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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목계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친목계(親睦稧)는 범례에 의하면, 입계금(入稧金)은 10원(圓)이며, 계의 창설 취지는 애경(哀慶)을 상조하기 위함이며, 상조액(相助額)은 1인당 탁주(濁酒) 한 말이다. 계금(稧金)의 책임은 유사(有司)에게 있으며, 상조품(相助品)은 일이 있는 전날까지 완납(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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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문3(김창집,계초)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계문(啓文)은 18세기 전반에 형조좌랑(刑曹佐郞) 심정붕(沈廷鵬)이 작성한 것으로, 영의정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의 계문에 대한 죄인의 처리를 국왕으로부터 계하(啓下)를 받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김창집의 계문 내용은 죄인 고유대(高有大)와 동모(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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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4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이정명(李庭蓂), 이정덕(李庭德)이 김치범(金致範)과 산송(山訟)을 벌인 것으로 안동부사에게 올린 소지(所志)의 초본으로 보인다. 초본으로 보는 까닭은 산송(山訟)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적고 있으나, 보통 관에 소지를 제출할 때 쓰는 양식으로 작성되어 있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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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6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신축년 3월에 안동부(安東府)내 법흥리(法興里)의 화민(化民) 유학(幼學) 이종영(李鍾永) 등이 안동부사에게 청원한 소지(所志)로 총 3매로 구성되어 있다. 즉, 도솔원(兜率院) 선산(先山)인 증조부모의 분산(墳山) 뒤에 다른 사람이 투장(偸葬)한 일을 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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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6-1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경자년 10월에 안동부 법흥리(法興里)에 사는 화민(化民) 유학(幼學) 이종영(李鍾永) 등이 안동부사에게 청원한 소지(所志)이다. 도솔원(兜率院) 선산(先山)인 증조부모의 분산(墳山)을 50여년 수호(守護)해왔는데, 다른 사람이 밤을 틈타 선산의 봉분에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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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채점지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안동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이시항(李時沆, 32세)이 복시 초장에 응시하여 받은 강서채점지(講書採點紙)이다. 그의 성적을 살펴보면, 주역(周易) 약(略), 서전(書傳) 통(通), 시전(詩傳) 통(通), 논어(論語) 순통(純通), 맹자(孟子) 순통(純通),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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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권(책문, 이재수)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이재수(李梓秀)의 시권(試券)으로, 시부송책(詩賦頌策)의 과거 답안지이다. 과거 답안지는 합격자에 한해 돌려주는데, 이것은 교지와 함께 가문의 영광스런 증표이다. 시권에는 우측에는 수험번호 및 신원(身元) 사항, 그리고 시험문제(試題)가 쓰여진다. 그리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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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첩(유향좌수)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안동도호부에서 전(前) 지평(持平) 이주정(李周禎)을 유향좌수로 차정(差定)하기 위한 차정첩이다. 유향소는 조선시대 지방 군현(郡縣)에서의 수령(守令)을 보좌한 자문기관(諮問機關)으로 향소(鄕所) · 향사당(鄕射堂) · 풍헌당(風憲堂) · 집헌당(執憲堂) · 유향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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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1(준호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안동부(安東府) 용흥리(龍興里)에 거주하는통정대부 전 행사헌부지평 이주정(李周禎, 1750∼1818)에게 1813년(순조 13)에 발급한 준호구이다. 이주정은 당시 64세였으며, 처는 숙인(淑人) 조씨로 을축생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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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2(준호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안동부(安東府) 용흥리(龍興里)에 거주하는 제6통 사노(私奴) 옥걸(玉乞)의 통내(統內) 제2호인 통덕랑(通德郞) 이원복(李元馥, 고성이씨, 44세)의 준호구이다. 그의 부친은 행병조정랑(行兵曹正郞)을 지낸 이시항(李時沆)이며, 봉모(奉母)는 67세로 창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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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3(호구단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안동부(安東府) 용흥리(龍興里)에 사는 유학(幼學) 이종영(李鍾永, 44세, 1844년생, 본관-固城)이 1887년에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호구단자란 각호의 호구상황을 자세히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는 문서로 3년마다 호구조사가 실시될 때 각 호의 호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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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남빈흥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3권 1책으로 된 목판본으로, 1796년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간행했다. ‘빈흥’이란 과거를 시행하여 인재를 등용함을 뜻하는 말로, 빈흥록은 각 지방에서 향시(鄕試)를 본 내용·방목 등 일체의 사항을 적은 것이다. 1792년 3월 3일에 정조가 전교(傳敎)를 내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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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2 / 유교문화>유물 / 미상회문(回文)이란 본래 여럿이 차례로 돌려보도록 쓴 글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서원의 향례(享禮)를 위하여 가을에 날[中丁日]을 정하여 서원의 재(齋)로 오도록 서원 일을 총괄하는 도유사(都有司) 명의(名義)로 보낸 글을 말한다. 