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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원유고산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퇴계 이황은 제자 금난수가 거처한 고산정에 자주 왕래하고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이 시는 이황이 금난수의 유고산(遊孤山) 시의 운을 빌려 지은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벼슬살이 아닌데 돌아올 줄 왜 모르나 안개와 노을을 차지하니 떠나기가 싫은 게지. 땅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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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_퇴계병수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시판은 퇴계 이황이 제자 금난수(琴蘭秀)의 정자 성재(惺齋)에서 읊었던 시 8수를 두 개의 시판에 판각한 것이다. 앞의 판에 5수가, 뒤의 판에 3수가 판각되어 있다. 퇴계는 이 시에서 유학의 도는 마음을 바로 닦아 물욕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일상의 공부를 충실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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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산 / 유교문화>유물 / 미상고산정에 걸려 있던 금난수(琴蘭秀 ; 1530∼1604)의 시판으로, 제목은 ‘고산정에서 노닐다(遊孤山)’이다. 이 시의 운에 따라 퇴계가 답시를 쓰기도 했는데 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한 해의 가운데에 천지 만물이 모두 돌아오니 사계절이 좋은 흥취는 어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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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고산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황이 쓴 시 3수를 판각한 시판으로, 원제목은 ‘기고산금문원’이다. 첫 번째 시는 금문원에게 단독으로 보낸 것이고, 뒤의 2수는 배여우·조사경·금문원·박원수가 함께 시냇가에 서재를 찾아 고산에서 놀 때, 퇴계가 부쳐준 시이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멀리 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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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원동계성성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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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천정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안동김씨 구전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반천정사의 현판이다. 반천정사는 반천서원의 전신으로, 구전(苟全) 김중청(金中淸)을 제향하기 위해 봉화의 유림에서 건립한 것이다. 김중청은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의 후손으로, 월천 조목에게 사사하였다. 문과에 급제한 뒤 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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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천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안동김씨 구전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반천서원의 현판이다. 구전 김중청의 학행 도덕을 길이 추모하기 위하여 현종 10년(1669) 봉화 유림에서 이사(里社)를 창건하고 봄·가을로 제향하다가 반천서원으로 승격·개칭되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는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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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현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안동김씨 구전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존현사의 현판이다. 현종 10년(1669) 봉화 유림에서 구전 김중청을 추모하기 위해 이사(里社)를 세웠는데, 이 이사의 이름이 바로 존현사이다. 이사가 반천서원으로 승격되기 전, 처음으로 김중청을 제향하던 곳이 바로 이 존현사였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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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병시 / 유교문화>유물 / 미상‘원석헌연시(元夕獻筵詩)’를 새긴 목판의 일부이다. 이현보가 88세 되던 해 정월대보름에 이현보의 자제들과 인근의 벼슬아치 및 선비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회연을 가졌다. 이 때 회연의 흥취를 돋우기 위해 이현보의 둘째 아들 이중량이 천(天)자를 운으로 제시하며,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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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옥계집(玉溪集)』은 김명흠(金命欽 ; 1696∼1773)의 2권1책의 목판본 문집이다. 김명흠의 자는 백해(伯諧)이며, 호는 옥계, 본관은 의성으로 부친은 한기(漢基)로 안동에 거주하였다. 문집의 서문은 권상익(權相翊)이 지었으며, 권1에는 시, 서(書), 제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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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문집 / 유교문화>유물 / 미상『대야문집(大埜文集)』은 조선 중기의 학자 유건휴(柳健休 ; 1768∼1834)의 시문집으로 10권 5책의 목판본이다. 유건휴의 자는 자강(子强), 호는 대야(大埜),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아버지는 유충원(柳忠源)이다. 유장원(柳長遠)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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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일고 / 유교문화>유물 / 미상『파산일고(巴山逸稿)』는 조선 중기의 학자 류중엄(柳仲淹)의 시문집으로, 불분권 1책의 목판본이다. 1808년(순조 8) 종후손 류이좌(柳台佐)가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구성(李龜星)의 서문이, 권말에 류이좌의 발문이 있다. 