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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1001

    1857년(철종 8)에 진안현 두미면 고사리에 사는 辛東珪가 鎭安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鎭安 관내 興面 新基里에 있는 그의 선산에 누군가 투장을 하였는데 삼사년 동안 투장자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2

    경인년에 益山郡 彌力面 九龍里에 사는 洪儀鳳이 益山郡守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의 선산이 益山郡 九文川面 죽청리에 소재하고 있는데 얼마전에 누군가 그의선조의 묘소와 아주 가까은 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3

    "1883년(고종 20) 정월에 곡성현 예산면 대리(현 곡성군 곡성읍 대평리)에 사는 김영모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문서에는 단지 계미년으로만 기재되어 있지만 관련문서를 통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4

    1823년(순조 23) 5월에 영광군 염소면 창우리에 사는 朴斗一이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이 문서는 박두일이 落月島(現 落月面 上落月里·下落月里)에 사는 宋祥瑞에게 14냥을 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5

    1828년(순조 28)에 고부군 거마면 제내리에 사는 趙東奎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의 조부의 무덤과 아주 가까운 곳에 거마면에 사는 鄭冠得이라는 자가 투총을 하자 이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6

    정사년에 益山郡에 사는 洪遠鍾이 任實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는 1년전에 任實縣 新德面 九沙鉢里에 부모의 묘를 쓰고 산지기까지 두어 이를 보살피게 하였다. 묘를 쓸 당시 주변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7

    경진년 3월에 전라도 만경현 남일면 대목리에 사는 任仁敎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거듭된 흉년으로 말미암아 얼마 되지 않은 가산마저 모두 탕진해 빈털터리가 된 그에게 호역(戶役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8

    "광양현 인덕면에 거주하던 化民 손백무가 정묘년 9월에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우장면의 書員이 손백무의 노비 喆今이 바닷가 제방에 일군 땅에 대해 50卜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09

    임오년에 진안현 일동면에 사는 全敬瑞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의 논 12두락을 李禧林에게 소작을 주었는데 그가 세금을 잘 내지 않으므로 黃順明에게 소작을 할 수 있도록 처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0

    "경인년 8월에 남원에 사는 吳顯鳳, 吳顯義 등이 곡성관에 올린 소지이다. 남원 수지방에 사는 오씨 양반은 裵家와 張家를 상대로 소송하고 있는 와중에 연이은 상으로 재물이 소요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1

    "1849년(헌종 15)에 발급된 공명첩(空名帖)으로 장언권(張彦權)의 조(祖) 장순(張洵)을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임명한 것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2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2

    "1891년(고종 28) 8월 6일에 정자억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정자억은 장수현 계남면 교항촌에 소재한 자신의 酒店과 體舍 2칸을 8냥을 받고 팔았다. 그는 매매사유를 移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3

    1669년(현종 10)에 김명열이 황해도 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현종 10년 8월에 亡妻의 장례와 기일 등으로 葬地에 왕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4

    경진년에 전라도 부안현 소산면 학동리에 사는 李圭洪이 경진년 2월에 수령에게 제출한 탄원서이다. 이규홍은 趙君卿의 꾀임에 빠져 다른 사람의 補役錢 50냥을 대신 갚았으나 나머지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5

    을유년에 金斗學이 암행어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두학은 지난 을해년에 읍교 金?에게 250냥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나도 갚지 않아 사정을 알아보니 김찬은 이미 죽은 뒤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6

    "1897년(광무 1) 12월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周舜이 장수현감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의 죽은 형이 노름하다 佳萬化, 李乃順 등에게 수백 냥의 빚을 졌는데, 그의 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7

    "계사년 9월에 강진현 열수면 군오리에 사는 김기홍이 강진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기홍은 佛堂洞에 있는 선산이 2백여년이 넘었는데 같은 면 九祥里에 사는 朴太和, 朴太敬, 金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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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18

    "신묘년에 전라도 장흥부 부평면에 사는 방철두가 전라도순찰사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방철두는 벽사역 이방 등의 가렴주구와 위협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자년에 장흥군 부평면으로 이주하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19

    병자년 5월에 옥구현 정면 수력 1리에 사는 화민 金日振 등이 작성하여 수령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정면 수력동 오산에 위치한 화민 김일진 등의 선산에 지난 달 그믐달에 누군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20

    "임진년 8월에 洪重?이 宋元一을 상대로 益山郡에 제출한 소지이다. 송원일의 선산과 홍중숙의 선산은 모두 竹靑洞 後麓에 위치하고 있는데 단지 石築으로서 左右로 경계를 나누어 오랫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21

    "병오년 1월에 입하면 우동리에 사는 화민 김상순 등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김상순 등은 인심을 문란케하는 술과 노름의 폐해와, 양반집 자제와 농민들까지도 술과 노름에 빠져 있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22

    壬午年에 潭陽郡에 사는 童民 宋次興이 창평에 있는 자신의 6대조 선산에 투장한 자들을 엄벌하여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창평 군수에게 올린 글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23

    노 무적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노 무적은 자기가 지은 瓦家 3칸을 正木 70疋을 받고 동복 형인 돌무적공대에게 팔았다. 다만 집의 양도시기는 그의 死後에 하기로 쌍방간에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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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24

    1841년(헌종 7)에 李渤 등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李渤과 李濤의 증조모인 삭녕 최씨의 묘가 남원부 하번암방 복상동에 있었다. 그런데 1841년 10월 4일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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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25

    "경인년 10월에 전라도 함열현 서이면 웅포의 船旅主人 鄭當百이 관에 올린 所志이다. 관련소지를 참조하여 사건의 전말을 살펴 보면 이렇다. 船主人이었던 鄭當百은 수년전에 朴君邦(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26

