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통합검색

멀티필터

기본_발신자_성별
더보기 +
기본_발신자_수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기본_수신자_발신자와의_관계
더보기 +
/ 통합검색 / 전체
: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3651

    임오년 11월 23일에 양병선(梁炳善)이 장녀(長女)의 혼사를 위해 작성한 연길(涓吉)이다. 연길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大禮) 날짜를 선택하여 통보하는 글로 혼인택일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2

    모년에 양병선(梁炳善)이 장녀의 혼사(婚事)를 위해 연길(涓吉)을 작성하면서 첨부한 것으로 대례일(大禮日)은 임오(壬午)년 12월 13일로 하고 혼인하고 시댁으로 돌아오는 날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3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모년10월 20일로 대례(大禮)를 정하였으며, 존안(尊?) 납폐(納幣) 그날 미시(未時)와 신시(申時) 사이에 하기로 정하였음을 알리는 연길(涓吉)이다. 연길이란 우리말로 날받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4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모년에 작성된 것으로 정묘년 2월 26일로 초례(醮禮) 날짜를 택하고서 이를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연길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 날짜를 선택하여 통보하는 글로, 혼인택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5

    "신묘년 3월 26일에 대례(大禮), 곧 혼인을 올리기로 하고 작성한 연길(涓吉), 곧 혼인택일지(婚姻擇日紙)이다. 당시 신랑은 을해생으로 17세였고, 신부는 갑술생으로 18세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6

    "1687년(숙종 13)에 이조(吏曹)에서 오세주(吳世周)에게 내린 교첩이다. 이조에서 종사랑(從仕郞) 교서관(校書館) 정자(正字)인 오세주를 종사랑 행(行) 봉상시(奉常寺) 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7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모년에 신부집에서 대례(大禮)날짜를 기사(己巳)년 12월 16일로 정하고 신랑집에 이를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납폐(納幣)와 전안(奠雁) 일시는 적혀있지 않은 연길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8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모년에 신부집에서 대례(大禮)날짜를 11월 26일로 정하여 신랑집으로 이를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신랑은 을축생(乙丑生)이고 신부는 정묘생(丁卯生)이다. 신부가 처음으로 시댁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59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신부집에서 대례(大禮)날짜를 5월 11일로 정하고 이를 신랑집으로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존안(尊?) 및 납폐(納幣)시간과 함을 놓는 방위, 초례청의 방위 등이 적혀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0

    "모년 사돈이 될 집에 결혼택일지인 연길(涓吉)을 보내면서 작성한 편지이다. 그는 날짜를 잡은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혼례에서 예를 집행하는 일시와 절차 및 그에 따른 행동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1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모년10월 20일로 대례(大禮)를 정하였으며, 존안(尊?) 납폐(納幣) 그날 미시(未時)와 신시(申時) 사이에 하기로 정하였음을 알리는 연길(涓吉)이다. 연길이란 우리말로 날받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2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모년11월 16일로 대례(大禮)를 정하였다는 연길(涓吉)이다. 연길이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 날짜를 정하여 통보하는 것으로 혼인택일기(婚姻擇日紙)라고도 불렀다. 날짜는 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3

    신해년에 이돈의(李淳儀)가 안생원(安生員)에게 보낸 연길이다. 위 편지의 속에 있는 결혼택일지인 연길서이다. 결혼날짜는 5월 4일로 정하였고 동일 묘시에 전안과 납폐를 드리는 것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4

    신부집에서 대례날짜를 11월 24일로 정하고 신랑집에 이를 통보한 연길이다. 납폐(納幣)와 전안(奠雁)도 같은 날이라고 적혀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5

    "어떤 사람이 우귀(新行)하기 위해서 날을 잡으면서 작성한 문서이다. 우귀는 혼인을 한 후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가는 일을 말한다. 신행하는 날은 택일을 해서 좋은 날을 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6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신부집에서 3월 28일로 대례날짜를 정하고 이를 신랑집으로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일반적으로 신랑측으로부터 사주단자를 받은 신부집에서 신랑,신부의 생년월일시로 생기복덕(生氣福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7

    "1869년(고종 6)에 이조(吏曹)에서 민종렬(閔鍾烈)에게 발급한 교첩(敎牒)이다. 민종렬을 통사랑(通仕郞) 행(行) 경릉참봉(景陵參奉)에 임명하는 내용이다. 통사랑은 문신 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8

