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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에 구례에 사는 유생 김학권이 관에 올린 소지 / 金學權 / NULL임진년 전라도 구례에 사는 유생 金學權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김학권은 谷城에 사는 徐相大와 長水에 사는 梁淑烈을 통해서 4200냥을 주고 監役帖을 샀다. 그런데 서상대가 다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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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에 익산군에 사는 홍의봉이 익산군수에게 올린 소지 / 洪儀鳳 / NULL"경인년에 2월에 益山郡 彌力面 九龍里에 사는 洪儀鳳이 작성하여 익산군수에게 제출한 소지로 자신의 선산에 투장한 鄭某를 잡아가두고 관의 감독하에 그 무덤을 파내도록 해 줄 것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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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에 담양에 사는 송차흥이 창평군수에게 올린 소지 / 宋次興 / NULL갑신년에 潭陽郡에 사는 童民 宋次興이 창평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소지의 내용은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다. 사실 송차흥이 창평 선산의 투장 사건 때문에 창평군수에게 소지를 올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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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에 순천부에 사는 최기종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崔基鍾 / NULL을사년 2월에 전라도 순천부 덕안면 관기리에 사는 崔基鍾이 수령에게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소지이다. 최기종의 서조모(庶祖母)는 흥국사 정수암의 논 8마지기를 구입하여 절에 바치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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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에 국왕이 박씨에게 발급한 공명첩 / 國王 / 1879"1879년(고종 16)에 발급된 공명첩(空名帖)으로 박씨(朴氏)를 정부인(淑夫人)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정부인은 종2품의 위호(位號)로서, 문무관 정2품의 정헌대부(正憲大夫)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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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에 허권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許權 / 18681868년(고종 5) 3월 6일에 허권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허권은 그동안 거주하여 온 토지면 한수천에 있는 3칸짜리 가옥을 11냥에 팔았다. 洞首인 김방열이 이 거래에 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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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에 만경현에 사는 곽유한이 수령에게 올린 산송소지 / 郭有漢 / NULL경인년에 만경현에 사는 곽유한이 수령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곽유한은 이전에 任某를 투장혐의로 고발하였으나 시비가 제대로 가려지지 않자 이번에는 돈을 받고 許葬하였다는 혐의로 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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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에 광주목 당부면에 사는 임석조가 광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 林石祚 / NULL정사년 8월에 광주목 당부면에 사는 의열사원호(義烈祠院戶) 임석조가 광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임석조는 의열사원에서 오랫동안 부역을 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또 보병의 역이 부과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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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에 무장현 청해면에 사는 오기헌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 / 吳淇憲 / 18451845년(헌종 11) 10월에 茂長縣 靑海面에 사는 吳淇憲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동년 9월에 오기헌은 冬音峙面에 있는 선산의 松楸를 金玉이란 자가 무단으로 작벌한 일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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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에 김의삼이 관에 올린 소지 / 金義三 / NULL"무진년에 김의삼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김의삼의 繼母 묘가 용산면 정천동 후록에 있었다. 먹고 살 길이 없어 다른 곳에 있던 중, 田哥가 몰래 龍眉자리에 투장을 하였다. 한 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461
임인년에 남원부에 사는 오현의가 곡성관에 올린 소지 / 吳顯義 / NULL임인년 4월 남원 수지방에 사는 吳顯義가 작성하여 곡성관에 올린 소지이다. 곡성군 오지면에 있는 오현의의 선산에서 사오십보 거리에 있는 사즉리에 사는 신가가 몰래 무덤을 썼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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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에 국상집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 / 鞠相集 / NULL경자년 10월에 국상집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縣內 石湖(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 살던 鞠相集은 흥덕군의 船旅閣主人으로 오래 전부터 흥덕 포구를 드나드는 배로부터 세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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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에 구례현 현내면에 사는 김영국이 관에 올린 소지 / 金英國 / 18861886년에 전라도 구례현 현내면에 사는 김영국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김영국은 서상대와 이병두가 작성한 수기를 찾아달라고 관에 요청하였다. 원래 김영국은 아들 김락종의 감역전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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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에 무장현 동음치면에 사는 김양복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金養福 / 1854"1854년(철종 5)에 무장현 동음치면 갑촌에 사는 김양복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때 김양복은 와공면 石井의 前麓에 있는 7대조의 선산을 수호하여 왔는데, 자손들 중에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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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년에 김칠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소지 / 金七星 / NULL"갑신년 3월에 김칠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고부군 거마면 외거리(현 부안군 백산면 평교리)에 사는 小童 金七星이 稅米를 移徵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관에 요청한 것인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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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에 광주목 당부면에 사는 이오남이 광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 李五南 / NULL"정사년에 광주목 당부면에 사는 의열사원호(義烈祠院戶) 이오남이 광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오남은 의열사원에서 부역을 하고 있는데 또 어보의 부역을 하라고 하니 몸은 하나인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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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에 과부 이씨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寡婦 李氏 / 1866"1866년(고종 3) 8월에 과부 이씨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과부 이씨는 그동안 거주해온 구례 현내면 백련동에 있는 草家 3칸을 30냥을 받고 팔았다. 