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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0151

    신축년에 군수 박(郡守 朴)이 작성한 문안 단자이다. 보통 문안단자는 국왕이나 상급자에게 문안을 드릴 때 올리는 간단한 문서이다. 재첩(再帖) 초항(初行)의 말단에 직함(職銜)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52

    기해년에 박희성(朴凞成)이 수령에게 올린 단자이다. 이년 전인 정유년에 두 번에 걸쳐 색리(色吏)의 잘못으로 부과된 잡역을 면제 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때 까지도 바로잡아지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53

    모년 별감(別監) 김인학(金寅學)이 수령에게 올린 사직단자이다. 이에 대해 수령은 정해진 임기가 되었음으로 이를 허락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54

    1903년(고종 40) 8월에 둔덕방(屯德坊)에 거주하는 오영극(吳泳極)과 오달엽(吳達燁)이 남원부에 제출한 소지단자이다. 오영극의 9대조와 8대조 묘가 흑성방(黑城坊) 사근달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55

    경진년에 작성된 문안 단자이다. 보통 문안단자는 국왕이나 상급자에게 문안을 드릴 때 올리는 간단한 문서이다. 재첩(再帖) 초항(初行)의 말단에 직함(職銜)과 성명만을 적어 올리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56

    "1930년 4월 송사기선생문집간소(松沙奇先生文集刊所)에서 박해창을 찬성원(贊成員)으로 천거한 망기이다.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8.17~1916.10.28)은 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57

    1902년 3월에 군수(郡守) 이(李) 아무개가 작성하여 보낸 존문(存問)이다. 존문은 지방 수령이 자기가 관할하고 있는 지역의 백성들 중에서 웃어른으로 모셔야 할만한 인물을 찾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58

    "1855년(철종 6) 전라도(全羅道) 고창현(高敞縣) 경주(慶州) 최씨(崔氏)가 고창현(高敞縣)에 제출한 세계(世系) 단자(單子)이다. 공신들의 자손이 충훈부(忠勳府)에 올리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59

    정유년에 박희성(朴凞成)이 올린 단자로 자신의 조모인 이씨부인의 열행으로 정려가 내려지고 자손들의 잡역이 면제된 바 있는데 해당 아전의 잘못으로 호포세가 부과되었으니 이를 바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0

    1840년 전라도 고창현 경주 최씨의 세계 단자 / 高敞縣 居 慶州 崔氏 / 1840
    "1840년(헌종 6) 전라도(全羅道) 고창현(高敞縣) 경주(慶州) 최씨(崔氏)가 고창현(高敞縣)에 제출한 세계(世系) 단자(單子)이다. 공신들의 자손이 충훈부(忠勳府)에 올리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1

    1864년(고종 1) 12월에 경상도(慶尙道) 기장현(機張縣) 동면(東面) 이서리(伊西里)에 최춘건(崔春健)이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수직 받고 수령에게 올린 단자이다. 계속해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2

    신해년 5월에 박정희(朴靖熙) 등이 작성하여 성주(城主)에게 제출한 단자이다. 박정희 등은 자신들의 선산에 읍교 이시중(李時重)이 몰래 묘를 쓴 것에 대하여 산송(山訟)을 벌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3

    "임진년 4월에 전라도(全羅道) 장수현(長水縣)에 사는 유학 김창세(金昌世), 한상일(韓相一) 한상옥(韓相玉) 등이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단자이다. 향임을 선임하는 과정 중에 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4

    "병오년 10월에 북부면 종지(種芝)에 사는 이승화(李承華)가 작성하여 성주에게 제출한 단자이다. 이승화의 3종숙인 이우재(李友在)가 승화를 좌족(左族, 즉 庶子) 집안이라고 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5

    기축년 4월에 주포(周浦)에 사는 화민(化民) 방형상(房馨相)이 작성하여 남원수령에게 올린 단자이다. 방형상의 선산은 남원 주촌방(朱村坊) 동막동(東幕洞)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곳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6

    "1899년(고종 26)에 김용덕(金溶悳)이 수령에게 올린 단자로, 별청(別廳)의 직임을 사임하고자 하니 교체하여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7

    "1927년 2월, 원계유회소(遠溪儒會所)에서 박해창을 원계영당영건 전북도유사(遠溪影堂營建 全北道有司)로 천거한 망기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8

