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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7451

    심원당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심원당(心遠堂)에 걸려 있는 유희지(柳熙之)가 지은 심원당기(心遠堂記)이다. 심원당 이름의 유래와 심원당 주변의 경관 등을 서술하고 있다. 심원당이란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의 “사람들 사는 틈에 초가집 짓고 살아도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도다.
    출처 : 유교넷
  • 77452

    심원당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심원당(心遠堂)에 걸려 있는 김상온(金相溫)이 지은 심원당중수기(心遠堂重修記)이다. 심원당 주변의 경관과 심원당을 중수하게 된 경위 등을 서술하고 있다. 심원당이란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의 “사람들 사는 틈에 초가집 짓고 살아도 수레와 말의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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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53

    심원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심원당(心遠堂)에 걸려 있는 100×36㎝ 크기의 해서체 편액이다. 심원당이란 이름은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의 “사람들 사는 틈에 초가집 짓고 살아도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이 없도다. 묻노니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마음[心]이 머니[遠] 머무는 땅
    출처 : 유교넷
  • 77454

    구서고택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창원황씨종가에 걸려있는 구서고택(龜西古宅)이라는 편액이다. 대룡산 창원황씨종택은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용산 2리 남역마을 대룡산에 있다. 이 종택은 귀암 황효공(黃孝恭, 1493~1553)의 손자 황언주(黃彦柱, 1553~1632)가 영주 배고개에서 살다가 처가마을
    출처 : 유교넷
  • 77455

    서파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서파정(西坡亭)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서파정은 인륜을 저버린 단종 폐위 사건에 분개하여 명예와 이욕을 버리고 은거한 조선조 선비 안리(安理)가 독서하며 후학들을 지도하던 곳이다. 안리는 호가 서파(西坡)·낙원(樂園)으로,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후손으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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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56

    서파정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서파정(西坡亭)에 걸려있는 권상규(權相圭)가 지은 서파정기(西坡亭記)이다. 서파정의 유래와 안리(安理)의 충절, 그리고 후손들이 이것을 잘 이어받으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파정은 인륜을 저버린 단종 폐위 사건에 분개하여 명예와 이욕을 버리고 은거한 조선조 선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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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57

    용산강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용산강당(龍山講堂)에 걸려 있는 석당(石堂) 김종호(金宗鎬)가 쓴 편액이다. 용산강당은 지암(止菴) 황영조(黃永祖)가 건립한 것이다. 강당은 순흥안씨와 창원황씨의 동족 마을인 남역 마을 중간 쯤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황영조는 사간 황효공(黃孝恭,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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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58

    봉강서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봉강서당(鳳崗書堂)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봉강서당은 줄포에 사는 나주정씨 문중에서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것이다. 줄포에 처음 자리를 잡은 나주정씨 입향조는 검암(儉巖) 정언숙(丁彦王+肅)이다. 정언숙은 진사시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올라 호조 정랑을 거쳐 영월·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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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59

    노계서원복설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노계서원(魯溪書院)에 걸려 있는 2004년에 최근덕(崔根德)이 쓴 노계서원복설기(魯溪書院復設記)이다. 노계서원은 행정(杏亭)이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행정은 풍기진씨가 대대로 살던 터전인 영주시 봉현면 노좌 1리에 있는 정자이다. 고려 후기 이 마을의 큰 선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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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0

    행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행정(杏亭)에 걸려 있는 권기연(權淇淵)이 쓴 편액이다. 행정은 풍기진씨가 대대로 살던 터전인 영주시 봉현면 노좌 1리에 있는 정자이다. 고려 후기 이 마을의 큰 선비 진중길(秦中吉, 1308-?)이 은행나무를 심고 정자를 지어 행정이라 이름 지었으며, 자신의 호(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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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1

