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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2401

    "1892년(고종 29) 9월 19일에 이재곤(李載崑)이 친척에게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장이(長耳)가 돌아가는 인편에 답장을 보냈는데 받아 보았느냐고 물었다. 상대방의 숙주(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02

    "1906년(고종 43) 1월 26일,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안부와 남종(南從)의 붓는 병세가 나앗는지 물었다. 태전(太田:대전)가는 차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03

    "1901년(고종 38) 이상룡(李相龍)이 문중의 고향 어른들에게 문안인사와 함께 제단(祭壇)의 설치와 보첩(譜帖)의 간행, 문중의 일 등을 논의한 내용이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04

    병진년 10월 초3일에 장한두가 보낸 간찰이다. 수신인은 미상이다. 그는 상대방에 대한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날로 늙어가서 골골거리며 지내지 않은 날이 없다고 하였다. 아들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05

    모년에 김일석(金一錫)이 사돈댁으로부터 물품을 받고 그날 그편에 회답한 편지이다. 그는 오랫동안 비가 오다가 겨우 그치자마자 귀한 손님이 문을 두드려 겸하여 편지를 받으니 감격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06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3대 정책이란 재정정리(財政整理), 전제정리(田制整理), 인구조사(人口調査)이니,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먼저 재정정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07

    모년(某年)에 김종한(金宗漢)이 보낸 편지이다. 결과가 나와 곧 바로 알려드린다고 하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08

    "1903년(고종 40) 5월 8일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에게 올린 간찰이다. 멀리서 구름을 보니 그리움이 사무친다며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별일 없이 잘 있다고 하였다. 주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09

    "1909년(순조 2)에 신궁경의회장(神宮敬義會長) 김재순(金在珣)이 장두식(張斗植)에게 보낸 간찰(簡札)로, 그를 찬성원(贊成員)에 임명하였다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0

    "무인년 10월 27일에 이태영(李太永)이 지동(池洞)의 김석사(金碩士) 상가에 보낸 애도문이다. 그는 생각지 않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고는 할 말이 없었다면서, 효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1

    1773년(영조 49)에 국왕이 정징하(鄭徵河)를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한 교지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2품의 하계(下階) 문관의 품계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2

    "민응식(閔應植)이 지인(知人)에게 보낸 서찰이다. 얼마 전에 보내준 글은 잘 받았다 하고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대료장이 밝힌 것은 박 신 두 관리가 한 것이며 그 나머지는 태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3

    병진년 9월 23일에 송종대(宋鍾岱)라는 사람이 오모씨(吳某氏)에게 성첩(星帖)과 함께 보낸 간찰(簡札)이다. 송종대가 오모씨에게 보낸 서찰은 본 간찰이외에도 5통이 더 전한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4

    상을 당한 사람을 위로하는 편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5

    모년에 손자(孫子)가 조부(祖父)에게 보낸 간찰이다.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집에 있는 손자가 객지에 관찰사로 나가 있는 할아버지께 보낸 답장편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6

    "단양일에 아버지가 아들 치(緻)의 간찰을 받고 쓴 답장의 간찰이다. 작성연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는 아들에게 잘 지낸다는 소식에 기쁘며, 가묘에서 다례를 지낸 것에 대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7

    "1911년 겨울쯤에 왕수환(王粹煥) 등이 하동(河東) 근방에 사는 이에게 보낸 서간의 초고본이다. 인근 하동과 진주(晋州)에 아는 사람이 없고, 있어도 그 주소를 자세히 알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8

    "간지가 기(己)로 시작하는 해 중춘에 신좌모(申佐模)가 사위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사위에게 너무 빨리 이별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어른들 모시고 아이들 돌보면서 지내는 노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19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최익현(勉丈)에게 선물할 물건의 값은 합하여 백동 340냥이며 그중 280냥은 객산(客山) 종숙(從叔)이 이미 주선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20

    1915년 12월 17일에 윤종균(尹鍾均)이 황석전(黃石田)에게 보낸 것으로 ‘매천주갑시(梅泉週甲詩)’를 보고 감흥이 일어 글을 짓고 이를 동봉하여 보낸 서간이다. 매천 황현(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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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21

    "임술년 4월 20일에 곽상표(郭尙杓)가 사돈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지난번 왕림하셨다가 곧바로 돌아간 것에 대한 감회를 이야기하고 돌아가는 길이 순조로웠는지, 기체는 평안한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22

    "1853년(철종 4) 3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어모장군(禦侮將軍) 행용양위(行龍?衛) 부사직(副司直)으로 임명하는 교지이다. 어모장군은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하관의 품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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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23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문관이 가선(嘉善:종2품)이 되기는 매우 어려우므로 별단(別單)으로써 특별히 도모해야하고 내각의 높은 관료가 되려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24

    1859년(철종 10) 9월 22일로 발신일이 추정되는 간찰로 고시노(高時魯)가 오씨(吳氏)에게 보낸 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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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25

    "음력 12월 16일 순천의 김효찬(金孝燦)이 왕수환(王粹煥) 권봉수(權鳳洙) 박창현(朴暢鉉) 에게 보낸 서간이다. 명성(名聲)은 익히 들었으나, 아직 만나지 못한 가운데 편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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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26

    "1854년(철종 5) 윤월 초5일에 이종 의상(宜象)이 신좌모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이모와 좌모의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의 어머니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면서 몸이편찮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27

    "경자년 김치명(柳致明)이 김OO씨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초산(楚山) 부사를 지냈는데, 이 서간은 초산부사에 임명하는 왕명을 받고 역시 관서지방의 수령에 임명된 김모에게 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28