이 회문은 제목, 회문의 내용, 문서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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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문1 / 유교문화>유물 / 미상회문(回文)이란 본래 여럿이 차례로 돌려보도록 쓴 글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서원의 향례(享禮)를 위하여 가을에 날[中丁日]을 정하여 서원의 재(齋)로 오도록 서원일을 총괄하고 있는 도유사(都有司) 명의(名義)로 보낸 글을 말한다. 이 회문은 제목, 회문의 내용,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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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일제시기의 양안(量案)으로 전안(田案)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동명(洞名), 지번(地番), 지목(地目), 지적(地積), 지가(地價), 원명(員名) 등이 보이나, 원래 조선시대의 양안은 전답(田畓)의 소재 · 위치, 전품(田品)의 등급 · 형상, 결부수(結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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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시용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사제(賜祭)란 임금이 죽은 신하(臣下)에게 제사(祭祀)를 내려 주는 것을 말한다. 이 자료는 18세기 후반에 안동권씨 동정공파 화원군 종중 제사에 제수물품을 장만한 지출명세서이다. 제수물품으로는 백미(白米), 가우어(加優魚), 조곽(造藿), 사기(沙器), 소 한 마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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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군(권희학)영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경북 도유형문화재 281호로, 안동권씨 동정공파 화원군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영정이다. 가모당 권희학 선생의 영정은 원래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중건된 봉강영당에 봉안되어 있었다. 권희학(權喜學, 1672∼1742)은 조선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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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군영정봉안시도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경북 도유형문화재 281호인 화원군영정(花原君影幀)을 봉강영당에 봉안할 때 참석한 사람들의 명부이다. 화원군영정(花原君影幀)은 본래 안동시 남선면 신석리에 중건한 봉강영당에 봉안되어 있다가 지금은 국학진흥원에 소장되어 있다. 권희학(權喜學, 1672∼17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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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1 / 유교문화>유물 / 미상고목은 각사의 서리(胥吏) 및 향리(鄕吏) 등 하리(下吏)가 상관에게 공적인 일을 알리거나 문안(問安)할 때 올리는 보고문서이다. 이 자료는 서원(書員) 이조억(李祚億)이 중류재(中霤祭)의 거행과 관련하여 6월 20일부터 보고한 것으로, 총 40매가 점련된 문서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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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표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선략장군(宣略將軍) 권덕린(權德獜)에게 부사직(副司直)에 해당하는 겨울철 녹(祿)을 받아가라는 요표(料標)로, 미(米) 1석 2두(斗), 태(太) 8두(斗)을 광흥창에서 인수하도록 한 것이다. 조선시대 이조와 병조에서 왕명을 받아 관리에게 녹과(祿科)를 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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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책1(영묘조기유사패)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화원군(花原君)에 봉해진 권희학(權喜學, 1672∼1742)이 1729년(영조 5)에 안의현(安義縣) 소재 사패(賜牌) 전답을 기록한 것이다. 이 자료는 사패를 받기 위해 올린 상언(上言)과 관문(關文) 등의 각종 공문서, 그리고 해당 전답 추수기 등을 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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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 / 유교문화>유물 / 미상전령(傳令)은 상급관원이나 하급관원이나 민(民)에게 발급한 문서로, 어떤 직책에 임명하거나 혹은 명령을 내릴 때 주로 사용하는 문서 양식이다. 이 전령은 도사(都事)가 전첨사(前僉使) 권희학(權喜學)에게 본영(本營)의 군관으로 임명하니 즉시 현신(現身)하라고 보낸 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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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어대서당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어대서당(魚臺書堂)의 기문(記文)으로 무안박씨 고은문고 소장 고문서의 하나이다. 먼저 이(李) 문정공(文靖公)이 평상시에 어대(魚臺)의 경치를 감상하였는데, 문정공이 돌아간 후 대(臺)는 화산씨(花山氏)의 소유가 되었다는 고사를 인용하면서, 옛날에도 주(州) 마다 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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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동유록(同遊錄)으로, 기해년 4월에 특정 지역을 유람(遊覽)한 유림(儒林)의 명단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함께 동유(同遊)한 사람은 조승기(趙承基), 이중린(李中麟), 이중봉(李中鳳), 유회식(柳晦植), 유연구(柳淵龜), 서효병(徐孝秉), 박용찬(朴鎔燦)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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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추시청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조선 중기의 무신인 박의장(朴毅長, 1555∼1615)에게 시호(諡號)를 내려달라는 청원서이다. 추시(追諡), 즉 시호(諡號)를 내려받는 일의 절차는, 이와 같이 청원서를 올린 후 사간원과 사헌부의 서경완의를 통하여 추시교지를 받음으로써 일단락되게 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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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정도 / 유교문화>유물 / 미상승경도, 승정도, 종정도 등으로 불리며, “벼슬살이 하는 도표”라는 뜻이다. 