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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5351

    "1792년(정조16) 李致脩가 그의 세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분급문서이다. 이 문서를 보면 이치수는 출가한 딸에게는 재산을 전혀 분배하지 않았으며, 장자보다 차자들에게 전답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52

    "1691년(숙종17)에 전라도 만경군에 사는 최 아무개가 장손인 崔繼宗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서 작성한 별급문서이다. 그는 60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장손이 태어나자 기쁜 마음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53

    1686년(숙종 12) 8월 24일에 오상규가 그의 子婦인 성씨에게 작성해 준 별급문기이다. 오상규는 아들 오정훈의 배필로 成瑗의 딸을 맞아들였다. 그는 신부인 성씨의 용모와 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54

    "1735년(영조 11) 11월 1일에 아버지가 아들인 김방길에게 노비와 전답을 별급해주면서 작성한 별급문기이다. 나이 50이 다되어 얻게 된 아들이므로 각별한 애정이 있어서 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55

    1551년(명종 6) 7월에 李渾이 그의 며느리 朴氏에게 특별히 재산을 떼어 주면서 작성한 별급문기이다. 그는 그의 長子 大胤의 배필로 박씨를 맞이하였는데 신부의 용모가 아름답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56

    1735년(영조 11)에 扶安縣 立下面 愚磻里에 살았던 金守宗(1671-1736)이 그의 며느리 나주오씨에게 특별히 재산을 떼어주면서 작성한 별급문서이다. 이 별급이 이루어진 것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57

    1775년(영조 51)에 국왕이 정징하(鄭徵河)를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임명한 교지이다. 당시 정징하는 88세로 장수하여 영조가 이를 기리기 위해 가자(加資)한 교지이다. 자헌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58

    1564년(명종 19)에 姜周臣이 작성한 별급문서이다. 자신의 나이가 50여세에 이르러 몸은 병들었지만 자녀들이 혼인을 한 데다가 얼마전 친족들이 모여 치하를 받은 터여서 이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59

    "1736년(영조 12) 4월 7일에 金守宗이 子女들에게 財産을 分給하며 작성한 別給文書이다. 김수종이 늙어서 병이 심해지자 祭位條로 토지를 따로 떼어 놓은 뒤 아들과 딸, 서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0

    1669년(현종 10)에 金命說이 子 ?과 ?에게 특별히 재산을 나누어 주면서 작성한 별급문기이다. 아들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것을 기뻐하면서 한편으로는 김명열의 妻가 죽고 아들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1

    "1591년(선조 24)에 金景順이 작성한 別給文書이다. 김경순은 만년에 얻은 아들 金弘遠이 18세에 司馬試에 합격하자,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이 소유한 노비 약간을 김홍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2

    1639년(인조 17) 10월 2일에 吳添慶은 그의 아우인 吳添善이 進士試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奴 1口와 畓 10두락지를 별급하면서 작성한 문기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3

    1702년(숙종 28) 4월 19일 장인인 幼學 李雲記가 둘째 사위인 吳纘周에게 준 별급문서이다. 그 내용은 이운기가 60이 다 되도록 내외손 사이에 아들이 없었는데 둘째 딸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4

    1646년(인조 24) 2월 12일에 오첨경의 숙모인 양씨가 오첨경에게 작성해 준 별급문기이다. 그녀가 오첨경이 1645년에 문과에 급제한 것을 축하하는 뜻으로 계집종 1口를 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5

    1687년(숙종 13) 11월 9일에 오상규가 그의 며느리인 성씨에게 작성해 준 별급문기이다. 그녀가 결혼한 지 1년만에 아들을 낳자 오상규가 손자를 보게 해 준 며느리 성씨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6

    "1579년(선조 12) 6월 29일에 吳益昌의 母 李氏가 오익창의 進士試 합격을 축하하는 뜻으로 그에게 노비 2口와 畓 23두락지를 특별히 분급하여 주었다. 오익창이 진사시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7

    1706년(숙종 32) 3월 9일에 오정훈이 새로 맞아들인 며느리 송씨에게 작성해 준 별급문기이다. 오정훈은 宋光朝의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였는데 송씨의 용모가 아름답고 행동거지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8

