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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0951

    "계묘년에 남원의 수지방에 사는 吳汝珍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五家作統의 統首 임명을 둘러싼 논란에 관한 내용이다. 즉 방장과 사이가 좋지 않은 主比 대신 出井이라는 인물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52

    "1854년(철종 5)에 泰仁縣 草處面에 사는 化民 李奎亨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화민이란 교화된 백성이라는 뜻으로 으레 양반만이 쓸 수 있는 용어였다. 이규형은 水流面 娥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53

    정미년에 전주에 사는 李勉植이 益山兼官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면식의 선산에 있는 묘지에 심은 나무를 申大寬이라는 자가 마음대로 베어간 일에 대해서 그의 죄를 다스려주고 또 묘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54

    갑신년 6월에 국경순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興德縣 縣內面 石湖里(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 사는 鞠暻珣이 거간을 통해 長城의 李順瑞에게 57냥어치의 물건을 보냈는데 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55

    신유년에 남원부 둔덕방 2리 동장이 남원부에 제출한 것으로 석현방으로 이사했던 사람의 役布가 계속해서 둔덕방에 부과되는 것을 시정해 달라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56

    1874년(고종 11) 12월 2일에 과부 이씨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이씨는 자신의 초가 4칸 집을 15냥을 받고 팔았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혀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57

    "1878년(고종 15) 9월에 곡성현 예산면 대리에 살고 있던 김영모가 전라도 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문서에는 단지 무인년으로만 기재되어 있지만 관련문서를 통해서 작성연대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58

    辛酉年 10월 16일에 全羅道 長水縣에 사는 崔宗巍가 南原府使에게 올린 山訟所志이다. 20일 만에 다시 올린 所志로 官에서 崔鼎九의 편의를 보아 10월 15일까지 기다려 보라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59

    신사년 3월에 남원 주포면에 살고 있는 房賢相이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방현상은 자신의 부모를 모신 산에 申季一의 처가 투장을 되자 신계일의 아들인 申敬烈에게 이장할 것을 요구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0

    "1844년 12월에 금구의 화민 이규형이 태인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화민이란 교화된 백성이라는 뜻으로 으레 양반들이 수령에게 글을 올릴 때 스스로를 호칭할 때 사용하였던 것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1

    李敬文이라는 사람이 신묘년 3월에 관에 제출한 소지로서 노비의 방매에 관련된 것이나 내용이 너무 소략하여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2

    辛丑년에 宋時榮이 창평 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송시영은 면앙정 송순의 10세손으로 면앙정의 손자 즉 자신의 8대조가 되는 분의 묘 옆에 누군가 투장을 한 사건이 발생하였으므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3

    "임신년 10월에 익산군 미력면 구룡리에 사는 화민 洪祚鳳이 李正淳, 趙秉弼을 상대로 관에 제출한 소지로, 두 투장자를 잡아가두고 시급히 독굴하게 한 후에 풀어주라는 감영의 제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4

    계축년 2월에 고창 오서면의 임재태 등이 영광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五西面 石隅에 살고 있던 幼學 林載泰 등은 靈光郡 弘農 琴美洞에 있는 선산에 몰래 무덤을 쓴 자가 崔命七이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5

    "1848년(헌종 14) 6월에 순창군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다가 이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소송이 일어나 결국 자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6

    "신유년에 만경현 남일면 대목산리에 사는 任時尹, 任時權, 任時天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소지에 따르면, 임시윤 등은 문중의 일로 1,500냥을 변통(辦出)하고자 문중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7

    "1876년(고종 13) 12월 22일에 유학 장한조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장한조는 자기가 매입했던 토지면 도산촌 상자원에 있는 3칸짜리 초가를 錢文 20냥에 팔면서 구문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8

    1897년(광무 1) 3월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思弼이 長水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의 親山이 吳家의 무덤과 案對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야밤에 몰래 파내어 소송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69

    갑신년에 潭陽郡에 사는 童民 宋次興이 창평에 있는 자신의 6대조 선산에 투장한 자들을 엄벌하여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창평 군수에게 올린 글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0

    임오년 8월에 주춘석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내촌리(현 정읍시 덕천면 우덕리)에 사는 주춘석은 23년 전인 경신년에 徐萬億 妻 金召史에게 柴場을 2냥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1

    계사년 2월에 조재봉이 진안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마령면의 훈장과 유사가 내수사답의 도조를 30말의 벼 또는 36냥의 돈으로 정하자 조재봉이 진안현감에게 소지를 올려 이 액수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2

    "1831년(순조 31) 3월에 茂長縣에 사는 吳鎭休 등 6인이 영광성주에게 올린 소지이다. 오진휴는 1812년부터 金敬祿(一名 金季寬)의 偸葬으로 인하여 산송을 벌였는데 김경록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3

    경술년 9월에 興德縣에 사는 金聖厚가 영광성주에게 올린 소지이다. 무장현에 사는 吳元孝라는 자가 김성후의 선산에 있는 송추를 무단으로 작벌한 일로 인하여 2년 전에 山訟이 있었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4

    "1846년(헌종 12)에 입하면 우반동리에 거주하던 金用觀, 金斗復 等이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김용관 등은 이전에 신동환의 투장에 대해서 소지를 제출하였으며, 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5

    정축년에 전라도 구례현 현내면 절골에 사는 金氏宅 사내종 成今이 작성한 소지이다. 성금의 상전댁은 각종 공납과 결세에 시달리다 구례현 마산면에 있는 張字 논 2마지기와 주자평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6

    기사년 3월에 김광팔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茂長縣 二東面(현 고창군 무장면)에 살고 있던 金光八은 아들 龍安이 노름만을 일삼자 官奴廳에 자원하여 들어가게 하였는데 관노청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7

