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78551
영양군묘도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영천이씨 농암종택에 보관되어 있는 묘도의 목판 중 하나이다. 묘도의 목판은 선영(先塋)의 분묘 위치를 그린 묘도를 판각한 것으로, 필요시 대량으로 인쇄하여 집안사람들에게 배부하였다. 이 묘도 목판 위에 영양군묘도(永陽君墓圖)라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이 목판은 농암출처 : 유교넷 -
78552
묘도2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영천이씨 농암종택에 보관되어 있는 묘도의 목판 중 하나이다. 누구의 묘도인지 표시되어 있지 않아,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없다.출처 : 유교넷 -
78553
묘도3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78554
묘도4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영천이씨 농암종택에 보관되어 있는 묘도의 목판이다.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목판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출처 : 유교넷 -
78555
호봉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호봉선생문집(壺峯先生文集)』은 이돈(李燉 ; 1568∼1624)의 시문집으로, 2권1책 목판본이다. 그의 자는 광중(光仲), 호는 호봉(壺峯), 본관은 진보(眞寶)다. 이 책은 손자인 이영(李泳)이 수집하였고, 1897년 후손들이 간행하였다. 이돈은 참봉 이원회(李출처 : 유교넷 -
78556
석병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석병선생문집(石屛先生文集)』은 이회보(李回寶 ; 1594∼1669)의 시문집으로,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1849년 후손 이학원(李學源)·이평원(李平源) 등이 편집했으나 간행 연대는 미상이다. 이회보의 자는 문상(文祥), 호는 석병(石屛), 본관은 진성(眞城)이출처 : 유교넷 -
78557
임서하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임서하집(林西河集)』은 고려 후기의 문인 임춘(林椿)의 시문집으로 6권 2책의 목판본이다. 임춘의 호는 서하(西河), 자는 기지(耆之)이며, 당시 이인로(李仁老) 등과 함께 강좌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이다. 임춘이 사망한 후, 이인로(李仁老)가 유고를 수습·편집하출처 : 유교넷 -
78558
지촌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지촌선생문집(芝村先生文集)』은 조선후기 문신인 김방걸(金邦杰 ; 1623∼1695)의 시문집이다. 김방걸의 자는 사흥(士興), 호는 지촌(芝村),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1865년(고종 2)에 간행되었다. 김방걸은 1660년(현종 1)년 과거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출처 : 유교넷 -
78559
지촌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78560
경옥선생유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경옥선생유집(景玉先生遺集)』은 이보(1629∼1710)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이보의 자(字)는 신고(信古), 호(號)는 경옥(景玉)이며, 본관(本貫)은 진성(眞城)이다. 이 책은 1813년(순조 13)경 후손 이인강(李寅綱) 등이 편집, 간행하였출처 : 유교넷 -
78561
경옥선생속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경옥선생속집(景玉先生續集)』은 이보(1629∼1710)의 저작으로 1권의 목판본이다. 이보의 자(字)는 신고(信古), 호(號)는 경옥(景玉)이며, 본관(本貫)은 진성(眞城)이다. 이 책은 1813년(순조 13)경 후손 이인강(李寅綱)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이보출처 : 유교넷 -
78562
매창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매창집(梅窓集)』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정사신(鄭士信)의 시문집으로, 5권 3책의 목판본이다. 1805년(순조 5) 후손 정재후(鄭在厚)·정경제(鄭經濟) 등이 편집하고, 1821년 7대손 정내성(鄭來成)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시찬(金是瓚)의 서문과 권말에 내출처 : 유교넷 -
78563
우천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우천문집(愚川文集)』은 조선 중기의 학자 정칙(鄭鮟)의 시문집으로, 7권 4책의 목판본이다. 1833년(순조 33) 후손 정내천(鄭來川)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재(李栽)의 서문이, 권말에 류이좌(柳台佐)·정내성(鄭來成)의 발문이 있다. 권1·2에 시 4출처 : 유교넷 -
78564