시·만사 13수, 서(書) 32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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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풍산류씨 파산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영사재의 현판이다. 파산종택은 파산 유중엄의 집이다. 유중엄은 퇴계 선생의 문인으로 종질(從姪)인 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과 동문수학하여 학문에 침잠했으나 34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의 자질을 아까워하며 ‘계문(溪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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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풍산류씨 파산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경모당의 현판이다. 파산 유중엄은 성품이 단아하고 청순한 인품에 일찍부터 명리와 영달을 초월하여 위기지학을 도야하는 인물이었다. 퇴계에게도 그 자질과 품덕을 인정받고 촉망받았지만, 퇴계가 죽은 다음 해 3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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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발시서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정부인 안동장씨의 초서체 시첩인 ‘학발시첩’의 목판이다. 안동장씨는 경당 장흥효의 딸이자 석계 이시명의 아내이고, 갈암 이현일의 어머니이다. 안동장씨는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잘 알려져 있고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이 ‘학발시첩’은 안동장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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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벽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풍산류씨 함벽당종택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함벽당 종택은 안동시 서후면 광평리에 위치하고 있고, 현재 경북 문화재자료 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함벽당은 원래 명종 때의 절충장군 강희철이 세운 함경당(涵鏡堂)이었는데, 후에 이곳에 세거해오던 함경당 류경시가 소유하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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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락재 / 유교문화>유물 / 김홍도안동시 풍산읍 상리의 체화정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체화정은 이민적(李敏迪 ; 1663∼1744)이 효종(孝宗) 때에 지었으며, 형 이민정과 함께 살면서 형제의 우의를 다진 장소이다. 체화(棣華)란 형제의 화목과 우애를 뜻하는 말이며 담락은 형제간의 우애를 오래도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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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재 / 유교문화>유물 / 한석봉영주시 평은면 천본리에 위치한 오계서원(迂溪書院)의 동재(東齋) 현판으로, 원래는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 1541∼1595)이 1570년(선조 3)에 외내에다 지은 오계정사의 서재 이름이다. 관성재라는 이름은 중국 송나라의 대학자 남헌 장식이 주희에게 ‘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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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도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오계서원 정문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이가 도학(道學)으로 들어서는 문이라는 뜻이다. 1691년(숙종 17)에 영천 사림에서 오계서당을 오계서원으로 승격하고 강당을 명륜당, 정문을 입도문(入道門)이라 하였다. 입도문은 1973년에 중수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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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오계서원의 정자에 걸려있던 현판이다. 오계서원은 조선 중기 퇴계 이황 선생의 문인인 간재(簡齋) 이덕홍(李德弘 ; 1541∼1596)과 그의 아들인 이시(李蒔 ; 1569∼1636)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간재 이덕홍이 오천 가에 오계정사라는 서재를 지어 수양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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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위료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오계서원의 서재(西齋)에 걸려있던 현판이다. 주희가 쓴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에서 ‘일이 이르러 이에 응하게 되면 곧 실천에서 증험하라(事至斯應則驗于爲)’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 생활에서 배운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을 이 현판에 담은 것이다. 이 현판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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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존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오계서원의 사당에 걸려있던 현판이다. 서원의 설립자 간재 이덕홍(李德弘 ; 1541∼1595)과 중건자인 이덕홍의 큰아들 이시(李蒔 ; 1569∼1636)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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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오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현판은 간재 이덕홍의 큰아들 이시(李蒔 ; 1569∼1636)의 호에서 유래한 당호인데, 건물은 일반적으로 간재종택이라 부른다. 이시는 정구의 문인으로 일찍 과거를 포기하고 가학을 계승했다. 당시 대북파에 가담한 아우를 깨우치기 위해 「오로가」와 「조후풍가」시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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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오계서원의 강당이다. 