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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에 이집오가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 / 李集五 / 1844"1844년 6월에 이집오가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집오는 5년 전에 35량을 주고 임인옥으로부터 산을 매입한 후 그 산에 소나무를 키우는 등의 관리를 해 왔었다. 그런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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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에 광주목 당부면에 사는 박시철이 광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 朴時哲 / NULL기미년에 광주목 당부면 선도리에 사는 박시철이 광주목사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당시 박시철에게는 당부면 운리산에 조모의 산이 있었다. 그곳에는 박시철의 선조인 한림공과 회재공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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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에 태인고현에 사는 송백옥이 성주에게 제출한 소지 / 宋百玉 / NULL갑자년 3월에 泰仁古縣內에 사는 宋百玉이 관에 올린 산송 소지이다. 송백옥의 高祖의 무덤이 산내 이변 梅竹里 뒤 골짜기에 있는데 그 곳 산 아래에 사는 許良瑞가 그 무덤 위쪽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04
갑인년에 흥덕현의 한순업이 관에 올린 소지 / 韓順業 / NULL갑인년에 흥덕현의 한순업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興德縣 縣內面(현 고창군 흥덕면)에 거주하던 韓順業은 그의 종조부 承重孫이 되었으나 그의 姑叔인 鞠龍憲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神主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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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에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 / 楊宅煥 / 1849"1849년(헌종 15) 1월에 순창군 적성면 귀남리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는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소송이 일어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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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에 무장현에 사는 오병두가 영광성주에게 올린 소지 / 吳秉斗 / 1873"1873년(고종 10) 8월에 茂長縣에 사는 吳秉斗가 靈光城主에게 올린 소지이다. 오병두의 선산 山直인 姜和兼이 동년 7월무렵에 몰래 松楸 5, 60卜을 작벌하였는데 이 사실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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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에 장수현에 사는 최종외가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 / 崔宗巍 / NULL신유년 7월 20일에 전라도 장수현에 사는 崔宗巍가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지난 7월 8일에 소송 상대편인 崔遇植이 낸 탄원서에 의하여 남원부사가 다음 달 보름까지 기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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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에 고부군 거마면에 사는 김태운이 작성한 소지 / 金泰運 / NULL임인년 7월에 古阜郡 巨麻面 外巨里에 사는 金泰運이 작성한 소지이다. 金泰運은 巨麻面 梧谷里 서쪽 기슭에 있는 조모선산에 지난달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야밤에 몰래 투장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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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에 만경현에 사는 송성옥 등이 관찰사에게 올린 소지 / 宋尙玉 等 / NULL계묘년 3월 만경현에 사는 유생 宋尙玉 등 19등이 연명하여 순찰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만경현 선비인 故 任聖殷의 효행을 소개하였다. 임경은은 그의 아버지가 병이 나자 똥을 맛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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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에 이민환 등이 남원부에 올린 소지 / 李民煥 等 / 1878"1878년 2월에 둔덕면의 李民煥, 李師錫 등이 남원부에 올린 소지이다. 靈坊 溪竹房洞에 있는 8대조 선산은 종중에서 유사를 정하여 제사를 지내고 관리해 왔는데 몇 년전부터 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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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0년에 김천경이 작성한 가옥,전답매매문서" / 金天擎 / 17601760년(영조 36) 12월 25일에 김천경이 육촌동생인 김천원에게 작성해 준 가옥과 밭매매문서이다. 김천경은 官錢을 가져다 쓰고 올해들어 갚을길이 막막해지자 부득이 垈田 2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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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구례현에 사는 김씨댁 노 성금이 관에 올린 소지 / 成今 / NULL"임신년에 전라도 구례현 현내면 절골에 사는 金氏宅의 사내종 成今이 작성한 소지이다. 성금의 상전인 김씨댁은 구례현 토지면 송정평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같은 고을 한수창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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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에 김형재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 金亨載 / NULL계미년 8월에 김형재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소정면 용계리(현 정읍시 용계동)에 사는 김형재는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崔鳳振가 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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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에 양대연 등이 장수현감에게 올린 소지 / 梁大淵 / 1827"1827년(순조 27) 12월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양대연과 양대규 형제가 장수현감에게 올린 所志이다. 