서울 중심의 상류계층의 젊은이들이나 부녀자들 사이에서 정초에 행해졌던 놀이이지만, 연초에 자식이나 남편이 높은 관직에 오르기를 바랬던 부녀자들의 소망, 면학을 통해 높은 관직에 오르고 입신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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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지 / 유교문화>유물 / 미상경상도 안동부의 읍지로 8권 4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영가지는 선조 말년에 완성된 안동지역의 정치, 행정, 경제, 사회, 교통, 국방, 인물 등 역사적 변천사항과 사회적 문화상황을 기술한 사찬 읍지이다. 영가(永嘉)는 안동의 옛 이름이다. 1602년 권기(權紀)가 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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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패(이주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녹패(祿牌)는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 이주정의 녹패로서, 호초(胡椒) 한 말을 지급받을 수 있는 녹봉인수증이다. 대계집(大溪集)을 지은 이주정(李周禎, 1750∼1818)의 자는 한백(翰伯), 본관은 고성(固城)이다. 팔회당(八懷堂) 시항(時沆)의 증손으로 이상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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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사군자四君子, 강벽원姜璧元(1859~1941) 164×320㎝ 강벽원(姜璧元, 1859~1941)은 시, 그림, 글씨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의 자는 윤화(允和), 호는 소우(小愚), 만학당(晩學堂)이다. 특히 추사체의 기풍이 배어나는 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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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구(김필영), 1780)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안동현(安東縣) 가곡리(佳谷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필형(金弼衡)에게 1780년(정조 4)에 발급한 준호구이다. 김필형은 당시 56세로 1725년생(乙巳生)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것으로 관에 보관중인 호적대장에서 해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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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구(김필영), 1792)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안동부(安東府) 가곡리(佳谷里)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김필형(金弼衡)에게 1792년(정조 17)에 발급한 준호구이다. 김필형은 당시 68세로 1725년생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이나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것으로 관에 보관중인 호적대장에서 해당 호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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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송장보(송보, 이상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결송장보(決訟場補)는 조선중기 이후 예(禮)에 대한 시비를 막기 위하여 표준으로 만든 책. 처음 이상정(李象靖)이 예설에 대한 이설이 많이 생기고, 복제문제로 당화(黨禍)마저 일어남을 보고 『가례』를 근간으로 미비된 부분을 보충하고 시비가 될 만한 점을 가려서 송나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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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륜행실 부 효낭전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륜행실』은 조선 전기 문신 조신(曺伸)이 유교윤리 가운데 장유(長幼)·붕우(朋友)의 이륜을 장려하기 위해 만든 목판본이다. 위의 책은 그 필사본으로 부록에 효랑전(孝娘傳)을 덧붙인 것으로, 퇴계문집 권 23의 뒷면에 베껴 쓴 필사본이다. 본래 이 책의 편찬은 김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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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문헌록(1961) / 유교문화>유물 / 미상권상로(權相老)가 1961년에 지은 1책으로 된 안동권씨 관련 사적 및 세계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각종 축문(祝文), 사적(史蹟), 문헌목록을 세대별로 수록하는 한편, 안동권씨 선조의 역사를 상세하게 기술하였다는 점에서 유구한 안동권씨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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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원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권용식(權用植) 등 총 250명의 계원명단을 기록한 계원록(契員錄)이다. 이 자료는 이 계원 명단 이외에 다른 자료가 없어서, 계의 구체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 자료는 오른쪽 윗 부분이 훼손되었으며, 기재양식은 10명마다 +자를 표기하여 계원의 인원수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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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유용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동중유용기(洞中流用記)는 안동권씨 수곡문중의 소장자료로서, 조선후기의 어느 신축년 한 마을의 호포(戶布) 수납 및 마을의 공동기금의 사용과 관련된 장부이다. 장부에 의하면, 2월 호포(戶布)를 거둘 때 사용한 액수는 209냥(兩) 6전(錢), 3월 이후 사용한 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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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전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양안(量案)은 전안(田案)이라고도 하는데, 전답(田畓)의 소재 ·위치, 전품(田品)의 등급 ·형상, 결부수(結負數:면적), 자호(字號) 등을 기록한 것으로 양전(量田, 토지 측량)에 의해 작성된 문서를 말한다. 