    "1834년(순조34)에 4월에 유학(幼學) 이희규(李熺奎)가 생원시(生員試)에서 3등 70인으로 합격하여 받은 백패(白牌)이다. 뒷면에 “幼學李熺奎生員三等第七十人”이라고 써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69

    1644년(인조 22) 이유형이 손자에게 재산을 분급한 별급문서이다. 이유형은 그의 나이 60세가 다 되도록 슬하에 아들이 없었다. 그는 동생 이국형의 둘째 아들인 이문주를 양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70

    1716년(숙종 42) 12월 2일에 아무개가 그의 어린 손자인 오일계의 재롱을 보고 귀여운 생각이 들어 그에게 논 5두락지를 별급한다는 내용이다. 재주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71

    "1672년(현종 13)에 김명열이 나이 60이 되도록 손자가 없어 후사가 끊길까 걱정했는데, 막내아들 ?이 아들을 낳아 壽宗이라 이름하였다. 큰아들 磻이 끝내 자식을 두지 못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72

    "아버지가 막내 아들 덕삼(德三)에게 써 준 별급문기이다. 그는 이하리(?下里) 불모동(彿毛洞)에 논 4두락지를 덕삼에게 물려주면서 이를 경작해 먹고 살되, 만약 형제 중에 이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73

    1693년(숙종 19) 9월 14일에 전찰방 우씨(禹氏)가 작성한 별급문기이다. 증조부(曾祖父) 우씨가 나이 77세 때 증손 희증(喜曾)이 태어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재산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74

    1750년(영조 26) 10월에 승려 입선(笠禪)이 충청도(忠淸道) 청양현(靑陽縣) 동상면(東上面) 개곡리(開谷里)에 있던 4마지기의 땅을 스승의 제위답으로 절에 헌납하면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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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75

    1803년(순조 3) 4월에 시아버지가 며느리 장씨(張氏)에게 특별히 재산을 떼어 주면서 작성한 별급문서이다. 현철(賢哲)한 장씨(張氏)를 외아들의 배필로 맞아들이자 마음이 너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76

    乙卯年 12월 2일에 아버지가 맏며느리에게 내려 준 별급문서이다. 며느리가 현철(賢哲)하므로 기쁘고 행복하여 전라도(全羅道) 장흥부(長興府) 부산면(夫山面) 구룡리(九龍里) 촌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377

    "1676년(숙종 2) 11월 21일에 아버지 우씨(禹氏)가 큰아들 시하(時夏)에게 작성하여 준 별급문기이다. 우씨는 계모(繼母) 이씨(李氏)가 자녀를 출산하지 못하자 예전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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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78

    1703년(숙종 29) 환갑(還甲) 때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아들을 얻었던 이가 마침내 아들이 장성하여 관례까지 치르게 되자 그 흡족한 마음에 삼석지기 전답과 노비 7명을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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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79

    "1795년(정조 19)에 국왕이 학생(學生) 최수인(崔壽仁)을 통정대부(通政大夫)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추증한다는 교지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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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0

    1737년(영조 13)에 밀성손씨(密城孫氏)가 장손인 홍조(弘祚)에게 재산을 특별히 떼어 주면서 작성한 별급문기이다. 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잔병치레를 자주 하던 홍조가 결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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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1

    "1780년(정조 4) 2월 20일에 이씨(李氏)가 그의 며느리 한씨(韓氏)에게 특별히 재산을 떼어 주면서 작성한 별급문기이다. 시아버지 이씨는 며느리 한씨가 종부로서 예법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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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2

    1849년(헌종 15)에 아버지가 1남 5녀의 자녀에게 재산을 분배하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재주는 전처인 조씨에게서 딸 하나만 두었는데 적통을 이으라는 부모의 말에 후처 유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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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3

    1796년(정조 20)에 형 弼秀가 동생 弼臣에게 亡母의 재산을 나누어 주면서 작성한 분재문기이다. 죽은 어머니는 생전에 막내를 끔직히 귀여워 하여 재산을 나누어 주고자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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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4