    행정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행정(杏亭)에 걸려 있는 이상호(李祥鎬)의 행정중수기(杏亭重修記)이다. 진중길이 행정을 세운 일과 진중길의 덕행을 서술하였고, 중수한 뒤 이것이 길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행정은 풍기진씨가 대대로 살던 터전인 영주시 봉현면 노좌 1리에 있는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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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2

    행정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행정(杏亭)에 걸려 있는 권연하(權璉夏)의 행정기(杏亭記)이다. 진중길이 행정을 세운 일과 진중길의 덕행, 그리고 행정을 다시 세운 일 및 자손들이 조상의 뜻을 잘 이어받기를 바란다는 말을 하고 있다. 행정은 풍기진씨가 대대로 살던 터전인 영주시 봉현면 노좌 1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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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3

    도암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도암정(陶巖亭)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도암정은 황파(黃坡) 김종걸(金宗傑, 1628~1708)이 건립한 정자이다. 김종걸은 본관이 의성이고, 자는 국경(國卿), 호는 황파(黃坡)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해윤(海潤)이며, 어머니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성현(聲賢)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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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4

    도암정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도암정(陶巖亭)에 걸려 있는 김구한(金九翰)이 쓴 도암정기(陶巖亭記)이다. 도암정의 주변 경관 및 건립 유래 등을 서술하였다. 도암정은 황파(黃坡) 김종걸(金宗傑, 1628~1708)이 건립한 정자이다. 김종걸은 본관이 의성이고, 자는 국경(國卿), 호는 황파(黃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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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5

    송정회음록후서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도암정(陶巖亭)에 걸려 있는 김진동(金鎭東)이 쓴 송정회음록후서(松亭會飮錄後序)이다. 1704~1705년(숙종 30~31) 문수산(文殊山) 아래에서 이 마을의 김씨(金氏)·유씨(柳氏)·정씨(鄭氏) 등이 연못가의 송정(松亭)에 모여 술 마시고 시를 지은 것을 기록한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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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6

    쌍벽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쌍벽당(雙碧堂)에 걸려 있는 현판이다. 쌍벽당은 김언구가 지은 정자이다. 김언구(金彦球, 1507~?)는 자가 대명(大鳴), 호가 쌍벽당(雙碧堂)이다. 조부 담암(潭庵) 용석(用石)은 성종 때에 진사에 오르고 점필재 김종직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그는 점필재 문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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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7

    쌍벽당중수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쌍벽당(雙碧堂)에 걸려 있는 김휘준(金輝濬)이 쓴 쌍벽당중수기(雙碧堂重修記)이다. 이글에서 정자(正字) 벼슬을 지낸 홍사제의 창건기를 인용하여 건물이 세워진 때가 1566년(명종 21)이라 하였고 중수 경위 등을 밝혔다. 아울러 후손들이 잘 이어받기를 바라는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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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8

    봉산리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봉산리사(鳳山里社)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봉산리사는 김종걸(金宗傑)의 효행과 학덕을 기리기 위해 지방 사림이 건립한 것이다. 김종걸(金宗傑, 1628~1708)은 본관이 의성이고, 자는 국경(國卿), 호는 황파(黃坡)이다. 아버지는 통덕랑 해윤(海潤)이며,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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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69

    구양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구양서원(龜陽書院)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구양서원은 원주변씨 후손들이 변안렬(邊安烈)과 그 7대손 변경회(邊慶會)와 11대손 변극태(邊克泰)를 배향하고 제향을 올리는 곳이다. 변안렬(邊安烈)은 자는 충가(忠可), 호는 대은이다. 조부 변순(邊順)은 고려에서 심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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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0

    염수당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구양서원(龜陽書院)의 강당인 염수당에 걸려있는 염수당기(念修堂記)이다. 이 글은 이가원(李家源)이 지었다. 이 글에서는 서원의 유래 및 염수당이라는 강당 명칭의 유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염수(念修)’라는 말은 󰡔시경(詩經)󰡕의 “네 조상 잊지 말고, 그 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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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1

