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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0101

    안정현 / 유교문화>인물 / 안정현
      안정현(安鼎鉉 ; 1871~1928)의 자는 자옥(子玉), 호는 정와(靜窩),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성주(聖柱)의 아들로 함안(咸安)에서 살았다. 그는 처음 조정규(趙貞奎)에게서 7~8년 동안 수학하며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요지를 알았으며, 그 후에 곽종석(郭
    출처 : 유교넷
  • 80102

    안증 / 유교문화>인물 / 안증
      안증(安嶒 ; 1494∼1533)의 자는 사겸(士謙), 호는 완구(琓龜), 본관은 광주(廣州)이다. 구(覯)의 아들이며 밀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장곤(李長坤)·주세붕(周世鵬)과 왕래하면서 강마(講磨)하여 도의교를 맺었다. 과거공부를 폐하고 성리학에 전심하므로 부
    출처 : 유교넷
  • 80103

    안지 / 유교문화>인물 / 안지
      안지(安止 ; 1394~1474)의 본관은 탐진(耽津:康津). 자는 자행(子行), 호는 고은(皐隱). 찬성 사종(士宗)의 아들이다. 1414년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성균관박사가 되고, 1416년 다시 중시에 급제하여, 예문관의 수찬, 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출처 : 유교넷
  • 80104

    안찬 / 유교문화>인물 / 안찬
      조선 말기의 학자 안찬(安鑽 ; 1829∼1888)의 본관은 강진(康津). 자는 경안(景顔), 호는 치사(癡史). 아버지는 신로(莘老)이며, 어머니는 동래정씨(東萊鄭氏)로 부사 택동(宅東)의 딸이다. 1867년(고종 4)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출처 : 유교넷
  • 80105

    안창제 / 유교문화>인물 / 안창제
      독립운동가 안창제(安昌濟 ; 1866∼1931)의 자는 중양(仲陽), 호는 송은(松隱),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아버지는 흠(欽)이며, 경남 의령출신이다.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사과(司果)에 拜命된 뒤 승진할 의사를 두지 않고 유업(儒業)에 뜻을 두어 부지런
    출처 : 유교넷
  • 80106

    안처택 / 유교문화>인물 / 안처택
      조선 중기의 학자 안처택(安處宅 ; 1705∼1775)의 자는 인백(仁伯), 호는 동오(桐塢),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천보(天輔)이다. 21세에 정만양(鄭萬陽), 정규양(鄭葵陽) 형제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고, 매산 정중기(梅山 鄭重器), 명고 정간(鳴皐
    출처 : 유교넷
  • 80107

    안축 / 유교문화>인물 / 안축
      고려말 문신 안축(安軸 ; 1282∼1348)의 자는 당지(當之), 호는 근재(謹齋),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아버지는 석(碩)이다. 고향 순흥의 죽계(竹溪:지금의 豊基)에서 세력기반을 가지고 중앙에 진출한 신흥 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탁월한 재질로 학문에 힘써
    출처 : 유교넷
  • 80108

    안향 / 유교문화>인물 / 안향
      안향(安珦 ; 1243~1306)의 초명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인데, 이는 그가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하여 그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다. 밀직부사 부(孚)의 아들로 지금의 경북 풍기의 죽계(竹溪) 상평리(上坪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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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09

    안호연 / 유교문화>인물 / 안호연
      조선말기의 학자인 안호연(安浩淵 ; 1827∼1898)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맹연(孟然), 호는 남계(楠溪)이다. 아버지는 도묵(道默)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통덕랑 벽도(璧度)의 딸이다. 장성함에 따라 과거문을 공부하여명성이 높았으나 부화한 병려문이 선
    출처 : 유교넷
  • 80110

    안효제 / 유교문화>인물 / 안효제
      근대의 학자 안효제(安孝濟 ; 1850∼1916)의 자는 순중(瞬仲), 호는 수파(守坡),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경상남도 의령출신. 이조참의 기종(起宗)의 후손이다. 1884년 승문원부정자(承文院副正字)에 임명되었으나, 때마침 의복제도를 변경하는 영(令)이 내
    출처 : 유교넷
  • 80111

    1949년 2월 3일에 대종사(大宗師)가 이성인(李聲仁)에게 수선성도사(수選誠道士)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제세주강생(濟世主降生) 126년 기축년이라고 기재되어 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12

    "1876년(고종 13)에 李景儀, 李起勳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단자이다. 李景儀, 李起勳의 선산이 상원천방 구룡동에 있는데 누군가 밤을 틈타 몰래 무덤을 썼다. 이에 이들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13

