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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2801

    "1852년(철종 3) 4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어모장군(禦侮將軍) 행용양위(行龍?衛) 부사직(副司直)으로 임명하는 교지이다. 어모장군은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하관의 품계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02

    모년(某年)에 김종한(金宗漢)이 보낸 편지이다. 교귀(交龜) 후 직접 밀부(密符)를 드려주셨으나 합당한 것인지? 신병(身病)이 있어 종아이를 시켜 대신 드려주신 것은 잘못된 것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03

    신사년 동짓달(11월) 11일에 수오(壽五)가 사돈에게 보낸 편지(簡札)이다. 수오는 사돈에게 편지를 받고 답장하고 있는 것으로 예동(禮洞) 정안회답(靜案回答)이라고 편지의 뒷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04

    을해년 2월 27일 이규대(李奎大)가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왕림했을 때 감영(監營)에 행차가 있어 만나지 못했다 하고 일전에 보낸 편지는 받아 보았는지 궁금해 하던 중에 소식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05

    경자년 윤8월 3일에 속리동(俗離洞)에 사는 윤병일(尹秉一)이 신흥(新興)의 안생원(安生員) 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는 가을 태양이 점점 높아져가는 요즈음 건강하신지 대소 모두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06

    "1913년 4월 1일 정운오(鄭雲五)가 왕수환(王粹煥)등에게 보낸 서간이다. 「매천집(梅泉集)」을 보내주어 고답다고 하면서 이것을 읽다가 제5편 9엽에 쓰인 ‘다만 이 인(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07

    "모년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모레 면암의 아들 최참봉과 함께 충청도 정산(定山, 현 충남 청양군 정산면)에 가서 비명(碑銘)을 받은 후 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08

    "모년 12월 26일에 승의(升儀)가 지인에게 보낸 간찰이다. 처자식 세 식구를 데리고 3년 전 먼 이국땅으로 떠났던 승의(升儀)라는 사람이 지옥 같은 생활을 하소연하는 편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09

    모년(某年)에 탁○○(鐸○○)가 보낸 편지이다.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묻고 보여주신 선조의 모습을 보고서는 깊이 사랑의 의미를 알았다 하고 여러 날을 출입을 못해 매우 답답했으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0

    무술년 4월 24일 이돈영(李敦榮)이 박용담(朴龍潭)에게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헤어지고 만나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는 뜻을 전하고 자신은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하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1

    "모년 김규진(金圭鎭)이 집안 할아버지에게 보낸 서신이다. 밤낮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사람을 발광케 만드는데 요사이 잘 지내시는지 족보 목록과 엽전 24꿰미를 보내주기 바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2

    "1836년(헌종 2) 9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선략장군(宣略將軍) 행용양위(行龍?衛) 부사과(副司果)로 임명하는 교지이다. 부사과는 조선시대 오위(五衛)의 종6품 관직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3

    "신미년 12월 15일에 양재홍(梁在鴻)이 사돈댁에 보낸 서한이다. 그는 이제야 겨우 대면하게 됨을 누릴 사이도 없이 헤어지게 되었던 섭섭함을 표시한 뒤 돌아갈 때 차 시간에 늦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4

    1920년 김형석(金炯奭)이 자식의 결혼식에 왕수환(王粹煥)을 초대하는 편지이다. 먼저 안부인사를 전하며 비록 자신이 지금 상중(喪中)이기는 하지만 어린 자식의 혼인날짜를 내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5

    정축년 12월 23일에 박재열(朴在烈)이 사돈댁에 보낸 감사 서찰이다. 그는 이별한 후 사돈댁이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기 그지없다고 하면서 본인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6

    모년에신좌모(申佐模)가 손자 봉휴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작성연월일은 미상이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 소식을 듣지 못하여 매우 궁금하던 차에 용손(龍孫)이 오위장과 함께 와서 기뻤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7

    "계미년 2월 21일에 이병두(李秉斗)가 작성한 서찰이다. 그는 한 달 전에 사돈댁의 종형제(從兄弟)가 왕림하여 준데 대한 감명을 이야기한 뒤 그 때 겨우 이틀 밤만 묵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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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18

