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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0051

    송홍익 / 유교문화>인물 / 송홍익
      조선 말기의 학자 송홍익(宋鴻翼 ; 1802∼1876)의 본관은 야성(冶城), 자는 천칙(天則), 호는 봉하(鳳下)이다. 1825년(순조 2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과거시험에 실패한 뒤 오직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출처 : 유교넷
  • 80052

    송희규 / 유교문화>인물 / 송희규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송희규(宋希奎 ; 1494~1558)의 자는 천장(天章), 호는 야계산옹(倻溪散翁). 본관은 야로(冶爐)이다. 부사직을 지낸 방현(邦賢)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 8) 향시에 합격하고 이어 151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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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53

    신내옥 / 유교문화>인물 / 신내옥
      신내옥(辛乃沃 ; 1525 ~ 1616)의 자는 계이(啓而) 호는 일죽재(一竹齋) 만호(晩號)는 양정재(養正齋). 1558년(明宗 13) 식년(式年) 성균진사(成均進士)에 1등하였으며, 영월읍지에 보면 영월읍 흥월리(興月里)에 태어났어 퇴계(退溪) 선생에 뜻을 두
    출처 : 유교넷
  • 80054

    신동현 / 유교문화>인물 / 신동현
      조선 중기의 학자 신동현(申東顯 ; 1641∼1706)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회숙(晦叔), 호는 매죽당(梅竹堂). 아버지는 여기(汝夔)이며,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훈(薰)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질이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죽은 뒤에 지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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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55

    신몽삼 / 유교문화>인물 / 신몽삼
      조선후기의 학자 신몽삼(辛夢參 ; 1648~1711)의 자는 성삼(省三), 호는 일암(一庵), 본관은 영산(靈山)이다. 대림(大臨)의 아들로 창녕(昌寧)에서 살았다. 그는 일찍이 외삼촌 송정현(宋廷賢)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고 이어서 족조(族祖) 민행(敏行)에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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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56

    신상하 / 유교문화>인물 / 신상하
      신상하(申相夏 ; 1839∼1906)의 자는 계순(繼舜), 호는 구암(矩庵),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재종숙인 인협(寅協)에게 입양되었다. 유치명(柳致明)의 문인이다. 벼슬보다는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당시의 석학인 이돈우(李敦禹), 김도화(金道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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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57

    신상헌 / 유교문화>인물 / 신상헌
      조선말기의 학자 신상헌(申相憲 ; 1842~1911)의 자는 찬보(纘甫), 호는 모암(慕庵)·주정와(主靜窩),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창협(昌協)의 아들로 의성(義城)에서 살았다. 그는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의 소식을 듣고 여러 동지들과 모여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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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58

    신석림 / 유교문화>인물 / 신석림
      조선후기의 학자인 신석림(辛碩林 ; 1766∼1840)의 자는 문첨(文詹), 호는 청계(聽溪), 본관은 영산(靈山), 아버지는 치보(致輔)이며 창영사람이다. 1798년(정조 22)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노론집권 후 벼슬을 사임하였다가 1806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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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59

    신석호 / 유교문화>인물 / 신석호
      조선 말기의 학자인 신석호(申錫祜)의 자는 덕문(德文), 호는 가헌(可軒)이다. 일찍이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한 후로 황조산(黃鳥山) 아래에 봉정(鳳亭)을 짓고 숨어살았다. 대원군(大院君)이 영남 유람길에 찾아와서 의기가 서로 맞아 시를 지어 공에게 주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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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0

    신완 / 유교문화>인물 / 신완
      신완(申完 ; 1738~?)의 자는 시성(時成), 호는 구계(鷗溪),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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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1

    신우 / 유교문화>인물 / 신우
      신우(申祐 ; ? ∼? )의 호는 퇴재(退齋),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그의 아버지 윤유(允濡)는 고려 충렬왕 때 판도판서(版圖判書)·군기사별검교사(軍器寺別檢校事)를 역임하였는데, 청렴하고 절개가 곧기로 유명하였다. 당시 원(元) 황제가 고려인으로서 상소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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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2

    신의명 / 유교문화>인물 / 신의명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의명(申義命 ; 1654∼1716)의 자는 안수(安叟), 호는 외암(畏巖)·경옹(敬翁),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아버지는 양세(揚世)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로 직(溭)의 딸이다. 1684년(숙종 10)에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成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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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3

    신인손 / 유교문화>인물 / 신인손
      조선 초기의 문신인 신인손(辛引孫 ; 1384∼1445)의 자는 조윤(祚胤), 호는 석천(石泉), 본관은 영산(靈山)이다. 아버지는 유정(有定)이고, 어머니는 설숭(薛崇)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벼슬이 병조판서·대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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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4