이 양전하기(量田下記)는 양전과 관련된 자료로서, 신축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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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안동권씨 수곡문중의 한 인물이 안동지역 등을 유람하면서 그 정경을 읊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산천 경계를 유람한다는 것은 선비사회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한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나아가 19세기 조선 지식인 사회에서 금강산 기행은 하나의 열병처럼 번져 있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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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계도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자료는 접계도록(接稧都錄)으로 계(契) 소유 전답목록인 전답안(田畓案)과 곡재기(穀在記), 춘추의 수확, 취회(聚會)시의 입기(入記) 등으로 이루어진 문서이다. 전답안에 의하면, 이 모임은 총 1,114평의 전답을 소유하여 6명에게 소작(小作)을 주었음을 알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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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부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창고부(倉庫簿)는 안동권씨 수곡문중의 소장자료의 하나로서 조선후기 기해년부터 병오년까지 8년간의 창고 장부이다. 영관작(營官作), 창납미(倉納), 민유미(民留), 경사작제(京司作除) 등 기재된 내용으로 보아 민가의 창고가 아닌 관용 창고에서 사용한 것임을 알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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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포성책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호포성책은 1898년(무술년) 2월에 안동권씨 수곡문중에서 작성된 자료이다. 1871년(고종 8) 군정(軍政)의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종래 군역제의 골격을 유지한 채 신분에 관계없이 호마다 호포전(戶布錢)을 거두는 호포법(戶布法)을 실시하였다. 다만, 양반들의 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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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발괄) / 유교문화>유물 / 미상권진(權縉), 권집(權緝), 권보 등이 을해년에 성주(城主)에게 올린 청원서인 발괄[白活]이다. 소지는 재산분쟁, 조세감면, 상해, 손해배상, 원한호소, 전답문권 재발급 신청 등에 관한 것이 많았다. 서민들이 많이 사용하는 문서였으므로 보통 이두문으로 작성되었고, 당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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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행등소지(연명상서) / 유교문화>유물 / 미상풍산현(豊山縣)에 살던 유학(幼學) 김시행(金時行) 등이 정미년 7월에 풍산현감에게 제출한 소지(所志)의 일종인 연명상서(聯名上書)이다. 조선후기 소지(所志)는 재산분쟁, 조세감면, 상해, 손해배상, 원한호소, 전답문권 재발급 신청 등에 관한 것이 많았는데, 이 자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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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지 / 유교문화>유물 / 미상풍산현(豊山縣) 가곡리(佳谷里)에 사는 사노(私奴) 유명손(劉明孫)이 사도주(使道主) 즉, 관찰사(觀察使)에게 제출한 입지(立旨)이다. 유명손은 대대로 서반가(西班家)의 노자(奴子)였는데, 용궁현(龍宮縣) 지보(知保)에 사는 조대천(趙大千)이라는 역리(驛吏)가 역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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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남과방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1392년부터 1906년에 이르는 영남지역의 문무과 및 생원 진사 시험의 합격자‚ 그리고 음서로 관직에 나아간 자의 명단을 기록한 책. 서문을 쓴 권영국(權寧國)은 자신의 아들 권오환과 이재호가 ‘소화지방(小華之邦)’에 방목이 전하지 않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자료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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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황 / 유교문화>유물 / 미상생황은 악기 재료에 따른 분류법에 의하면 포부(匏部 :바가지로 만드는 악기)에 속한다. 오죽(烏竹)으로 관대를 만드는데 각각 길이가 다르게 하여 여러 높이의 음이 나도록 했으며, 각 관대의 아랫부분에는 쇠청(reed)을 붙여 소리가 울리게 하였다. 바가지에는 관의 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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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심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호가 추사(秋史) 혹은 완당(阮堂)인 김정희는 조선후기 고증학의 대가이다. 또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여러 서체를 깊이 연구하고 습득하여 나름대로 독특하고 새로운 서체의 지평을 열었는데, 이를 특별히 ‘추사체(秋史體)’라고 한다. ‘매심사’는 ‘매화의 마음을 닮은 사람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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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묵 / 유교문화>유물 / 미상한호(韓濩, 1543~1605)의 글씨를 모은 필첩이다. 한호는 조선시대의 서예가로서 호는 석봉(石峯)이며,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한 후 가평군수와 흡곡현령, 존숭도감서사관(尊崇都監書寫官) 등의 벼슬을 거쳤다. 예로부터 명필의 대명사로, 중국의 서체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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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서법 / 유교문화>유물 / 미상한호(韓濩, 1543~1605)의 여러 글씨를 모아서 만든 필첩이다. 한호는 조선시대의 서예가로서 호는 석봉(石峯)이며, 1567년(명종 22) 진사시에 합격한 후 가평군수와 흡곡현령, 존숭도감서사관(尊崇都監書寫官) 등의 벼슬을 거쳤다. 예로부터 명필의 대명사로,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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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유묵 / 유교문화>유물 / 미상월천 조목(趙穆, 1524~1606)의 글씨를 모은 필첩이다. 조목은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호는 월천(月川) 또는 동고(東皐)라고 한다. 퇴계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퇴계와 함께 도산서원에 배향된 인물이다.위 자료는 멀리서 온 편지를 받고 느낀 소회를 읊은 시 등이며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