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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일 / 유교문화>인물 / 황수일조선 후기의 학자 황수일(黃壽一 ; 1666∼1725)의 자는 용오(用五), 호는 용강(龍岡),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아버지는 희세(熙世)이며,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이다. 이남악(李南嶽)·정시한(丁時翰)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운 남인 학자로, 성리학과 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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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임 / 유교문화>인물 / 권상임강파(江坡) 권상임(權尙任 ; 1622∼1700)의 자(字)는 사중(士重), 호(號)는 강파(江坡),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선생은 1669년(현종 10) 병과에 급제하여 1672년 전적(典籍), 충무위부사정(忠武尉副司正) 등을 거쳤다. 1675년 공조정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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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녕 / 유교문화>인물 / 박기녕조선 후기의 학자 박기녕(朴箕寧 ; 1779∼1857)의 자는 치승(穉承), 호는 하수(荷수), 본관은 함안(咸安)으로, 1816년(순조 16) 進士試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고 오직 노친을 봉양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적성산(赤城山)에 은거하여 후진을 교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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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적 / 유교문화>인물 / 강대적조선 중기의 의병장 강대적(姜大適 ; 생몰년 미상)의 자는 학중(學仲), 호는 구주(구洲),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익문(翼文)이며, 1612년(광해군 4)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태학에 유학할 때 조용주(趙龍洲), 이백헌(李白軒), 정양파(鄭陽坡), 조포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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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규 / 유교문화>인물 / 강명규조선말기의 학자 강명규(姜命奎 ; 1801~1867)의 자는 세응(世應), 호는 유계(柳溪)·정눌거사(靜訥居士), 본관은 진주(晋州), 필경(必敬)의 아들이다. 그는 강운(姜橒)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았는데, 특히 『주자전서(朱子全書)』읽기를 좋아했다고 한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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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문 / 유교문화>인물 / 강봉문조선 후기의 학자 강봉문(姜鳳文 ; 1735~1815)의 자는 주서(周瑞), 호는 옥계(玉溪),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영주(榮州)에서 출생하여 안동으로 이거하였다. 득위(得渭)의 아들이며, 류홍원(柳弘源)에게서 배웠다. 가문이 한미했으나 학문에 전심하고 효자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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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 / 유교문화>인물 / 강승조선전기의 문신인 강승(姜昇 ; 1430∼1500)의 자는 자양(子揚), 호는 완휴재(玩休齋),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아버지는 성균관 사성(司成)을 지낸 순(純)이며, 어머니는 김제조씨(金堤趙氏)로 판서 통원(通元)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김숙자·김종직 부자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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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여관 / 유교문화>인물 / 강여관강여관(姜汝寬 ; 1669∼1715)의 자는 군평(君平), 호는 매계(梅溪),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서주(瑞周)이다. 어려서부터 준수하고 식견과 도량이 범상치 않았다. 12세에 부친상을 당하여 애모하기를 성인과 같이하여 조객들이 눈물을 흘려 성효를 감탄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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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 / 유교문화>인물 / 강용학자인 강용(姜鎔 ; 1846∼1934)의 자는 계명(季明), 호는 정와(靖窩),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아버지는 하규(夏奎)이며, 奉化사람이다. 어려서 학문하는 가정에서 자라 만사를 공부하는 일로 여겨서 `학자란 오직 공부를 그치지 않는 것만이 귀하다`고 생각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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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 / 유교문화>인물 / 강운강운(姜橒 ; 1773∼1834)의 자는 경하(擎厦), 호는 송서(松西), 본관은 진주(晉州)이다. 그는 1798(正祖 22)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유학할 때 문단의 독보라는 칭송을 들었다. 1807(純祖 7)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사랑(承仕郞)이 되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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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형 / 유교문화>인물 / 강원형조선말기의 문인·의사(義士) 강원형(姜遠馨 ; 1862∼1914)의 자는 성윤(聖允). 호는 혜사(蕙社). 본관(本貫) 진주(晋州). 경상북도 칠곡(漆谷)에서 태어났다. 1896년 을미사변(명성황후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상경하여 구국상소를 올렸으며, 1904년 러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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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 / 유교문화>인물 / 강윤조선 후기의 문신 강윤(姜潤 ; 1701∼1782)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덕이(德以) 호는 법천(法川)이다. 1747년(영조 2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의 별검이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758년 예조좌랑, 이듬해 지평·장령 등에 제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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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응철 / 유교문화>인물 / 강응철강응철(康應哲 ; 1562∼1635)의 자는 명보(明甫), 호는 남계(南溪), 본관은 재령(載寧)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에 대(大)자를 썼으며, 신동으로 불리었다. 1590년(선조 23) 진사, 뒤에 찰방이 되었으나 곧 벼슬을 버리고 상주에 귀환, 시주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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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 / 유교문화>인물 / 강익조선 중기의 학자인 강익(姜翼 ; 1523~1567)의 본관 진주. 