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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절목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우계이씨 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제수절목 서판이다. 제수절목이란 제사 때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제수품을 적은 목록이다. 보통 제수절목은 종이에 써서 친척들에게 회람하거나 대청에 붙여두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 서판처럼 목판으로 만들어 전사청(典祀廳)에 걸어두는 경우도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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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서원이건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서판은 도계서원을 이건하게 된 경위를 기록한 이건기 서판이다. 도계서원은 세조 때의 절개지사 이수형을 제향하기 위해 지방 유림의 공의로 영주 순흥면에 세운 서원이다. 이 서원은 현재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 사재마을에 있다. 이 글은 통훈대부 김약련(金若鍊)이 쓴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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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계서원의 현판이다. 도계서원은 절개지사 이수형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이수형은 호가 도촌(桃村)으로, 중앙 관계에 몸담고 있다가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비분강개하여 관직을 버리고 낙향한 인물이다. 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교살당한 이유(李瑜)와 이보흠(李甫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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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극루기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계서원의 누정인 공극루를 세우게 된 경위를 기록한 서판이다. 단종이 세조에 의해 교살당하자, 이수형은 산으로 들어가 북쪽으로 문이 나있고 삼면이 모두 절벽인 집을 짓고 은거하여 다시는 세상을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단종의 장릉이 영주에서 북쪽에 있기 때문이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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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극루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계서원의 누정인 공극루의 현판이다. ‘공극’ 이라는 말은 《논어》‘위정편’ 의 “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면 뭇별들이 그 별로 향하는 것과 같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또 공극루의 ‘극(極)’자는 북극성을 의미하는 말로, 이수형의 집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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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계서원의 당실인 천인당의 현판이다. ‘천인(千仞)’이란 본래 8,000척이나 되는 높이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에서는 하늘의 이치가 그와 같이 높고 선비의 절개가 그와 같이 높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 당실에서 학생들은 고원한 하늘의 이치와 선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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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교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도계서원의 당실인 명교당의 현판이다. ‘명교당(明敎堂)’ 이라는 명칭은 서원이나 향교의 건물에 널리 쓰였던 당호이다. ‘명교’ 란 성인의 가르침을 널리 밝힌다는 의미이다. 유학의 전형적인 교육 목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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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고은문집(皐隱文集)』은 안지(安止 ; 1394∼1474)의 시문집이다. 안지의 본관은 탐진(耽津 ; 康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이다. 이 책은 1772년(영조 48)에 후손 병희(炳喜)가 간행하고, 방후손(傍後孫)인 민곤(晩坤)이 1912년에 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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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인재집(寅齋集)』은 신개(申槩 ; 1374∼1446)의 시문집으로, 3권과 부록 1권 합 2책의 목판본이다. 신개의 자는 자격(子格), 호는 인재(寅齋)·양졸당(養拙堂)이며,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이 책은 여러 전적에서 수집한 시문(詩文)과 가장(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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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학생신식지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효자 학생 신식(申湜)의 정문(旌門)으로 1818년(순조 18)에 정려된 효자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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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오선생일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매오선생일고(梅塢先生逸稿)』는 권찬용(權燦容 ; 1854∼1923)의 시문집으로 3권 1책의 목판본이다. 권찬용의 자는 태영(泰永), 호는 매오(梅塢)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권재규(權在奎)이다. 천성이 순후하고 재예가 뛰어나서 취학하게 되자 독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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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이씨족보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재령이씨족보(載寧李氏族譜)』는 이현일(李玄逸)의 아들인 밀암(密庵) 이재(李栽 ; 1657∼1730)가 족보중수서(族譜重修序)를 쓴 것으로 통칭 갑자보(甲子譜 ; 1714)라고 하는데, 이것이 1716년 병신년에 간행되었다 하여 병신구보(丙申舊譜)라 칭하는 것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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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암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밀암선생문집(密菴先生文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재(李栽 ; 1657∼1730)의 문집으로 25권 13책이다. 