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1501
갑진년에 임성옥 등이 관에 올린 소지 / 林成玉 等 / NULL"갑진년 7월에 임성옥 등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고창에 사는 林成玉 林燦玉 等은 이집오에게 매도한 선산을 되찾기 위해 이미 여러 차례 고창의 수령에게 소지를 올린 바 있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2
1859년에 만경현에 사는 임인교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任仁敎 / 1859"1859년에 만경현 남일면 대목산리에 사는 任仁敎 등이 수령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관련문서 고07552와 같은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자신들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3
계미년에 김만현이 김제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 金萬鉉 / NULL계미년 4월에 김만현이 김제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김제군 월산면 덕산리(현 김제시 신덕동)에 거주하던 김만현은 亡子를 葬埋하기 위해 읍내면 九水洞(현 김제시 서암동)에 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4
병인년에 윤형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尹瀅 等 / NULL"병인년에 尹瀅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윤형 등은 지난 을축년에 그들이 사는 마을의 尹庸儉이라는 자가 마을 바로 뒤쪽에 아내의 무덤을 투장하자, 이를 파서 다른 곳으로 옮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5
을미년에 송수영이 관에게 올린 소지 / 宋修榮 / NULL을미년 12월에 豆毛谷面 池洞里에 사는 宋修榮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송수영의 증조부의 분묘가 本面의 防築里 案山에 있고 山直을 정해서 수호해 오던 중에 지난달에 누군가 투장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6
1691년에 무장현에 사는 오상옥 등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 / 吳相玉 等 / 16911691년(숙종 17) 12월에 茂長縣에 사는 吳相玉과 조카인 吳載勳 吳鼎勳 등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오상옥은 그의 조부모 산소를 선운산으로 遷葬하려고 하였으나 그해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7
임인년에 남원부에 사는 오현의가 곡성관에 올린 소지 / 吳顯義 / NULL임인년 수지방에 사는 화민 吳顯義가 남원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오현의는 자신의 선산에 몰래 무덤을 쓴 申家를 잡아 도형을 그려 오라는 제교를 받고 이를 시행하려 곡성에 갔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8
을사년에 하대윤이 수령에게 올린 탈역소지 / 河大潤 / NULL을사년에 남원의 산동에 사는 河大潤이 수령에게 올린 탈역소지이다. 하대윤은 이 소지에서 자신의 머슴으로 있던 孫朔不이 閑丁으로 牌를 발급하여 도주를 한 까닭에 양반인 자신이 억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09
1859년에 김기순 등이 관에 올린 산송소지 / 金基淳 等 / 1859"1859년 9월에 扶安縣 立下面 愚磻里에 사는 金基淳 金斗復 金鳳九 등이 官에 올린 山訟所志이다. 그 소지의 내용에 따르면, 茁浦에 사는 辛喜淑이라는 자가 부안 우반동에 있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0
기미년에 전주에 사는 이응화가 올린 소지 / 李應化 / NULL"기미년에 전주에 사는 李應化가 전라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응화는 누군가 자신의 땅에 몰래 봉분이 없는 평장을 하였으므로 법전에 의거하여 판결을 내려 처리해 주고, 자신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1
1882년에 최두천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崔斗天 / 18821882년(고종 19) 12월 24일에 최두천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최두천은 여러 해 거주해온 구례 현내면 시목정에 있는 草家 3칸 가옥을 이사를 하기 위해서 23냥을 받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2
계사년에 김태운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소지 / 金泰運 / NULL"계사년 5월에 김태운이 고부군수에게 올린 소지이다. 고부군 거마면 외거리(현 부안군 백산면 평교리)에 사는 金泰運은 竹宗?에 있는 밭 42두락지 중에 耕食하던 8복2속을 買得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3
