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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에 박상진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 / 朴商鎭 / NULL임진년 11월 29일에 밀양인(密陽人) 박상진(朴商鎭)이 장자 만수(萬壽)의 혼사를 위해 신부측에 보낸 혼서이다. 후에 누군가가 「첩(帖)」「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의 도장을 찍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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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에 양석관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 / 楊錫寬 / NULL을미년에 양석관(楊錫寬)이 신부집으로 보낸 혼서이다. 양석관은 큰 아들 영회(永會)가 이미 장성하였으므로 신부의 집에서 결혼을 허락해 줄 것을 청하면서 이 글을 보냈다. 양석관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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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에 신영모가 신부집에 보낸 혼서 / 申榮模 / NULL계해년 12월 19일 고령신씨(高靈申氏)인 신영모(申榮模)가 작성한 혼서로 2남 필영(弼永)의 혼사를 위해서 신부측에 보낸 문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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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정상윤이 신랑측 혼주에게 보낸 혼서 / 丁相潤 / NULL정유년 11월 초4일에 정상윤(丁相潤)이 신랑 측 혼주에게 연길(涓吉)을 보냈으니 신랑 측의 의척(衣尺)을 적어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혼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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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년에 김상호가 이생원에게 보낸 혼서 / 金相昊 / NULL기사년에 김상호(金相昊)가 신부집인 이생원(李生員)댁으로 보낸 혼서(婚書)이다. 김상호는 자신의 재종(再從) 동생인 상원(相元)과 이생원의 조카 딸과의 혼인을 허락하여 달라는 취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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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북접 법헌이 설종구에게 발급한 임명장 / 法軒 / 1894"1894년(고종 31)에 동학(東學)의 북접(北接) 법헌(法軒)이 설종구(薛鍾九)를 대정(大正)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임명장이다.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은 교세의 확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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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납폐와 전안 일시를 기록한 혼서 / 未詳 / NULL"모년에 납폐(納幣)와 전안(奠?) 일시를 기록한 혼서이다. 납폐란 혼인 때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보내는 예물이고, 전안은 혼례 때 신랑이 신부집에 기러기를 가지고 가서 상위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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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금광태가? 사돈에게 보낸 혼서 / 金光泰 / NULL임인년 2월 24일에 김해김씨 김광태(金光泰)가 그의 장자(長子)가 이미 장성하였기에 납폐(納幣)의 예를 행하기 위해 작성하게 되었다고 목적을 밝히고 있다. 청혼서는 일명 '납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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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11월에 오천에 거주하는 정재수가 작성한 혼서 / 鄭在洙 / NULL기해년 11월 22일에 오천(烏川)에 거주하는 정재수(鄭在洙)가 작성한 혼서이다. 정재수의 장손(長孫)인 정해춘(鄭海春)이 이미 장성하였는데도 짝이 없다가 상대 집안에서 딸을 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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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에 김동식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 / 吳洪頊 / NULL"계미년에 김동식(金東植)이 신부집으로 보낸 혼서(婚書)로, 김동식은 혼기(婚期)가 찬 자신의 셋째 아들과의 혼인(婚姻)을 위해 이 글을 보낸 것이다. 김동식의 본관은 천안(天安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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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홍우찬이 보낸 혼서 / 洪祐瓚 / NULL"신묘년에 홍우찬(洪祐瓚)이 보낸 혼서이다. 상단의 간찰은 집안이 본래 가난하여 하나도 내세울 것 없어서 도리어 부끄럽다고 한 것이 주요 내용이고, 하단의 간찰은 신묘년 2월 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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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년 오근형이 사돈에게 보낸 혼서 / 吳根亨 / NULL정해년 3월 27일에 오근형(吳根亨)이 자식의 혼사문제로 이미 연길(涓吉)을 받았으니 앞으로 혼례가 순조롭게 되기를 기대하고 아울러 장도(章度)를 보낸다고 하는 혼서이다. 