    모년에 모인(某人)이 계묘년(癸卯年) 3월 24일로 대례(大禮) 날짜를 택하고서 이를 통보한 혼서이다. 내용의 문서를 9번 접었고 봉투에는 연길(涓吉)이라고 써서 신부의 집에 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69

    기축년 11월 초8일로 대례를 정하고 통보하는 연길(涓吉)이다. 연길을 보낸 날자는 9월 15일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0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모년에 작성된 것으로 을유년 11월 20일로 길례(吉禮) 날짜를 택하고서 이를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연길은 우리말로 ‘날받이’인데 대례 날짜를 선택하여 통보하는 글로, 혼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1

    모년에 작성한 연길 / 査頓 / NULL
    모년에 신부집에서 대례(大禮)날짜를 4월 11일로 정하고 신랑집으로 이를 통보한 연길(涓吉)이다. 존안(尊?)과 납폐(納幣)는 같은 날 사시(巳時)로 정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2

    "신부집에서 대례날짜를 정축(丁丑)년 10월 22일로 택일하고 이를 알리고자 신랑집으로 보낸 단자이다. 신랑은 갑인생(甲寅生)이고 신부는 신유생(辛酉生)이다. 대례일 뿐만아니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3

    "정사년 동강(東鋼)이 건물을 언제 지으면 좋을 것인지 그 날짜를 선택해 준 것으로, 선택된 날에 대해서 시를 읊듯이 표현하고 있다. 동강이 택한 날은 신축년 정월 초팔일 묘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4

    갑술년 3월에 鎭安鄕校에서 각 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上田面 葛峴里에 살던 金佐欽의 효행을 알리며 효자 표창을 건의하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5

    "1870년에 李基瑚 등이 임실의 유생 柳暄의 효행을 포양하기 위하여 임실향교에 보낸 通文이다. 고02404, 고02405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6

    "임신년에 창평유생들이 순천향교에 보낸 통문으로, 죽산부사를 지낸 바 있는 張成漢을 旌忠祠에 追配하는 일에 순천의 유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하였다. 정충사는 임진왜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7

    기해년 4월 15일에 考巖書院의 幼學 金載良 柳澤模 李東三 등이 연명으로 발문하여 고부향교에 보내는 통문이다. 고부군의 士人 金鑑과 동생 金?의 효행과 우애를 소개하고 있다. 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8

    "1892년(고종 29)에 유인(孺人) 전씨(全氏)에게 발급한 공명첩(空名帖)이다. 유인 전씨를 정부인(貞夫人)에 임명한다는 내용이다. 정부인은 종2품의 위호(位號)로서, 문무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79

    "1690년(숙종 16)에 이조(吏曹)에서 오세주(吳世周)에게 내린 교첩이다. 이조에서 통선랑(通宣郞) 행(行) 음성현감(陰城縣監)인 오세주를 통덕랑(通德郞)에 임명하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0

    1894년(고종 31) 7월 17일에 동학 도소에서 지역 접주에게 보낸 사통이다. 동학 都所에서는 전라도 사람들이 ?馬를 걷는다는 명목으로 교도와 일반인의 집에 들어가 돈과 물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1

    1895년(고종 32) 3월에 全羅道 興德縣의 石湖主人이 象浦 頭民에게 보낸 사통이다. 석호주인은 관에서 崔桂玉의 배와 관련된 자들을 추문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포의 두민에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2

    병진년 11월 28일에 영화재의 吳弼煥이 각 군 종중 앞으로 돌린 통문이다. 문서에는 이번에 새롭게 수보한 족보 가운데 남원 산동리면 이곡리에 사는 吳錫興의 부· 조 · 증조 3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3

    "신미년 9월에 淳昌校執綱 權壽仁, 薛匡直 等이 作成하여 順天鄕校 앞으로 보낸 通文이다. 순천의 故 竹山府使 張成漢의 충효를 인근의 향리에 널리 알려 모범으로 삼으며 포양하여 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4

    전라도 태인현 무성서원의 유림들이 임인년에 금구향교에 보낸 通文이다. 이들은 금구현 출신인 士人 溫東奎의 효행과 그의 처 慶州金氏의 정절에 대한 표창을 적극 건의하도록 촉구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5

