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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3051

    "모년 11월 27일에 김유성(金有性)이 쓴 편지이다. 그는 상대방에게 지난번 이별한 뒤로 지금까지 슬픔이 남아 있다며 동짓달 한파에 건강은 어떤지, 아버님의 기후와 신체는 한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52

    경오년 10월 4일에 기말(記末) 이호준(李鎬俊)이 보낸 편지이다. 그는 근래 기후가 고르지 못한데 상대방의 안부가 어떤지를 묻고 본인은 한결같이 어지럽고 골치 아픈 일만 있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53

    "정묘년 7월 24일에 박정구(朴珽九) 등이 지인에게 보낸 간찰이다. ?사복록(思服錄)?을 간행하여 다섯 질을 보내며 쓴 편지다. 사복록은 여러 달 전에 간행되었으나 인편을 구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54

    "1677년(숙종 3) 10월 21일에 김수흥(金壽興)이 금화(金化) 관아에 보낸 감사 편지이다. 보내준 물건을 감사히 받았으며 돌보아주신 후의에 감사 드린다는 내용이다. 조선중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55

    이응하가 보낸 편지 / 李應夏 / NULL
    이응하(李應夏)가 보낸 편지이다. 연대와 발신자는 미상이다. 상대방이 편안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받고 기뻤다고 하였다. 자신은 늘 곤궁에 시달려 고달프다 하고 말씀 하신 것은 특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56

    "1864년(고종 1) 2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가선대부(嘉善大夫) 행사간원대사간(行司諫院大司諫)으로 임명하는 교지이다. 뒷면에 “吏 吳準東”이라고 써있다. 당시 정류의 품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57

    기미년 3월 27일에 유두기(柳斗基)가 사돈댁에 보낸 서간이다. 혼례 후 헤어진 사돈이 사람을 보내 편지를 전달하자 이에 대한 답으로 쓴 것이다. 그는 먼저 사돈이 손에 난 종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58

    "모년 고광문(高光文)이 왕수환(王粹煥) 등에게「매천집(梅泉集)」을 받고 난 후 보낸 서간이다. 보내주신 매천 선생 문집은 받기는 받았으나 이런 사람이 받아도 되느냐고 하면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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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59

    "1891년(고종 28) 12월 29일에 이재곤(李載崑)이 휘재(徽齋)에게 보낸 편지이다. 피봉이 함께 전한다. 묘당(廟堂)에서 초기(草記)를 급하게 나누어 준 것은 더욱 인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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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60

    "모년에 겸종(謙從)이 효장(孝將)과 책자에 대한 부탁편지를 받고 쓴 답장이다. 효장은 특별히 명심하여 힘쓰겠다고 하고, 책자도 이 달 보름이나 20일 내에 분배하겠다고 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61

    "모년 모월 18일에 신좌모(申佐模)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아들에게 객지에서 무탈하게 지내서 다행이고 240리 여정을 순조롭게 갔는지 궁금하다고 하였다. 한갑(漢甲)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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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62

    경술년(庚戌年)에 김동규(金東奎)가 보낸 편지이다. 몸은 두루 편안하신지 묻고 본인은 각기병에다가 감기까지 걸려 고생이 심하다하고 건강과 치료에 관한 얘기를 의뢰하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63

    "모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아들에게 손자 의백(義伯)의 기운이 편치 않은 것이 걱정이며 이것은 감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고 하였다. 아들에게 보다 자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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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64

    "정유년 5월 5일 단오날에 족숙(族叔) 헌묵(憲)이 조카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는 옥군(沃郡)에서 돌아오던 날 조카를 보았다면서 2백리 길을 멀지 않다고 한 것은 노인이 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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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65

    "안상휘(安相徽)가 일가 어른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온 서신을 받고 집안이 무고하고 잘 계시는지 본인은 멀리서 고달픈 상황에 처해 견디기가 쉽지는 않고 보내준 송이에 대해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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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66

