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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익 / 유교문화>인물 / 송홍익조선 말기의 학자 송홍익(宋鴻翼 ; 1802∼1876)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천칙(天則), 호는 봉하(鳳下)이다. 1825년(순조 2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과거시험에 실패한 뒤 오직 학문에만 열중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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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희규 / 유교문화>인물 / 송희규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송희규(宋希奎 ; 1494~1558)의 자는 천장(天章), 호는 야계산옹(倻溪散翁). 본관은 야로(冶爐)이다. 부사직을 지낸 방현(邦賢)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 8) 향시에 합격하고 이어 151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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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옥 / 유교문화>인물 / 신내옥신내옥(辛乃沃 ; 1525 ~ 1616)의 자는 계이(啓而) 호는 일죽재(一竹齋) 만호(晩號)는 양정재(養正齋). 1558년(明宗 13) 식년(式年) 성균진사(成均進士)에 1등하였으며, 영월읍지에 보면 영월읍 흥월리(興月里)에 태어났어 퇴계(退溪) 선생에 뜻을 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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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현 / 유교문화>인물 / 신동현조선 중기의 학자 신동현(申東顯 ; 1641∼1706)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회숙(晦叔), 호는 매죽당(梅竹堂). 아버지는 여기(汝夔)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훈(薰)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죽은 뒤에 지방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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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몽삼 / 유교문화>인물 / 신몽삼조선후기의 학자 신몽삼(辛夢參 ; 1648~1711)의 자는 성삼(省三), 호는 일암(一庵), 본관은 영산(靈山)이다. 대림(大臨)의 아들로 창녕(昌寧)에서 살았다. 그는 일찍이 외삼촌 송정현(宋廷賢)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고 이어서 족조(族祖) 민행(敏行)에게 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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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하 / 유교문화>인물 / 신상하신상하(申相夏 ; 1839∼1906)의 자는 계순(繼舜), 호는 구암(矩庵),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재종숙인 인협(寅協)에게 입양되었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벼슬보다는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당시의 석학인 이돈우(李敦禹), 김도화(金道和)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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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헌 / 유교문화>인물 / 신상헌조선말기의 학자 신상헌(申相憲 ; 1842~1911)의 자는 찬보(纘甫), 호는 모암(慕庵)·주정와(主靜窩),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창협(昌協)의 아들로 의성(義城)에서 살았다. 그는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소식을 듣고 여러 동지들과 모여 통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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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림 / 유교문화>인물 / 신석림조선후기의 학자인 신석림(辛碩林 ; 1766∼1840)의 자는 문첨(文詹), 호는 청계(聽溪), 본관은 영산(靈山), 아버지는 치보(致輔)이며 창영사람이다. 1798년(정조 22)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노론집권 후 벼슬을 사임하였다가 1806년(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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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 유교문화>인물 / 신석호조선 말기의 학자인 신석호(申錫祜)의 자는 덕문(德文), 호는 가헌(可軒)이다. 일찍이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한 후로 황조산(黃鳥山) 아래에 봉정(鳳亭)을 짓고 숨어살았다. 대원군(大院君)이 영남 유람길에 찾아와서 의기가 서로 맞아 시를 지어 공에게 주기도 하였다출처 : 유교넷 -
80060
신완 / 유교문화>인물 / 신완신완(申完 ; 1738~?)의 자는 시성(時成), 호는 구계(鷗溪), 본관은 평산(平山)이다.출처 : 유교넷 -
80061
신우 / 유교문화>인물 / 신우신우(申祐 ; ? ∼? )의 호는 퇴재(退齋),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그의 아버지 윤유(允濡)는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版圖判書)·군기사별검교사(軍器寺別檢校事)를 역임하였는데, 청렴하고 절개가 곧기로 유명하였다. 당시 원(元) 황제가 고려인으로서 상소하는 것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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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명 / 유교문화>인물 / 신의명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의명(申義命 ; 1654∼1716)의 자는 안수(安叟), 호는 외암(畏巖)·경옹(敬翁),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양세(揚世)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로 직(溭)의 딸이다. 1684년(숙종 10)에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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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손 / 유교문화>인물 / 신인손조선 초기의 문신인 신인손(辛引孫 ; 1384∼1445)의 자는 조윤(祚胤), 호는 석천(石泉), 본관은 영산(靈山)이다. 