    신재수 / 유교문화>인물 / 신재수
      신재수(申在壽 ; 1828∼1895)의 자는 사일(士一), 호는 반구재(反求齋),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군위의 가곡리(佳谷里)출신으로 부친은 상오(相五), 모친은 순천 박씨 정현(正鉉)의 따님이다. 그는 마을의 수재들을 모아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고,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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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5

    신재형 / 유교문화>인물 / 신재형
      신재형(申在衡 ; 1649∼1697)의 자는 백흠(伯欽), 호는 쌍청(雙淸),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나 할아버지 유헌(幽軒)공이 자애로서 가르침이 헤이해지지 않도록 하였다. 15세에 유헌공이 하세함에 장제를 가례에 따랐는데 성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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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6

    신정모 / 유교문화>인물 / 신정모
      신정모(申正模 ; 1691~1742)의 자는 경해(景楷), 호는 이치재(二恥齋),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아버지는 덕일(德溢) 義城사람이며, 어머니는 선성이씨(宣城李氏)로 성구(星耉)의 딸이다. 1719년 進士試에 合格하고 文科에 壯元으로 及第하였다. 藝文館副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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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7

    신종호 / 유교문화>인물 / 신종호
      조선말기의 학자인 신종호(申鍾浩 ; 1827∼1906)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달원(達元), 호는 사은(泗隱)이다. 족숙(族叔)인 필흠(弼欽)에게 한문을 배웠으며, 뒤에 유치명(柳致明)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흥락(金興洛)·허훈(許薰)·신익호(申翼浩)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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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8

    신좌모 / 유교문화>인물 / 신좌모
      신좌모(申佐模 ; 1799∼1877)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호계(虎溪),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인 헌록 (憲祿)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종후(宗厚)의 딸이다. 1827년(순조27) 사마시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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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69

    신지효 / 유교문화>인물 / 신지효
      신지효(申之孝 ; 1561~1592)의 자는 달부(達夫), 호는 응암(鷹巖), 본관은 아주(鵝洲)이다. 1592(宣祖壬辰)에 난리를 피하다가 적을 만나 죽었다. 임진왜란이 급할 때 선생의 아우 梧峰 之悌는 宣城縣令으로 있고 선생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집에 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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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0

    신진운 / 유교문화>인물 / 신진운
      신진운(申晉運 ; 1849∼1922)의 자는 시응(時應), 호는 만오(晩寤),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아버지는 국준(國俊)이며, 어머니는 인천채씨(仁川蔡氏) 사심(思沈)의 딸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재기가 총명하고, 여러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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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1

    신집 / 유교문화>인물 / 신집
      조선 중기의 문신 신집(申楫 ; 1580∼1640)의 본관은 영해(寧海). 자는 여섭(汝涉), 호는 하음(河陰). 경상도 상주출신. 주부 경남(慶男)의 아들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인으로, 장현광(張顯光), 정구(鄭逑)의 가르침을 자주 받았다. 1606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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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2

    신창조 / 유교문화>인물 / 신창조
      신창조(申昌朝 ; 1753∼1833)의 자는 공만(公晩), 호는 농담(籠潭),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덕일(德一)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우천(遇天)의 딸이다. 일찍이 세상이 어지러움을 개탄하며 벼슬을 포기하고 향리에서 학문연구에 전념하면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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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3

    신채 / 유교문화>인물 / 신채
      신채(申埰 ; 1610~1672)의 자는 자경(子卿), 호는 인재(忍齋), 본관은 아주(鵝州)이다. 적도(適道)의 아들로 의성(義城)에서 살았다. 그는 광해군의 난정을 당했으므로 과거에 응하지 않다가 인조가 즉위한 뒤 비로소 응시해서 1620년 초시에 입학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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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4

    신택화 / 유교문화>인물 / 신택화
      신택화(申宅和 ; 1728∼1800)의 자는 자안(子安), 호는 동호(東湖),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아버지는 광한(光漢)이며 어머니는 경주안씨(慶州安氏)로 인정(仁靜)의 딸이다. 선생은 숙부인 광초(光楚)에게 입양되었으며, 이재령(李載寧)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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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5

    신필흠 / 유교문화>인물 / 신필흠
      조선말기의 학자인 신필흠(申弼欽 ; 1806∼1866)의 자는 백한(伯翰), 호는 천재(泉齋),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치혁(致赫)이다. 유휘문(柳徽文)에게 수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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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6