    경암헌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경암헌(畊菴軒)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이 건물은 영양남씨 남구수(南龜壽)가 지어서 살다가 그 사위인 의성김씨 김흠(金欽)에게 넘겨 준 것이다. 그래서 의성김씨 봉화 황전촌 계열의 종택으로 오래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김흠은 자가 이경(而敬)이고, 통훈대부와 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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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2

    공북헌 / 유교문화>유물 / 미상
    공북헌(拱北軒)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공북헌은 이수형(李秀亨, 1435~1528)이 세종의 왕위 찬탈 후 낙향한 뒤 거처하고자 지은 집이다. 이수형은 17세에 음서로 벼슬자리에 나갔으며, 21세(1555년)에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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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3

    도계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도계서원(道溪書院)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도계서원은 단종을 기린 인물들인 정민공(貞愍公) 금성대군 이유(1426~1457), 충장공 이보흠(李甫欽, 1397~1457), 도촌 이수형(李秀亨, 1435~1527), 감계(鑑溪) 이여복(李汝馥, 1556~1631)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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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4

    녹동리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녹동리사(鹿洞里社)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녹동리사는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1759~1789)을 지역의 선현으로 모신 서원이다. 배상열은 자가 군필(君弼), 호는 괴담(槐潭)이고, 흥해배씨로 배상지의 후손이다. 젊어서는 독학으로 천문·지리·역학·율서·수리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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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5

    동암서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
    동암서당(東巖書堂)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동암서당은 권이번(權以璠, 1678~1751)의 학덕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권이번의 처음 이름은 권시의(權時宜)였고, 자는 주성(周成)이다. 호는 동암(東巖)이고, 사복시 정을 추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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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6

    송석헌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송석헌(松石軒)에 걸려 있는 편액이다. 송석헌은 권이번(權以璠, 1678~1751)이 지은 건물이다. 권이번의 처음 이름은 권시의(權時宜)였고, 자는 주성(周成)이다. 호는 동암(東巖)이고 사복시 정을 추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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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7

    시1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구봉령(具鳳齡)이 이전에 있던 시에 차운한 경차(敬次) 7언율시 2수이다. 이 시에서 충재고택의 주변경관과 이곳에 은거한 선비의 높은 뜻을 기렸다. 충재고택은 충재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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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8

    근사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근사재(近思齋) 편액이다. 충재고택(冲齋古宅)은 충재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자가 증허(仲虛), 호는 충재(冲齋齋)이다. 부친은 성균 생원 권사빈, 모친은 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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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79

    가정병술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1526년에 권벌이 청암정(靑巖亭)을 지을 때 쓴 18글자와 그의 5대손 권두경(權斗經)이 쓴 발문이다. 충재고택은 충재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자가 증허(仲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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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0

    시2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김륵(金玏)이 이전에 있던 시에 차운한 경차(敬次) 7언율시 2수이다. 이 시에서 충재고택의 주변경관과 이곳에 은거한 선비의 높은 뜻을 기렸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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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1

    시3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이황(李滉)이 이전에 있던 시에 차운한 7언율시 2수 「기제유곡청암정이수(寄題酉谷靑巖亭二首)」이다. 이 시는 1565년에 지어진 것으로 권벌의 아들이며 이황의 문인인 권동보(權東輔)의 부탁으로 지은 것이다. 시에서는 충재고택의 주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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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2

    시4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1586년에 권벽(權檗)이 이전에 있던 시에 차운한 경차(敬次) 7언율시 2수이다. 이 시에서 충재고택의 주변경관과 이곳에 은거한 선비의 높은 뜻을 기렸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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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3

    시5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이전에 있던 시에 차운한 경차(敬次) 7언율시 2수이다. 이 시에서 충재고택의 주변경관과 이곳에 은거한 선비의 높은 뜻을 기렸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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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4

    충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편액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자가 증허(仲虛), 호는 충재이다. 부친은 성균 생원 권사빈, 모친은 파평윤씨이다. 1507년(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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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5