아버지는 유정(有定)이고, 어머니는 설숭(薛崇)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벼슬이 병조판서·대제학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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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수 / 유교문화>인물 / 신재수신재수(申在壽 ; 1828∼1895)의 자는 사일(士一), 호는 반구재(反求齋),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군위의 가곡리(佳谷里)출신으로 부친은 상오(相五), 모친은 순천 박씨 정현(正鉉)의 따님이다. 그는 마을의 수재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백록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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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형 / 유교문화>인물 / 신재형신재형(申在衡 ; 1649∼1697)의 자는 백흠(伯欽), 호는 쌍청(雙淸),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할아버지 유헌(幽軒)공이 자애로서 가르침이 헤이해지지 않도록 하였다. 15세에 유헌공이 하세함에 장제를 가례에 따랐는데 성인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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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모 / 유교문화>인물 / 신정모신정모(申正模 ; 1691~1742)의 자는 경해(景楷), 호는 이치재(二恥齋),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아버지는 덕일(德溢) 義城사람이며, 어머니는 선성이씨(宣城李氏)로 성구(星耉)의 딸이다. 1719년 進士試에 合格하고 文科에 壯元으로 及第하였다. 藝文館副正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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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호 / 유교문화>인물 / 신종호조선말기의 학자인 신종호(申鍾浩 ; 1827∼1906)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달원(達元), 호는 사은(泗隱)이다. 족숙(族叔)인 필흠(弼欽)에게 한문을 배웠으며, 뒤에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흥락(金興洛)·허훈(許薰)·신익호(申翼浩)등과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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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좌모 / 유교문화>인물 / 신좌모신좌모(申佐模 ; 1799∼187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호계(虎溪),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인 헌록 (憲祿)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종후(宗厚)의 딸이다. 1827년(순조27) 사마시에 합격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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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효 / 유교문화>인물 / 신지효신지효(申之孝 ; 1561~1592)의 자는 달부(達夫), 호는 응암(鷹巖),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1592(宣祖壬辰)에 난리를 피하다가 적을 만나 죽었다. 임진왜란이 급할 때 선생의 아우 梧峰 之悌는 宣城縣令으로 있고 선생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집에 있다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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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운 / 유교문화>인물 / 신진운신진운(申晉運 ; 1849∼1922)의 자는 시응(時應), 호는 만오(晩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아버지는 국준(國俊)이며,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 사심(思沈)의 딸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기가 총명하고,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출처 : 유교넷 -
80071
신집 / 유교문화>인물 / 신집조선 중기의 문신 신집(申楫 ; 1580∼1640)의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여섭(汝涉), 호는 하음(河陰). 경상도 상주출신. 주부 경남(慶男)의 아들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장현광(張顯光), 정구(鄭逑)의 가르침을 자주 받았다. 1606년(선조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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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조 / 유교문화>인물 / 신창조신창조(申昌朝 ; 1753∼1833)의 자는 공만(公晩), 호는 농담(籠潭),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덕일(德一)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우천(遇天)의 딸이다. 일찍이 세상이 어지러움을 개탄하며 벼슬을 포기하고 향리에서 학문연구에 전념하면서 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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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 / 유교문화>인물 / 신채신채(申埰 ; 1610~1672)의 자는 자경(子卿), 호는 인재(忍齋), 본관은 아주(鵝州)이다. 적도(適道)의 아들로 의성(義城)에서 살았다. 그는 광해군의 난정을 당했으므로 과거에 응하지 않다가 인조가 즉위한 뒤 비로소 응시해서 1620년 초시에 입학하고 1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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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택화 / 유교문화>인물 / 신택화신택화(申宅和 ; 1728∼1800)의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아버지는 광한(光漢)이며 어머니는 경주안씨(慶州安氏)로 인정(仁靜)의 딸이다. 선생은 숙부인 광초(光楚)에게 입양되었으며, 이재령(李載寧)의 문하에서 수학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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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흠 / 유교문화>인물 / 신필흠조선말기의 학자인 신필흠(申弼欽 ; 1806∼1866)의 자는 백한(伯翰), 호는 천재(泉齋),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치혁(致赫)이다. 유휘문(柳徽文)에게 수학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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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 / 유교문화>인물 / 신현신현(申賢)의 자는 신경(信敬), 호는 운월재(雲月齋)·불훤재(不諠齋)이다. 