자 중보(仲輔). 호 개암(介菴) ·송암(松菴).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1549년(명종 4)에 伯兄과 함께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고 오직 독서에 전념하며 모친을 봉양하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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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문 / 유교문화>인물 / 강익문강익문(姜翼文 ; 1568∼1647)의 본관은 진주, 자는 군우(君遇), 호는 당암(戇菴), 판관 세탁(世倬)의 아들이다. 1589년에 진사가 되고, 1606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듬해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에 임명되어 세자시강원의 설서(說書)를 겸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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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복 / 유교문화>인물 / 강주복조선 후기의 학자 강주복(姜周福 ; 1782∼1851)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휴(聖休), 호는 벽산(碧山)이다. 아버지는 용보(龍輔)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咸安趙氏)로 재근(載瑾)의 딸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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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 / 유교문화>인물 / 강찬조선 후기의 학자 강찬(姜酇 ; 1647∼1729)의 자는 자진(子鎭), 호는 성건재(省愆齋), 본관은 진산(晉山)이다. 아버지는 각(恪)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욱(勗)의 딸이다. 처음에는 정양(鄭瀁)으로부터 글을 배우다가 윤증(尹拯)의 문인이 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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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필효 / 유교문화>인물 / 강필효조선후기의 학자 강필효(姜必孝 ; 1764∼1848)의 자는 중순(仲順), 호는 해은(海隱),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식(植)이며, 봉화에 거주했다. 윤증(尹拯)의 학통을 받은 윤광소(尹光紹)를 사사한 저자는 생애 85년을 학문에 바쳤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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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규 / 유교문화>인물 / 강헌규조선후기의 학자 강헌규(姜獻奎 ; 1797∼1860)의 본관은 진주, 자는 경인(京仁), 뒤에 경수(景受)라 고쳤다. 호는 수소재(守素齋)·농려(農廬)·함일당(涵一堂). 아버지는 돈녕 부도정 필효(必孝),어머니는 의성김씨로 국찬(國燦)의 딸이다. 뒤에 승지 필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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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지 / 유교문화>인물 / 강헌지조선 후기의 학자 강헌지(姜獻之 ; 1624∼1701)의 본관은 진주. 자는 자경(子敬), 호는 퇴휴당(退休堂). 아버지는 부호군 현승(顯昇)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로 부호군 사걸(士傑)의 딸이다. 어렸을 때부터 문예가 뛰어나 10여세에 「금의공자전 金衣公子傳」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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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승 / 유교문화>인물 / 고기승조선말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고기승(高基升 ; 1845~1903)의 자는 만희(晩羲), 호는 임당(恁堂), 본관은 탐라(耽羅)이다. 경혁(景爀)의 아들로 산청(山淸)에서 살았다. 1880년(고종 17)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가 되고, 사헌부지평(司憲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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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몽찬 / 유교문화>인물 / 고몽찬고몽찬(高夢贊 ; 1793∼1858)의 자는 이수(理叟), 호는 금주(錦洲), 본관은 개성(開城)이다. 정필규(鄭必奎)의 문인이다. 과거가 공정하지 못함을 알고 학문에만 힘썼다. 성리학이외에도 성문(星文), 지지(地誌), 음양(陰陽), 복서(卜筮), 율력(律曆),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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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언백 / 유교문화>인물 / 고언백조선 선조 때의 무신 고언백(高彦伯 ; ?∼1609)의 자는 국필(國弼), 호는 해장(海藏),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교동의 향리로서 무과에 급제하였고, 군관(軍官)·변장(邊將)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원군수(寧遠郡守)로서 대동강 등지에서 적을 맞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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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응척 / 유교문화>인물 / 고응척고응척(高應陟 ; 1531∼1605)의 자는 숙명(叔明), 호는 두곡(杜谷), 취병(翠屛)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선생은 김범(金範)의 문인으로 1549(명종4)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6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함흥교수(咸興敎授)로 부임하여 문회당(文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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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서린 / 유교문화>인물 / 공서린공서린(孔瑞麟 ; 1483∼1541)의 자는 희성(希聖), 호는 휴암(休巖),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그는 김굉필(金宏弼)에게서 배우고 조광조(趙光祖)와 교우했다. 1507년(중종 2)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519년 승지(承旨)가 되고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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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 유교문화>인물 / 공은공은(孔懚)의 자는 백양(伯良), 호는 고산(孤山), 본관(本貫)은 창원(昌原)이다. 