수신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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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왕사형이 작성하여 계림고가에게 발급한 혼서 / 王師亨 / 18551855(철종 6)년 4월 10일에 개성(開城) 왕사형(王師亨)이 계림 고가(鷄林古家)에 보낸 혼서이다. 왕사형은 계림 고가의 여식이 덕성스럽고 용모가 출중하며 부덕을 갖추었다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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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에 이강석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 / 李康碩 / NULL"경오년에 전주 후인인 이강석(李康碩)이 신부가 될 집안인 오생원(吳生員) 댁으로 보낸 혼서이다. 신랑될 자의 이름은 이학재(李鶴宰), 그는 계축년 9월 11일 생이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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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 이존구가 최주사에게 보낸 혼서 / 李存久 / NULL정축년 3월 초3일에 이존구(李存久)가 최주사(崔主事)에게 차녀의 혼사문제로 이미 주단(柱單)은 받았으니 연길(涓吉)을 보내고 아울러 장제(章制)를 적어 보내달라고 쓴 혼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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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 김교련이 보낸 혼서 / 金敎鍊 / NULL경자년 10월 4일에 김교련(金敎鍊)이 보낸 혼서이다. 자식의 혼사문제로 이미 연길(涓吉)을 보냈으니 의제(衣製)를 적어 보내달라고 하였다. 수신인은 미상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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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3월 20일 오강사유회소에서 박해창을 재임으로 천거하는 망기 / 梧岡祠儒會所 / 1923"1923년 3월 20일 오강사유회소(梧岡祠儒會所)에서 박해창을 재임(齋任)으로 천거하는 망기이다. 오강사는 곡성군 오곡면에 있는 사우로 한말의 위정척사론자이며 의병장 면암(勉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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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홍우찬이 사돈에게 보낸 혼서 / 洪祐瓚 / NULL"신묘년 2월 초7일에 홍우찬(洪祐瓚)이 보낸 혼서이다. 보내준 간찰에 깊이 감사하며 봄날에 사돈이 건강하다고 하니 다행이며, 이미 혼례 날짜를 받았으니 하교대로 의제(衣制)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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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에 송석정이 전주 이도정댁에 보낸 청혼서 / 宋錫珽 / NULL임오년 12월에 송석정(宋錫珽)이 조카인 연구(淵求)를 전주(全州) 이도정(李都正)댁으로 장가보내기 위해 작성한 청혼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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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이소구가 보낸 혼서 / 李韶久 / NULL을해년 2월 27일에 이소구(李韶久)가 질녀 혼사문제로 이미 주단(柱單)은 받았으니 연길(涓吉)을 보내고 아울러 장제(章制)를 적어 보내달라고 쓴 혼서이다. 수신자는 미상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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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침계순이 사돈에게 보낸 혼서 / 沈啓淳 / NULL"병오년 2월 29일에 심계순(沈啓淳)이 사돈댁이 될 집안에 보낸 혼서이다. 수신자는 미상이다. 딸의 혼사로 세의를 받게 되어서 대단히 고맙고, 신랑의 사성첩(四星帖)을 보내달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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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에 정인구가 신부집에 보낸 혼서 / 鄭寅龜 / NULL"무진년에 정인구(鄭寅龜)가 신부집에 보낸 혼서로, 정인구의 둘째 아들인 정길모(鄭吉謨)와의 혼인을 허락하여 달라는 내용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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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에 김상우가 신부집에 보낸 혼서 / 鄭寅龜 / NULL을묘년에 김상우(金相雨)가 신부집으로 보낸 혼서이다. 김상우는 자기의 여섯 째 아들인 상개(相開)의 나이가 차서 결혼할 때가 되지 신부집으로 하여금 혼인을 허락하여 줄 것을 청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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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에 유명흠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 / 柳明欽 / NULL"병자년에 유명흠(柳明欽)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이다. 유명흠의 본관은 전주, 이번에 결혼할 아들의 이름은 유원봉(柳源鳳)이었다. 유명흠과 사돈을 맺게 될 집안은, 이 혼서를 담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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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에 서경선이 오생원에게 보낸 혼서 / 徐京先 / NULL신묘년에 서경선(徐京先)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婚書)이다. 