본관은 영해(寧海)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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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희 / 유교문화>인물 / 신용희신용희(申用羲)의 호는 간재(簡齋), 현(賢)의 아들이다. 본관은 영해(寧海)이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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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 / 유교문화>인물 / 신연신연(申演 ; 1534∼1595)의 자는 중호(仲浩)이고, 호는 우헌(寓軒)이다. 신언(申(水+焉))의 동생이다. 그는 일찍이 "청부(靑鳧)에게 형제가 있는데, 독서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집정관(執政官)이 불러 직책을 주려 하였지만 그는 사양하였다. 아버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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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활 / 유교문화>인물 / 신활조선중기 학자인 신활(申活 ; 1576∼1643)의 자는 경탁(景卓), 호는 죽노(竹老),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평생을 재야에서 장현광(張顯光)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수양에 힘썼으며, 임진왜란 후 학문이 해이해지자 단산서원(丹山書院)을 세워 학문을 장려했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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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흘 / 유교문화>인물 / 신흘조선중기 학자인 신흘(申忔 ; 1550∼1614)의 자는 구지(懼之),호는 성은(城隱), 본관은 아주(鵝洲), 아버지는 원록(元錄)이며 의성(義城)사람이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마친 후 묘 아래 집을 지어 영모(永慕)라는 편액을 달고 애도하였다. 임진란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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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성지 / 유교문화>인물 / 심성지심성지(沈誠之 ; 1831∼1904)의 자는 사행(士行), 호는 소류(小流),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아버지는 하수(鍛壽)이다. 그는 일찍이 둔와(遯窩) 류양흠(柳養欽)에게서 『중용』을 배웠다. 초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회시에서 실패한 뒤로는 과거를 단념하고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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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시 / 유교문화>인물 / 안경시안경시(安景時 ; 1712∼1794)의 자는 가중(可中), 호는 만회(晩悔), 본관은 한산(漢山), 아버지는 여리(汝履)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형하(亨夏)의 딸이다. 선생은 총명하여 말을 배우고부터 문자를 알았다. 18세에 정만양(鄭萬陽)의 문하에 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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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공 / 유교문화>인물 / 안공조선 중기의 학자 안공(安공 ; 1569∼1648)의 자는 대지(待之), 호는 오휴당(五休堂),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밀양출생이다.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광소(光紹)이며,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참의에 증직된 교(校)의 딸이다. 처음에 안여경(安餘慶)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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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관 / 유교문화>인물 / 안관종선 중기의 문인 안 권(安 灌 ; 1491∼1652)의 자는 권지(灌之), 호는 취우정(聚友亭), 본실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정도(尊道)이며, 함안(咸安)에 거주하였다. 저자는 중종조에 효행과 학문으로써 돈령참봉(敦寧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다. 1517년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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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극가 / 유교문화>인물 / 안극가안극가(安克家 ; 1547∼1614)의 자는 의지(宜之), 호는 뇌곡(磊谷), 우(遇)의 증손(曾孫)이다. 12세 때이정(李楨)의 문하에서 수업했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45세의 나이로 급제, 그 이후 참봉(參奉)·선교랑(宣敎郞)·현감(縣監) 등을 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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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 / 유교문화>인물 / 안우안우(安遇 ; 1449∼1527)의 자는 시숙(時叔), 호는 노계(蘆溪)·창랑객(滄浪客),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24세까지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소학(小學)』, 『심학(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을 공부하고, 25세에 초시(初試)에 급제, 다음해 성시(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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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문 / 유교문화>인물 / 안덕문안덕문(安德文 ; 1747~1811)의 자는 장중(章仲), 호는 의암(宜菴),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如石의 아들이며 宜寧사람이다. 선생은 父親의 命으로 두차례 應試했으나 곧 科擧를 폐하고 經傳을 硏究하기에 힘썼다. 