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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에 상전 이씨가 노 관옥에게 작성해 준 패지 / 上典 李氏 / NULL을해년에 상전(上典)인 이(李)씨가 노복인 관옥(官玉)에게 써 준 패지(牌旨) 즉 위임장이다. 이씨는 돈을 급히 써야할 데가 있어 충청도(忠淸道) 공주목(公州牧) 곡화천면(曲火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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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에 박생원댁 노가 잉치에게 작성해 준 패지 / 未詳 / NULL경오년에 박생원택(朴生員宅) 노(奴)가 잉치(芿稚)에게 써 준 위임장 즉 패지이다. 박생원은 남으로부터 빌린 돈이 산더미처럼 많아져 이를 도저히 갚을 길이 없자 충청도(忠淸道)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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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에 상전 백씨가 노 흥재에게 작성해 준 패자 / 上典 白氏 / NULL무진년 5월에 상전(上典) 백씨(白氏)가 자신의 노(奴) 흥재(興才)에게 작성해 준 패자(牌子)이다. 백씨는 흥재에게 자신이 소유한 땅 3마지기를 시가에 따라 방매하고 이 패자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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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에 김수관이 동생 방길의 처 오씨에게 준 양자문서 / 金守寬 / 1743"1743년(영조 19)에 金守寬이 4촌 동생 방길의 처 오씨에게 준 양자 입안 문서이다. 김수관은 4촌 동생인 김방길이 종손임에도 불구하고 후손이 없이 일찍 죽게 되자 金邦保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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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에 문장 김소가 김득문의 처 나씨에게 발급해 준 양자문서 / 金? / 1768"1768년(영조 44)에 문장 金?가 金得文의 처 羅氏에게 발급해 준 양자 입안 문서이다. 김득문의 처 나씨는 남편이 嫡妾에게서 후사가 없이 죽게 되자 문장인 김소에게 양자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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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에 국왕이 정류에게 발급한 교지 / 國王 / 1837"1837년(헌종 3) 11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통훈대부(通訓大夫) 행사간원(行司諫院) 정언(正言) 으로 임명하는 교지이다. 뒷면에 “吏 吳道淳”이라고 써있다. 통훈대부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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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에 송재민이 작성한 양자문서 / 宋在民 / 18351835년(헌종 1) 3월에 宋在民이 당숙에게 작성해 준 양자문서이다. 그는 오촌 당숙에게 아들이 없자 자신의 동생 在善을 보내어 당숙의 후사로 삼게 하면서 이 문서를 작성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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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에 이명환이 이면식에게 작성해 준 양자문서 / 李命煥 / 18521852년(철종 3) 2월에 이명환(李命煥)이 자신의 셋째 아들 길용(吉龍)을 삼종제(三從弟)인 이면식(李勉植)에게 입양시키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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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에 임광적이 임광하에게 작성해 준 양자문서 / 林光迪 / 18191819년(순조 19) 12월에 임광적(林光迪)이 자신의 장자 시윤(時潤)을 동생 임광하(林光夏)의 후사로 주면서 작성한 문서이다. 장자를 동생에게 입양시킨 점이 주목된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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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고종 3)에 문장 유학 조중헌이 조윤국에게 작성해 준 양자문서 / 趙重憲 / 18661866년(고종 3) 11월 7일에 문장(門長) 유학 조중헌(趙重憲)이 조윤국(趙允國)에게 작성해 준 양자문서(養子文書)이다. 조중헌은 작은 아버지가 불행하게도 후사가 없이 죽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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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에 김지타가 김휴조에게 작성해 준 명문 / 金之? / 1842"1842년(헌종 8) 11월에 문장(門長) 김지타(金之?)가 재종제 김휴조(金休祖)에게 작성하여 준 명문이다. 문장 김지타는 재종형 성채(星采)씨 부부가 자녀가 없이 일찍 사망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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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에 유의원의 처 영산김씨가 유소원에게 작성해 준 양자문서 / 永山金氏 / 18461846년(헌종 12)에 유의원(柳義源)의 아내 영산김씨(永山金氏)가 삼종(三從) 시숙(媤叔)인 유소원(柳韶源)에게 작성해 준 양자문서이다. 그녀는 유소원에게 자신의 둘째 아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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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에 진영태 등이 모여 작성한 양자문서 / 陳永泰 / 18781878년(고종 15) 정월에 문장(門長) 진영태(陳永泰) 등이 모여 작성한 양자문서이다. 종중의 대표들이 진익모(陳益模)를 진영걸(陳永杰)의 양자로 맞아들이기로 하고서 이 문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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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철종 8)에 종중에서 작성한 양자문서 / 宗中 / 18571857년(철종 8) 3월에 종중(宗中)에서 작성한 양자문서이다. 종중의 대표들이 모여서 순창(淳昌)의 3종(三從) 필상(必祥)을 양자로 맞아들이기로 하고 예조입안(禮曹立案)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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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에 이 아무개가 작성한 간찰 / NULL / NULL임오년 2월 25일에 아무개가 남원부 둔덕방에 거주하던 이 아무개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喪을 당한 이 아무개를 위로하는 내용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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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에 조카 최윤호가 보낸 한글 간찰 / 최윤호 / NULL"갑술년 동짓달에 조카 최윤호가 그의 아주머니에게 올린 한글 편지이다. 