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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1351

    임진년 12월에 국경순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흥덕 포구의 각 여각들이 명례궁에 소속되어 형편에 따라 세금을 납부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興德縣 石湖(현 고창군 흥덕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52

    작성연대와 작성자를 알 수 있는 所志 草이다. 다만 서두에 康津縣 ?情所志草라고 적혀 있어서 작성자가 강진현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문서의 작성자는 계해년 봄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53

    을미년 5월에 남원에 사는 崔柄仁이 작성하여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崔柄仁은 변란시 잃어버린 선조의 교지 및 보첩을 찾아달고 관에 호소하고 있다. 이에 관에서는 대대로 내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54

    "무술년 3月에 전라도 남원부 백파방에 사는 安在烈이 산송과 관련하여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안재열은 작년에 모친 상을 당하자 인근 성동에 사는 李初學 등에게서 뒷산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55

    "1858년(철종 9) 7월에 萬頃縣 南一面 大木山里에 사는 任弘敎와 任仁敎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任弘敎와 任仁敎가 金斗杓의 偸塚사건에 대해서 승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김두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56

    1886년(고종 23) 11월 11일에 장봉구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장봉구는 토지면 동방촌에 있는 초가로 된 酒店 3칸을 형편이 부득이하여 40냥을 받고 팔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57

    1868년(고종 5) 11월에 한양에 거주하던 戶曺差人 張有汝가 전라도 흥덕현감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이전에 장유여는 韓龍鎭이 착복한 호조의 貿米錢을 추심하러 흥덕현으로 내려왔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58

    기묘년에 趙昌駿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향교의 장의로 있던 조창준은 작년에 장의직을 맡은 이후로 이미 일 년의 임기를 채운 자신의 장의직을 교체하여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향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59

    1822년(순조 22)에 장수현 읍내면 승치리에 사는 辛德松이 鎭安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진안현 가막동에 있는 선산에 석곡리에 사는 陳哥가 偸葬을 하였는데 陳哥는 偸葬이 아니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0

    "신해년에 전라도 전주부에 사는 김해귀가 관에 올린 소지로, 자신의 五代 祖父母의 墳山과 親山에 偸塚을 한 洪文周를 고발하고 있다. 이 소지에 따르면, 김해구의 집안에서 이곳 南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1

    을유년에 金斗榮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茂長縣 二東面 泥洞(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 사는 김두영은 지난 을해년에 金贊에게 250냥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4년이 지나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2

    1848년(헌종 14) 5월에 순창군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다가 이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소송이 일어나 결국 자신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3

    을유년 11월 남원 수지방에 사는 화민 吳一泳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소지이다. 吳一泳과 오일영의 삼촌 吳海云에게 속한 땅이 백지(白地)로 소출이 전혀 없는 황무지인데 세금을 가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4

    정유년 정월에 全羅道 羅州牧 하의도에 사는 尹得景이 風憲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윤득경의 조부가 아들이 없던 장인 이씨의 유산으로 제위답을 장만하여 제사를 받들어 온 이래 3대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5

    "갑신년 4월에 전라도 영암군 서면 월암리에 거주하던 朴禹相이 영암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박우상은 20여년 전인 계해년에 羅州牧 去馬里에 살던 申允智에게서 13냥을 빌려 매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6

    "경자년 10월에 鳳岡面 新龍里에 사는 金道元이 光陽郡에 제출한 訴狀이다. 김도원은 가난해서 타인의 집에 우거하다가 행량 한 채를 가까스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런데 행랑에 문짝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7

    1886년(고종 23) 11월 1일에 나명오가 오생원댁 복매에게 작성해 준 가옥과 밭매매문서이다. 나명오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여산군 합선면 외평리에 소재한 3칸짜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8

    신축년 4월에 全州府 東面 中里에 사는 方哲斗가 전주부사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방철두는 그녀의 여식을 같은 관내에 사는 金用西에게 시집보냈는데 그녀는 시집간 지 7년만에 쫓겨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69

    정해년 정월에 도림면 쌍봉리에 사는 화민 梁相昌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화민 양상창의 선산은 천지봉 아래에 있었으며 산지기를 두어 지켜 오고 있었다. 하지만 서원동에 사는 車아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0

    정유년 10월에 김창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김창욱은 자신의 선산 금양지 가까이에 누군가 투장하였는데 무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1

    임신년에 남원부 동면 백파방에 사는 안시욱 등이 작성하여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안시욱 등은 시산방과 이언방의 접경지에 소재한 6대 조모 묘소의 투장사건으로 그동안 여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2

    1823년(순조 23)에 李正銓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단자이다. 남원부의 하번암방 복상동에 있는 李正銓의 할머니 산소 근처에 하번암방 노단촌에 거주하던 張郁이라는 사람이 1822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3

    "1669년(현종 10) 3월에 通訓大夫行平山都護府使 金命說이 黃海道觀察使에게 辭職을 請하며 올린 소지이다. 김명열은 이 문서에서 자신이 고질병으로 여러 해 동안 고생한데다가 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4

    "병술년 11월에 월등면에 사는 주민 張有烈, 王師哲 등이 성주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월등면 주민들이 계를 짠 후 계답 3두락을 사서 10 여년을 계에서 벼를 봉납하여 왔는데 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5

    "1846년(헌종 12) 9월에 立下面 愚磻里에 거주하던 金基淳, 金用觀, 金鳳九 등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김기순 등의 선산에 신동환이 투장을 하였으며, 이에 대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6