북정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북정집』은 이종주(李宗周 : 1753∼1818)의 시문집이다. 이종주의 자는 춘백(春伯), 호는 북정(北亭), 본관은 고성(固城)이다. 이시흥(李時興)의 증손으로 안동(安東)에 거주하였다. 이상정(李象靖)과 김종덕(金宗德)의 문인이며 1780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출처 : 유교넷 -
78565
금파유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파유고(錦坡遺稿)』는 조선 말기의 문신은 박우현(朴遇賢 ; 1829∼1907)의 문집이다. 박우현의 자는 치문(穉文), 호는 금파(錦坡)이며, 본관은 고령이다. 아버지는 박수룡(朴秀龍)이며, 이 책은 손자 박병인(朴柄寅)이 편집, 간행하였다. 문집의 권두에 권상출처 : 유교넷 -
78566
등암선생일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자는 자장, 호는 등암, 본관은 성산, 덕문의 손자요, 설의 아들로 대가면 도남동에서 태어났다.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고 한강 정구와 여헌 장현광의 제자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였다. 한강과 여헌의 별세 때는 제자로 심상 3년, 서원과 비를 세우며 문집을 발행하는출처 : 유교넷 -
78567
호양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호양선생문집(湖陽先生文集)』은 권익창(權益昌 ; 1562~1645)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권익창의 자는 무경(茂卿), 호는 호양(湖陽)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조목(趙穆)·김성일(金誠一)의 문인으로, 경서에 통달하고 성리학에 잠심하였다. 학암출처 : 유교넷 -
78568
산택재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산택재문집(山澤齋文集)』은 권태시(權泰時 ; 1635∼1719)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권태시의 자는 형숙(亨叔), 호는 산택재(山澤齋)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 책은 후손 권재명(權在明) 등이 편집했으나 간행연도는 미상이다. 권태시는 16출처 : 유교넷 -
78569
현산선생실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현산선생실기(見山先生實紀)』는 정기원(鄭期遠 ; 1559∼1597)의 실기이다. 정기원의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중(士重)이며, 호는 현산(見山)이다. 이 책은 1962년 간행되었고, 4권 2책의 내용을 보면, 권1은 시 53수, 문 1편, 기 1편, 서(書출처 : 유교넷 -
78570
정기원지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정기원(鄭期遠 ; 1559∼1597)의 충신정려문이다. 그는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현산(見山)이며, 자는 사중(士重), 시호 충의(忠毅)이다. 1585년(선조 1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조 ·병조·공조의 좌랑을 지내고, 1592년 임진왜란 중 사은사의출처 : 유교넷 -
78571
개곡선생유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개곡선생유집(開谷先生遺集)』은 이이송(李爾松 ; 1598∼1665)의 시문집이다. 이이송의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수옹(壽翁), 호는 개곡(開谷), 의준(義遵)의 아들로 외숙인 김응조(金應祖)의 문인이다. 이 책은 1811년(순조 11)에 간행된 5권 2책의출처 : 유교넷 -
78572
석와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석와문집(石窩文集)』은 권위(權褘 ; 1762∼1835)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권위의 자는 의남(懿南), 호는 석와(石窩)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이 책은 1899년 손자 권대규(權大奎)가 편집. 간행하였다. 아버지는 권목(權睦)이며, 이상정출처 : 유교넷 -
78573
백졸암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백졸암문집(百拙庵文集)』은 유직(柳稷 ; 1602∼1662)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유직의 자는 정견(廷堅), 호는 백졸암(百拙庵),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유우잠(柳友潛)의 아들이다.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서사(書史)를 탐독하출처 : 유교넷 -
78574
석봉서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원제는 ‘석봉초려시서집자음(石峯草廬詩序集字吟)’이다. 조선중기 명필로 알려진 석봉 한호가 쓴 초려시서의 글자로 백졸암 류직(1602-1662)이 지은 집자시다. 춘하추동 네 계절을 읊은 단율 5편으로 모두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폭에는 류직 자신의 서문이출처 : 유교넷 -
78575
소우재 1 / 유교문화>유물 / 미상진주강씨 소우문중에 보관되어 있는 소우재 현판이다. 소우재는 조선 말기 이름난 재야 선비이자 서예가인 강벽원(姜碧元 ; 1859∼1941)의 당호이다. 강벽원은 경북 영주군 두서면 출신으로 자는 윤화(允和 )이고 호는 소우(小愚), 노정(蘆亭)이다. 그는 어려서부터출처 : 유교넷 -