매수인의 이름은 적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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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에 무장현에 사는 오진조가 영광성주에게 올린 소지 / 吳鎭朝 / 18121812년(순조 12)에 茂長縣에 사는 吳鎭朝가 靈光城主에게 올린 소지이다. 본 소지에 의하면 金季寬이라는 자가 오진조의 6대조 묘소 근처에 투장을 하였다. 이로 인해 오진조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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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년에 송문조 등이 관에 올린 산송 소지 / 宋文祚 / NULL계축년에 담양에 사는 宋文祚등이 관에 올린 산송 소지이다. 송문조는 호가 면앙인 宋純의 8대봉손으로 선산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면앙의 장자인 건원릉참봉의 시양자 7세손 李宗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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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에 흥덕현에 사는 김성후가 영광성주에게 올린 소지 / 金聖厚 / NULL무신년 10월에 흥덕현에 사는 김성후가 영광성주에게 올린 소지이다. 동년 6월에 무장에 사는 오원효가 김성후의 선산에 있는 송추 수백그루를 무단으로 작벌한 일로 인하여 산송이 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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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년에 김명열이 황해도관찰사에게 올린 소지 / 金命說 / 1669"1669년(현종 10)에 김명열이 황해도 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현종 10년 5월에 황해도 평산도호부사로 재직 중이던 김명열이 관찰사에게 여러 해 묵은 身病을 이유로 免職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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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에 국용헌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 / 鞠龍憲 / NULL"무오년에 국용헌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흥덕현 현내면 신리에 사는 鞠龍憲은 모친의 산소가 있는 二西面 壺巖의 동쪽 기슭에 있는 선산에 누군가가 연이어서 偸葬을 하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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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년에 영광군 염소면에 사는 박두복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朴斗福 等 / 18181818년 12월에 朴斗福 朴得明 朴昌根 朴宗?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들은 성만 같을 뿐인데도 박대근이 횡령한 25량을 분납하였다. 이에 송사 끝에 횡령한 박대근이 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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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에 이발 등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소지 / 李渤 等 / 18431843년(헌종 9)에 李渤 등이 남원부사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李渤과 李濤의 증조모인 朔寧崔氏의 묘가 남원부 하번암방 복상동에 있었는데 1841년 10월 어떤 사람이 이 묘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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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년에 익산군에 사는 홍조봉이 이정순과 송윤보를 상대로 관에 제출한 소지 / 洪祚鳳 / NULL"임신년 2월에 익산군 미력면 구룡리에 사는 洪祚鳳이 李正淳과 宋允甫가 조상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쓰자, 두 무덤을 옮길 수 있게 해달라고 관에 요청하면서 제출한 소지이다. 이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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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에 이풍연이 남원부에 올린 소지 / 李豊淵 / NULL계미년 12월에 南原 內眞田에 사는 李豊淵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소지이다. 이풍연은 金鐘明에게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해 관에 호소하고 있다. 관에서는 김종명을 잡아오라고 답변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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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에 양대규가 장수현감에게 올린 소지 / 梁大奎 / 1828"1828년(순조 28) 4월 28일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大奎가 長水縣監에게 올린 所志이다. 梁大奎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썼다가 여러 차례의 산송에서 패배한 李東馨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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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에 이석조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李石祚 / 18781878년(고종 15) 8월 16일에 유학 이석조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이석조는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살아 왔던 남원 소의방 형파정에 있는 體舍三間 行廊二間짜리 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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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에 김형재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 金衡載 / NULL무인년 2월에 김형재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현 정읍시 덕천면) 금천리에 사는 김형재는 陳田에 대해 경작한 것을 이록해 줄 것을 관에 요청하였다. 관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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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에 김형재 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 金衡載 等 / NULL"신축년 2월에 김형재 등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학전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金衡載, 金玄載, 金鎭煥 등은 자신의 선산이 所井面 蓮花峯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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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에 국용헌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 / 鞠龍憲 / NULL무오년 6월 10일에 국용헌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行首軍官으로 있던 鞠龍憲은 자신이 관아에서 稅米와 公錢을 담당하던 시절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下吏 柳光模에게 돈을 내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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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에 유관근이 관에 올린 소지 / 柳瓘根 / NULL"계유년 정월에 柳瓘根이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유관근은 과부 柳氏에게서 媤叔인 宣在璟을 끼고 善字畓 2두락을 샀는데, 살 때에 관의 立旨와 주인인 과부 유씨의 手掌이 있는 매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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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에 국용헌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 / 鞠龍憲 / NULL정미년 3월에 국용헌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興德縣에 사는 下吏 鞠龍憲은 자기집에서 부리는 노비 子貴丹이 지난달 20일에 그녀의 남편 希哲과 야밤에 도주를 하였으므로 外村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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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에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 / 楊宅煥 / 1848"1848년(헌종 14) 4월에 순창군 적성면 귀남리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祖母를 안장하려는데 동리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산송으로 번지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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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에 진안현에 사는 전가의 노 봉상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全氏의 奴 奉尙 / NULL"을유년에 전라도 진안현 마령면에 사는 全氏의 사내종 奉尙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봉상이 경작하던 밭은 7부 3속이었는데, 문서상으로는 4부 2속이 덧붙여 기록되었다. 