중앙에 여섯 간 대청과 좌우에 각 두 간의 방이 있다.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강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대청정면에는 오계서원 현판이 걸려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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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계서원 / 유교문화>유물 / 미상영주시 평은면에 위치한 오계서원의 현판이다. 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 여름에 이덕홍(李德弘)이 30세 때 태조봉 남쪽 기슭(현재의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오천 마을)에 학문과 마음을 닦고 후학을 기르기 위하여 오계정사(迃溪精舍)를 건립하여 동재를 관성재(觀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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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암 / 유교문화>유물 / 미상조선중기의 학자 이덕홍(1541∼1596)의 묘소 수호를 위해 건립한 재사의 편액으로 건물은 안동 녹전에 위치한다. 간재 이덕홍은 이황의 문인으로 스승의 명으로 선기옥형을 제작하였고 스승 임종시에는 서적을 관리하라는 부탁을 받았던 인물이다. 글씨는 날렵한 흘림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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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숭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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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정 / 유교문화>유물 / 허목경북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있는 백운정의 현판이다. 백운정은 귀봉(龜峯) 김수일(金守一 ; 1528∼1583)이 그의 부친인 청계 김진(金璡 ; 1500∼1580)으로부터 부지를 받아서 1568년(선조 1)에 건립하였다. 현판은 미수 허목(許穆 ; 1595∼168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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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실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의성김씨 운천공 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불이실의 현판이다. ‘불이’(不貳)란 ‘두 마음을 갖지 않는다’, ‘하나에 집중한다’라는 의미로, 보통 임금에 대한 순일한 충성심을 일컫는 말로 쓰이거나 학문에 전일하게 집중한다는 의미로 쓰인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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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백운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시판은 백운정에 걸려 있던 약봉(藥峰) 김극일(金克一)의 시를 판각한 것이다. 이 시판에는 ‘기백운정’ 2수와 ‘운정즉사’(雲亭卽事) 1수가 실려 있다. 김극일은 청계 김진의 맏아들이자 학봉 김성일의 형이다. 명종 때 증광시에 합격하여 부사의 벼슬을 지낸 바 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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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백운정에 걸려있던 청계 김진의 시판이다. 학봉 김성일과 귀봉 김수일 등 김진의 아들을 비롯한 여러 선비들이 백운정에 들어 이 시를 차운하여 시를 지었기 때문에, 이 시의 제목을 ‘원운’이라고 한 것이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절벽을 깎아 정자 세운 푸른 산머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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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_운천 / 유교문화>유물 / 미상운천 김용의 시 3수를 판각한 현판이다. 김용은 귀봉 김수일의 아들이자 김성일의 조카이다. 일찍이 조정의 주요 관직을 역임하다가 동인(東人)의 탄핵을 받고 물러나 예천군수·상주목사 등 외직에 몸담았다. 조정의 당쟁이 날로 심해지자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4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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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_표은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시판은 표은 김시온(金是榲)이 김진의 ‘원운’을 차운하여 지은 시로, 원제목은 ‘백운정복차경조판서공운(白雲亭伏次曾祖判書公韻)’이다. 김시온은 김극일의 양손자로서 김진에게는 증손자가 된다. 김시온은 어려서부터 총명하다고 이름났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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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_학봉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 시판은 학봉 김성일이 아버지 김진의 ''원운''을 차운하여 지은 시 2수이다. 김성일은 이황의 제1 제자로, 서애 류성룡과 함께 퇴계의 학풍을 이어나간 영남 사림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이 시에서 학봉은 백운정 부근 경치의 아름다움을 읊으며 세속에 얽매임 없이 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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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우음 / 유교문화>유물 / 김수일안동 임하 백운정에 걸여있던 시판이다. 시의 작자 귀봉 김수일은 김진의 둘째 아들로 퇴계의 문하에서 심학(心學)을 연구, 명쾌한 토론으로 인정을 받았다. 시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고을 서북쪽 낙동강 물가 푸른 산에 작은 정자 높이 서있네. 자제들 틈틈이 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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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백운정위운천김참의작용제공운 / 유교문화>유물 / 이안눌백운정에 걸려있던 시판으로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이 김수일의 맏아들인 운천 김용(金涌)을 위해서 지은 것이다. 