    정유년 11월에 김창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김창욱은 자신의 선산 가까이에 柳軫七이 투장하여 관에서 이미 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8

    1885년(고종 22) 12월에 김갑종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김갑종은 본인이 구입한 대지에 집을 지어 여러 해 동안 살다가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게 되자 가옥과 밭 1두락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79

    1832년(순조 32)에 진안현 두미면 고사리에 사는 辛?寧이 鎭安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가 삼년 전인 을축년에 興面에 사는 金璣賢에게 28냥을 빌려주었는데 정한 기일까지 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80

    병신년 3월에 龍潭郡 一南面 慕谷里(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에 사는 金在明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 소지는 김재명이 자신의 증조모 묘소가 있는 一南面 如意谷 後麓에 투장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81

    "1812년(순조 12)에 茂長縣에 거주하던 吳鎭朝가 인접고을인 靈光의 城主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본 소지에 의하면, 정읍에 사는 金季觀이 한해 전에 오진조의 5대조 묘소 근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82

    1842년에 전라도 유생 金在仁 등이 임실에 살았던 柳以亢과 그 5대손 柳暄 등 한 가문의 효자와 열녀에게 旌褒를 요청하며 巡相에게 올린 소지이다. 고02404와 그 내용이 대동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83

    "갑인년에 국용헌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흥덕현의 下吏인 鞠龍憲은 二西面 壺巖의 동쪽 기슭에 있는 선산에 누군가가 세 번씩이나 연이어 偸葬을 하였으니, 그가 나타나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84

    임신년에 남원부 동면 백파방에 사는 안시욱 등이 작성하여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안시욱 등은 6대조모 묘 근처에 2개의 투총을 발견하고 그 중 1개의 무덤 주인을 찾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85

    "丁丑年에 장수현 서면 점촌에 사는 崔炳華 등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들은 이들은 貞烈公 崔潤德의 후손들로 貞烈公의 不?廟와 ?門이 날이 갈수록 퇴락하자 4년 전인 갑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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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86

    "남원부 둔덕방 2리의 동임인 김성봉이 동민의 番錢과 관련하여 관에 올린 소지이다. 둔덕방에 崔正阿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미 30여년 전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부과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87

    신미년 10월 남원부 동면 백파에 사는 안시욱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시산방 이언방에 있는 안시욱의 6대 조모의 묘에 누군가 몰래 투장을 하였다. 이에 안시욱 등 7명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88

    계해년에 전라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에 살던 박인찬이 영암군수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이 사건은 박인찬의 재종손인 박경흠이 先塋 내의 일부토지를 族人인 박치형의 柴場및 松田을 맞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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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89

    1834년(순조 34) 11월 16일에 과부 김씨가 임실현 하신덕면 어포리에 있던 ?舍 3칸과 행랑 8칸짜리 가옥과 玉字 垈田 과 苧田 3두락을 21냥을 받고 하치룡에게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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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0

    전라도 담양군에 사는 宋次興이 신사년 3월에 관에 제출한 산송 소지이다. 송차흥은 ?仰 宋純의 10세봉사손으로서 일찍이 엄친을 잃고 외가에서 자라다 보니 조상의 묘를 잘 알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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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1

    "경인년에 전라도 함열현 웅포의 船旅主人 朴基復이 관에 올린 所志이다. 관련소지를 참조하여 사건의 전말을 살펴 보면 이렇다. 船主人이었던 박기복은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져 같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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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2

    "1846년(헌종 12) 10월에 立下面 愚磻里에 거주하던 金基淳, 金用觀, 金鳳九 등이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신동환은 양반가의 선산 주맥위에 투장을 하였으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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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3

    임인년 9월에 남원에 사는 산민 吳顯義가 곡성관에 올린 소지이다. 초즉방에 사는 申益謨는 4월 6일 밤을 틈타 오현의의 선산 근처에 몰래 무덤을 썼다. 이에 오현의가 즉시 곡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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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4

    "1799년(정조 23)에 경상도 고성현에 사는 최광성이 진주에 사는 김창대로부터 奴 4명을 매득하고서 공증을 받기 위해 고성현감에게 제출한 입안신청소지이다. 그는 2살, 5살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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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5

    1884년에 전라도 무장현 동음치면 원동리에 사는 이위용이 고창현감에게 제출한 산송소지이다. 이위용의 先塋이 고창현 동음치면 황산 북록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의 조부의 묘소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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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6

    "무술년 3月에 전라도 남원부 백파방에 사는 安在烈이 山訟과 관련하여 全羅道 觀察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金光浩와 그의 숙부 金斗石이라는 자가 자신의 先塋을 몰래 파헤쳐 놓는 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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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7

    "1863년(철종 14) 10월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泰源이 長水縣監에게 올린 所志로, 1827년부터 시작된 梁大淵, 梁大奎와 李東馨 간의 산송 사건과 관련된 것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0998

    "임인년 11월에 영광군 염소면 창우리에 사는 박동흔이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奉山面 上村에 사는 張成希는 하촌에 있는 그의 선산 아랫쪽에 그 친산을 쓰고자 하였는데, 이곳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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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999

    "임진년에 염소면 창우리에 사는 박용구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지난 무자년에 낙월도에 사는 강명갑이 50냥을 빌려가고 5년이 지나도록 갚지 않고 있으니, 그를 잡아다가 엄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0

    "1853년(철종 4) 11월 29일에 박래춘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그는 동복현 내남면 밀양촌에 있는 黃字 垈田 5승락지와 초가 3칸, 그리고 이와 아울러 ?木과 竹田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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