    천간에 갑(甲)자가 들어가는 해 12월 29일에 이승응(李昇應)이 친척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서운하고 울적하던 중에 상대방 편지를 받고 모두 평안 하다는 것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19

    병년 4월 23일에 백원(百源)이 용암(龍巖)의 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는 만난지가 이미 3년이나 되어 적적하던 차에 생각지 않게 최씨(崔氏) 친구가 방문하여 형님이 근래 쌀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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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20

    "을해년 김광묵(金光?)이 극제복(克復齊) 선생에게 보낸 서신이다. 얼마 전 길에서 잠깐 만나 인사를 드렸지만 무더운 중복 중에 잘 지내시는지 곧 먼길을 나서려고 하면서 미리 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21

    "모년 8월 13일에 유익환(柳翼煥)이 지인에게 보낸 간찰이다. 추석 선물을 받고 쓴 답장이다. 자기는 창개(瘡疥)로 한 달간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고, 두 가지 음식 선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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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22

    병오년 3월 25일에 이교우(李敎雨)가 사돈댁에 보낸 서한이다. 그는 봄기운이 점차 깊어가니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며 근래 신체와 기운은 왕성한지 사위는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23

    "1863년(철종 14) 10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절충장군(折衝將軍) 행용양위부호군(行龍?衛副護軍)에 임명한 교지이다. 당시 정류의 품계는 정3품인 절충장군이었고, 용양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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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24

    "박해창(朴海昌)이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의 기사를 간추려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것이다. 민영환과 홍영식에게 증직·포장의 은전이 내렸으며 일본 헌병대를 쫓아낸 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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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25

    "병자년 7월 25일에 진희규(秦喜葵)가 상중에 있는 사돈댁에 보낸 서한이다. 그는 세월이 무상하게 흘러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사돈댁 돌아가신 아버님의 2년 상이 되었다면서 끝없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26

    "1688년(숙종 14) 7월 초8일에 이광하(李光夏)가 형님이 보내준 간찰을 받고 쓴 답장이다. 수신인은 미상이다. 그는 그리움이 간절하던 차에 간찰을 받았다고 하면서 형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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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27

    정축년 12월 16일에 김재남(金在南)이 사돈댁에 보낸 감사편지이다. 그는 사돈에게 아이가 돌아와 편지를 받아보니 기쁘기 그지없다면서 기체가 다시 평안해졌다니 축하를 드린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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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28

    "병자년 7월 22일에 척제(戚弟) 남일우(南一祐)가 작성한 편지이다. 그는 여름에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어느덧 가을이 이르렀다면서 근래 늦더위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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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29

    1913년 2월 11일에 귀동(龜洞)에 살고 있던 최영조(崔永祚)가 지정(芝亭)의 여러 어른들에게 보낸 회답서(回答書)이다. 최영조는 지정의 여러 어른들이 자신을 잊지 않고《梅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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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0

    "신묘년 3월 30일에 홍승우(洪承禹)가 매부께 보내는 간찰이다. 여러 밤을 같이 지내서 마치 난실(蘭室)에 들어와 있는 듯 좋았는데 하루아침에 꽃이 떨어진 듯 이별하였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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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1

    "1912년 음력 12월 22일에 안용묵(安鎔?)이 「매천집(梅泉集)」을 받고 난 후 왕수환(王粹煥) 등에게 보낸 답장이다. 해는 다 되어 가는데 여러분의 편지를 받아 보고 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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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2

    "1928년 5월 20일에 개성군 북본정(開城郡 北本町)에 살고 있던 공성학(孔聖學)이 전남(全南) 구례군(求禮郡) 광의면(光義面) 월곡(月谷)에 거주하던 황석전(黃石田)에게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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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3

    임자년(壬子年)에 상후(相后)가 보낸 편지이다. 서로 가까운 사이였는데 얘기를 나누지 않은 지 20년이며 사장(査丈)을 뵙고 돌아왔는데 편지가 여행 중인 책상에 보내와 재삼 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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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4