    제석천정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 쓴 제석천정사(題石泉精舍)이다. 석천정사(石泉精舍)는 충재의 아들 권동보(權東輔)가 1535년에 지은 정자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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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6

    숙흥야매잠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송나라 진백(陳栢)이 지은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이다. 새벽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학문에 정진하라는 내용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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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7

    석천정중건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권두인(權斗寅)이 청암정(靑巖亭)에서 쓴 석천정중건기(石泉亭重建記)이다. 석천정은 충재 권벌의 아들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가 1535년에 지은 정자인데, 여기에서는 중건한 경위를 밝히고 있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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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8

    산수료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산수료(山水寮) 편액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자가 증허(仲虛), 호는 충재이다. 부친은 성균 생원 권사빈, 모친은 파평윤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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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89

    석천정사서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조찬한(趙纘韓, 1572~1631)이 쓴 석천정사서(石泉精舍序)이다. 석천정사(石泉精舍)는 권벌의 아들 청암(靑巖) 권동보(權東輔)가 1535년에 지은 정자인데, 여기에서 석천정사를 짓게 된 경위와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 서술하였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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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0

    사물잠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사물잠(四勿箴) 편액이다. 사물잠은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지은 것으로 시(視)·청(聽)·언(言)·동(動)을 주의하라는 잠문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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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1

    장판각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장판각(藏板閣) 편액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자가 증허(仲虛), 호는 충재이다. 부친은 성균 생원 권사빈, 모친은 파평윤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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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2

    환성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환성문(喚惺門) 편액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자가 증허(仲虛), 호는 충재이다. 부친은 성균 생원 권사빈, 모친은 파평윤씨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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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3

    원규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원규(院規)로 퇴계 이황이 정해준 서원의 규약이다. 서원의 제생들은 사서오경을 근본으로 독서해야한다는 등의 생활규칙 등을 적어놓은 것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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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4

    경재잠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경재잠(敬齋箴)이다. 경재잠은 주자(朱子)가 지은 것으로 의관을 바르게 하고, 눈매를 바르게 하라는 등등의 공경하고 삼가라는 내용의 잠문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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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5

    수명루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수명루(水明樓) 편액이다. 이 글씨는 이정신(李正臣)의 글씨이다. 이정신의 호는 송벽(松薜)이고 참판을 지냈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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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6

    백록동규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백록동규(白鹿洞規)이다. 백록동규는 주자(朱子)가 학문을 가르친 곳인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의 백록동서원규(白鹿洞書院規)를 적어 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오륜(五倫)과 위학지서(爲學之序)·수신지요(修身之要)·처사지요(處事之要)·접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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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7

    갱장각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갱장각(羹牆閣) 편액이다. 갱장(羹牆)이란 말에는 스승을 추모하는 뜻이 담겨있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자가 증허(仲虛), 호는 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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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8

    특지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교서(敎書)를 적은 현판이다. 1746년(영조 21)에 권벌의 6대손인 권만(權萬)에게 영조가 권벌을 생각하며 근사록(近思錄)을 내려준 일을 적은 것이다. 권벌은 중종시절에 경회루에서 잔치를 할 때 소매 속에 근사록을 가지고 있다가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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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7499

    사무사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사무사재(思無邪齋)의 편액이다. 충재고택은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된 후 낙향하여 정착한 곳이다. 권벌은 자가 증허(仲虛), 호는 충재이다. 부친은 성균 생원 권사빈, 모친은 파평윤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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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벌수진근사록서 / 유교문화>유물 / 미상
    충재고택(冲齋古宅)에 걸려 있던 1794년에 정조(正祖)가 지은 어제충정공권벌수진근사록서(御製忠定公權橃袖珍近思錄序)를 적은 현판이다. 권벌은 중종시절에 경회루에서 잔치를 할 때 소매 속에 근사록을 가지고 있다가 떨어뜨린 뒤 다시 돌려받은 일이 있다. 정조는 항상 책을
    출처 : 유교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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