이전에 있었던 산송에서 이미 패배하여 수령 앞에서 무덤을 옮길 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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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에 입하면에 살던 김생원댁 노 삼의가 관에 올린 소지 / 金生員宅 奴 三儀 / NULL"갑신년에 입하면에 살던 김생원댁노 삼의가 상관을 대신하여 관에 올린 소지이다. 지난 섣달에 김생원은 사랑채에서 집안에 있는 문서를 살펴보다가, 급한 일 때문에 문서를 궤에 넣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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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에 신찬녕이 진안현감에게 올린 소지 / 辛?寧 / 18351835년(헌종 1) 3월에 진안현 두미면 고사리에 사는 辛贊寧이 鎭安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의 선산이 鎭安 관내 興面 新基里에 있는데 그 동리에 사는 姜千福이라는 사람이 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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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 아무개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 / NULL / NULL"문서의 앞부분이 마모되어 작성자는 알 수 없으며, 작성연대가 신묘년 9월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25냥을 빌려간 金明集이란 자가 그 덕분에 수천금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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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에 영광군 염소면에 사는 박형진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朴馨震 等 / NULL"임진년 3월에 영광군 염소면 창우리에 사는 박형진과 박용진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문중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住土 3마지기를 貧寒한 한 자손이 같은 면에 사는 朴召史에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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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에 전주에 사는 이흥락이 익산군수에게 올린 소지 / 李興洛 / NULL"무오년에 전주에 사는 김흥락의 선산이 익산군 함열현 문천면 석불리에 있었는데, 김흥락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쓴 일이 발생하였다. 처음에는 몰래 무덤을 쓴 사람을 찾지 못하였다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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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에 구례군에 사는 이인철이 관에 올린 산송소지 / 李寅哲 / NULL신미년 3월에 구례군에 사는 李寅哲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산송소지이다. 이인철은 金漢과의 산송문제가 이미 성주의 명쾌한 판결을 받아서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김한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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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에 고창의 임기수가 영광군수에게 올린 소지 / 林基洙 / NULL"경인년 윤2월에 고창의 임기수가 관에 올린 소지이다. 林基洙는 영광군 弘農面(현 영광군 홍농읍) 甕店村 뒷산에 있는 司僕寺正公과 淸道郡公의 墓에 누군가 밤을 틈타 偸葬하였으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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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강운흥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姜雲興 / 18931893년(고종 30) 11월 초8일에 姜雲興이 전라도 구례현 토지면 파도리에 있는 초가 4칸을 40냥에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김우서가 증인을 섰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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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에 용봉리에 사는 허근 등이 관에 올린 산송소지 / 許瑾 / NULL龍奉里에 사는 허근 허정 허민 등이 몰래 쓴 무덤과 관련하여 官에 올린 山訟所志이다. 그들의 10대조 묘 근처에 누군가 몰래 平葬을 하자 소지를 올려 관에서 그 투총을 옮겨 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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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익산군 미력면에 사는 홍조봉이 익산군수에게 올린 소지 / 洪祚鳳 / NULL임신년 7월에 益山郡 彌力面 九龍里에 사는 洪祚鳳이 益山郡守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는 5달전에 익산군 구문천면 죽청리에 소재한 그의 선대의 묘소 근처에 누군가 투장을 하였으니 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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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에 장흥군에 사는 방성수가 장흥군수에게 제출한 소지 / 方聖壽 / 1896"1896년(건양 1)에 전라도 장흥군 부동면 벽중탑동에 사는 방성수가 장흥군수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방성수는 동학군의 장흥 함락 때 포탄의 파편을 오른쪽 어깨에 맞아 사경을 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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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에 남원부에 사는 오중순이 관에 올린 소지 / 吳重舜 / NULL계유년 3월에 남원 수지방에 사는 화민 