이 시를 지은 이안눌은 당시(唐詩)에 능하여 곧잘 이태백에 비유되었고 글씨도 잘 썼다. 두 수 중 한 수를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일찍이 임하의 옛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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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백운정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죽서(竹西) 심종직(沈宗直)이 김진의 ‘원운’을 차운하여 지은 시를 판각한 서판이다. 심종직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송익필의 문인이자 청백리 심종민의 동생이다. 광해군 때에는 공조참의를 역임하였고, 시문에 이름이 있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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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차판상운 / 유교문화>유물 / 미상파서(琶西) 이집두(李集斗)가 김진의「원운」을 차용하여 지은 시를 판각한 서판이다. 이집두는 조선 순조 때의 문신(文臣)으로 예조판서를 지낸 바 있다. 이집두가 지부(知府)의 관직을 맡고 있을 때 백운정에 들러 유람한 다음 김진의「원운」을 빌려 백운정의 절경을 시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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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백운정의 주사로 들어가는 중문에 게시되었던 현판이다. ‘조양’이란 ‘단봉조양(丹鳳朝陽)’의 줄임말로, 《시경》「권아(卷阿)」편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며 ‘어진 인재가 언젠가 때를 만나 일어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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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문 / 유교문화>유물 / 미상백운정의 동서 주사로 들어가는 마루 동편에 게시되었던 현판이다. 이요는 《논어》의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산수 절경의 백운정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현판의 글씨는 퇴계 이황의 친필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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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서당 / 유교문화>유물 / 미상횡성조씨 월천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월천서당의 현판이다. 월천서당은 이황의 수제자인 월천 조목(趙穆)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39년(중종 34)에 건립한 서당으로, 현재는 경상북도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목은 학문과 덕망으로 이름이 높았을 뿐 아니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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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횡성조씨 월천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시재의 현판이다. 월천서당에 걸려있던 현판으로 사료된다. 시재란 옳음을 추구하는 사람의 집이라는 의미로, 배움을 통해 옳은 마음을 닦고 옳은 일을 행하라고 가르친 조목의 교육철학을 엿볼 수 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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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판_도수 / 유교문화>유물 / 미상횡성조씨 월천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퇴계 이황의 시판이다. 조목은 퇴계의 수제자였고, 퇴계는 자주 조목에게 시를 보내었다. 이 시판에 실린 시도 그 중 하나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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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장 / 유교문화>유물 / 미상진주강씨 기헌고택의 사랑채에 위치한 책방(서고)에 걸렸던 현판이다. 여기서 석방(石方)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를 뜻하며, 장(丈)은 사방 10자의 공간을 의미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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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매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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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헌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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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천정 / 유교문화>유물 / 미상류천정(柳川亭)은 경북 문경시 산양면 존도리에 있으며, 1905년에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4子인 류초(柳初, 호는 柳川)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의 성력(誠力)으로 건립한 정자이다. 중간에 대청(大廳)을 두고 양협실(兩夾室)이 있으며 동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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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재 / 유교문화>유물 / 미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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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련 / 유교문화>유물 / 미상주련(柱聯)은 류천정(柳川亭)에 복원재생하여 걸어두고 원본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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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이씨 건시용하기(乾枾用下記) / 유교문화>유물 / 미상이「건시용하기(乾枾用下記)」는 곶감의 지출명세표이다. 곶감은 제수용뿐만 아니라, 일반 음식용으로도 사용되었다. 매월 최초 재고 수량, 해당 월의 사용액, 최종 재고량순으로 기입하였는데, 10월부터 시작하여 22개월간 사용한 지출명세표이다.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