    "계유년에 고부유림들이 고창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宋曄의 가계를 소개하면서 그 집안의 가풍을 먼저 서술하고, 송엽 역시 그러한 가풍의 영향을 받아 천품이 뛰어남을 말하였다. 그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6

    "정해년 3월에 전주향교에서 나주향교로 보낸 답통이다. won10645문서와 같은 내용으로, 鄭先生 부자의 楓山祠 配享에 대해 동의한다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7

    "계유년에 정읍향교에서 고창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宋曄의 가계를 소개하면서 그 집안의 가풍을 먼저 서술하고, 송엽 역시 그러한 가풍의 영향을 받아 천품이 뛰어남을 말하였다. 그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8

    "1873년 2월에 全州 希顯堂에서 도내의 유생들 명의로 茂長鄕校에 보낸 通文이다. 이들은 茂長縣의 士人 朴奎鎭이 명문 사족의 후손으로 그 孝行이 뛰어나다고 말하고, 모든 유림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89

    무진년 4월에 南原鄕校 安秉鎬 黃?炫 崔炳祐 등이 작성하여 臨陂鄕校의 각 유림들에게 보낸 통문이다. 臨陂郡 聖山面 內興里에 사는 前兵曺?議 朱鎭國의 처 淑夫人 金氏의 효행과 열행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0

    "1688년(숙종 14)에 이조(吏曹)에서 오세주(吳世周)에게 내린 교첩이다. 이조에서 선무랑(宣務郞) 수(守)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오세주를 선교랑(宣敎郞) 수(守) 성균관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1

    "계유년에 무장유림들이 고창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宋曄의 가계를 소개하면서 그 집안의 가풍을 먼저 서술하고, 송엽 역시 그러한 가풍의 영향을 받아 천품이 뛰어남을 말하였다. 그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2

    갑술년에 전라북도 김제향교의 직원 鄭桓全 등 18명이 금구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만경군에 사는 前 訓導 郭?烈의 효성을 칭찬하고 장려하기 위해 비각을 세울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3

    계유년에 전주향교에서 부안향교로 발송한 통문이다. 전주향교에서는 부안에 거주하였던 金時術의 처 제주 고씨가 남편이 죽은 뒤에 따라 죽는 등의 열행을 칭송하면서 이를 포상해야 한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4

    무오년에 高憲鎭 徐仁輔 등이 운봉의 유림들에게 운봉 출신 士人 楊秀樟의 효행을 드러내어 褒揚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 줄 것을 촉구하는 通文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5

    "갑술년에 宋鎭南이 향교에 보낸 통문이다. 같은 고을 대목산리에 살았던 任時元의 부인 白氏의 孝烈을 표창하자는 내용이다. 통문에 따르면, 부인은 시부모에게 한결같이 효성을 다하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6

    무신년 10월에 무성서원의 유림들이 태인향교에 보낸 통문이다.泰仁郡의 士人 朴權鎭의 妻 慶州 金氏의 뛰어난 烈行을 郡과 府를 통해 조정에 알려 褒揚之典을 받을 수 있도록 분발하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7

    "을묘년 4월에 산청에 사는 吳相鎬 등이 진안에 사는 吳相吉이 영화재성조유사로서 종중 돈 2,080냥을 횡령한 사실을 밝히고 각 지역에 있는 종중 앞으로 돌린 통문이다. 이 문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8

    "1871년(고종 8)에 全州 儒林의 梁鎭五 등이 順天鄕校에 보낸 通文이다. 충절을 드러내고 기리는 일은 국가의 모범을 세우는 일이다. 전주유림들은 순천부에 거주했던 전 죽산부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699

    무주향교에서 대구 귀엄서원 도회에 南隱 徐先生의 사우를 세우기 위해 돌린 통문이다. 달성군 穎의 후손인 徐孝載는 선조 임금 때 사마시에 합격하는 등 선비로서의 표본이 되는 삶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3700

    기유년에 咸陽吳氏 보소에서 무장종중에 보낸 통문이다. 修譜時에 배당된 비용과 시조(鼻祖)의 묘비 수립을 위하여 배정한 대금을 속히 보내주기를 부탁하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ㆍ페이지 이동: / 12836 go
AI 챗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