이재의 자는 유재(幼材), 호는 밀암(密菴)이며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아버지 이현일(李玄逸)이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되자 따라가서 시봉하였고, 1700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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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운악선생문집(雲嶽先生文集)』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이함(李涵 ; 1554∼1632)의 시문집이다. 이함의 자는 양원(養元), 호는 운악(雲嶽),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2권 1책으로, 1862년(철종 13) 이현발(李鉉發)이 편집, 간행하였다. 이함은 1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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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금헌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낙금헌집(樂琴軒集)』은 이정백(李庭柏 ; 1553∼1600)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초판(初版) 목판본이다. 이정백의 자는 여직(汝直), 호는 낙금헌(樂琴軒), 본관은 진보(眞寶)이다. 11세 때 부친의 3년상을 마친 후 도산으로 들어가 퇴계의 훈학을 받았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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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파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황파집(黃坡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 김종걸(金宗傑)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1808년(순조 8)을 전후하여 방손 김재전(金載銓)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이, 권말에 재전의 발문이 있다. 권1은 시·만사 60수, 서(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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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산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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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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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열록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충열록(忠烈錄)』은 임진왜란 때 진주전(晉州戰)에 참가한 충렬제사(忠烈諸士)에 관한 사적(事蹟)을 모아 엮은 책으로, 2권 2책의 목판본이다. 지방 사림과 충렬의 후손들이 임진란의 진주성 사적이 산만(散漫)·탈락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사적을 모아 간행할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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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자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청풍자문집(淸風子文集)』은 정윤목(鄭允穆 ; 1571∼1629)의 시문집으로 4권 2책의 목판본이다. 정윤목의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노곡(蘆谷)·죽창거사(竹窓居士),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예천(醴泉)사람 이다. 이 책은 1760년(영조 36)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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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자속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청풍자속집(淸風子續集)』은 조선 중기의 학자 정윤목(鄭允穆 ; 1571∼1629)의 시문집 중 속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이 속집은 1825년(순조 25) 6대손 정필규(鄭必奎)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정윤목의 자는 목여(穆如), 호는 청풍자(淸風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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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청풍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현판은 청풍자 정윤목(1571∼1629)이 158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부친 약포 정탁을 수행하여 백이·숙제의 사당을 참배하고 거기에 걸린 글씨를 모사해 온 것을 새긴 것으로 예천 삼강강당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정윤목은 류성룡·정구의 문인으로 특히 필법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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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와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한와선생문집(閑窩先生文集)』은 이시일(李時逸 ; 1731∼1792)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이시일의 자는 경안(敬安), 호는 한와(閒窩),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이 책은 후손들이 편집, 간행하였다. 이시일의 아버지는 이기배(李基培)이며, 종숙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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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천세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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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은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대은선생문집(大隱先生文集)』은 변안렬(邊安烈 ; 1334∼1390)의 문집으로, 2권1책의 목판본이다. 변안렬의 자는 문성(文成), 호는 대은(大隱), 본관은 원주(原州)로 고려말의 무신이다. 그는 본래 심양(沈陽)사람으로 당시 심양에 가 있던 공민왕을 따라 고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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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구양리사 안에 있던 사당의 현판이다. 사(社)는 일반적인 서원의 사당과 달리 민속 신앙의 형태를 띠는 것이지만, 구양리사의 경우에는 그러한 민속 신앙의 성격이 유림에 의해 공인되었다. 