선생은 원나라의 한림학사 출신으로 고려에서 문하시랑평장사가 되고 창원백(昌原伯)에 봉해진 소(紹)의 손자이다. 1380(고려우왕 6)년 文科에 급제하였다. 1392년(태조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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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간 / 유교문화>인물 / 곽간조선중기의 문신 곽간(郭趕 ; 1529~1593)의 자는 원정(元靜), 호는 죽재(竹齋), 본관은 현풍(玄風)이다. 지견(之堅)의 아들로 현풍에서 살았다. 그는 18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가 되었다가 정자(正字)에 올랐다. 1550년(명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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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기수 / 유교문화>인물 / 곽기수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곽기수(郭期壽 ; 1549∼1616)의 자는 미수(尾叟), 호는 한벽당(寒碧堂). 아버지는 세유(世幼)이다. 1579년(선조 12) 진사과에 합격하였으며,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그 뒤 관직이 예조좌랑에 이르렀고, 부안현감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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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강 / 유교문화>인물 / 곽수강곽수강(郭壽岡 ; 1619∼1660)의 자는 진옹(鎭翁), 호는 매헌(梅軒), 본관은 포산(苞山), 아버지는 홍점(鴻漸),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로 진사 적(迪)의 딸이다. 1654년(효종 5)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8년 성균관에 들어가 경의(經義)를 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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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순 / 유교문화>인물 / 곽순조선 중기의 문신 곽순(郭珣 ; 1502~1545)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 1528년(중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박사·호조좌랑·진보현감(眞寶縣監)·기주관(記注官) 등을 거쳐, 1543년에 사예(司藝)가 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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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율 / 유교문화>인물 / 곽율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곽율(郭(走+日) ; 1531~1593)의 자는 태정(泰靜), 호는 예곡(禮谷), 본관은 현풍(玄風)이다. 1558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2년 성균관의 천거로 조지서(造紙署) 별제(別提)에 초임, 김천도(金泉道) 찰방(訪), 내섬시(內贍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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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겸 / 유교문화>인물 / 곽재겸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곽재겸(郭再謙 ; 1547∼1615)의 자는 익보(益甫), 호는 괴헌(槐軒), 본관은 현풍(玄風)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 초(超). 둘째 아버지 월(越)에게 글을 배우다가 김경창(金慶昌)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한 뒤 정구(鄭逑)와도 종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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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 / 유교문화>인물 / 곽재우조선 중기의 학자·무신인 곽재우(郭再祐 ; 1552∼1617)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 황해도관찰사 월(越)의 아들이고, 조식(曺植)의 외손서이며, 김우옹(金宇顒)과는 동서 사이이다. 1585년(선조 18) 34세의 나이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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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전 / 유교문화>인물 / 곽전곽전(郭瀍 ; 1839∼1911)의 자는 순구(舜九), 호는 눌재(訥齋), 본관은 포산(苞山), 아버지는 표(杓)이다. 젊어서 학문을 연마하여 중년 에는 과거에 응하였으나 실패한 후로 안동의 일직에 우거하면서 견문을 더욱 넓혔다. 선 생의 가문은 대대로 효자로 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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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 / 유교문화>인물 / 곽진곽진(郭(山+晉) ; 1568∼1633)의 자는 정보(靜甫), 호는 단곡(丹谷),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아버지는 생원 한(澣)이며 어머니는 평해황씨로 참봉 언량(彦良)의 딸이다. 선생은 권우(權宇)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25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성일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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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천구 / 유교문화>인물 / 곽천구조선 중기의 문신인 곽천구(郭天衢 ; 1589∼1670)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사형(士亨). 호는 구봉(九峯)이다. 1615년(광해군 7) 생·진사양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다. 괴원(槐院)을 거쳐 북평사(北評事), 예조좌랑(禮曹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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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표 / 유교문화>인물 / 곽표곽표(郭杓 ; 1818∼1875)의 자는 정수(定叟), 호는 효처당(孝處堂), 본관은 포산(苞山)이다. 