당시의 儒賢을 찾아 師事하기를 권하면 "師道가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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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징 / 유교문화>인물 / 안도징조선후기 학자인 안도징(安道徵 ; 1616∼1678)의 자는 태화(泰和), 호는 점리와(點牢窩),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이황(李滉)을 사숙으로 수학하였으나, 일찍부터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다가 일생을 마쳤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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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하 / 유교문화>인물 / 안명하안명하(安命夏 ; 1682∼1752)의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와(松窩),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19세에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 들어가 『대학』·『논어』·『중용』.「서명(西銘)」·옥산강의(玉山講義) 등을 배웠다. 시를 읊조리며 자적했으며 성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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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몽징 / 유교문화>인물 / 안몽징조선 중기의 학자 안몽징(安夢徵 ; 1611∼1654)의 자는 천뢰(天賚), 호는 송파(松坡), 본관은 죽계(竹溪)이다. 아버지는 직(溭)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로 찰방 강(堈)의 딸이다. 그는 7세에 시문을 지었고 10세에 경사자집(經史子集)을 통독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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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수 / 유교문화>인물 / 안민수안민수(安敏修 ; 1724~1795)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눌보(訥甫), 호는 수오재(守吾齋). 권구(權?)의 문인으로 영남지방의 남인이며 처사(處士)이다. 유규(柳규), 김필형(金弼衡), 권명우(權明佑) 등과 교유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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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 / 유교문화>인물 / 안숙안숙(安璹 ; 1572∼1624)의 자는 대이(待而), 호는 낙원(樂園),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아버지는 광소(光紹)이며, 어머니는 철성이씨(鐵城李氏)로 참봉 양지(洋之)의 딸이다. 17세 때에 정구(鄭逑)를 사사하여 성리학을 배웠고 정경세(鄭經世), 정람(鄭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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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한 / 유교문화>인물 / 안상한안상한(安翔漢 ; 1604∼1661)의 자는 익중(翊仲). 호는 동만(東巒). 휘는 상한(翔漢). 본관은 광주(廣州). 낙원 안숙(安璹)의 아들이다. 어릴때 부터 성품이 활달하고 기질과 얼굴 생김이 위대해 보였으며 어떤 일에도 구애됨이 없었다. 일찍 경제(經濟)에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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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로 / 유교문화>인물 / 안영로조선 후기의 학자 안영로(安英老 ; 1797∼1846)의 자는 회수(晦叟), 호는 면암(勉庵)이다. 평생 시골에 은거하여 시문(詩文)과 학문에만 전념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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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호 / 유교문화>인물 / 안영호조선말기의 학자 안영호(安永鎬 ; 1854∼1896)의 자는 경능(敬能), 호는 급산(岌山),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호연(浩淵)이며 과문(科文)을 잘 하여 한번에 10여 편을 연독(連讀)하여 미사여구를 점철하였으나 과장(科場)에 들어간 일이 없었다. 고문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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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중 / 유교문화>인물 / 안유중조선 후기의 학자 안유중(安瑜重 ; 1802∼1868)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국서(國瑞), 호는 만포(晩浦). 아버지는 경태(景泰)이며, 어머니는 수원송씨(水原宋氏)로 방필(邦弼)의 딸이다.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후진을 교육하였다.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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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일 / 유교문화>인물 / 안인일조선후기의 학자 안인일(安仁一 ; 1736~1806)의 자는 정첨(靜瞻), 호는 죽북(竹北),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명언(命彦)의 아들로 밀양(密陽)에서 살았다. 그는 7세에『소학(小學)』을 배웠고 이로부터 10년 동안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연구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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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리 / 유교문화>인물 / 안일리조선후기의 문신 안일리(安日履 ; 1661∼1731)의 자는 길보(吉甫), 호는 낙애(洛厓),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한소(漢召)이다. 17세 때 김태기(金泰基)에게 수업하였으며, 1690년(숙종 16)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성균관에 들어갔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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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려 / 유교문화>인물 / 안정려조선 말기의 학자, 안정려(安鼎呂 ; 1871∼1939)의 자는 국중(國重), 호는 회산(晦山),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상기(相琦)로 함안(咸安)에 거주했으며, 허훈(許薰), 곽종석(郭種錫), 이승희(李承熙) 세분 선생에게 종학하여 주리학설(主理學說)의출처 : 유교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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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한 / 유교문화>인물 / 안정한조선말기의 학자 안정한(安鼎漢 ; 1840~1914)의 자는 원가(元可), 호는 지강(芝岡),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택반(宅磐)의 아들로 의령(宜寧)에서 살았다. 그는 약관에 과거에 응시하여 여러번 실패하자 과거의 뜻을 버리고 이돈우(李敦禹)의 문하에 들어가서출처 : 유교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