78576
소우재 2 / 유교문화>유물 / 미상진주강씨 소우문중에 게시되었던 소우재 현판이다. 소우재의 주인인 강벽원은 영주의 이름난 선비로 시와 그림, 글씨에 모두 능하였는데, 그중 특히 글씨를 잘 썼다. 어려서 안진경과 미불의 서첩을 보고 홀로 서예를 익혀서 글씨의 대가가 되었다. 강벽원은 당시 과거 시험장출처 : 유교넷 -
78577
차서헌 / 유교문화>유물 / 미상진주강씨 소우문중에 보관되어 있는 차서헌의 현판으로, 소우 강벽원의 친필이다. 강벽원은 벼슬살이에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지낸 선비였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충심은 그 누구보다 깊었다. 그래서 순종 4년(1910)년 일본에 의해 나라를 빼앗겼을 때, 강벽원은 사출처 : 유교넷 -
78578
노정서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진주강씨 소우문중에 보관되어 있던 ‘노정서결’의 목판이다. 『노정서결』은 소우 강벽원이 쓴 서예이론서로 총 두 권으로 되어 있다. 강벽원은 중국의 안진경과 미불의 서체를 독학으로 습득하였을 뿐 아니라 김정희의 추사체도 홀로 터득하여, 자기만의 독특한 서예의 경지를출처 : 유교넷 -
78579
육인재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육인재문집(六忍齋文集)』은 김광국(金光國 ; 1682∼1775)의 시문집으로 5권 2책의 목판본이다. 김광국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대관(大觀), 호는 육인재(六忍齋)이다. 이 책은 1932년 현손 김택현(金澤鉉) 등이 간행하였다. 권1·2는 시 179수출처 : 유교넷 -
78580
난졸재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난졸재선생문집(懶拙齋先生文集)』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이산두(李山斗)의 시문집이다. 4권 2책의 목판본으로, 1833년(순조 33) 영남사림들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류이좌(柳台佐)의 서문을 실었다. 권1에는 이산두의 90세 맞이를 기념하여 영조가출처 : 유교넷 -
78581
염립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난졸재 이산두(懶拙齋 李山斗 ; 懶에서 취한 동일한 뜻이므로 ‘나’ 라 하지 않고 ‘난’ 으로 발음함)문중의 현판이다. 이산두는 20여년 동안 관직을 다니다가 벼슬을 모두 버리고 고향인 풍산현 동쪽 단구촌(현 안동시 풍산읍 하리 1리 우렁골)에 터전을 잡고 살았다.출처 : 유교넷 -
78582
근인당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근인당문집(近仁堂文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태(李宜泰)의 시문집으로, 4권 4책의 목판본이다. 1823년(순조 23) 그의 족질 이야순(李野淳)의 편집을 거쳐, 증손 이덕강(李德綱)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야순의 서문과 권말에 이병원(李秉遠)의 발문이 있다.출처 : 유교넷 -
78583
죽소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죽소문집(竹巢文集)』은 조선말기 학자인 민종혁(閔宗爀 ; 1762∼1838)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민종혁의 자는 조언(祖彦), 호는 죽소(竹巢)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문집에 실린 시는 성균관에 유학하던 시절에 친구와 고향을 주제로 한 것들출처 : 유교넷 -
78584
현암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현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민치긍(閔致兢 ; 1810∼1885)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민치긍의 자는 근지(謹持), 호는 현암이며,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아버지는 민종혁(閔宗爀)이고, 어머니는 전주류씨(全州柳氏)로 제휴(濟休)의 딸이다. 이출처 : 유교넷 -
78585
간재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간재선생문집』은 변중일(邊中一 ; 1575∼1660)의 시문집이다. 변중일(邊中一)의 자(字)는 가순(可純), 호(號)는 간재(簡齋)이며, 본관은 원주(原州)이다. 이 책은 1860년(철종 11) 후손 변도신(邊道新), 변정기(邊正基) 등이 편집, 간행하였고, 권출처 : 유교넷 -
78586
동호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동호선생문집(東湖先生文集)』은 변영청(邊永淸 ; 1516∼1580)의 시문집이다. 변영청의 자는 개백(開伯),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원주부원군(原州府院君) 광(廣)의 아들이다. 이 책은 후손 변정수(邊正銖) 등이 편집했으며 변주건(邊疇建) 등이출처 : 유교넷 -
78587