    모년에 작성된 간찰 / 未詳 / NULL
    "연대와 필자 모두 밝혀져 있지 않은 간찰로, 전문 가운데 일부로 추정된다. 전라도(全羅道) 금산군(錦山郡) 남일면(南一面) 대목산리(大木山里)에 거주하는 친구 임공진(任公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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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67

    "1837년(헌종 3) 6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선략장군(宣略將軍) 행용양위(行龍?衛) 부사과(副司果) 문신(文臣) 겸선전관(兼宣傳官)으로 임명하는 교지이다. 선략장군은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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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68

    "정해년 1월 25일 이흡(李?)이 장례에 위문한 사장(査丈) 오판서(吳判書)에게 답례한 편지이다. 상중(喪中)에 상주(喪主)의 입장에서 보낸 편지이기 때문에 다른 서찰과는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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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69

    신유년 4월 11일에 이순의가 사돈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미한 가문과 혼사를 맺어줘서영광이라고 하면서 사돈의 안부를 묻고 이어 가지고 계신 경첩(庚帖)을 돌려보내 달라고 하는 것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70

    정미년 10월 26일 조희찬(趙羲贊)이 보낸 간찰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상대가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호남의 농사를 염려하였다. 상대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71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의정부(議政府)의 내각 명칭을 고쳤는데 참정대신(參政大臣)은 총리대신(總理大臣)으로, 참찬(參贊)은 서기관(書記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72

    "기사년 고처량(高處亮)이 지인(知人)에게 보낸 간찰이다. 고처량이 말한 섬은 아마도 제주도인가 싶다. 비록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보통으로 생각한 사이가 아닌데 바닷길이 막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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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73

    귀양 갔다가 돌아온 사람을 축하하는 글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74

    모년에 절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이 집에 계신 아버지께 보낸 답장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075

    "모년에 병목(秉穆)이 김태화에게 시 두 수와 함께 보낸 답장이다. 국포(菊圃) 편으로 보낸 편지는 지금도 잊지 못하며, 인편이 없어 편지하지 못했다고 하고, 금년 홍수에 무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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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76

    "1874년(고종 11) 기정진(奇正鎭)이 윤석사(尹碩士)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의 철학에서 핵심이 되는 〈납량사의(納凉私議)〉(초고는 1843년에 작성)를 저술하였는데 이 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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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77

    "모년에 친구(親舊)가 친구(親舊)에게 보낸 簡札이다. 공무로 가까운 데까지 왔던 친구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며 보낸 편지다. 지난번 만났다가 급히 헤어져 섭섭함이 지금도 남아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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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78

    "1754년(영조 30)에 박민지(朴萬枝)에게 발급된 교지(敎旨)이다. 박민지를 절충장군(折衝將軍) 행(行) 용양위부호군(龍?衛副護軍)에 임명하는 내용이다. 절충장군은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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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79

    모년에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보내는 위로의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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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0

    "1876년 7월 19일에 황현(黃玹)이 봉주 왕사각(王師覺)에게 올린 글이다. 만옹(晩翁)이 손수 지은 글을 보여 주신 것은 진실로 군자가 남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뜻인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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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1

    "신묘년 홍기주(洪岐周)가 상관(上官)에게 보낸 서신이다. 전 달 사퇴하면서 사모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린 날씨에 몸은 건강하시는지 본인은 맡은 일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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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2

    을사년 7월 14일에 한광호(韓光鎬)가 사돈댁에 보낸 서한이다. 그는 긴 장마가 개지도 않았는데 새롭게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면서 늦더위에 기체는 왕성한지 두루 평안한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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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3

    "모년 모월 18일에 아버지가 아들이 보내 준 간찰을 받고 쓴 답장이다. 그는 아들에게 신랑(愼郞)과 함께 잘 지낸다고 하니 기쁘며 작사리를 통해서 매매에 대하여 들은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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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4

