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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잠 범란계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소수서원 강학당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범준(范浚)의 심잠(心箴)과 주자(朱子)의 경재잠(敬齋箴)이 적혀 있다. 1542년(중종 37)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해에 학사를 옮겨 백운동서원을 설립한 것이 소수서원의 시초이다.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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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흥야매잠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소수서원 강학당에 걸려있는 현판으로 진백(陳栢)의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서원에서는 매일 아침 백록동서원규(白鹿洞書院規)·경재잠(敬齋箴)·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차례대로 읽는 것이 관례라고 이가순(李家淳)이 밝히고 있다. 1542년(중종 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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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소수서원 강학당에 걸려있는 현판으로 행군수(行郡守) 주세붕이 1546년(명종 1)에 소수서원의 전신인 백운동서원에 발급한 입안(立案)이다. 1542년(중종 37) 풍기 군수 주세붕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사묘를 세우고 다음해에 학사를 옮겨 백운동서원을 설립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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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공묘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소수서원 경내에 있는 사당인 문성공묘(文成公廟)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문성공묘에는 문성공 안향 선생을 주향으로,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 문경공( 文敬公) 안보(安輔), 문민공(文敏公) 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함께 봉안하고 있다. 문성공묘는 정면 3칸, 측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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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단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이기륭(李基隆)이 쓴 금성단기(錦城壇記)이다. 금성단을 설치하고 나서 이것을 설치하게 된 경위에 대해 적을 기문이다. 이 기문은 기축년(己丑年)에 중수(重修)할 때 추각(追刻)한 것이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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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단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김석희(金奭熙)가 쓴 금성단중수기(錦城壇重修記)이다. 금성단을 설치하게 된 유래와 중수한 일에 대해 적었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 세종의 6남.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의 아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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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단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있는 이기륭(李基隆)이 쓴 금성단기(錦城壇記)이다. 금성단을 설치하고 나서 이것을 설치하게 된 경위에 대해 적을 기문이다. 이 기문은 이기륭의 후손인 이순춘(李橓春)이 쓴 글씨로 되어 있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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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단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김중배(金重培)가 1688년(숙종 14)에 쓴 금성단중수기(錦城壇重修記)이다. 금성단을 중수하게 된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 세종의 6남. 단종의 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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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단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있는 권헌동(權憲東)이 쓴 금성단중수기(錦城壇重修記)이다. 금성단을 세우게 된 일과 중수하게 된 경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 세종의 6남.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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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단강당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황필락(黃必樂)이 쓴 금성단강당중수기(錦城壇講堂重修記)이다. 금성단을 설치하게 된 유래와 금성단강당(錦城壇講堂)을 중수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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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조덕상(趙德常)이 지은 7언절구의 시이다. 단종의 죽음을 애도하고 금성단에서의 쓸쓸한 풍경을 읊고 있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 세종의 6남.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의 아우)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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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주고부은행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조덕상(趙德常)이 지은 흥주고부은행수기(興州故府銀杏樹記)이다.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고 순흥이 폐부가 되자 은행나무도 말라죽고, 순흥이 승격되기 얼마 전에 갑자기 은행나무가 살아났다고 한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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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시주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이상우(李相佑)가 쓴 글이다. 단종 복위를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의 충의정신을 기리고 있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 세종의 6남.