임오년에 진안현에 사는 전경서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 / 全敬瑞 / NULL임오년에 진안 일동면에 사는 全敬瑞가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전경서는 이미 李禧林과 논 문제로 소송을 치룬 적이 있다. 전경서가 黃順明으로 소작인을 바꾸려고 하자 이희림이 농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4
갑술년에 임피에 사는 구종록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소지 / 具鍾祿 / 1874갑술년 4월에 臨陂에 사는 具鍾祿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소지로 문서의 중간과 하단부문이 마모되었다. 구종록의 조고와 증조의 분묘가 있는 선산은 臨陂縣 石峙 앞 기슭에 소재하고 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5
갑자년에 부안현에 사는 김치모가 고부군 수령에게 올린 소지 / 金致模 / NULL갑자년에 부안현 좌산내면 열운포에 사는 金致模가 고부군의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치모는 예전에 金舜汝에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집을 팔았으나 돈을 받지 못하였다. 근래에 김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6
계축년에 남원부 백암방에 사는 양연수가 남원부사에게 제출한 소지 / 楊淵壽 / NULL계축년 8월에 전라도 남원부 백암방에 사는 양연수가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양연수는 백암방에 세거해왔으며 그의 선산 역시 백암방 내 城洞에 있는데 오십년 전에 어떤 사람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7
임신년에 구례현 현내면 도롱동에 사는 김귀현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 / 金貴賢 / NULL壬申年에 全羅道 求禮縣 縣內面 道弄洞에 사는 化民 金貴賢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귀현은 자신이 본래 김해 김씨 경순왕파인데 실수로 가락왕파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하고 이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8
갑인년에 남원부에 사는 오건주가 남원수령에게 올린 소지 / 吳建柱 / NULL"갑인년 수지방의 화민 吳建柱가 남원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오건주는 자신의 선산 소나무를 도둑질하는 일당들에 대하여 1차 정소한 바 있는데 그 때 관에서 일당들을 잡아 오라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19
임오년에 부안현에 사는 이중효가 올린 소지 / 李重孝 / NULL"부안현 소산면 덕림리에 사는 李重孝가 임오년에 올린 소지이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마련하기 위해 은진에 사는 박창수로부터 어렵게 땅을 매입하여 장사를 지냈는데, 얼마 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0
계묘년에 국경순이 향회소에 올린 소지 / 鞠暻珣 / NULL계묘년에 국경순이 향회소에 올린 소지이다. 縣內面 石湖里(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 사는 鞠暻珣은 戊戌年의 소위 ‘李化三의 난’이 발생할 때 마침 흥덕현의 수교로 있으면서 난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1
신유년에 남원부 사는 최정구가 남원부사에게 올린 소지 / 崔鼎九 / NULL辛酉年 11월2일에 南原府 北面 外眞田里에 사는 崔鼎九가 南原府使에게 올린 所志이다. 같은 날 長水에 사는 崔宗巍가 所志를 올려 그가 작성해 준 수표를 立旨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2
기해년에 설덕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薛德 / NULL"기해년 12월 28일에 薛德이 작성한 집 매매문서이다. 설덕은 전라도 구례현 토지면 파도리에 있는 鱗字 집터와 가옥 4칸을 65냥에 팔았다. 신구문기 모두를 양도하고 있으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3
계축년에 임석천 등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산송 소지 / 任錫千 等 / NULL계축년에 南一面 大木山에 살고 있는 任錫千등이 관에 올린 산송 소지이다. 임석천등은 자신들의 선산에 金斗表와 金貴先이라는 자들이 偸葬하였음을 여러 차례 말하고 옮길 것을 요구하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4
1832년에 임인옥이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 / 林仁玉 / 1832"임진년 4월에 임인옥이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高敞 五西面(현 고창군 고수면) 石隅에 사는 林仁玉은 같은 면 禮洞(현 고창군 고수면 예지리) 後麓에 있는 임인옥의 선산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5
병인년에 익산에 사는 홍조봉이 관에 올린 소지 / 洪祚鳳 / NULL병인년 4월에 益山에 사는 洪祚鳳이 益山官에 올린 所志이다. 홍조봉의 7대조 분묘 뇌후에 소휘봉이 투장하자 소를 올린 바 있다. 당시 관으로부터 상세하게 조사하기 위하여 소휘봉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6