    정사년에 광주목 당부면에 사는 의열사원호(義烈祠院戶) 장팔옥이 광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장팔옥은 의렬사원에서 부역을 하고 있는데 또 선무의 부역을 겹쳐 부과한 것에 불만을 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7

    "임신년에 선흥주가 관에 올린 소지이다. 월산면과 부량면의 경계에 보를 쌓는 일에 자신의 아들이 役丁으로 차출되어 연일 중노동을 하자, 아비된 자의 심정으로 두고 볼 수 없기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78

    1882년(고종 19) 2월 27일에 유학 김대홍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김대홍은 그동안 살아왔던 남원 소의방 형파정에 있는 ?舍 3칸과 行廊 2칸짜리 가옥을 錢文 45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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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79

    1794년(정조 18) 3월에 李正銓이 그의 아우 李得銓과 숙부 李致觀 등과 함께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그와 李正銓의 할머니이면서 동시에 李致觀의 어머니인 삭녕 최씨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80

    1859년(철종 10)에 전라도 남원부 백파면에 사는 안정직 등이 남원부사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안정직 등은 서면 시라산방에 있던 고조모묘 부근에 이언면에 사는 김천익이 몰래 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81

    "1885년(고종 22)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思平이 장수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의 종제인 梁思憲이 노름을 하다 이기찬이라는 이에게 170냥의 빚지게 되었다. 이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82

    1669년(현종 10)에 김명열이 황해도 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현종 10년 7월에 올린 소지에도 불구하고 사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시 같은 해 7월에 재차 신병을 이유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83

    "임인년 10월에 김태운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古阜郡 巨麻面 外巨里에 사는 화민 金泰運의 조모산 아주 가까운 곳에 같은 면에 사는 劉卜良이 투장하였는 바, 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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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84

    신묘년 11월에 임인옥이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고창 五西面(현 고창군 고수면) 石隅里에 사는 林仁玉은 자신의 선산에 투장을 한 같은 면 예동(현 고창군 구수면 예지리)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85

    "을유년 3월에 帝石面 平章里에 사는 洪大鎭이 익산군수에게 偸葬과 관련하여 제출한 所志이다. 그는 7代祖 이하 4世의 선산이 미륵산 서록에 있어서 수호해온지 수백 년이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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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86

    "정해년에 김두암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무장 일동면 도산(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에 사는 金斗巖은 세금 납부를 위해 선산을 팔려고 하는데, 땅을 사려는 사람이 관에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87

    "갑자년 7월에 전주 이동면에 살던 최제옥이 자신의 선산과 관련하여 관에 제출한 산송소지이다. 최제옥의 5대 祖母의 무덤이 南面 水洛洞에 있는데, 수십 년 전에 산지기 呂在春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388

    "임오년 8월에 김인규 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金麟奎, 麒載, 亨載, 興載, 煉載 등은 고부군 (북부면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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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89

    1881년(고종 18) 6월 11일에 박후신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박후신은 그동안 거주해오던 동내동에 있는 呂字 草家 3칸을 錢文 30냥을 받고 팔았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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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0

    을축년 6월에 김정규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古阜郡 巨麻面 外巨里(현 부안군 백산면 평교리)에 사는 김정규는 부안에 사는 朴昌守와 家垈 문제로 소송을 벌인 바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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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1

    "남원부 둔덕방 2리에 거주하던 어느 한 全州 李氏 소유의 사내종 甘金가 1726년(영조2) 10월에 남원부사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이 소지에 의하면, 같은 해 4월에 사내종 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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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2

    무술년 12월에 南二面 下光里에 사는 具承旨宅奴 保金이 상전을 대신하여 官에 올린 所志이다. 노 보금은 상전이 입석리에 사는 金得老에게 받을 돈 때문에 일전에도 소를 올려 판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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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3

    "을해년 7월에 최동환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현 정읍시 덕천면) 오공리에 거주하던 최동환은 자신의 외숙 종가에 후사가 없어서 외종인 金麒載를 양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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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4

    계사년 1월에 김판석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무장에 사는 邑底 金判石은 그의 숙부가 서울에 다녀오면서 발생한 食債 10여냥을 대납한 바 있는데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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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5

    병오년에 崔基元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최기원은 자기가 朴基模로부터 산을 사들일 때 시세대로 값을 주는 등 정상적인 거래를 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 글을 수령에게 제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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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6

    "신미년 4월에 이정식의 고모 묘소가 屯德坊 蛇界洞에 있었는데, 그녀는 슬하에 아들이 없고 딸만 한명 있었기 때문에 묘소의 관리는 그의 딸인 이씨가 맡아서 하였는데, 당시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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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7

    "1749년(영조 25) 김진사댁노 자룡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김진사는 본부에 사는 최급에게 부안 위도의 노비 성춘과 그 소생 네 명, 그 전후 출생한 이들을 아울러서 사 들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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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8

    "정해전 윤 4월 23일에 ?所面의 主人에게 金東燮을 잡아오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는 제사이다. 이 제사에 앞서 이미 ?所面 主人으로 하여금 同面 昌牛里에 사는 朴學彬에게서 김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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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399

    신묘년 8월에 潭陽에 사는 宋修榮이 昌平官에 올린 소지이다. 송수영의 선산이 담양 西面에 있는데 그곳에 白東圭가 투장을 하였고 이로 인해 벌어진 소송에서 掘去하라는 처분을 받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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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400

    "1852년(철종 3) 2월 3일에 김종신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김종신은 이사를 하기 위해서 자신이 매입하여 거주해 오던 현내면 도농동에 있는 黃字 초가3칸과 나무 3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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