    신현 / 유교문화>인물 / 신현
      신현(申賢)의 자는 신경(信敬), 호는 운월재(雲月齋)·불훤재(不諠齋)이다. 본관은 영해(寧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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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7

    신용희 / 유교문화>인물 / 신용희
      신용희(申用羲)의 호는 간재(簡齋), 현(賢)의 아들이다. 본관은 영해(寧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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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8

    신연 / 유교문화>인물 / 신연
      신연(申演 ; 1534∼1595)의 자는 중호(仲浩)이고, 호는 우헌(寓軒)이다. 신언(申(水+焉))의 동생이다. 그는 일찍이 "청부(靑鳧)에게 형제가 있는데, 독서하는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집정관(執政官)이 불러 직책을 주려 하였지만 그는 사양하였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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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79

    신활 / 유교문화>인물 / 신활
      조선중기 학자인 신활(申活 ; 1576∼1643)의 자는 경탁(景卓), 호는 죽노(竹老),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평생을 재야에서 장현광(張顯光)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수양에 힘썼으며, 임진왜란 후 학문이 해이해지자 단산서원(丹山書院)을 세워 학문을 장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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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0

    신흘 / 유교문화>인물 / 신흘
      조선중기 학자인 신흘(申忔 ; 1550∼1614)의 자는 구지(懼之),호는 성은(城隱), 본관은 아주(鵝洲), 아버지는 원록(元錄)이며 의성(義城)사람이다. 부친이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마친 후 묘 아래 집을 지어 영모(永慕)라는 편액을 달고 애도하였다. 임진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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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1

    심성지 / 유교문화>인물 / 심성지
      심성지(沈誠之 ; 1831∼1904)의 자는 사행(士行), 호는 소류(小流),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아버지는 하수(鍛壽)이다. 그는 일찍이 둔와(遯窩) 류양흠(柳養欽)에게서 『중용』을 배웠다. 초시에 여러 번 합격하였으나 회시에서 실패한 뒤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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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2

    안경시 / 유교문화>인물 / 안경시
      안경시(安景時 ; 1712∼1794)의 자는 가중(可中), 호는 만회(晩悔), 본관은 한산(漢山), 아버지는 여리(汝履)이고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형하(亨夏)의 딸이다. 선생은 총명하여 말을 배우고부터 문자를 알았다. 18세에 정만양(鄭萬陽)의 문하에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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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3

    안공 / 유교문화>인물 / 안공
      조선 중기의 학자 안공(安공 ; 1569∼1648)의 자는 대지(待之), 호는 오휴당(五休堂),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밀양출생이다.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광소(光紹)이며,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참의에 증직된 교(校)의 딸이다. 처음에 안여경(安餘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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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4

    안관 / 유교문화>인물 / 안관
      종선 중기의 문인 안 권(安 灌 ; 1491∼1652)의 자는 권지(灌之), 호는 취우정(聚友亭), 본실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정도(尊道)이며, 함안(咸安)에 거주하였다. 저자는 중종조에 효행과 학문으로써 돈령참봉(敦寧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다. 15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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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5

    안극가 / 유교문화>인물 / 안극가
      안극가(安克家 ; 1547∼1614)의 자는 의지(宜之), 호는 뇌곡(磊谷), 우(遇)의 증손(曾孫)이다. 12세 때이정(李楨)의 문하에서 수업했다.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45세의 나이로 급제, 그 이후 참봉(參奉)·선교랑(宣敎郞)·현감(縣監) 등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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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6

    안우 / 유교문화>인물 / 안우
      안우(安遇 ; 1449∼1527)의 자는 시숙(時叔), 호는 노계(蘆溪)·창랑객(滄浪客),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24세까지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소학(小學)』, 『심학(心經)』, 『근사록(近思錄)』 등을 공부하고, 25세에 초시(初試)에 급제, 다음해 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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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7

    안덕문 / 유교문화>인물 / 안덕문
      안덕문(安德文 ; 1747~1811)의 자는 장중(章仲), 호는 의암(宜菴),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如石의 아들이며 宜寧사람이다. 선생은 父親의 命으로 두차례 應試했으나 곧 科擧를 폐하고 經傳을 硏究하기에 힘썼다. 당시의 儒賢을 찾아 師事하기를 권하면 "師道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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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8

    안도징 / 유교문화>인물 / 안도징
      조선후기 학자인 안도징(安道徵 ; 1616∼1678)의 자는 태화(泰和), 호는 점리와(點牢窩),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정경세(鄭經世)의 문하에서 이황(李滉)을 사숙으로 수학하였으나, 일찍부터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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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89

