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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1251

    "병자년 12월에 임실군 덕치면에 사는 한영모가 임실군수에 올린 소지이다. 한영모는 병자년 음력 2월에 덕치면에 거주하던 같은 종가인 한익서가 청주한씨 파보를 만드는데 일 푼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52

    갑신년에 진안에 사는 全榮祿이 담양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담양 술지면에 있는 자신의 산지기 논이 수해로 인해 전부 모래가 덮이고 시내가 되었다. 산지기가 어리석은 까닭으로 개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53

    1857년(철종 8)에 김봉구가 관에 올린 소지이다. 김봉구는 지난 2월에 하서면 변산 광계에 親葬을 하였는데 야영촌에 사는 이현순이 그곳의 산주라 칭하고 행악하여 동생을 다치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54

    계유년에 光陽郡 仁德面에 살던 奴 哲金이 올린 소지이다. 奴 철금은 상전댁으로부터 토지를 받지 못하자 상전댁 소유의 제방을 개간하여 전해부터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계유년 6월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55

    "을미년 12월에 최득량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정읍 동면에 사는 崔得亮은 고부군 남부면 중산리(현 정읍시 고부면 만화리) 북쪽 기슭에 있는 증외조부 산소를 1백 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56

    "1878년(고종 15) 1월 17일에 작성된 가옥매매문서이다. 家垈主를 ‘長兄’이라고 하고 매수인을 ‘金’이라고만 쓴 것으로 보아 김씨 형제간에 매매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57

    1805년(순조 5)에 장수현 읍내면 승치리에 사는 辛德松이 鎭安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진안현 가막동의 선산에 李千甫라는 자가 투장을 하여 소송을 거치지 않고 掘去하게 하였는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58

    "신축년 정월에 立下面에 사는 金常述 金泰述 等이 官에 올린 所志이다. 소지를 올린 김상술 김태술 등의 6대 祖?의 선산이 우동리 뒷산 기슭에 소재하고 있는데, 이곳은 조상 대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59

    "임진년에 전라도 남원부의 산동 이리에 살던 金洛鎭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락진은 돌아가신 조부를 60여 년 동안 지켜온 자신의 선산에 모시려고 하였는데, 어떤 자들이 나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0

    "1848년(헌종 14) 11월에 순창군 적성면 귀남리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던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분쟁이 일어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1

    기미년에 부량면 신양리에 사는 宣興周가 성주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선흥주는 선산이 本面 西道 남쪽골짜기에 있어서 산지기까지 두고 잘 지켜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자가 선산의 龍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2

    "신묘년 6월에 함방에 사는 윤지가 작성하여 관에 올린 소지이다. 윤지는 6·7개월 전에 산송을 벌여 자신의 선산에 묘를 쓴 자를 고소하였으며, 당시 관에서는 묘를 속히 파서 옮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3

    을미년 3월에 용봉리에 사는 許瑾 許珽 許?+敏등이 偸葬과 관련하여 올린 山訟所志이다. 이들은 이미 한 달 전에 자신들의 10대조 묘 근처에 누군가 몰래 平葬하자 이를 官에서 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4

    1858년(철종 9) 3월에 만경현 남일면에 대목산에 사는 임홍교와 임인교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이들은 釜堤 안에 5대조 이하 조상을 모신 선산이 있어서 김씨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5

    "갑신년에 鄭運成이 官에 올린 所志이다. 이 소지는 문서 WON00247과 같은 내용의 문서로 시기도 거의 일치한다. 다만 위의 문서에 나오는 金敬文이 이 문서에서는 金瓊文으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6

    "신축년에 豆洞에 사는 柳敬三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그의 동생이 같은 동네에 사는 吳明彦이라는 자의 꼬임을 받아 雜技를 하는 바람에 거의 10냥이나 빚을 지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7

    "1880년(고종 17) 3월 24일에 이인석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이인석은 자기가 매입했던 4칸짜리 가옥을 50냥에, 市街酒舍 3칸을 17냥에, 綿田 6두락지를 40냥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8

    1882년(고종 19) 2월에 무장현에 사는 오병두 등이 영광성주에게 올린 소지이다. 1년 전에 法聖鎭의 下吏인 李在星이 오병두의 선산에 투장을 한 일로 인하여 山訟이 있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69

    "정묘년에 南一面 大木山에 사는 任仁敎와 任鍾佑 등이 수령에게 올린 山訟所志이다. 二面 古縣里에 사는 金乃煥이라는 자가 자신들의 선산에 그 아비의 무덤을 몰래 썼다가 작년에 관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0

    임신년에 益山郡 彌力面 九龍里에 사는 洪祚鳳이 益山郡守에게 올린 所志이다. 익산군 구문천면 죽청리에 소재한 그의 선대의 묘소 근처에 누군가 투장을 하였으니 투장자를 찾아내어 투총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1

    哲宗 2年(1852)에 全羅道 南原의 幼學 盧錫昇 등이 禮曹에 올린 소지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는 등 여러 차례 공을 세워 扈聖原從功臣 3등과 參判에 錄勳되었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2

    "임신년에 동복 읍내면 역촌에 사는 朴萬宗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박만종의 조부의 산소가 내남면 밀양동 뒷쪽에 있었는다. 金成玉이라고 하는 자가 자신의 금양지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3

    "1859년 12월에 茂長縣 上里面 閑迪里에 살던 朴奎鎭이 수령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박규진은 자신이 武烈公 朴鉉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향약소에 명령하여 자신에게 부과된 軍役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4

