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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에 이조에서 오세주에게 내린 교첩 / 吏曹 / NULL"1689년(숙종 15)에 이조(吏曹)에서 오세주(吳世周)에게 내린 교첩이다. 이조에서 승훈랑(承訓郞)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분차(分差) 겸(兼) 서학교수(西學敎授)인 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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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에 영동군 양남이소면 면장 성길원이 작성한 보고서 / 成吉源 / 19071907년(고종 44) 11월에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양남이소면(陽南二所面) 면장(面長) 성길원(成吉源)이 작성한 보고서(報告書)이다. 양남이소면 마포에 사는 성 참봉(成 參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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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부춘 수동면에 사는 홍윤욱이 성주에게 올린 문보 / 洪允郁 / NULL정묘년에 부춘(富春) 수동면(水東面) 음산보(陰山洑) 도유사(都有司) 홍윤욱(洪允郁)이 성주(城主)에게 올린 문보(文報)이다. 고기를 잡기 위하여 도랑을 뚫고 보를 파괴하여 농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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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에 한천면에 사는 정영운 등이 작성하여 화순수령에게 올린 문보 / 鄭永運 等 / NULL"계사년 6월에 전라도(全羅道) 화순현(和順縣)에 사는 화민 정영운(鄭永運), 구학규(具學奎) 등이 수령에게 올린 문보(文報)이다. 문보는 첩정과 유사하나 주로 지방에서 사용하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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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진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단자 / NULL / NULL경진년 1월 1일 卯時에 태어난 신랑의 四柱를 적은 단자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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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에 작성한 사주단자 / NULL / NULL계유년에 을해년 10월 18일 亥時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로 7번 접었는데 사주단자를四星 또는 庚帖이라고도 한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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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에 유윤복이 보낸 사주단자 / 柳允福 / NULL계묘년 8월 29일에 유윤복이 무자년 4월 26일 사시에 태어난 사람의 사주를 신부 측에 적어보낸 사주단자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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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단자 / NULL / NULL"신미년 사주이다. 사주란 사람의 생년·월·일·시의 干支로 달리는 四星·剛書·庚帖이라고도 불린다. 이를 풀어봄으로써 그 사람의 지나온 생애를 알아보고 앞으로의 길흉화복을 점치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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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에 순천부 월등면에 사는 장호에게 보낸 사주단자 / NULL / NULL"병진년 1월 10일에 全羅道 順天府 月燈面 葛田村에 사는 幼學 張浩에게 작성해 준 사주단자로, 장호의 문무관 입격여부를 점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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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에 작성한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경자년에 경진년 4월20일에 오시(午時)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단자이다 .당시 신랑의 나이는 20세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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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을해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모년에 신랑이 을해(乙亥)년 6월 21일 사시생(巳時生)임을 적어서 신부집으로 보낸 사주단자이다. 사주단자는 ‘사주(四柱)’ ‘사성(四星)’ ‘경첩(庚帖)’이라고도 한다. 이처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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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궁내부 대신 이재극이 김창후에게 발급한 교첩 / 李載克 / 19061906년(고종 43) 2월에 궁내부(宮內府) 대신(大臣) 훈일등(勳一等) 이재극(李載克)이 김창후(金昌厚)를 명릉참봉서판임(明陵?奉敍判任)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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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에 작성한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경인년 10월 7일에 신랑집에서 보낸 사주단자이다. 신랑의 생년월일이 을축(乙丑)년 4월 22일임을 적어서 신부집으로 보낸 단자이다. 사주단자는 ‘사주(四柱)’ ‘사성(四星)’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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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후인 도가가 혼인을 위해 신부댁에 보낸 사주단자 / 星州后人 都哥 / NULL"사주단자(四柱單子)이다. 사주단자는 정혼한 뒤, 신랑 집에서 신랑의 사주를 적어 신부 집에 보내는 간지(簡紙). 사성(四星)이라고도 한다. 성주후인 도가가 보낸 사주단자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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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기유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모년에 신랑집에서 신랑이 기유(己酉)년 3월 5일 인시생(寅時生)임을 적어 신부집에 보낸 사주단자이다. 사주단자는 ‘사주(四柱)’ ‘사성(四星)’ ‘경첩(庚帖)’이라고도 한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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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에 은씨가 보낸 사주단자 / 殷氏 / NULL"을축년에 은씨(殷氏)가 신부의 집에 보낸 신랑의 사주단자(四柱單子)이다. 임자년(壬子年) 6월 30일은 신랑의 생년월일과 시(時)이다. 임자(壬子)와 을축(乙丑)의 간지로 미루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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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사주단자 / 신랑宅 / NULL모년(某年)에 신랑댁에서 신해년(辛亥年) 8월 초 8일 인시(寅時)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단자이다. 