진택(鎭澤)의 아들이며, 이종상(李鍾祥)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어려서부터 명민하여 학업에 충실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만년에는 효자로 이름났던 5대조 이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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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휘승 / 유교문화>인물 / 곽휘승근대의 학자 곽휘승(郭徽承 ; 1872∼1903)의 자는 성서(聖緖), 호는 염와(廉窩), 본관 현풍(玄風)이다. 아버지는 종운(鐘雲)이며, 어머니는 광산이씨로 종박(宗樸)의 딸이다. 종덕(鐘德)에게 입양되었으며, 곽종석(郭鐘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95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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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 / 유교문화>인물 / 권경권경(權璟 ; 1604∼1666)의 자는 경옥(景玉), 호는 대은(臺隱),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부제학 권자홍(權自弘)의 7세손이고 사복시정 권의협의 아들이며 태어날 때부터 그 모습이 인자하고 부드러웠으며 모든 일을 규모 있게 하였고 일찍이 김시양(金時讓)에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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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극량 / 유교문화>인물 / 권극량조선 중기의 학자인 권극량(權克亮 ; 1584∼1631)의 본관은 안동, 자는 사임(士任), 호는 동산(東山), 아버지는 약(瀹)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 (咸安趙氏)로 충의공(忠毅公) 종도(宗道)의 딸이다. 어려서는 체격이 크고 기상이 뛰어나 사람들로부터 크게 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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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길 / 유교문화>인물 / 권길권길(權佶 ; 1712∼1774)의 자(字)는 정보(正甫), 호(號)는 경모(敬慕),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다. 향시(鄕試)에는 장원하였으나, 정시(庭試)에 낙방하여 강촌에 은거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뒤에 향천(鄕薦)으로 동몽교관에 증직되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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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달수 / 유교문화>인물 / 권달수권달수(權達手 ; 1469 ∼1504 )의 자는 통지(通之), 호는 동계(桐溪),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 임(琳)이다. 1492(성종 23)년 과거에 급제하고 뒤에 교리(校理)가 되었고, 1495년(燕山君 1) 독서당에 뽑혀 사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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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겸 / 유교문화>인물 / 권대겸조선 중기의 학자 권대겸(權大謙 ; 1659∼1729)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익(伯益), 호는 쌍괴당(雙槐堂)이다. 아버지는 덕여(德輿)이고 어머니는 평해황씨(平海黃氏)로 선교랑(宣敎郞) 중헌(中憲)의 딸이다. 문학으로 명망이 있었으며 이재(李栽) 등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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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덕린 / 유교문화>인물 / 권덕린권덕린(權德麟 ; 1529∼157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군서(君瑞), 호는 구봉(龜峰). 아버지는 첨정 계중(繼中)이다. 이언적(李彦迪)의 문인이다. 공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모부인(母夫人)이 공부를 독촉함이 매우 엄했다. 조금 자라서 회재(晦齋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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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 / 유교문화>인물 / 권도권도(權濤 ; 1575∼1644)의 자는 정보(靜甫), 호는 동계(東溪), 본관은 안동(安東), 아버지는 사포서별좌(司圃署別坐) 세춘(世春)이며, 어머니는 상산(商山) 김씨로 담(湛)의 딸이다. 선생은 정구 (鄭逑),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으로 1601년(선조34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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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 / 유교문화>인물 / 권익권익(權(金+翼) ; 1821~1876)의 자는 사중(士重), 호는 근와(根窩). 백부 평(玶)에게 출계하였다. 안동인으로 아버지 장(璋)과 어머니 고성이씨(固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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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 / 유교문화>인물 / 권도권도(權鍍 ; 1823~1895)의 자는 사칙(士則), 호는 지와(支窩). 안동인으로 아버지 장(璋)과 어머니 고성이씨(固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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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찬 / 유교문화>인물 / 권찬권찬(權鑽 ; 1826~1905)자는 사견(士堅), 호는 정와(正窩)로 병곡(屛谷) 권구(權榘)의 5세손이다. 안동인으로 아버지 장(璋)과 어머니 고성이씨(固城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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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득기 / 유교문화>인물 / 권득기권득기(權得己 ; 1570∼1622).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중지(重之), 호는 만회(晩悔), 본관은 안동(安東), 그의 할아버지는 종묘서령 덕유(德裕)이며, 아버지는 예조판서(禮曹判書) 극례(克禮)이다. 큰아버지인 선공감역(繕工監役) 극관(克寬)에게 입양되었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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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득여 / 유교문화>인물 / 권득여조선후기의 학자 권득여(權得輿 ; 1636∼1716)의 자는 득초(得初), 호는 송천자(松川子),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그의 아버지는 지평제향사(持平祭享社)에 증직된 경(璟)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시열(時說)의 딸이다. 1682년(숙종 8)에 진사시에 합격하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