吳重舜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오중순은 8년 전 홍역으로 딸이 죽어 심신이 어지러운 가운데 근근히 살다가 소장하고 있던 3장의 논문서를 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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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에 무장현에 사는 이광원 등이 고창현감에게 제출한 소지 / 李廣源 等 / 1855"1855년(철종 6)에 전라도 무장현에 사는 이광원, 이정순 등이 고창현감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이광원 등의 선산이 고창현 관내 대아면 오정동 남쪽 기슭에 있었는데, 이 곳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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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에 석산이 관에 올린 소지 / 石山 / NULL"병인년에 下東面 甕井里에 사는 金生員宅 奴 石山이 작성해서 관에 올린 소지이다. 金有甲이 30냥을 빌려갔는데 작년에 흉년이 들어 갚지 못하자, 대신 子 茂得이 금년 가을까지 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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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에 국경순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 / 鞠暻珣 / NULL"기축년 6월에 국경순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興德縣 北面 沙浦(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의 上道船 旅閣主人으로 근무하던 鞠暻珣은 後浦(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에 사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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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에 양대규가 장수현감에게 올린 소지 / 梁大奎 / 18281828년(순조 28)에 8월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大奎가 長水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梁大奎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썼다가 여러 차례의 산송에서 패배한 李東馨이 다짐에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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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에 국경순이 관에 올린 소지 / 鞠暻珣 / NULL을묘년에 국경순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흥덕현 현내면 석호(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 살던 鞠暻珣은 蝟島(현 부안군 위도면)에 사는 申永仲이라는 자에게 돈 330냥을 빌려주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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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동복에 사는 박명채가 수령에게 올린 산송소지 / 朴命采 / NULL임신년에 朴命采가 수령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내남면 밀양동에 선산이 있었던 그는 선산 아래의 둔촌에 사는 金介同에게 이를 빼앗길 위험에도 처하였으나 다행히 수령의 현명한 판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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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유인 정씨에게 발급된 공명첩 / 國王 / 1905"1905년(고종 42)에 발급된 공명첩(空名帖)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급된 문서도 마찬가지로 모두 공명첩이다. 성씨가 적혀 있는 부분이 다른 부분의 필체와 다른 점, 조잡하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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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에 송노 선봉이 작성한 시장,전답매매문서" / 宋奴 先奉 / 1878"1878년(고종 15) 9월 14일에 송씨댁의 노 선봉이 작성한 시장, 밭 매매문서이다. 선봉은 올해의 稅米를 납부하기 위하여 거마전평에 있는 後字 太種田 5두락과 시장 10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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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에 오재돈이 보성군 수령에게 올린 소지 / 吳載敦 / NULL"을미년에 吳載敦이 보성군의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오재돈은 지난 기축년에 李氏로부터 800냥에 대밭을 매입하였다. 매입 당시 새로운 문기ㆍ예전 문기까지 확인하여 이후 5년 동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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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에 김영백이 관에 올린 소지 / 金榮伯 / NULL"무인년에 김영백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김영백은 7년전에 남상월림에 사는 金圭漢에게 논을 팔았다. 그 때 세금 문제로 분쟁이 있어서 김영백은 관에 소지를올렸고, 관에서 사실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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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3년에 김홍원의 노 군석이 관에 올린 소지 / 君石 / 1613"1613년(광해군 5)에 金弘遠이 그의 奴 君石의 이름으로 官에 올린 所志이다. 이에 따르면 김홍원의 선조들은 진안에 있는 照林坪에 와서 둑을 막고 논을 만들었으며, 주위에 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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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유인관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 / 柳寅寬 / NULL"무자년에 化民 柳寅寬이 趙東述과의 채무관계를 해결해 줄 것을 호소하면서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유인관 할아버지가 趙東述의 아버지인 趙奇夏에게 돈을 빌려주었었다. 