    "1754년(영조 30) 이상정(李象靖)이 지인(知人)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가 연일(延日) 현감 때 쓴 것인데, 다음 내용을 보면 그의 학문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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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5

    "상종제(三從弟)인 제두(濟斗)가 보낸 편지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상단이 잘려 나가고, 하단과 중간도 훼손되고 곰팡이가 피었다. 자신을 삼종제(三從弟) 복인(服人)이라 적고,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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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6

    1911년 왕수환(王粹煥) 등이 가을경에 매천문집간소에서 손여경(孫汝耕)에게 보낸 서간의 초고본이다. 항상 자주 편지를 전하고자 하나 바쁘고 번잡하여 그러지 못한고 서두를 꺼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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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7

    "모년 8월 그믐에 이근명(李根命)이 보낸 편지이다. 서늘한 날씨에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기뻤다고 하였다. 형제가 함께 과거(科擧)에 합격한 것이 우연이 아닐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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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8

    정해년 8월 초1일에 사제(査弟) 이시철(李時喆)이 사돈댁에 보내는 간찰이다. 사형이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채 갑자기 돌아가신 것에 대한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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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89

    "1850년(철종 1) 7월에 국왕이 유인(孺人) 임씨(林氏)를 숙부인(淑夫人)으로 추증한다는 교지이다.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겸오위장(兼五衛將) 정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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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0

    1884년(고종 21) 3월 3일 이정직(李貞稙)이 보낸 편지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지난번 보내준 편지가 아직도 위로가 된다고 하면서 봄바람 부는 요즘 잘 지내고 있는지 상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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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1

    모년에 장훈규(張勳圭)가 보낸 간찰이다. 객지에 나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고 답례로 북어를 보내며 쓴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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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2

    모년(某年)에 민병석(閔丙奭)이 보낸 편지이다. 벼슬에 임하신 몸 두루 편안하신지 묻고 본인은 밤낮으로 공사에 바빠 힘들다하고 이천에 사는 한천봉(韓千鳳)에 대해 입장을 이해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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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3

    "갑인년 12월 13일에 양철수(楊哲洙)·명수(命洙) 형제가 상대방에게 보낸 간찰이다. 부친이 돌아가신지 벌써 1년이 지났다면서 그에 대한 슬픔을 토로하고, 상대방이 위문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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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4

    "갑진년 1월 21일 조희찬(趙羲贊)이 보낸 답장으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새해를 맞아 하례 인사를 하고 상대가 협지(夾紙:별지)를 통해서 한 말들은 모두 다 잘 알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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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5

    "갑자년 3월 27일에 임원(林垣)이 사돈에게 쓴 간찰이다. 사돈을 비롯한 식구들의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며, 최근에 지은 글에 대해 여쭤보려고 사돈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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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6

    "모년에 아버지가 아들 허(?)에게 보낸 간찰이다. 작성연월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는 아들에게 손자 의백의 커나가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고 전하고, 이어 자신의 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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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7

    "모년 모월 18일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그는 아들에게 며느리에 대한 병환의 상태를 묻고, 집에 돌아갈 때까지 자신이 지나온 경유지에 대해 자세하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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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8

    계축년 11월 초8일에 장한두가 상대방이 보낸 간찰을 받고 쓴 답장이다. 그는 대형(大兄)의 안부와 혼사는 잘 거행했는지 묻고 이어 자신은 사람이 변변치 못해서 이번 혼사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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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099

    "모년 이근명(李根命)이 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곧바로 보내준 글을 받았는데 위로를 드리며 고초가 심하다 하니 생각을 어떻게 할 줄 모르겠으며 본인은 복을 입고 있는 입장인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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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100

    "1835년(헌종 1) 12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조봉대부(朝奉大夫) 행성균관전적(行成均館典籍)으로 임명한 교지이다. 뒷면에 “吏 吳道淳”이라고 써있다. 전적은 조선시대 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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