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의 아우)과 순흥부사 이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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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단수리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성단(錦城壇)에 걸려 있는 서병극(徐丙極)이 1984년에 쓴 금성단수리기(錦城壇修理記)이다. 금성단의 유래와 금성단을 수리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금성단은 조선 세조 때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화를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 : 세종의 6남. 단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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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정려각 / 유교문화>유물 / 미상조선 중기 순흥 지방의 평민으로 충성과 효도 및 행실 등에서 뛰어났던 배순(裵純)을 기리는 배순정려각(裵純旌閭閣) 편액이다. 배순은 조선 명종~광해군 3대에 걸쳐 생존했던 인물로 소수서원 인근 마을인 배점리에서 철을 만드는 장인이었다. 천성이 순박하고 근면하여 평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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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현정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고려말 안석(安碩)과 그의 세 아들 축(軸)·보(輔)·집(輯)의 네 인물이 사용하였다고 전해지는 우물인 사현정(四賢井)에 대해 그들의 후손인 안성연(安性淵)이 쓴 기문이다. 이 일가의 충효(忠孝)와 友悌(우제), 청백리의 기풍을 칭찬하고 있으며, 그 옛 우물터에 비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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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현정각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1966년에 후손 안학준(安學濬)이 쓴 사현정각중수기(四賢井閣重修記)이다. 고려 말 안석(安碩)과 그의 세 아들 축(軸)·보(輔)·집(輯)의 네 인물이 사용하였다고 전해지는 우물인 사현정(四賢井)의 유래와 사현정각(四賢井閣)의 중수 경위에 대해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77368
사현정각 / 유교문화>유물 / 미상사현정각(四賢井閣)에 걸려있는 편액이다. 사현정(四賢井)은 고려 말 안석(安碩)과 그의 세 아들 축(軸)·보(輔)·집(輯)의 네 인물이 사용하였다고 전해지는 우물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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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현정각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1966년에 후손 안승규(安承奎)가 쓴 사현정각중수기(四賢井閣重修記)이다. 고려 말 안석(安碩)과 그의 세 아들 축(軸)·보(輔)·집(輯)의 네 인물이 사용하였다고 전해지는 우물인 사현정(四賢井)의 유래와 사현정각(四賢井閣)의 중수 경위에 대해 밝히고 있다.출처 : 유교넷 -
77370
구고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구고서원(九皐書院)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구고서원은 달성서씨 순흥파의 시조가 되는 돈암(遯菴)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을 모신 서원이다. 돈암은 일찍이 세종 때 사마에 올라 성균관에서 독서하던 중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돈암’이라고 호출처 : 유교넷 -
77371
사물잠 / 유교문화>유물 / 미상구고서원(九皐書院)에 걸려있는 정이(程頤)가 지은 「사물잠(四勿箴)」이다. 「사물잠」은 시(視)·청(聽)·언(言)·동(動)을 예(禮)에 맞게 행동하라는 잠문이다. 구고서원은 달성서씨 순흥파의 시조가 되는 돈암(遯菴)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을 모신 서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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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흥야매잠 / 유교문화>유물 / 미상구고서원(九皐書院)에 걸려 있는 진백(陳栢)이 지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문에 정진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잠문이다. 구고서원은 달성서씨 순흥파의 시조가 되는 돈암(遯菴)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을 모신 서원이다. 돈암은 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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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잠 / 유교문화>유물 / 미상구고서원(九皐書院)에 걸려있는 범준(范浚)의 「심잠(心箴)」이다. 마음을 경계하는 내용의 잠문이다. 구고서원은 달성서씨 순흥파의 시조가 되는 돈암(遯菴)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을 모신 서원이다. 돈암은 일찍이 세종 때 사마에 올라 성균관에서 독서하던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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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 / 유교문화>유물 / 미상달성서씨 순흥파의 시조인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이 은거했던 돈암정(遯菴亭)의 편액이다. 서한정은 일찍이 세종 때 사마에 올라 성균관에서 독서하던 중 계유정란이 일어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돈암’이라고 호(號)하면서 시를 짓기를 “시국이 이 지경이 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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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돈암정(遯菴亭)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이다. ‘서쪽 산의 동굴에서 이는 맑은 바람[西峀淸風]’으로 돈암정에 같이 걸려 있는 ‘동해의 밝은 달[東海明月]’과 대(對)를 이루고 있다. 돈암정은 달성서씨 순흥파의 시조인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이 은거했던 곳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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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정중건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돈암정(遯菴亭)에 걸려 있는 이중철(李中轍)이 쓴 둔암정중건기(遯菴亭重建記)이다. 돈암정의 유래와 돈암정을 중건하게 된 경위에 대해 서술하였다. 돈암정은 달성서씨 순흥파의 시조인 서한정(徐翰廷, 1407~1490)이 은거했던 곳이다. 서한정은 일찍이 세종 때 사마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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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돈암신거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돈암정(遯菴亭)에 걸려 있는 회봉(檜峯) 권득평(權得平)이 돈암정에 대해 읊은 ‘정돈암신거(呈遯菴新居)’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네 봄날 개어 제비 돌아오고, 덕 있는 사람은 흰 구름 사이에 집을 지었네. 