내용의 문서를 7번 접었고 봉투에는 경첩(庚帖)이라고 써서 신부의 집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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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사주단자 / 신랑宅 / NULL모년(某年)에 신랑댁에서 을사년(乙巳年) 11월 초 8일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단자이다. 내용의 문서를 7번 접었고 봉투에는 경첩(庚帖)이라고 써서 신부의 집에 보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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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댁에서 신부댁에 보낸 사주단자 / 新郞宅 / 1862"사성(四星)이란 사주(四柱)를 말한다. 즉 사람이 태어난 年·月·日·時를 적은 문건이다. 사성은 양가의 의사가 상호 조정되어 의혼(議婚)이 성립되면 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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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정사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모년에 신랑집에서 신랑이 정사(丁巳)년 9월 19일 술시생(戌時生)임을 적어서 신부집으로 보낸 사주단자이다. 사주단자는 ‘사주(四柱)’ ‘사성(四星)’ ‘경첩(庚帖)’이라고도 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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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갑자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査頓 / NULL모년에 갑자년 10월 초 2일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단자이다. 7번 접어 사성(四星)이라고 쓴 봉투에 넣어 신부의 집으로 보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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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신묘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모년에 신랑집에서 신랑이 신묘(辛卯)년 1월 22일 진시생(辰時生)임을 적어서 신부집에 보낸 사주단자이다. 사주단자는 ‘사주(四柱)’ ‘사성(四星)’ ‘경첩(庚帖)’이라고도 한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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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에 이조에서 정징하에게 발급한 교지 / 李肇源 / 17981798년(정조 22) 8월에 이조(吏曹)에서 왕명을 받들어 우부승지(右副承旨) 이조원(李肇源)이 진사(進士) 정징하(鄭徵河)를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한 교지이다. 뒷면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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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병신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모년에 신랑이 병신년 5월 6일 신시생(申時生)임을 적어서 신부(新婦)집으로 보낸 사주단자(四柱單子)이다. 사주단자는 ‘사주(四柱)’ ‘사성(四星)’ ‘경첩(庚帖)’이라고도 한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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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신미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모년에 신미년(辛未年) 2월 10일 미시(未時)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단자로 9번 접었고 봉투에는 경첩(庚帖)이라고 써서 신부의 집으로 보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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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정묘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모년에 정묘년 12월 초 4일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단자이다. 7번 접어 사성(四星)이라고 쓴 봉투에 넣어 신부의 집으로 보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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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신묘년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모년에 신랑집에서 신랑이 신묘(辛卯)년 12월 30일 해시생(亥時生)임을 적어서 신부집으로 보낸 사주단자이다. 사주단자는 ‘사주(四柱)’ ‘사성(四星)’ ‘경첩(庚帖)’이라고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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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 작성한 사주단자 / 新郞宅 / NULL신묘년 12월에 신랑 집에서 작성하여 신부 집으로 보낸 사주단자(四柱單子)이다. 신랑은 임신년(壬申年) 구월(九月) 이십칠일(二十七日) 묘시생(卯時生)이었다. 묘시는 새벽 5시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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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에 작성한 성조택일문서 / NULL / NULL"병신년에 작성된 成造擇日文書이다. 성조택일 문서는 집을 짓기 전에 宅主의 四柱와 맞추어서 터의 방향, 立柱 날짜와 방향 ,上樑 날짜와 시각, 지붕을 올리는 날짜 등을 정하여 적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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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에 서씨가 보낸 연길 / 徐氏 / NULL"丁丑年 9月 29일에 利川人 徐氏가 大禮를 올리기로 한 날짜를 선택하여 통보하는 글로 婚姻擇日紙라고도 하였다. 혼인날자는 ‘살’이 낀 날을 피하고 신랑과 신부 모두 生氣福德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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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6일로 대례를 정하였다는 연길 / NULL / NULL"3月 초6日로 大禮를 정하였다는 涓吉이다. 용담에 사는 죽산안씨 집안에 소장되어 온 것이다. 작성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연길이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날짜를 정하여 통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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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에 윤세하가 보낸 연길 / 尹世夏 / NULL경오년에 尹世夏가 婚姻날자를 定하여 보낸 涓吉이다. 윤세하는 3월 12일을 혼례날자로 정하여 보냈다. 이 날에 별다른 뜻이 없다면 이 날로 정하기로 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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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작성한 사주단자와 연길 / NULL / NULL무자년 12月 16日 未時에 태어난 신랑의 사주를 적은 단자이다. 7번 접어 四星이라고 쓴 봉투에 넣어 신부의 집으로 보냈다. 