    "신묘년 정월 26일에 전라도(全羅道) 장수현(長水縣)에 사는 유학 김창세(金昌世), 신이철(申以喆) 한상연(韓相璉) 등 20여 인이 수령에게 올린 단자이다. 향임을 선임하는 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69

    "계사년에 김헌태(金憲泰)가 작성하여 성주에게 올린 단자이다. 선산에 심은 나무들은 6대조의 원묘당(遠慕堂) 아래에서 삼대조가 시묘살이를 할때 직접 심은 것들로 애정이 각별한 것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70

    "정유년에 박희성(朴凞成)이 수령(守令)에게 제출(提出)한 단자(單子)로, 단자를 올린 지 일주일 만에 다시 올린 단자이다. 사실을 조사하여 역을 면제해주라는 제사에도 불구하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71

    1858년 전라도 고창현 경주 최씨의 세계 단자 / 高敞縣 居 慶州 崔氏 / 1858
    "1858년(철종 9) 전라도(全羅道) 고창현(高敞縣) 경주(慶州) 최씨(崔氏)가 고창현(高敞縣)에 제출한 세계(世系) 단자(單子)이다. 공신들의 자손이 충훈부(忠勳府)에 올리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72

    1810년 전라도 고창현 경주 최씨의 세계 단자 / 高敞縣 居 慶州 崔氏 / 1810
    "1810년(순조 10) 전라도(全羅道) 고창현(高敞縣) 경주(慶州) 최씨(崔氏)가 고창현(高敞縣)에 제출한 세계(世系) 단자(單子)이다. 공신들의 자손이 충훈부(忠勳府)에 올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73

    경인년 윤(閏) 2월에 주포(周浦)에 사는 화민 방형상(房馨相)이 작성하여 남원수령에게 올린 단자(單子)이다. 방형상의 선산은 남원 주촌방(朱村坊)에 소재하고 있다. 그런데 동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74

    경인년 윤(閏) 2월에 주포(周浦)에 사는 화민 방형상(房馨相)이 작성하여 남원수령에게 올린 단자이다. 방형상의 선산은 남원 주촌방(朱村坊)에 소재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방형상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75

    을유년 9월에 전라도(全羅道) 태인현(泰仁縣)에 사는 김진후(金進厚)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단자이다. 김진후는 은석동에 있는 선산을 수백년동안 잘 보호하여 왔다. 그런데 김영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76

    병술년 3월26일 경상도(慶尙道) 기장현(機張縣) 동면(東面) 이서리(伊西里)에 사는 화민(化民) 최명하(崔命夏)가 성주에게 올린 단자로 유림의 일을 맡아하던 최명하(崔命夏)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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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77

    임진년에 한주식(韓柱植)이 조모묘소(祖母墓所) 근처의 투장(偸葬)사건으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데 도형(圖形)한 후 처결한다는 분부가 내려졌다. 이에 한석조는 단자를 올려 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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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78

    "1926년 9월, 대동시단(大東詩壇) 단장 최영년(崔永年)이 박해창을 고문(顧問)으로 추천한 망기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79

    "무술년 2월에 박희성(朴凞成)이 수령에게 제출한 단자이다. 박희성은 면임(面任)과 색리(色吏)가 관례를 무시하고 자기 집안의 묘지기인 점단(占丹)에게 연역(烟役)을 부과하자 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80

    1843년 전라도 고창현 경주 최씨의 세계 단자 / 高敞縣 居 慶州 崔氏 / 1843
    "1843년(헌종 9) 전라도(全羅道) 고창현(高敞縣) 경주(慶州) 최씨(崔氏)가 고창현(高敞縣)에 제출한 세계(世系) 단자(單子)이다. 공신들의 자손이 충훈부(忠勳府)에 올리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81

    병신년에 모인(某人)이 관찰사에게 보낸 문안 단자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82

    무술년에 11월에 익산군 남이면에 사는 具敎日이 자기 선산에 몰래 무덤을 쓴 鄭斗永을 고소하자 이를 심리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도형이다. 이를 살펴본 수령은 정두영에게 패소 판결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83