구양리사는 원주 변씨의 시조인 변안렬을 비롯, 변경회와 변극태의 효행을 기리는 곳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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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리사 1 / 유교문화>유물 / 미상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는 원주변씨의 시조 변안렬(?∼1390)의 7세손 영순이 뿌리를 내린 곳이다. 원래 이사(里社)란 조선시대 지방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곳으로 백곡의 풍작을 기원하여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였으므로 유교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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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리사 2 / 유교문화>유물 / 미상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는 원주변씨의 시조 변안렬(?∼1390)의 7세손 영순이 뿌리를 내린 곳이다. 원래 이사(里社)란 조선시대 지방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신 곳으로 백곡의 풍작을 기원하여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였으므로 유교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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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봉화군 봉화읍 거촌에 있는 구양서원의 건물 이름이다. 구양서원은 원주 변씨의 시조인 변안렬을 비롯, 변경회와 변극태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근년에 건립되었다. ‘진덕’이라는 말은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진실함과 신뢰를 바탕으로 덕행을 증진시켜야 한다’라는 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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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시첩 / 유교문화>유물 / 미상『유정시첩(柳亭詩帖)』은 경태(景泰 ; 1450∼1456, 明 景帝)년간에 김계문(金季文)이 지은 흥주(興州, 현재의 영주)의 동쪽 도촌(道村)에 위치한 유정(柳亭)에서 여러 선비들이 시를 읊은 것을 묶은 시집이다. 김계문은 의 본관은 함창(咸昌)이며, 자는 명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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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재선생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자족재선생문집(自足齋先生文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 신봉석(申鳳錫)의 시문집으로, 3권 1책의 목판본이다. 1919년 9대손 신용섭(申龍燮)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홍승목(洪承穆)·오명근(吳明根)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후손 신입인(申立仁)·신용섭·신형식(申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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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원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율원집(栗園集)』은 조선중기의 학자 이공(李珙 ; 1533∼1612)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이공의 자는 공보(共甫), 호는 율원(栗園),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문집의 권1에는 시 75수와 초록(抄錄) 6항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공은 이숙인(李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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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재세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운재세고(雲齋世稿)』는 반남박씨(潘南朴氏) 박중윤(朴仲胤 ; 1562∼1633)과 그의 아들 박정(朴烶 ; 1590∼1653)의 시문집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문집은 후손 박승규(朴勝珪)가 편집했다. 박중윤의 자는 경술(景述), 호는 낙애(洛厓)·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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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수당일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취수당일고(醉睡堂逸稿)』는 조선 후기의 학자 오연(吳演)의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목판본이다. 1823년(순조 23) 후손 오운찬(吳雲燦)·오용찬(吳龍燦) 등이 편집한 것을 5세손 오달호(吳達浩) 가 간행하였다. 간행의 전말을 살펴보면, 1799년(정조 23)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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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선생일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성은선생일고(城隱先生逸稿)』는 조선중기 학자인 신흘(1550∼1614)의 일고로 2권1책 목판본이다. 신흘의 자는 구지(懼之), 호는 성은(城隱),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아버지는 신원록(申元錄)의 삼년상을 마친 후 묘 아래 집을 지어 영모(永慕)라는 편액을 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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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호계집(虎溪集)』은 신적도(申適道 ; 1574∼1663)의 시문집이다. 신적도의 자는 사립(士立), 호는 호계(虎溪),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이 책은 후손 신상하(申相夏)·신돈식(申敦植) 등이 간행하였다. 서(書)는 정구·장현광·정경세(鄭經世)·이경석(李景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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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재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치재집(二恥齋集)』은 신정모(申正模 ; 1691~1742)의 시문집이다. 신정모의 자는 경해(景楷), 호는 이치재(二恥齋),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신덕일(申德溢)의 아들이며 의성(義城)사람이다. 1719년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관(藝文館), 승문원(承文院)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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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당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회당집(悔堂集)』은 신원록(申元祿 ; 1516∼1576)의 4권 2책의 시문집이다. 