서극선은 동생의 큰 아들인 규종(圭鍾)의 나이가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므로 오생원(吳生員)의 딸과 결혼을 허락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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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에 권수일이 김석사에게 보낸 혼서 / 權秀一 / NULL"갑오년에 권수일(權秀一)이 김석사(金碩士)에게 보낸 혼서이다. 김석사란 권수일의 종제 수득(秀得)의 신부가 될 여인의 아버지라고 생각된다. 혼서는 신랑의 아버지가 보내는 것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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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박기순이 사돈에게 보낸 혼서 / 朴基純 / NULL모년에 박기순(朴基純)이 사돈에게 보낸 혼서이다. 혼서는 사주를 받은 신부집에서 혼인 날짜를 받아 백지에 써서 연길 편지와 함께 싸서 신랑집에 보내는 절차이다. 이처럼 문서에 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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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2월 원계영당에서 박해창을 추향 아헌관으로 천거한 망기 / 遠溪影堂 / 19271927년 2월 원계영당(遠溪影堂)에서 박해창을 추향 헌관(獻官)으로 천거한 망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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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에 이철우가 신부집에 보낸 혼서 / 李哲雨 / NULL"정미년에 경주이씨인 이철우(李哲雨)가 신부가 될 집안인 오생원댁(吳生員宅)으로 보낸 혼서이다. 신랑될 자의 이름은 이판복(李判福), 이판복은 이시우의 큰 아들이었다. 이 혼서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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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에 유원구가 신부집에 보낸 혼서 / 柳源龜 / NULL계묘년에 본관이 전주인 유원구(柳源龜)가 신부집으로 보낸 혼서이다. 그러나 유원구의 아들 중 누구의 혼인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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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왕선이 작성하여 사돈에게 보낸 혼서 / 王璿 / 1785"1785년(영조 25) 2월 26일에 왕선(王璿)이 자신의 서자(庶子)인 왕택수(王宅洙)를 장가보내기 위해 신부의 집에 폐백을 보내면서 동봉(同封)한 혼서(婚書)이다. 혼서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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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에 오시진이 이생원에게 보낸 혼서 / 吳時鎭 / NULL무진년에 오시진(吳時鎭)이 사돈(査頓)이 될 집안인 이생원(李生員) 댁으로 보낸 혼서(婚書)이다. 이생원은 신부가 될 여자의 삼촌이 되는 자였다. 오시진의 본관은 함양. 아들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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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오홍욱이 강생원에게 보낸 혼서 / 吳洪頊 / NULL정묘년에 오홍욱(吳洪頊)이 신부집인 강생원(姜生員)댁으로 보낸 혼서이다. 오홍욱은 동생의 큰 아들 즉 조카인 오용근(吳龍根)이 나이가 이미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다 되었으므로 신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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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태가 억근의 혼인을 위해 신부댁에 보낸 혼서지 / 金光泰 / NULL김광태(金光泰)가 아들 억근(億根)의 혼인을 위해 모댁(某宅)에 보낸 혼서지(婚書紙)이다. 억근은 김광태의 큰 아들이다. 봄을 맞아서 억근을 혼인시키려고 혼서지를 보냈다. 보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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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임원이 사돈에게 보낸 혼서 / 林垣 / NULL갑자년 1월 18일에 임원(林垣)이 자식의 혼사문제로 연길(涓吉)을 보냈으니 혼례 절차가 순조롭게 되기를 기대하고 또 의척(衣尺)을 보내달라고 청하는 혼서이다. 수신인은 미상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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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에 양용환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 / 梁龍煥 / NULL무진년에 양용환(梁龍煥)이 신부집에 보낸 혼서(婚書)이다. 양용환은 이 결혼식의 주인공의 삼촌이 되며 조카 양진영(梁鎭榮)의 결혼을 위해 보낸 신부집에 보낸 것이다. 양용환이 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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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 왕사각이 작성하여 신부댁에게 발급한 혼서 / 王師覺 / 1880"1880(고종 17)년 11월 20일에 개성인 왕사각(王師覺)이 신부집으로 보낸 혼서이다. 