이것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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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에 영광군 염소면에 사는 박동석 등이 올린 소지 / 朴東錫 等 / 1813"1813년(순조 13)년 3월에 영광군 鹽所面에 사는 朴東錫, 朴成旭 등이 영광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원산면(현 영광군 염산면 ; 염소면과 원산면이 합쳐져 염산면이 되었다)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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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에 구례현에 사는 편준이가 관에 올린 소지 / 片俊伊 / NULL"정축년에 전라도 구례현 현내면 남내동에 사는 片俊伊가 작성한 소지이다. 편준이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 토지에 대해서 세금이 부과되자 이를 바로 잡아 줄 것을 요청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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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년에 김익서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소지 / 金益瑞 / NULL"신사년 윤7월에 김익서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고부군 거마면 외거리(현 부안군 백산면 평교리)에 사는 金益瑞는 納稅米 1石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犢價로 납부하고자 하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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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에 정재호가 작성한 가옥,산지,전답매매문서" / 鄭在浩 / 18591859년(철종 10) 1월 8일에 정재호가 최경석에게 집과 집 앞에 있는 밭과 산지 등을 팔면서 작성하여 준 것으로 가옥 및 대지 매매문서이다. 정재호는 이사를 가면서 자기 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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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4년에 조운익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소지 / 趙雲翼 / 18141814년(순조 14)에 고부군 거마면 제내리에 사는 趙雲翼이 古阜郡守에게 올린 所志이다. 고부군 우일면 산수동에 소재한 자신의 산지에 흥천면에 사는 沈宗海가 벌목꾼을 이끌고 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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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에 미력면에 거주하는 홍중헌이 관에 제출한 소지 / 洪重憲 / NULL병인년 1월에 익산군 미력면 구룡리에 사는 洪重憲이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을축년 12월에 홍종헌은 자신의 선묘에 투장한 이국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이국서를 착래해 오라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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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에 김일규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 金鎰圭 / NULL갑진년 8월에 김일규가 고부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고부군 우덕면 상학리(현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에 사는 김일규는 자신의 선산이 所井面에 소재하고 있는데 접경에 백가의 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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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년에 양대규가 장수현감에게 올린 소지 / 梁大奎 / 18361836년(헌종 1) 4월에 장수현 계남면 곡리에 사는 梁大淵이 장수현감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는 두달 전에 以隨洞에 사는 李東馨과 산송을 벌인 바 있었는데 그 당시 이동형이 패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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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년에 장수현 사는 최종외가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 / 崔宗巍 / NULL신유년 7월 7일에 전라도 장수현에 사는 崔宗巍가 남원부사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마침내 소송 상대자인 崔鼎九가 옥에 갇히는데 이르렀지만 여전히 偸塚을 掘移할 의사가 없는 것 같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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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에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 / 楊宅煥 / 1848"1848년(헌종 14) 4월에 순창군 적성면 귀남리에 사는 양택환이 순창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돌아가신 조모를 안장하려다가 이 과정에서 동리 사람들과 소송이 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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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에 광주목 부동방면에 사는 박성홍 등이 광주목사에게 올린 소지 / 朴性洪 等 / NULL"신해년 10월에 광주목 부동방 유등곡에 사는 상주 박성홍과 박성회가 광주목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들은 이 소지에서 그의 부친을 모신 산소가 이미 산전이 되었고, 금년에 돌아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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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에 만경현에 사는 임홍순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任洪淳 / NULL"병인년에 만경현 남일면 대목산리에 사는 任洪淳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임홍순의 7대조 이하의 선산이 부제의 윗 기슭에 있었는데, 바로 그 주맥(主脈)의 동쪽은 김제에 사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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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에 서방철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 / 徐芳徹 / NULL기축년 2월 3일에 徐芳徹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茂長縣 二東面 金谷(현 고창군 무장면 교흥리와 원촌리)에 사는 서방철은 경진년에 淳昌 九巖寺의 승려 竺炘에게 밭 5두락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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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에 정한진이 관에 올린 산송 소지 / 鄭漢鎭 / NULL"경신년 5월에 정한진이 관에 올린 산송 소지이다. 鄭漢鎭은 자신의 선산에 偸葬한 李正敏이라는 자가 패소한 뒤 掘去하기로 다짐 문서(?音)까지 작성하였으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0
"1826년에 진기옥이 작성한 가옥, 대지, 시장매매문서" / 陳基鈺 / 1826"1826년(순조 26) 12월 27일 진기옥이 10촌 아우인 진쾌옥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온 초가 3칸과 대전, 柴場, 陳田을 25전에 팔면서 작성하여 준 매매문서이다. 진기옥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