갑술년에 정기신 등이 어사에게 올린 소지 / 鄭基新 等 / NULL"갑술년에 남원의 산동에 사는 鄭基新 등 유생이 순상, 곧 어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같은 고을에 사는 河錫潤의 효행을 포상하여 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관에서는 다시 널리 의견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7
병인년에 장흥에 사는 아무개가 작성하여 관에 올린 소지 / NULL / NULL"병인년 3월에 長興에 사는 아무개가 작성하여 官에 올린 所志이다. 소지를 올린 이는 지난 계해년(3년전)에 금천면 풍동촌에 있는 畓, 5두 5승락을 매득하여 매년 곡식을 거두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8
신묘년에 최양언이 관에 올린 소지 / 崔良彦 / NULL"신묘년에 전라도 함열현 서이 웅포의 船旅主人 崔良彦이 관에 올린 所志이다. 浦規에 따르면 浦村의 船旅主人들은 각기 일정한 지역의 商船을 영접하고 있는데, 최양언 자신은 泰安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29
1872년에 안재록이 용담현령에게 올린 소지 / 安載祿 / 1872"임신년에 용담현 북이면 괴목정리에 사는 안재록이 용담현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자신의 선산에 투장한 안영수가 옥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를 파서 이장할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0
신유년에 남원부 둔덕방 동임 김용구가 남원부사에게 제출한 소지 / 金龍九 / NULL신유년 8월에 남원부 둔덕방에 살던 김용구가 제출한 소지이다. 이 소지에 의하면 둔덕방에 살던 이어인미라는 사람이 년 전에 아들을 잃고 의지할 곳이 없자 동부의 석현방으로 이주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1
1770년에 이광국이 관에 올린 소지 / 李光國 / 1770"1770년(영조 46) 8월에 전라도 함열현 서이면 웅포에 사는 李光國이 수령에게 올린 所志이다. 그의 조부가 지난 1731년에 통행이 불가능할만큼 낡아빠진 三南의 大路 金浦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2
을유년에 국경순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 / 鞠暻珣 / NULL을유년에 국경순이 흥덕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縣內面 石湖(현 고창군 흥덕면 오호리)에 살던 국경순은 자기로부터 돈 150냥을 빌려간 같은 마을의 朴永碩이 지금껏 원금을 물론 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3
1880년에 장영순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張永淳 / 18801880년(고종 17) 11월 7일에 장영순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장영순은 그동안 거주해온 현내면 시목정에 있는 黃字 草家 3칸을 이사하기 위하여 35냥에 팔았다. 이 거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4
을묘년에 담양에 사는 동몽 송차흥이 창평관에 올린 산송소지 / 宋次興 / NULL담양에 사는 동몽 宋次興은 면앙정 송순의 10세손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가인 담양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선산은 창평 대곡면에 소재하여 잘 찾아가지 못하는 형편인데 白淡得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5
갑진년에 고창의 임성옥 등이 관에 올린 소지 / 林成玉 等 / NULL갑진년 6월에 고창의 임성옥 등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임성옥 등이 이 소지를 올린 이유는 앞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설명하였듯이. 이집오에게 처분했던 선산을 되돌려 받기 위해서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6
정사년에 익산군에 사는 홍원종이 임실현감에게 올린 소지 / 洪遠鍾 / NULL정사년에 益山郡에 사는 洪遠鍾이 任實縣監에게 올린 所志로 WON09719-41의 소지를 올린지 하룻만에 다시 올린 것이다. 그는 1년전에 任實縣 新德面 九沙鉢里에 부모의 묘를 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7
1844에 이집오가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 / 李集五 / 1844"1844년 7월에 이집오가 고창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高敞 五西面(현 고창군 고수면)에 사는 李集五가 임인옥을 상대로 수령에게 올린 소지는 처음이 아니다. 이번 소지는 이집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8