    "財主인 어머니 鄭씨가 자식 5남매에게 전답 및 노비를 나누어 주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분재는 출생순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대상은 사위 李翼望, 郭景龜, 河聖一, 鄭世復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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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5

    "金克悌의 妻 韓氏가 세 자녀와 두 ?子에게 財産을 分給하면서 작성한 문기이다. 한씨 소생의 세 자녀는 두 아들 金自輝와 金振輝 및 1명의 딸 金氏인데 吳添慶은 위 김씨와 결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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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6

    1558년(선조 21) 4월 25일에 父 參奉 金氏가 末子인 景壽에게 財産을 別給해 주면서 작성한 分財記이다. 참봉 김씨가 병에 걸려 위독할 적에 아들 경수가 정성을 다해 간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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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7

    "金克悌의 妻 韓氏가 세 자녀와 두 얼자에게 재산을 분배한 후에(관련문서 02808) 분배과정에서 遺漏되었던 재산이 발견됨에 따라 이를 다시 자녀들에게 분급하였다. 이때에 분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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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8

    "1696년(숙종 22) 4월 7일에 아버지 崔氏가 자식들에게 논밭 및 노비를 나누어 주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이 분재는 재산의 주인인 아버지 최씨가 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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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89

    1829년(순조 29)에 작성된 토지 분급문기로 분급자는 알 수 없다. 대개 분급문기의 첫머리에 분재의 경위나 후손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기록하였는데 이 분급문기에는 그런 내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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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0

    "1676년(숙종 2)에 전라도(全羅道) 광양현(光陽縣)에 사는 교생(校生) 정시룡(鄭時龍)이 무과에서 병과(丙科) 10,305인으로 합격하여 받은 홍패이다. 원래 무과에서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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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1

    "1629년(인조 7)에 沈命世가 賜牌婢인 愛香을 金弘遠에게 주면서 작성한 明文이다. 당시 김홍원은 회양부사로 근무하다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를 갔다가 다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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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2

    1609년(광해군 1) 3월에 李曄이 그의 큰아들 李惟馨에게 奉祀田民을 마련해 주고 선조의 제사를 잘 받들도록 당부하면서 작성해 준 문기이다. 봉사전민이란 제사를 받들기 위해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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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3

    1694년(숙종 20)에 財主 高氏가 두 아들에게 재산을 분배해 주면서 작성한 분급문기이다. 당시의 관행에 따르면 제사에 쓸 재산인 제사조(祭祀條)를 제외한 유산을 자녀에게 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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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4

    1649년(인조 27)에 전라도 남원부 둔덕방에 살던 李惟馨이 그의 養子인 李文胄에게 祭器와 什器 등을 물려주면서 작성한 문서이다. 이유형은 제기와 집기 등을 支孫에게 나누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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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5

    "1581년(선조 14) 8월 5일에 父親인 前參奉 姜周臣이 嫡妾에게서 난 자식 四?妹인 金景順의 妻, 應?, 應珠, 妾子 於弄에게 재산을 평균분집하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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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6

    1739년(영조 15)에 신금철이 자신의 조부모가 남긴 토지를 자신 및 두 명의 숙모와함께 분배하면서 작성한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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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7

    1655년(효종 6) 2월에 李惟馨이 도망간 祀位奴 愛龍에게 지급하였던 전답을 몰수하여 제위답으로 충당하고서 이를 자신의 아들인 文?와 손자인 仁濟에게 상속해 주면서 작성한 별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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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8

    "1841년(헌종 7) 12월 崔時勳의 부친이 자녀들에게 전답과 노비 등 재산을 분배하면서 작성한 분급문기이다. 次子 時任은 이미 다른 집에 양자로 갔기 때문에 그에게는 약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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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399

    1765년(영조 41) 2월 11일에 財主 鄭氏가 남편 사후에 자녀들에게 재산을 분배하면서 작성한 구분하면서 처리한 문서이다. 2대 독자였던 남편이 딸만 둘을 두고 요절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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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400

    1764년(영조 40)에 李宗煥이 그의 맏아들인 李致脩에게 작성해 준 별폭성문이다. 1764년 2월에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祭田이 여러 가지 이유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李宗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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