    "모년 모월 26일에 이재곤(李載崑)이 강원도(江原道) 춘천(春川) 방호(芳湖)에 사는 친척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이 남아 있다. 추위가 조금 느슨해졌을 때 상대방이 잘 지내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429

    경진년 9월 9일에 아우 경원(景源)이 쓴 서찰이다. 그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이즈음에 기거동작을 보전하기를 기원한다고 하고 본인은 병상에 오랫동안 있어 고민이라고 하였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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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0

    "1906년(고종 43) 11월 15일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에게 올린 간찰이다. 안부를 묻고 자신은 13일 직무를 마치고 나왔으며 별탈이 없다고 하였다. 가례(嘉禮) 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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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1

    무술년 10월 27일에 고제영(高濟永)이 사돈이 될 집에 쓴 편지이다. 그는 안부 인사를 한 뒤 이미 혼인 승낙을 받아 감개무량하다면서 혼인할 사람이 출생한 연월일시를 적은 경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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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2

    "이완용(李完用)이 이종형(姨從兄)에게 보낸 편지이다. 형이 숙지황을 보내준 것에 사례하고 계속해서 약으로 복용하겠다고 하였다. 탕건(宕巾)은 영변(寧邊)사는 사형(舍兄) 머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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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3

    "1774년(영조 50) 10월에 국왕이 정징하(鄭徵河)를 가의대부(嘉義大夫) 행용양위(行龍?衛) 부호군(副護軍)에 임명한 교지이다. 당시 정징하의 품계는 종2품인 가의대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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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4

    "기미년 정월 4일에 지책(知策) 번명(煩名)이 거창(居昌)의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신년을 맞아 건강하기를 기원하면서 본인은 매사 예전과 같아 다행이라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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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5

    "모년에 신좌모(申佐模)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작성연대는 알 수 없다. 그는 아들에게 이별한지 7~8일이 되었는데도 그리운 마음 그칠 수 없다면서 식구들의 안부를 차례로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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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6

    "1915년 권홍수(權鴻洙)가 석전 황원(石田 黃瑗)에게 보내는 답장편지이다. 먼저 눈 내리는 계절에 잘 계시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 또한 모두 안녕하며 조카의 병이 점점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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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7

    "을사년 5월 4일에 순경(舜慶)이 쓴 서한이다. 그는 이별한 후 달이 바뀌었으니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며 한여름에 기체가 건강하기를, 하시는 일이 긴요하기를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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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8

    모년(某年)에 김이주(金履周)가 보낸 편지이다. 형은 잘 지내시는지 묻고 본인은 서울에서 청주로 향하는데 스스로 돌아가기를 청한 것은 노친을 보살펴야 한 것이기에 큰 손상은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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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39

    "모년에 신좌모(申佐模)가 보낸 간찰이다. 수신인은 미상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뜻밖에 임금의 은혜를 받아 송구하기 그지없고, 소본(疏本)을 작성하여 올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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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0

    "모년에 주원(柱元)이 지인에게 보낸 간찰이다. 단오에 선물하는 부채인 절선(節扇) 선물을 받고 쓴 답장이다. 매년 잊지 않고 부채를 선물한데 대하여 감사를 표했다. 전에 임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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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1

    안부를 전한 뒤에 무더위 속에 과거(科擧)를 보러 가는 행차를 염려하였다. 자신은 책상 앞에 앉아 풍우(風雨)를 창으로 칸막이 하고 글 읽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는다고 하였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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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2

    1906년(고종 43) 12월 17일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랫동안 문안하지 못하여 궁금하였다며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별탈이 없어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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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3

    모년(某年)에 김시빈(金始?)이 보낸 편지이다. 기거가 편안하신지 묻고 본인은 여러 일들로 고뇌가 많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분주히 뛰어다니는 일이 가련하다고 하며 부탁한 일 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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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4

    1893년(高宗 30)에 왕이 유인(孺人) 신씨(申氏)를 영인(令人)에 추증(追贈)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남편인 박성환(朴星煥)이 동몽교관(童蒙敎官) 조봉대부(朝奉大夫)의 증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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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5

    정사년 6월에 송종대(宋鍾岱)가 그의 사돈(査頓)인 오모씨(吳某氏)에게 보낸 것으로 안부와 그 해 농사(農事)의 풍흉(豊凶)을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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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6

    "모년에 윤효식(尹孝植)이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간찰이다. 김태화의 편지를 받고 쓴 답장이다. 명릉에 근무한 이래로 오직 바둑판 하나와 몇 항아리 술로 날을 보내고 한 구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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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7

    병인년 김하연(金夏淵)이 형에게 보낸 서신이다. 어느 날 서신이 이곳 적막한 곳에 날아와 펼쳐 읽기를 두 세 번하면서 종이 털이 송송 날 지경이었으며 겨울 날씨가 봄 같이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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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8

    "1908년(순종 1) 김준(金準)이 동생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동생 율에게 보낸 것으로,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는 율에게 그가 시로써 격려한 것이다. 한말 의병장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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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49

    "임술년 2월 상순에 곽우섭(郭宇燮)이 사돈댁에 보낸 편지이다. 사돈댁이 돌아간 후 편지를 보내오자 이에 대한 답으로 상대방의 안부와 자신의 일상 및 병에 대해 쓴 것이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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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450

    임오년 12월 24일에 이원재(李元在)가 사돈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일찍부터 서로 알고 지내다 또 혼인의 새로운 우의까지 닦게 되어 한미한 집안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이야기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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