    1891년(고종 30) 9월에 왕이 학생(學生) 김영조(金永祚)를 통정대부홍문관교리(通政大夫弘文館校理)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추증(追贈)교지(敎旨)이다. 김영조는 손자가 통훈대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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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5

    "1887년(고종 24) 3월 2일 이정직이 보낸 편지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자신은 지난 달 서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감기가 들어 끙끙대며 지내고 있지만 어머니가 별 탈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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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6

    "천간에 병(丙)자가 들어가는 해의 11월 22일 이능연(李能淵)이 보낸 간찰로 수신자는 서두에 천상 시조안(川上侍調案)이라 적혀 있다. 상대가 잘 별 탈없이 잘 지내는 지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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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7

    을해년 12월 27일 이인권(李寅權)이 보낸 편지이다. 객지에서 자기도 병든 몸으로 지내는데 자기부인이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다. 가정 형편의 어려움과 상(喪)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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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8

    모년에 중앙에 있는 고관(高官)이 지방에 나가 있는 관리(官吏)에게 보낸 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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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39

    정해년 12월 20일에 이용우(李瑢雨)가 사돈이 될 댁에 보낸 간찰이다. 혼사 문제로 연길을 보냈으니 별 문제가 없는지 묻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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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0

    "기미년 정월 4일에 지책(知策) 번명(煩名)이 거창(居昌)의 이생원(李生員) 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신년을 맞아 건강하기를 기원하면서 본인은 매사 예전과 같아 다행이라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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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1

    "계해년 6월 16일에 의령(宜寧) 옥동(玉洞)의 이영후(李英厚)가 초계(草溪) 시동(木市洞)의 사돈댁에 회신한 편지이다. 그는 장마가 처음으로 개자 편지를 받게 된 감격을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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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2

    "1911년 가을에 왕수환(王粹煥) 등이 박문재(朴文在)에게 보낸 서간의 초고본이다. 박문재의 자는 사중(泗中)는 호는 모송(慕松),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경상남도 함양(咸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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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3

    "1895년 9월 23일 황현(黃玹)이 친구인 경소(景韶)에게 보낸 서간이다. 서로 만나지 못해 단풍과 국화의 좋은 계절이 되고 보니 더욱더 생각난다고 하면서, 자신은 지난 그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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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4

    "1890년(고종 27) 8월 2일에 유인석(柳麟錫)이 쓴 것으로, 왕후(王后)가 승하(昇遐)하여 국장(國葬)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자신의 통탄스러운 감정을 밝혔다. 그리고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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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5

    1756년(영조 32)에 국왕이 신승만(申承萬)을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2846

    "모년 모월 23일 신좌모(申佐模)가 아들 승구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먼저 무사하게 집에 도착하였는지 묻고 이어 식구들이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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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7

    "중국 회남(淮南)에 살고 있던 창강 김택영(滄江 金澤榮)이 3월 5일에 전남 구례군 방광면 천변리에 살던 왕수환(王粹煥)에게 보낸 서간이다. 김택영은 왕수환에게 「매천집(梅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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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8

    "병인년 기우기(奇宇夔)가 소생이란 말을 쓰는 것으로 봐서 부모에게 올린 답장으로 보인다. 지난날 길에서 만나 뵐 때 미처 많은 사정 얘기를 못했다 하면서 안부를 묻고 성공과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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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49

    "경오년 9월30일 홍만종(洪萬鍾)이 보낸 편지이다. 문안하는 소식이 오랫동안 막혀 섭섭해 하던 즈음에 상대방 아들이 편지를 가지고와서 매우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상대방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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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850

    경진년 12월 15일에 철성(鐵城)의 이종호(李鍾浩)가 사돈이 될 집에 보낸 편지이다. 그는 섣달 추위에 상대방의 기체가 왕성하기를 기원한 뒤 조카아이의 결혼을 승낙해주어서 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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