    "갑술년 8월에 李基顯등 의 선산에 무주에 사는 유시중이 몰래 쓴 무덤과 유시중이 윤가에게 몰래 판 땅을 되돌려 달라고 요청한 소지이다. 이기현은 고부에 사는 임가가 네 옛 무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5

    "신유년 4월에 김창효 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金昌孝, 鎰奎, 麟奎, 相奎, 東奎 등은 금양지를 수백년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6

    "계미년에 潭陽郡에 사는 童民 宋次興이 창평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송차흥은 이미 여러 차례 창평에 있는 자신의 6대조 선산에 투장한 일을 해결하여 달라는 취지로 글을 올렸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7

    "무오년 2월에 고창의 정한진 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高敞에 사는 鄭漢鎭, 鄭台炫 등은 興德현 이동면 은행정에 사는 李正敏이라는 자가 고부군 성포면 율현리(현 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8

    1863년(철종 14) 11월 6일에 오치언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오치언은 그동안 거주해온 구례 현내면 백련동에 있는 黃字 草舍 2칸을 5냥을 받고 팔았다. 이 거래에 이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79

    1828년(순조 28)에 태인현에 사는 文甘龍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거마면 사례동에 있는 문감룡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썼던 조희맹이 소송에서 패하고서도 관청에서 약속한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0

    "기축년에 선관숙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선관숙의 사촌이 지난 칠월 즈음에 유리걸식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같은 고을에 사는 農宦長 明淑이 가을에 집을 지을 때, 자기 사촌집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1

    을유년 12월 남원 수지방에 사는 화민 吳一泳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소지이다. 오일영의 호적(戶)에 속해있는 吳順男과 오일영의 삼촌 吳海云의 땅이 세금을 가리는 성책에 무슨 이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2

    "임신년 8월에 김인규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金麟奎의 5대조모산이 優德面 可亭里(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3

    계축년에 전라도 구례현 현내면 도롱동에 사는 金氏宅의 사내종 成今이 올린 소지이다. 이 문서는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문서 고10259와 고10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4

    기사년에 진안에 사는 全榮祿이 담양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전영록은 자신의 조모의 분묘 근처에 몰래 무덤을 쓰고 도주한 郭東燁와 그에게 무덤을 쓰게 하고 도망가도록 시킨 郭家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5

    "기미년에 전라도 전주부 우동면에 사는 최제옥이 고산군수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이해 8월에 우동면에 사는 최제옥은 고산군 남면 수락동에 위치한 선산의 산지기 여영달이 전주부 봉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6

    갑진년 6월에 임성옥 등이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임성옥 등이 올린 소지의 내용은 다른 문서(고07142)에 나오는 이집오의 소지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이 소지는 이집오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7

    1885년(고종 22) 4월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粱慶源이 長水縣監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는 李基瓚과 채무 관계로 여러 차례 소송을 벌인 바 있는데 빚을 다 갚았는데도 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88

    "을해년 7월에 김인규 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金麟奎, 金相奎, 金興載 등은 족질인 麒載가 고조산지와 당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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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289

    1897년(광무 1) 2월 7일에 김만세가 전라도 구례현 현내면 절골에 있는 6되지기의 논과 2칸짜리 초가 한채를 17냥을 받고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김만세는 구문기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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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290

    "1600년(선조 33)에 통정대부 행 금산군수인 김홍원이 관찰사에게 병가를 청하는 소지이다. 김홍원은 寒疾이 더욱 심하여지자 조리차 휴가를 요청하였다. 이에 관찰사는 10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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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291

    기묘년에 소라포 관기리에 사는 崔百悅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최백열은 장인 金汝一의 밀린 돈(逋錢) 수 백냥을 자신에게 부담지운 후 이를 독촉하는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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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292

    1774년(영조 50) 3월에 전라도 옥구현 정면 수력 1리에 사는 化民 金允淑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본래 김윤숙의 아버지와 田氏가 옥구현의 향장(執綱)자리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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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293

    "경진년 8월에 潭陽에 사는 童蒙 宋次興이 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송차흥은 창평현 대곡면 서록에 6대조를 모신 선산이 있었으며, 산지기를 두어 관리해 온지 백여년이 되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94

    정사년에 아무개가 작성하여 관에 올린 소지이다. 문서가 마모되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금위군역에 불만이 있는 소지의 작성자가 고을 사도에게 역을 면제해 달라고 호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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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295

    정미년 11월 남원 수지방에 사는 吳學奎가 작성하여 곡성관에 올린 소지이다. 오학규는 배가동에 있는 선산에 개간한 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산지기에게 가경전 2냥을 독촉하는 오지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96

    "1860년 3월에 茂長縣 上里面에 사는 朴奎鎭이 올린 소지이다. 양반의 신분인데도 억울하게 평민의 역을 짊어졌다고 생각한 그는 수령에게 소지를 올려 사실을 조사하여 ?役해 주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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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297

    辛巳年에 潭陽郡에 사는 童民 宋次興이 창평에 있는 자신의 6대조 선산에 투장한 자들을 엄벌하여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 창평 군수에게 올린 글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298

    "을묘년 6월에 전라도 남원부 백파방에 사는 안시권이 남원부사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이 소지를 제출하기 이전에 남원부에서는 時羅坊·伊彦坊의 面任에게 안시권의 6대 조모의 분산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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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299

    "임인년에 남원부 豆洞坊에 사는 柳啓三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그의 동생이 같은 동네에 사는 吳明彦이라는 자의 꼬임을 받아 雜技를 하는 바람에 거의 10냥이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00

    1871년(고종 8) 11월에 손석순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손석순은 그동안 거주해온 현내면 백련동에 있는 荒字 家舍 3칸을 16냥을 받고 팔았다. 매수인에게 신문기와 구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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