그런데 조기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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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에 영광군 염소면에 사는 박성욱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朴成旭 等 / 18131813년(순조 13)년 12월에 영광군 염소면에 사는 박성욱과 박동석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원산에 사는 박대근이 還錢 25냥을 포탈하자 관에서는 성만 같을 뿐 족인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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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에 조생원댁 노 선철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奴 先哲 / NULL"을축년에 오기면 대리에 거주하던 趙生員宅 사내종 先哲이 상전을 대신하여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선철의 주장에 따른다면, 조생원이 지난 정사년에 죽곡면 하죽리에 사는 黃光玉으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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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전주부 창덕면 와리에 사는 유석철이 전라도관찰사에게 제출한 소지 / 柳錫喆 / NULL"병자년에 전라도 전주부 창덕면 와리에 사는 柳錫喆이 관에 올린 산송소지이다. 유석철은 자신의 季父의 산소를 高山의 新基에 썼으나 마침 이곳은 許翼이 소유한 선산 局內였다. 물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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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에 장수현 사는 최종외가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 / 崔宗巍 / NULL병인년에 장수현에 사는 崔宗巍가 南原府使에게 올린 所志이다. 남원 관내 북면 외진전리 건지산에 그의 선산이 있는데 자신의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관리가 어려워 10여전부터 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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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에 전주부 우동면에 사는 최제옥이 고산군수에게 제출한 소지 / 崔濟玉 / 1864"1864년(고종 1) 3월에 全羅道 全州府 紆東面에 사는 崔濟玉이 고산군수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사건의 발단은 최제옥의 5대 조모의 묘소를 수호하던 산지기 呂永達이 묘소에 투장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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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에 담양에 사는 송차흥이 창평군수에게 올린 소지 / 宋次興 / NULL辛巳年에 담양에 거주하던 宋次興이 창평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면앙정 송순의 무덤 옆에 투장한 일로 인한 이 송사는 전후 수년간을 지속한 것이다. 그 동안 창평군수에게 올린 소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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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에 김학수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金學秀 / 18751875년(고종 12) 1월 24일에 김학수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김학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석현방 번천에 있는 周字 體舍 3칸과 행랑 3칸 가옥과 과실수를 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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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에 고부의 서상순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 / 徐祥淳 / NULL신해년 윤8월에 고부의 서상순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서상순은 자신의 8世祖와 親山이 있는 흥덕 이서면 호암리의 죽림산 뒤등성이 先山에 아전인 鞠龍憲이란 자가 偸葬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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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에 무장현 일동면에 사는 최윤규가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 / 崔潤奎 / NULL신축년 8월에 茂長縣 一東面에 사는 崔潤奎가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洪道盡(一名 道振)이라는 사람이 최윤규의 선산을 무단히 빼앗으려 하자 최윤규는 현감에게 소지를 올려 홍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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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남원의 윤인채 등이 연명으로 전라관찰사에게 올린 소지 / 尹仁采 等 / 1802임술년 남원에 사는 유학 尹仁采 等 27명이 연명으로 순찰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남원에 사는 崔尙和의 효행을 알리며 포양을 건의하고 있다. 관에서는 공의를 기다리라고 제사를 내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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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에 부안현에 사는 김치모가 고부군 수령에게 올린 소지 / 金致模 / NULL갑자년에 부안현 좌산내면 열포에 사는 화민 金致模가 고부 성주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치모는 전라도 고부군 거마면 외거리에 사는 金順汝에게 자신이 소유한 집을 팔았으나 김순여가 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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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만경현에 사는 임귀교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任貴敎 等 / NULL정묘년에 만경현 남일면 대목산리에 사는 任貴敎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임귀교 등 일족은 재각을 짓는 바람에 재정적으로 어렵게 되어 宗畓 1섬 5두락지를 팔아 빚을 갚기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