왕사각은 자신의 큰아들인 병환(炳煥)이 이미 장성하였는데도 짝이 없었는데, 그 댁에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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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왕씨가문에서 작성하여 왕재일에게 발급한 혼수물목 / 王氏家門 / NULL모년에 작성된 왕재일(王在一)의 혼례시에 사용한 물품과 그 비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는 당시 결혼풍속과 물가는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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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5월 정읍향교내호남지간소에서 박해창을 찬성장으로 천거하는 망기 / 井邑鄕校內湖南誌刊所 / 19241924년 5월 정읍향교내호남지간소(井邑鄕校內湖南誌刊所)에서 박해창을 찬성장(贊成長)으로 천거하는 망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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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왕○○가 작성하여 왕재섭에게 발급한 혼수물목 / 王○○ / NULL"모년에 왕○○이 자신의 둘째 아들 왕재섭(王載燮)을 전라도(全羅道) 구례군(求禮君) 산동(山洞) 대평(大坪)에 살던 홍씨(洪氏) 가문의 딸과 결혼시키면서 작성한 혼의존록(婚儀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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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신랑집에서 작성하여 신부집에 보낸 혼수물목 / 新郞宅 / NULL"을해년 12월 6일에 작성하여 신부집으로 보낸 혼의목록(婚儀目錄)이다. 혼인시 신부측에 건내 줄 혼수물목 등을 적어놓은 것으로, 혼수 물목과 수량 및 구입 비용 등이 기록되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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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에 익산군에 사는 홍의봉이 작성한 단자 / 洪儀鳳 / NULL경인년에 益山郡 彌力面 九龍里에 사는 洪儀鳳이 익산군수에게 제출하기 위하여 작성한 單子의 草案이다. 洪儀鳳의 선산이 익산군 구문천면 죽청리에 있는데 수개월 전에 충청도 정산현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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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장흥 부동면에 사는 김복현이 작성하여 관에 올린 단자 / 金復鉉 / NULL"무자년 3월에 長興 府東面에 사는 金復鉉이 作成하여 官에 올린 단자이다. 김복현은 齋長을 맡고 있는데 병으로 칩거하는 중이라 사퇴하게 되었다. 따라서 후임자를 정해야 하는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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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에 부안군 소산면에 거주하는 박병선이 성주에게 올린 단자 / 朴炳善 / NULL"병오년 정월에 所山面 新栗里에 사는 朴炳善이 성주에게 올린 單子이다. 박병선은 자신의 조부와 증조부의 효행과 從嫂 宋氏의 열행으로 이미 정려를 받았었음을 아뢰면서, 잡역을 견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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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에 안기욱이 진안현감에게 올린 단자 / 安基郁 / 1865"乙丑年에 安基郁이 진안현감에게 올린 單子이다. 안기욱은 관련문서(고12118와 고12119)로 미루어 그가 진안 사람이며 좌수에 임명된 사람임을 알 수 있는데, 이 단자는 바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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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에 남원부에 사는 이명전이 제출한 단자 / 李明銓 / 18051805년(순조 5) 5월에 전라도 남원부 둔덕방에 거주하던 李明銓이 수령에게 올린 단자이다. 이명전은 고조까지 제사 지낸 뒤에도 제위답을 종가에 넘겨주지 않는 종가에서 갈려 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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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에 둔덕에 사는 이병우 등이 올린 단자 / 李幷宇 等 / 1890"1890년 8월에 屯德에 사는 李幷宇, 李粲宇, 李丁儀 등이 올린 단자이다. 소지를 올린 李幷宇의 선산은 둔덕방 약야촌 앞에 소재하는데 공씨 성을 가진 사람의 선산과 경계를 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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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에 순천부사가 보낸 문안단자 / 順天府使 / 18841884년 정월 27일에 順天府使 서아무개(徐某)가 보낸 문안단자이다. 겉봉에 ‘月燈面 張碩士 萬烈宅’라고 씌여진 것으로 미루어 순천부 월등면에 世居하던 木川 張氏家의 張萬烈에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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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에 남원부에 사는 이치관 등이 부사에게 올린 단자 / 李致觀 等 / 18011801년(순조 1) 7월에 전라도 남원부 둔덕방에 거주하던 李致觀 등이 부사에게 제출한 단자이다. 이치관 등은 선산 주변 마을의 동장들이 선산을 땔감을 구하는 장소로 삼으려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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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9월 29일 담대헌중건소에서 박해창을 감동유사로 천거하는 망기 / 澹對軒重建所 / 19241924년 9월 29일 담대헌중건소(澹對軒重建所)에서 박해창을 감동유사(監董有司)로 천거하는 망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