띠로 얽은 처마 낮엔 고요하여 책을 펼쳐 두루 읽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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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강서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강서당(道岡書堂)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도강서당은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며 영주 지역 대표적 유학자였던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 1867~1952)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김동진은 본관은 선성, 자는 국경(國卿), 호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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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1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강서당(道岡書堂)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이다. 내용은 “소나무 아래에서 책을 보며 소나무 뿌리를 먹네.”이다. 도강서당은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며 영주 지역 대표적 유학자였던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 1867~1952)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한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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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2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강서당(道岡書堂)에 걸려 있는 주련(柱聯)이다. 내용은 “시원한 솔바람 소리에 꿈속의 혼 얽혀 있네.”이다. 도강서당은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며 영주 지역 대표적 유학자였던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 1867~1952)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한말 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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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모당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첨모당(瞻慕堂)에 걸려 있는 김약련(金若鍊)이 쓴 첨모당기(瞻慕堂記)이다. 조선시대 세종 때 통례원 봉례(奉禮)를 지낸 황전(黃躔)이 지방의 유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하여 지은 첨모당의 유래에 대해 적었다. 첨모당은 조선시대 세종 때 통례원 봉례(奉禮)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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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모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첨모당(瞻慕堂)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첨모당은 조선시대 세종 때 통례원 봉례(奉禮)를 지낸 황전(黃躔, 1391~1429)이 지방의 유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하여 지은 정사로, 선조들의 학덕과 업적을 우러러 사모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는 1458년(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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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모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첨모정(瞻慕亭)에 걸려 있는 편액으로 1978년 김종호(金宗鎬)가 쓴 것이다. 첨모정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丹山面) 병산리(屛山里)에 있으며, 첨모당(瞻慕堂)의 주인을 기려 후손들이 종문의 단합과 풍류를 위해 지은 정자이다. 첨모의 뜻이 우러러 사모함이니, 이 역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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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모정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첨모정(瞻慕亭)에 걸려 있는 이가원이 1977년에 쓴 첨모정기(瞻慕亭記)이다. 첨모정을 짓게 된 경위에 대해 설명하였다. 첨모정은 경북 영주시 단산면(丹山面) 병산리(屛山里)에 있으며 첨모당(瞻慕堂)의 주인을 기려 후손들이 종문의 단합과 풍류를 위해 지은 정자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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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산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의산서원(義山書院)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의산서원은 성오당(省吾堂) 이개립(李介立, 1544~1625)을 모신 서원이다. 이개립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중(大中), 호는 성오대(省吾臺)이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준(竣)의 아들이고 김성일(金誠一)의 문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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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졸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의산서원(義山書院)의 건물 중 하나인 양졸당(養拙堂)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의산서원은 성오당(省吾堂) 이개립(李介立, 1544~1625)을 모신 서원이다. 이개립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중(大中), 호는 성오대(省吾臺)이다. 어모장군(禦侮將軍) 준(竣)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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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염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피염정(避炎亭)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피염정은 무더운 한여름의 더위를 피하여 쉴만한 정자라는 뜻으로 이희음(李希音, 1579~1641)이 지은 것이다. 이희음은 성오당 이개립의 2남으로, 자는 여순(汝純)이고, 피염정을 짓고는 이 정자 이름을 자호로 삼았다. 1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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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염정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피염정(避炎亭)에 걸려 있는 곽진이 지은 피염정기(避炎亭記)이다. 