    "김차흠 송정필의 조상묘 위치도이다. 산송을 일으킨 사람은 김차흠이고, 소송을 당한 사람은 송정필이다. 도형은 주산에서 뻗어나간 능선을 따라 송정필의 조상묘가 위치해 있고, 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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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84

    을묘년에 안시권의 산송과 관련하여 풍헌 오씨가 작성하여 관에 보고한 도면이다. 안시권이 투장과 관련하여 소지를 올리자 관에서는 풍헌으로 하여금 도면을 작성하여 제출하라고 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185

    "金時?이 官에 제출한 묘지 도형이다. 이때 김시묵은 金昌會가 자신의 先山 내에 몰래 무덤을 썼다고 官에 고소하였으며, 이 때문에 수령은 그 정확한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서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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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86

    1827년(순조 27) 10월에 梁大淵과 李東馨 사이에서 山訟이 있었는데 이 山訟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도형이다. 이 소송에서 李東馨이 패소하여 동짓달까지 이굴하기로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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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87

    "후손들에게 선산에 안치된 선조의 묘소 위치와 그와 관계되는 여러 사항을 설명한 도면이다. 정확하게 어느 가문의 선산인지는 알 수 없으며 다만 선산은 松亭里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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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88

    갑오년 3월에 具敎日이 張翰一을 대상으로 하여 제기한 산송을 심리하는 과정에서 형리 최현필이 작성한 도형이다. 이 도형에 의하면 張翰一이 쓴 무덤은 具敎日의 先?의 무덤에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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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89

    "1924년 4월, 조극전봉건기성회(肇極殿奉建期成會)에서 박해창을 찬성장(贊成長)으로 추천하는 망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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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0

    무술년에 구교일의 선산은 針洞 앞 기슭에 있는데 투총사건 일로 소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도형을 가져오라는 판결에 의해 피고인 鄭斗永과 원고인 具敎日이 적간색리인 李集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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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1

    "갑자년 8월 9일에 金道俊과 吳應萬의 山訟件으로 作成된 圖形 및 관의 題辭가 실려 있는 문서이다. 이 산송은 오응만의 선산에 김도준이 투장을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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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2

    "신사년 2월 6일에 白波坊의 面任이 南原府에 올린 圖形이다. 이 도형은 梁泓과 安在烈간에 山訟이 일어나자, 남원부에서 이와 관련한 도형을 그려서 올리라는 명에 의하여 면임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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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3

    "최락근 산송 소지의 관련 도형이다. 起訟 崔洛根과 應訟 金權中 간에 벌어진 산송 소지와 관련한 도형을 그려 놓은 것으로, 관에서는 이미 향품에 제사를 내렸다고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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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4

    "김창우의 산송 관련 도형이다. 金昌佑와 殷廷權의 무덤의 위치를 그려 놓은 것인데, 관에서는 김창우의 禁葬은 법적으로 당연하고 임총이 入葬한 것은 법을 어긴 것이므로 은정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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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5

    1862년(철종 13)에 남원부에서 발급한 적간도형이다. 남원 백파면에 거주하던 안상빈과 이언면에 거주하던 김천익 사이에 서면 시라산방 부근의 묘자리 싸움과 관련하여 남원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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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6

    "기유년 5월 19일에 摘奸別監 蘇아무개가 南原府에 제출한 도형이다. 소송의 발단은 원고 安廷八의 증조모 분묘 근처에 梁卜龍과 金尙必이 자신들의 부·모를 장사지냈기 때문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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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7

    "山訟과 관련하여 임신년 7월29일에 작성된 圖形이다. 도형에 洪祚鳳과 趙秉弼의 선조묘들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홍씨 집안과 조씨 집안 사이에 山訟이 일어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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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8

    곡성관 유향이 곡성수령의 제교에 따라 吳顯義의 산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성한 도형이다. 도형이란 산세와 묘의 위치 및 묘 사이의 거리 등을 조사하고 이를 도면으로 작성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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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199

    임인옥이 고창현감에게 올린 산도이다. 高敞 五西面(현 고창군 고수면) 石隅에 사는 임인옥이 소지를 올려 자신의 선산에 투장한 이집춘으로 하여금 이장케 해 달라는 내용의 소지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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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200

    "1927년 3월 1일, 화양소제고적보존회(華陽蘇堤古蹟保存會)에서 박해창을 상임유사(常任有司)로 천거하는 망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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