    1656년(효종 7)에 金命說 등이 扶安縣에 올린 단자이다. 김명열과 그의 형제들이 부모의 묘를 이장하려 하는데 새로운 묘지의 正穴 근처에 私奴 2명이 먼저 그 어머니의 무덤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14

    1849년(헌종 15) 10월에 전라도 만경현의 교임 任錫兆가 수령에게 제출한 단자이다. 임석조는 부안현의 월명암으로 가서 공부할 계획이니 사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15

    "향교에서 석전제를 지내는데 필요한 제반 제수물품과 양을 나열하여 적었으며 각 품목 위에 붓으로 찍어 표시한 것으로 보아 하나씩 확인하며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쌀을 비롯한 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16

    "辛丑年에 廉建洙 외 12명 등이 淸溪書堂의 중건을 위한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 돌린 單子이다. 원래 청계강당은 염씨, 정씨, 윤씨 등 3성씨들이 인재양성을 위하여 1711년(숙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17

    "1815년(순조 15)에 李正銓 등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단자이다. 1809년 무렵부터 해 마다 전국적으로 기근이 들었는데, 1814년의 흉년은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18

    경진년 12월 6일에 朴아무개가 소라면 마산에 사는 吳泰佐에게 安否를 묻는 問安單子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19

    신사년 10월 9일에 順天府使 윤아무개(尹某)가 보낸 문안단자이다. 겉봉에 ‘月燈面 張碩士 萬烈宅’라고 씌여진 것으로 미루어 순천부 월등면에 世居하던 木川 張氏家의 張萬烈에게 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20

    1882년(고종 19)에 李秉儀와 李景儀가 남원부사에게 제출한 산송단자이다. 이병의와 이경의의 선산이 상원천방 구룡동에 있는데 누군가 눈오는 겨울밤에 몰래 무덤을 썼다. 이들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21

    계축년 11월에 태인현의 이협홍이 관에 제출한 단자이다. 李?弘은 전라도 순찰사에게 양반에게는 軍役을 부과하지 않는 법인데 담당 향리가 자신이 定社佐命功臣 李叔蕃의 후예임을 몰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22

    "1890년(고종 27)에 발급된 공명첩(空名帖)이다. 유인(孺人) 송씨(宋氏)를 정부인(貞夫人)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정부인은 종2품의 위호(位號)로서, 문무관 정2품의 정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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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23

    1953년 10월 5일에 대종사(大宗師)가 이성인(李聲仁)에게 심선성도령(心選誠道領)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제세주강생(濟世主降生) 130년 계사년이라고 기재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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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24

    경인년 정월에 南原 白波坊에 사는 安時任이 山訟과 관련하여 南原府에 올린 單子이다. 그는 白波坊 卯洞에 있는 고조모 선산과 관련하여 백여년 뒤에 梁致煥이 거짓으로 소송을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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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25

    "을묘년에 朴宗雲 등 23명이 수령에게 올린 單子로, 金谷面 鳳頭山에 있는 그들의 先山에 상인인 金範伊이 2사람의 묘를 몰래 썼으니, 이를 잡아다가 엄히 심문하고 몰래 쓴 무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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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26

    갑자년 3월 10일에 전라도 옥구현의 집강 高震澤과 田宅熙가 향장에게 제출한 단자이다. 이들은 족보 간행을 위해 상경하려고 하니 사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27

    1796년(정조 20) 李正銓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단자이다. 이정전은 그의 8대조인 李曄의 제위전(祭位田) 문제로 남원부사에게 단자를 제출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28

    병술년 2월에 담양에 사는 宋在熙등이 수령에게 올린 단자이다. 담양 창평 남원 정읍 임실등에 흩어져 살고 있는 숙정공의 후손들이 면앙정에 관한 모든 잡역을 하나로 조촐하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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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29

    "1754년(영조 30) 남원부 둔덕방에 사는 李宗煥이 그의 종친들과 함께 관에 제출한 단자이다. 이종환은 선산에 사사로이 묘를 쓰고, 주위에 있던 나무 3백여 그루를 팔아버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30

    捿山宗中에서 門長宅 이하 11곳에 靑曆을 배부하기 위하여 작성한 명단이다. 언제 어느 곳에서 작성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31

    1875년(고종 12) 7월에 전라도 장수현에 사는 梁慶源이 鄕長에게 제출한 단자이다. 그는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가 鄕執綱으로 천거되었던 안건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32