충효고가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안동 서후 원주변씨 간재종택에 걸려 있었던 현판이다. 간재 변중일(邊中一 ; 1583∼1660)은 임진왜란에 군량을 돕고 의병으로 활약하였는데, 왜적도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신표를 주어 보호하였다고 한다. 종가 앞에는 1686년(숙종 12)에 국가에서 내린 ‘정충효각출처 : 유교넷 -
78588
상현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상현록(尙賢綠)』은 우탁(禹倬 ; 1263∼1342)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우탁은 고려말 정주학 수용 초기의 유학자로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천장(天章) 또는 탁보(卓甫·卓夫), 호는 백운(白雲)·단암(丹巖)이며 세상에서 ‘역동선생(易東先生)’출처 : 유교넷 -
78589
단양우씨보계변정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단양우씨보계변정록(丹陽禹氏譜系卞正錄)』은 안동정병재사(安東鼎幷齋舍)의 단양우씨보소(譜所)에서 목판본으로 1911년 발간한 것이다. 이는 단양우씨 충정공(忠靖公)의 후손들이 계통을 바로잡기 위해 편찬한 것이다. 충정공이 문희공(文僖公)의 손이라든가, 심지어 적성군(赤출처 : 유교넷 -
78590
추원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단양우씨 종친회에 보관되어 있는 현판이다. ‘추원’이란 먼 선조의 덕을 기리며 추모한다는 의미로, 추원재는 단양우씨의 위패를 모시는 재사(齋舍)였다.출처 : 유교넷 -
78591
영모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단양우씨 종친회에 보관되어 있던 현판이다. ‘영모’(永慕)란 돌아가신 어버이를 영원히 사모한다는 뜻으로, 영모재를 세워 어버이의 덕을 기리던 단양우씨 집안사람들의 효심이 잘 드러난다.출처 : 유교넷 -
78592
정정재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단양우씨 종친회에 보관되어 있던 현판이다. 정정재사는 안동시 예안면 정정리에 있으며, 단양우씨 8세손인 역동(易東) 우탁(禹倬)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우탁은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이름난 학자로, 17세에 과거 급제한 뒤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고 백성들출처 : 유교넷 -
78593
강의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단양우씨 종친회에 보관되어 있던 현판이다. 현판의 글씨인 ‘강의’(講誼)란 ‘옳음을 설명한다.’는 의미로, 이 현판은 아마 서원의 서재에 걸려있던 현판인 것으로 사료된다.출처 : 유교넷 -
78594
괴단광감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78595
도촌선생실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촌선생실기(桃村先生實紀)』는 조선시대 이수형(李秀亨; 1435∼1528)의 생애를 기록한 실기로 목판본이다. 1831년(순조 31년)에 간행되었다. 이수형은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양하자 약관 21세의 나이로 평시서령(平市署令)의 직을 사직하고 당시 영천현출처 : 유교넷 -
78596
복상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78597
완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우계이씨 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완문 서판이다. 완문이란, 조선시대에 중앙관서나 상급관청에서 하급관서나 서원, 향교 등에 하달했던 공문서로서, 주로 조세·부역·군역 등 공적 자금의 처리에 관한 내용이 많다. 이 완문의 서판은 부사(府使) 이주현(李周顯)이 도계서원에 발출처 : 유교넷 -
78598
백록동서원규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우계이씨 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서원규 서판이다. 조선시대 서원에서는 각 서원 고유의 규약을 제정하기도 했지만, 보통 『백록동서원규』를 일반 규약으로 설정하였다. 『백록동서원규』는 송나라 주희가 백록동서원을 재건하면서 서원의 교칙으로 정한 일종의 학생 규범이다. 그출처 : 유교넷 -
78599
상절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우계이씨 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현판이다. 도계서원의 사당에 걸려있던 현판으로 사료된다. ‘상절(尙節)’이란 ‘선비의 절개를 숭상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이름에는 세조 때의 절개지사 도촌(桃村) 이수형(李秀亨)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교살당한 이유(李瑜)와 이보흠(李甫출처 : 유교넷 -
78600
국기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우계이씨 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국기판이다. 이 국기판은 임금이나 왕후의 제삿날(國忌)을 서판에 새긴 것으로, 태조대왕부터 영종대왕까지의 기일과 능호(陵號)를 적어 놓았다. 국기판은 서원이나 향교, 혹은 종가집의 대청마루에 항상 게시하여 그 곳 사람들이 날짜를 잊지 않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