이희음(李希音, 1579~1641)이 피염정을 짓게 된 경위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희음은 성오당 이개립의 2남으로, 자는 여순(汝純)이고, 피염정을 짓고는 이 정자 이름을 자호로 삼았다. 1603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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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인동장씨 종택에 있는 추원재(追遠齋)의 편액이다. 추원(追遠)은 조상을 추모한다는 뜻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花岐) 1리 꽃계마을에 자리 잡은 인동장씨종택은 조선 초의 선비 장응신(張膺臣, 1490~?)의 옛 집이다. 장응신은 연복군(시호, 안양공) 장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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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재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인동장씨종택에 있는 추원재(追遠齋)에 걸려 있는 추원재기(追遠齋記)이다. 추원재의 유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추원(追遠)은 조상을 추모한다는 뜻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花岐) 1리 꽃계마을에 자리 잡은 인동장씨종택은 조선 초의 선비 장응신(張膺臣, 1490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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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계정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인동장씨종택에 있는 화계정사(花溪精舍)의 편액이다. 이 편액은 삼여재 김태균이 쓴 글씨이다. 경상북도영주시 장수면 화기(花岐) 1리 꽃계마을에 자리 잡은 인동장씨종택은 조선 초의 선비 장응신(張膺臣, 1490~?)의 옛 집이다. 장응신은 연복군(시호, 안양공) 장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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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인동장씨종택에 있는 경모문(景慕門)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화기(花岐) 1리 꽃계마을에 자리 잡은 인동장씨종택은 조선 초의 선비 (張膺臣, 1490~?)의 옛 집이다. 장응신은 연복군(시호, 안양공) 장말손(張末孫, 1431~?)의 손자로 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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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설헌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송설헌(松雪軒)에 걸려 있는 권세윤(權世淵)이 1911년에 지은 송설헌기(松雪軒記)이다. 송설헌의 유래와 송설헌 주인의 인품을 칭찬하고 있다. 푸르고 푸르면서 우뚝한 것이 소나무이고, 희면서도 차가운 것이 눈[雪]이다. 솔에 눈이 지나가면 곧고 굳은 절조가 드러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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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설헌중건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송설헌(松雪軒)에 걸려 있는 송설헌중건운(松雪軒重建韻)으로, 송설헌을 중건하고 나서 1899년에 후손 장복안(張復顔)·이만규·유응목(柳膺睦), 후손 장경문(張敬文)이 지은 7언율시 4수가 실려 있다. 송설헌은 인동장씨 장말손이 예천 땅 화장(花庄)에 터전을 마련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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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설헌 / 유교문화>유물 / 미상송설헌(松雪軒)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송설헌은 인동장씨 장말손이 예천 땅 화장(花庄)에 터전을 마련하고 거처를 지으면서 붙인 당호이다. 연복군 장말손은 조선 세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시애(李施愛)의 반란에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慨功臣) 2등에 책록, 연복군에 봉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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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 / 유교문화>유물 / 미상녹야당(鹿野堂)에 걸려 있는 송계흠(宋啓欽)이 쓴 녹야당에 대한 후지(後識)이다. 녹야당은 장진이 낙향하여 지은 서재 이름이다. 장진은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유학하였다가 얼마 안 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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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야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녹야당(鹿野堂)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녹야당은 장진이 낙향하여 지은 서재 이름이다. 장진은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유학하였다가 얼마 안 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산수간에 숨어 남은 생을 유유자적하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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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해우당(海愚堂)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무섬)마을에 자리 잡은 해우당은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지은 집이다. 김낙풍은 자가 성발(聖撥), 호는 해우당 또는 대은(大隱)이며, 영각(永珏)의 아들이다. 흥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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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죽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만죽재(晩竹齋)에 걸려 있는 석운(石雲) 박기양(朴箕陽, 1856~1932)이 쓴 편액이다. 만죽재는 박수(1641~1709)가 1666년에 세운 집이다. 박수의 자는 문중(文仲)이고, 충의위(忠義衛)를 지냈다. 환학암 박경안의 아들이다. 만죽재 현판 글씨를 쓴 박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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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서당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난고서당(蘭皐書堂)에 걸려 있는 이천상(李天相)이 1701년(숙종 27)에 지은 난고서당기(蘭皐書堂記)이다. 난고서당이 자리 잡은 주변 경관을 먼저 묘사한 뒤, 난고서당이 건립된 유래와 후인들이 학문에 힘쓸 것을 권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현판은 1977년 판각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