    "1869년 정월에 茂長의 朴奎鎭이 수령에게 올린 單子로, 자신은 능력이 부족하여 二別監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 교체하여 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하여 수령은 처음에 불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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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33

    1891년(고종 28) 전주부 조촌면 동곡리에 사는 유학 김용장(49)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부인 이씨는 죽었으며 31세의 황씨를 후처로 두었으며 22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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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34

    "1927년 2월 1일, 둔암서원(遯巖書院)에서 박해창을 석전제 헌관(獻官)으로 천거하는 망기이다. 둔암서원은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 인조 때(1634년)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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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35

    丁亥年 4月에 營將 李아무개가 누군가에게 올린 문안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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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36

    "기사년 2월에 白波에 사는 化民 安時郁 安麟烈 安時容 등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단자이다. 단자를 올린 이들은 성묘를 하기위해 선산에 갔는데, 이때 산지기인 金乃執이 大松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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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37

    을사년에 부안군 소산면 신율리에 사는 박병선이 扶安郡에 올린 단자이다. 本郡에 소재한 樂英齋에서 공부하는 유생들을 위하여 박병선이 紙筆價 30꿰미를 성주에게 바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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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38

    갑오년 6月 6日에 營將 吳아무개가 召羅面에 사는 碩士 吳泰模에게 올린 문안단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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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39

    "1764년에 金得文(1732-1767)과 金邦健 등이 성주에게 올린 單子이다. 김득문 등은 扶安縣 乾先面 ?寺山에 先山과 松楸가 있었는데 근처 黔鎭에서 戰船을 개조하느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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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0

    "海州 吳氏 門中에서 작성한 것으로, 족보를 편찬하기 위하여 各郡에서 收單을 맡을 책임자의 명단을 기재한 것이다. 그러나 작성연대는 적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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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1

    정축년 8월 5일에 실시된 釋奠祭의 물목을 적은 문서이다. 白米에서부터 草席까지 31가지의 품목이 적혀 있다. 석전제는 성균관의 문묘와 각 지방의 향교에서 공자와 선현들에게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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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2

    "金海許氏가 배출한 유명인물을 기록한 單子로, 20명의 명단과 그들의 간단한 이력이 실려 있다. 주로 文武科 급제자와 司馬試 합격자, 관리, 효자 등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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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3

    "갑술년 2월에 북부면 종지(種芝)에 사는 이가영(李嘉永) 등이 작성하여 성주에게 제출한 단자이다. 이가영 등은 충청도 임천(林川, 현 충남 부여군 임천면) 팔충면(八忠面) 당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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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4

    1887년(고종 24) 7월 초6일 경상도(慶尙道) 기장현(機張縣) 동면(東面) 이서리(伊西里)에 사는 최정순(崔正淳)이 작성하여 성주에게 올린 단자이다. 유림의 일을 맡아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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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5

    1924년 10월 문열공중봉조선생사우중수소(文烈公重峰趙先生祠宇重修所)에서 박해창을 군도유사(郡都有司)로 천거하는 망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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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6

    "1882년(고종19년) 3월에 보성(寶城)의 안명화(安命和) 등이 관에 제출한 단자(單子)이다. 지난 해 12월에 우산(牛山)에 있는 문강공(文康公)묘소 아래에 있는 마을에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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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7

    "경술년에 노월리(蘆月里) 이장(里長)인 박홍오(朴洪奧) 등이 배병의(裴炳儀)의 효행을 알리고 그를 포양(?揚)해 줄 것을 청하면서 면(面)의 첨존(僉尊)에게 올린 단자(單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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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8

    1846년 전라도 고창현 경주 최씨의 세계 단자 / 高敞縣 居 慶州 崔氏 / 1846
    "1846년(헌종 9) 전라도(全羅道) 고창현(高敞縣) 경주(慶州) 최씨(崔氏)가 고창현(高敞縣)에 제출한 세계(世系) 단자(單子)이다. 공신들의 자손이 충훈부(忠勳府)에 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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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49

    을사년에 부사 정(府使 鄭)이 작성한 문안 단자이다. 보통 문안단자는 국왕이나 상급자에게 문안을 드릴 때 올리는 간단한 문서이다. 재첩(再帖) 초항(初行)의 말단에 직함(職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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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50

    "모년 전라북도(全羅北道) 김제군(金堤郡) 용지면(龍池面)에 사는 왕준삼(王俊三)이 작성하여 왕수환(王粹煥)에게 보낸 단자이다. 당시 개성왕씨 족보를 간행하기 위해 각 파별로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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