    안명하 / 유교문화>인물 / 안명하
      안명하(安命夏 ; 1682∼1752)의 자는 국화(國華), 호는 송와(松窩),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19세에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의 문하에 들어가 『대학』·『논어』·『중용』.「서명(西銘)」·옥산강의(玉山講義) 등을 배웠다. 시를 읊조리며 자적했으며 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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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0

    안몽징 / 유교문화>인물 / 안몽징
      조선 중기의 학자 안몽징(安夢徵 ; 1611∼1654)의 자는 천뢰(天賚), 호는 송파(松坡), 본관은 죽계(竹溪)이다. 아버지는 직(溭)이며,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로 찰방 강(堈)의 딸이다. 그는 7세에 시문을 지었고 10세에 경사자집(經史子集)을 통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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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1

    안민수 / 유교문화>인물 / 안민수
      안민수(安敏修 ; 1724~1795)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눌보(訥甫), 호는 수오재(守吾齋). 권구(權?)의 문인으로 영남지방의 남인이며 처사(處士)이다. 유규(柳규), 김필형(金弼衡), 권명우(權明佑) 등과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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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2

    안숙 / 유교문화>인물 / 안숙
      안숙(安璹 ; 1572∼1624)의 자는 대이(待而), 호는 낙원(樂園),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아버지는 광소(光紹)이며, 어머니는 철성이씨(鐵城李氏)로 참봉 양지(洋之)의 딸이다. 17세 때에 정구(鄭逑)를 사사하여 성리학을 배웠고 정경세(鄭經世), 정람(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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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3

    안상한 / 유교문화>인물 / 안상한
      안상한(安翔漢 ; 1604∼1661)의 자는 익중(翊仲). 호는 동만(東巒). 휘는 상한(翔漢). 본관은 광주(廣州). 낙원 안숙(安璹)의 아들이다. 어릴때 부터 성품이 활달하고 기질과 얼굴 생김이 위대해 보였으며 어떤 일에도 구애됨이 없었다. 일찍 경제(經濟)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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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4

    안영로 / 유교문화>인물 / 안영로
      조선 후기의 학자 안영로(安英老 ; 1797∼1846)의 자는 회수(晦叟), 호는 면암(勉庵)이다. 평생 시골에 은거하여 시문(詩文)과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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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5

    안영호 / 유교문화>인물 / 안영호
      조선말기의 학자 안영호(安永鎬 ; 1854∼1896)의 자는 경능(敬能), 호는 급산(岌山),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호연(浩淵)이며 과문(科文)을 잘 하여 한번에 10여 편을 연독(連讀)하여 미사여구를 점철하였으나 과장(科場)에 들어간 일이 없었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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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6

    안유중 / 유교문화>인물 / 안유중
      조선 후기의 학자 안유중(安瑜重 ; 1802∼1868)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국서(國瑞), 호는 만포(晩浦). 아버지는 경태(景泰)이며, 어머니는 수원송씨(水原宋氏)로 방필(邦弼)의 딸이다.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후진을 교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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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7

    안인일 / 유교문화>인물 / 안인일
      조선후기의 학자 안인일(安仁一 ; 1736~1806)의 자는 정첨(靜瞻), 호는 죽북(竹北),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명언(命彦)의 아들로 밀양(密陽)에서 살았다. 그는 7세에『소학(小學)』을 배웠고 이로부터 10년 동안 경사(經史)와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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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8

    안일리 / 유교문화>인물 / 안일리
      조선후기의 문신 안일리(安日履 ; 1661∼1731)의 자는 길보(吉甫), 호는 낙애(洛厓),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한소(漢召)이다. 17세 때 김태기(金泰基)에게 수업하였으며, 1690년(숙종 16)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성균관에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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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099

    안정려 / 유교문화>인물 / 안정려
      조선 말기의 학자, 안정려(安鼎呂 ; 1871∼1939)의 자는 국중(國重), 호는 회산(晦山),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상기(相琦)로 함안(咸安)에 거주했으며, 허훈(許薰), 곽종석(郭種錫), 이승희(李承熙) 세분 선생에게 종학하여 주리학설(主理學說)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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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00

    안정한 / 유교문화>인물 / 안정한
      조선말기의 학자 안정한(安鼎漢 ; 1840~1914)의 자는 원가(元可), 호는 지강(芝岡),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택반(宅磐)의 아들로 의령(宜寧)에서 살았다. 그는 약관에 과거에 응시하여 여러번 실패하자 과거의 뜻을 버리고 이돈우(李敦禹)의 문하에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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