ예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예조참판에 올랐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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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죽당 배상지(栢竹堂 裵尙志) 졸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 흥해. 호 백죽당(柏竹堂). 사복시판사를 지냈으나, 정국이 혼란하여 변혁이 있을 것을 깨닫고 사직하였다. 고향에 돌아가 영가군, 즉 지금의 안동 금계촌에 은거하면서 집 주위에 백죽을 심었는데, 백죽당이라는 그의 아호는 여기서 유래하였다. <br/><br/>그 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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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 김자수(桑村 金自粹) 졸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 경주(慶州). 자는 순중(純仲). 호는 상촌(桑村). 통례문부사 오(珸)의 자로 부내 상촌(현 금곡동)에서 태어났다. <br/><br/>1374년(공민왕 23)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덕녕부주부가 되었다. 고려 말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관직을 버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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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공 김삼근(比安公 金三近)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안동(安東). 호는 사은(謝隱). 후(後) 안동김씨(安東金氏) 소산(素山) 입향조 혁(革)의 자. 1419(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음보로 비안현감을 역임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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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정 이계양(老松亭 李繼陽)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본관 진성(眞城). 호는 노송정(老松亭). 퇴계 이황의 조부로 퇴계선생이 이 집에서 났다하여 노송정종택을 퇴계태실이라 부르기도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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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암 권징(藤巖 權徵)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초기의 무신. 본관 안동(安東). 호는 등암(藤巖). 안동 부내에 살았다. 1447년(세종 29)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50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br/><br/>1467년(세조 13)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함길도병마평사로 참전하였을 때 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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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사 변계손(卞季孫)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초계(草溪). 1393년(태조 2) 문과에 급제했다. 관은 1404년 안동판관을 거쳐 세종조에 대사간에 이르렀다. <br/><br/>1404년 안동판관으로 부임해서 예안현에 마곡서당(磨谷書堂)을 짓고 사람들을 가르침으로써 학문을 진흥시켰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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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안동. 자는 취사(取斯). 호는 보백당(寶白堂). 시호는 정헌(定獻). 비안현감 삼근(三近)의 자.<br/><br/>1447년(세종 29)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김종직과 교유하였다. 연산군 때 대사간에 있으면서 척신들의 비리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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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계 옥고(凝溪 玉沽) 졸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의령(宜寧). 자는 대수(待售). 호는 응계(凝溪). 김해(金海) 출생이다.<br/><br/>길재의 문인으로 생원시를 거쳐 1399년(정종 1) 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했다. 1420년(세종 2) 집현전 설치와 함께 재행이 있다 하여 홍문관교리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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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사 안완경(安完慶)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호는 정암(貞菴)이다. 1423년(세종 5)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안동부사와 병조참의 좌부승지 등을 거쳤다. <br/><br/>1451년(문종 1) 대사헌이 되고, 이듬해 주문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와서, 1453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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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 이종준(慵齋 李宗準) 출생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전기의 문신ㆍ학자. 본관 경주(慶州). 자는 중균(仲鈞). 호는 용재(慵齋)ㆍ용헌(慵軒). 서후 출생. 김종직의 문인이다.<br/><br/>1485년(성종 16)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부령으로 유배되어가던 도중 단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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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부사 김담(金淡) 부임 / 유교문화>지역연표 / 한국국학진흥원조선 전기의 천문학자. 본관 예안(禮安). 자는 거원(巨源). 호는 무송헌(撫松軒). 시호는 문절(文節). 영주 출생이다.<br/><br/>1435년(세종 17) 식년문과에 급제했다. 왕명으로 이순지와 함께 『회회력』을 참고하여 『칠정산외편』을 저술하였는데, 이것은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