    임인년 3월에 태인의 최규선이 정읍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泰仁현 東村面(현 정읍시 옹동면)에 거주하던 최규선은 정읍현 南一面 石古村(현 정읍시 교암동)에 있는 선산에 누군가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27

    "1849년(헌종 15) 6월에 안정량 등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남원부 시라산방에 있는 증조모의 선산 옆에 양복룡, 김상필이 몰래 무덤을 썼으므로 파가게 해달라고 요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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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28

    임진년 전라도 구례현 현내면 절골에 사는 김씨댁 노 성금이 작성한 소지이다. 김씨댁 노 성금은 구례현 연파정에 살고 있는 김경언이 포흠한 돈을 갚지 않자 김경언과 보증을 선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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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29

    무자년 12월에 국호봉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興德縣의 下吏 鞠鎬鳳은‘戶房色 ?紙價’ 5結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확인 받아 이를 매매하려고 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향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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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30

    1877년(고종 14)에 茂長縣에 사는 吳生員宅 奴 判男이 同縣의 亞官에게 올린 소지이다. 心元面 馬山村에 살던 崔學敍라는 사람이 그의 집 뒤에 있던 판남의 상전댁 소유의 ?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31

    임신년 7월에 益山郡 彌力面 九龍里에 사는 洪祚鳳이 益山郡守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는 5달 전에 익산군 구문천면 죽청리에 소재한 그의 선대의 묘소 근처에 누군가 투장을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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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32

    "1876년에 全州府 所陽面에 살던 李龍善이 금구현의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水流面 山水洞 南麓에 있는 이용선의 선산에 龍華里에 살고 있는 金哥라는 자가 수 년 전에 투장을 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33

    기해년 2월에 南二面에 사는 具承旨宅奴 保金이 官에 올린 所志이다. 지난(무술년) 11월에 김득로에게 전당잡은 집과 텃밭을 방매하는 일로 누차 정소한 끝에 입지를 받았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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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34

    "1873년(고종 10) 7월 9일에 강만호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강만호는 이사를 하기 위하여 자신이 살고 있는 구례 현내면 시목정에 있는 宇字 초가 3칸가옥을 錢文 13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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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35

    1823년(순조 23) 李正銓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단자이다. 남원부의 하번암방 복상동에 있는 李正銓의 할머니 산소 근처에 하번암방 노단촌에 거주하던 張郁이라는 사람이 18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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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36

    임인년 7월에 고부군 상서면 지석리에 사는 扈權信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산송소지이다. 호권신은 5월에 당숙모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쓴 사람을 찾지 못하자 관에서 파내 이장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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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37

    "1891년(고종 28) 3월에 장수군에 사는 한태리 등이 작성하여 임실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임실군 덕치면 두무동에 소재한 한태리 등의 선산 구목을 족인인 한미용이 순창에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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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38

    "을묘년 4월에 박성옥이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高敞縣 川南面 蘆洞(현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에 사는 朴性玉의 祖母山 龍尾 가까운 곳에 누군가가 몰래 투장하였는데 무덤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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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39

    1874년(고종 11) 7월에 전라도 남원부 서봉방에 살던 徐龍雲이 부사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그의 증조부모의 산소가 원천방 구룡치에 있었는데 둔덕방에 사는 李氏가 이 산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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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0

    "기묘년 4월에 임기수가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林基壽는 고창 오서면(현 고창군 고수면) 석우촌 뒷산의 자기 선산에 누가 묏자리를 쓴 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묘를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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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1

    "무자년 2월에 국호봉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흥덕현의 下吏인 鞠鎬鳳는 아버지의 결백을 주장하였는데, 그의 아버지는 흥덕현 北浦의 船旅閣 主人으로서 근무하면서 엄청난 빚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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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2

    1897년(광무 1) 3월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思弼이 長水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의 부친의 묘소가 소송을 거치지 않고 사사로이 몰래 파여졌으므로 所志를 올려 임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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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3

    "을미년 7월에 흥덕현의 국경순 등이 올린 소지이다. 興德縣 縣內面 石湖里(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 사는 鞠暻珣, 金良錫, 郭洛七 등은 이달 18일에 바닷물이 범람하여 수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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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4

    "계사년에 동복 읍내면 신역촌에 사는 朴아무개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는 이 소지에서 자신의 선산이 내남면 삼산동에 있어서 백년이 다 되도록 오랫동안 관리를 해 왔다. 尹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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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5

    1847년(헌종 13) 5월 11일에 서정관이 작성한 가옥과 밭 매매문서이다. 서정관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그동안 살던 남원 수지방 마륜동에 위치한 가옥과 竹田 2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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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6

    辛巳年에 潭陽郡에 사는 童民 宋次興이 창평에 있는 자신의 6대조 선산에 투장한 자들을 엄벌하여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창평 군수에게 올린 글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047

    갑자년에 부안현 좌산내면 하포에 사는 金致模가 고부군의 겸임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치모는 전라도 고부군에 사는 金順汝에게 집터와 시장 논밭을 300냥에 팔았다. 하지만 김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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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8

    신유년 12월에 흥덕의 국홍순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문서의 상당 부분이 누락되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興德의 下吏 鞠弘淳이 吏房 朴來敏의 협잡으로 경제적으로 커다란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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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49

    1884년(고종 21) 2월에 무장현에 사는 오병두 등 12인이 영광성주에게 올린 소지이다. 1881년에 法聖鎭의 下吏인 李在星이 오병두의 선산에 투장을 한 일로 인하여 山訟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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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050

    "신사년에 부안현 소산면 학동리에 사는 李喜瑞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所志이다. 화민이란 양반이 수령에게 자신을 낮추어 칭하는 말이다. 이희서는 이치일이 세를 납부하기 위해 자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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