또 別紙는 涓吉로 戊子生인 신랑과 丁亥生인 신부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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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7년에 이조에서 오세주에게 내린 교첩 / 吏曹 / NULL"1687년(숙종 13)에 이조(吏曹)에서 오세주(吳世周)에게 내린 교첩이다. 이조에서 종사랑(從仕郞) 교서관(校書館) 부정자(副正字)인 오세주를 종사랑 교서관 정자(正字)로 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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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연안이씨가 보낸 연길 / 延安李氏 / NULL병자년 12월 4일에 延安李氏가 병자년 11월 16일 을묘로 혼인날짜와 시간을 택하고서 이를 통보한 연길이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안했다. 그런데 혼인하는 달(11월)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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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에 신부집에서 신랑집에 보낸 연길 / NULL / NULL癸酉生인 신랑과 庚辰生인 신부의 대례일을 정하여 통보하고 있다. 집에 들어가 앉는 방향과 이불을 펴는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는데 大禮日은 乙未年 4月 26日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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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에 목천 장씨 문중에서 작성한 연길 / NULL / NULL"을축년에 혼례 의식을 위해 잡은 길일 문서이다. 연길이란 본래 의식이나 일을 행하는 데에 길일을 가리키는 것을 말한다. 본 문서에는 신랑(乾)이 기유생이고, 신부(坤)는 을사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38
승주군 낙안면 심내리댁에 보낸 이사운택일지 / NULL / NULL"승주군 낙안읍 심내리댁의 이사 날자를 정해준 준 택일지이다. 戶主와 戶主의 長子의 사주를 보고 이사 날자와 시간, 그리고 금기사항 등을 기재하였다. 이 문서의 호주는 신축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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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집에서 신랑집에 보낸 연길 / NULL / NULL"庚申生인 신랑과 甲子生인 신부의 대례일을 정하여 통보하고 있다. 대례일과 존안은 10월 16일이고, 신랑집에 들어가는 우귀일은 10월 20일이다. 문에 들어서는 시간과 혼인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40
정사년에 대례를 올리기로 한 연길 / NULL / NULL‘연길’은 ‘날받이’인데 대례(大禮) 날짜를 선택하여 통보하는 글로 혼인택일지(婚姻擇日紙)라고도 하였다. 정사년(丁巳年) 11월 12일에 대례를 올리기로 한 택일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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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에 작성한 택일기 / NULL / NULL"신미년 택일기이다. 택일이란 큰 일을 치르거나 여행을 떠날 때 좋은 날짜를 고르는 일을 말하는 것으로, 달리는 ‘택길’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혼례나 장례 등 중대사가 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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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년에 혼례일을 정하여 작성한 연길 / NULL / NULL涓吉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大禮 날짜를 선택하여 통보하는 글로 婚姻擇日紙라고도 하였다. 본 문서는 戊寅年 3월 26일에 大禮를 올리기로 한 택일서로 당시에 신랑은 丁巳生이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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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에 밀성변씨가 보낸 연길 / 密城卞氏 / NULL경인년 11월 12일에 密城卞氏가 12월 19일 갑인으로 혼인날짜와 시간을 택하고서 이를 통보한 연길이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안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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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년에 입택을 하기 위해 좋은 날을 받은 연길 / NULL / NULL입택을 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좋은 날과 시간을 받아 적은 문서이다. 가장 먼저 집의 방향이 ‘壬坐丙向’이라고 되어 있다. 좋은 날을 잡기 위해 그 집에 주거할 가장과 아내의 사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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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9년에 이조에서 오세주에게 내린 교첩 / 吏曹 / NULL"1689년(숙종 15)에 이조(吏曹)에서 오세주(吳世周)에게 내린 교첩이다. 이조에서 선교랑(宣敎郞) 수(守)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분차(分差) 겸(兼) 서학교수(西學敎授)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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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8일로 혼례일를 정하였다는 연길 / NULL / NULL"12月 28日로 大禮를 정하였다는 涓吉이다. 연길이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날짜를 정하여 통보하는 것으로 婚姻擇日紙라고도 불렀다. 날짜는 으레 살이 낀 날을 피하고 신부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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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모년 2月 27日로 대례(大禮)를 정하였으며, 존안(尊?) 납폐(納幣) 그날 오시(午時)로 정하였다는 연길(涓吉)이다. 연길이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날짜를 정하여 통보하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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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신부집에서 4월 18일 오시(午時)로 대례(大禮)날짜를 정하고 신랑집으로 이를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신랑은 정해생(丁亥生)이고 신부는 경인생(庚寅生)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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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 권술이가 안생원에게 보낸 연길 / 權述伊 / NULL임오년 12월 15일에 안동(安東) 권술이(權述伊)가 딸아이의 혼례날짜를 택일해서 보낸 연길(涓吉)이다. 혼례 날짜는 6일 뒤인 동년 동월 21일로 택하였다. 연길지에 씌어있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0
무오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무오년 11월 21일 사시(巳時)로 대례(大禮) 날짜와 시간을 택하고서 이를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연길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 날짜를 선택하여 통보하는 글로, 혼인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