이 책은 6대손 신정모(申正模)가 1740년(영조 16)에 편집했고, 1769년경에 간행되었다. 신원록의 자는 계수(季綏), 호는 회당(悔堂),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시(詩)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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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아주 신씨 회당공파종중에 보관되어 있던 국기판이다. 국기안은 임금이나 왕후의 제삿날(國忌)을 서판에 새긴 것으로, 이 국기판은 태조 이성계의 고조부인 목조(穆祖 ; ?∼1274)에서 철종까지의 기일과 능호(陵號)를 적어놓았다. 국기판은 서원이나 향교, 혹은 종가집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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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현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단구서원 안에 있는 사당의 현판이다. 단구서원은 신석우라는 선비가 처음 건립한 작은 사당이었는데, 뒤에 호계 신적도·난제 신열도 형제의 충의사상과 호계의 아들 인재·신채의 고매한 유학사상을 전승하기 위하여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숭현사는 신적도와 신열도, 신인재와 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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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구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의성군 봉양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350여 년전 능주목사를 지낸 난제 신열도가 이 마을을 개척하고, 그후 신석우라는 선비가 단구서당을 지어 후학을 가르치어 단구라는 지명이 불리워졌다. 그후 정묘, 병자호란시에 호계 신적도, 난제 신열도 형제의 충의사상과 호계의 아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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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재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수정재문집(壽靜齋文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 유정문(柳鼎文)의 시문집으로, 12권 6책의 목판본이다. 후손에 의하여 편집,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나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 경위 및 연도를 알 수 없다. 권1·2에 시 173수, 권3∼8에 서(書) 149편, 잡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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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후계집(後溪集)』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이순의 시문집으로, 10권 6책의 목판본이다. 1840년(헌종 6)에 간행되었으며,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1·2에 시, 권3에 소(疏)·서(書), 권4는 서(書), 권5에 잡저·상장의절(喪葬儀節), 권6에 서(序)·기(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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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안동시 예안면에 있는 고산정은 퇴계 이황의 제자 성성재(惺惺齋) 금난수(琴蘭秀 ; 1530∼1604)가 성리학에 잠심하면서 산수를 사랑하여 지은 정자이다. 그는 청량산 기슭 절승지인 가송협에 이 정자를 짓고 ‘일동정사’라 불렀다. 이황은 특히 금란수를 아껴 자주 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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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동계서원의 현판이다. 동계서원은 퇴계의 애제자 금난수를 제향했던 서원으로,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 위치해 있었다. 금난수는 임진왜란 때 직접 의병을 일으켜 고향을 지켰는데, 조정에서 이 공덕을 추숭하여 동계서원에 제향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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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교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동계서원에 있던 강당의 현판이다. ‘입교(立敎)’란 선비들이 배워야 할 성인의 가르침을 바르게 세운다는 의미이다. 서원의 학생들은 입교당에서 선학의 가르침을 받아 자기의 몸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선비로서의 사명을 바로세우는 공부를 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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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 있는 금난수의 정자 현판이다. 성재는 금난수의 집인 성성재(惺惺齋)에 속해 있다. 금난수는 25세 때 성성재 아래에 있는 동계(東溪)가에 작은 정자를 짓고 학문에 힘썼는데, 퇴계 이황이 친필로 ‘성재’라는 현판을 내려주면서 면려해주었다. 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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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고산정판상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시판은 전주이씨 이휘응이 쓴 것이다. 이휘응은 전계대원군의 아들이자 철종과 형제지간이다. 이 시판은 고산정에서 금난수와 이황이 주고 받은 시를 차운하여 지은 것으로, 고산정의 경치를 읊으면서 이황과 금난수에 대한 존경심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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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고산절벽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시판은 퇴계 이황이 고산정에서 쓴 시 3수를 판각한 것이다. 첫 번째 시는 고산정의 석벽에 쓴 시로, 원제목은 ‘서고산석벽(書孤山石壁)’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동(日洞)의 주인 금씨 아들은 이제도 잘 있는가, 강 건너서 불렀더니 갈던 밭 지아비 손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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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견기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금난수와 이황이 주고 받은 시 두 편을 한 시판에 판각한 것이다. 앞의 것은 금난수의 시이고, 뒤의 것은 그 시를 차운하여 쓴 이황의 시이다. 금난수는 이 시에서 자기가 작은 거룻배 하나를 마련했으니 함께 깊은 경치를 탐험했으면 좋겠다고 읊었다. 이에 이황은 다음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