1883년에 무장현에 사는 오장헌 등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 / 吳璋憲 等 / 18831883년(고종 20) 9월에 무장현에 사는 吳璋憲 등 22인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산송소지이다. 오장헌의 9대조인 吳?의 묘가 同縣의 托谷面 屛巖山에 있는데 鄕吏 陳基豊이라는 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39
경술년에 김석숭이 고부군수에 올린 소지 / 金碩崇 / NULL"경술년 11월에 성포면에 사는 金碩崇이 고부관에 올린 소지로, 도망간 노비가 全州 鳳翔面에 사는 것을 알고 이를 잡기위해 공문을 발급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관에서는 성급해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0
무자년에 유병열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 / 柳秉烈 / NULL무자년에 북일로면 영보장등리에 살던 化民 柳秉烈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유병렬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살이 있을 적에 趙東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돈 100냥과 禾租 19石 5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1
계묘년에 만경군에 사는 임석천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 / 任錫千 / NULL계묘년에 만경군 남일면 대목산리에 사는 任錫千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임석천의 아버가 이웃 마을에 사는 咸士仲이란 자에게 20냥을 꾸어 주었다. 부친의 사후에 그 함사중이 빚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2
임진년에 한양의 유장근이 무장현감에게 올린 소지 / 劉張根 / NULL임진년 서울사는 劉張根이 무장현감에 올린 소지이다. 유장근은 茂長縣 一東面 道山里(현 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에 사는 金子允에게 食主債가 있는데 이를 갚으려고 무장으로 내려왔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3
1846년에 김기순 등이 관에게 올린 소지 / 金基淳 等 / 1846"1846년(헌종 12) 12월에 부안현 입하면 우반리에 사는 김기순, 김용관, 김봉구 등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김기순 등은 신동환의 투장에 대하여 지난 10월에도 소지를 올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4
1886년에 김조이가 작성한 가옥매매문서 / 金召史 / 18861886년(고종 23) 3월에 金召史가 오생원 문중 앞으로 작성해 준 가옥 매매문서이다. 그녀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가세가 기울어져 公錢과 公穀을 낼 수가 없어서 부득이 무장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5
갑오년에 송옥영이 임실현감에게 올린 소지 / 宋玉榮 / NULL"갑오년에 九阜에 사는 宋玉榮이 올린 소지이다. 송옥영은 이 소지에서 上東面 道仁洞의 뒷 기슭에 자신의 조모의 선산이 있는데, 그 북면에 선산이 있는 安哥가 무단으로 경계를 넘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6
1889년에 남원부에 사는 이병의가 관에 올린 산송소지 / 李秉儀 / 18891889년(고종 26) 남원부 둔덕방에 거주하던 李秉儀가 1889년(고종26) 7월에 작성한 산송소지이다. 이병의의 양자인 이기섭의 종조부인 李洽이 이두원으로 부터 이두원의 아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7
을묘년에 최영우가 만경군수에게 올린 산송 소지 / 崔永祐 / NULL"을묘년에 만경군 하이도면 고사리(현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 사는 崔永祐가 수령에게 올린 산송 소지이다. 최영우의 조부모 선산에 崔德彦의 부친이 묘를 써서 양측이 서로 다툼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8
정유년에 김재명이 용담현령에게 올린 소지 / 金在明 / NULL"정유년 4월에 金在明이 산송과 관련하여 용담현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김재명의 주장에 따르면, 장수군 天川面 倉里(현 장수군 천천면 삼고리)에 있는 자신의 선산에 韓國弼이라는 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49
임진년에 한양의 유장근이 무장현감에게 제출한 소지 / 劉張根 / NULL임진년 6월에 한양의 壯洞에서 밥장사를 하던 劉張根이 전라도 무장현감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茂長 一東面 道山里(현고창군 무장면 도곡리)의 金子允으로부터 숙박비와 그가 대신 갚았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1550
병자년에 노 연봉이 상전을 대신하여 수령에게 올린 소지 / 奴 連奉의 上典 / NULL"병자년에 남원의 수지방에 사는 사내종 連奉이 상전인 趙氏를 대신하여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상전댁의 목화밭의 원래 결수가 6부 9속인데, 1부 9속이나 장부에 더 기재되어 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