전주에 가는 그의 아주머니에게 장롱을 맞추는 일과 관련하여 올린 편지로, 가격이 웬만하면 전주에 가서 장롱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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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유인 윤씨에게 발급한 칙명 / 國王 / 1906"1906년(광무 10) 2월에 국왕이 유인(孺人) 윤씨(尹氏)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한다는 칙명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에 임명하면서, 전례에 따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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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1년에 국왕이 정류에게 발급한 교지 / 國王 / 1841"1841년(헌종 7) 12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겸북청(兼北靑) 진관(鎭管) 홍원(洪原) 병마절제위(兵馬節制都尉) 전(前) 영장(營將) 토포사(討捕使)로 임명하는 교지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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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안부 편지를 받고서 회답하는 간찰 / NULL / NULL오랫동안 소식이 막혀서 그리워하던 차에 상대의 안부 편지를 받고서 회답하는 간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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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에 족숙인 병권 등이 족질에게 보낸 간찰 / 族叔 秉權 等 / NULL"경자년 5월 11일에 族叔인 秉權, 履權, 馥權이 族侄에게 보낸 편지이다. 문서의 내용은 族叔들이 譜牒을 완성함에 族侄의 아들이 와서 보첩을 보더니 족질이 속한 派의 사위 3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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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이 이참봉댁에 보낸 간찰 / 金洪植 / NULL김홍식이 이참봉댁에 보낸 간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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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에 최압달이 보낸 간찰 / 崔鴨達 / NULL갑인년에 崔鴨達이 보낸 편지이다. 수취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최명달의 上典이 아니었을까 한다. 편지 내용을 보면 최명달이 물고기를 매매하기 위해 서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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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에 조석현이 이생원에게 보낸 간찰류의 위소 / 曹錫玄 / NULL"을미년 3월 6일에 曹錫玄이 李生員에게 보낸 慰疏이다. 이생원이 부친상을 당한 것을 위로하며, 자신은 직무에 매달린 몸이라서 직접 찾아가 조문하지 못하여 매우 안타깝다는 내용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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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에 김규감이 오길원에게 보낸 간찰 / 金奎鑑 / 18451845년(헌종 11) 11월에 金奎鑑이 吳吉源에게 보낸 편지로 吳氏로부터 사주단자를 받은 뒤 혼인 날짜를 정하고서 이를 알린 것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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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에 송재성이 염석사에게 보낸 간찰 / 宋在晟 / NULL"을축년에 宋在晟이 廉碩士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때 송재성은 아마도 부모중 누군가의 상을 당하게 되었는데, 염석사가 이에 대해서 조문을 한 듯하다. 이에 대해서 송재성은 조문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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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에 종제 영록이 종형에게 보낸 간찰 / 從弟 永錄 / NULL"미상년 1월 8일에 從弟 永錄이 從兄에게 보낸 간찰로, 백모 및 큰댁 식구들의 안부를 묻는 한편 지난해에 있었던 백부의 제사에 병 때문에 참여하지 못해 매우 죄송스럽다는 내용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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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정연영이 사돈에게 쓴 간찰 / 鄭璉榮 / NULL21일 鄭璉榮이 査頓에게 쓴 便紙이다. 정연영은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음을 밝히며 추위에 건강은 어떠냐는 안부와 함께 자신은 예전과 다름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하며 한번 왕래하여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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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에 장인인 성습이 사위인 장씨에게 보낸 간찰 / 聖習 / NULL"무오년 음력 12월 26일에 장인인 聖習이 사위에게 보낸 간찰이다. 사위는 ‘張斯文’이라고 쓴 것으로 보아 張氏임을 알 수 있다. 지난 달에 한번 만나고 헤어진 이후 섣달 추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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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에 박만지에게 발급된 교지 / 國王 / 1756"1756년(영조 32)에 박민지(朴萬枝)에게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박민지를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에 임명하는 내용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종2품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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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에 송종대가 보낸 간찰 / 宋鍾岱 / NULL정사년 1월 13일에 송종대 그의 사돈인 吳某氏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가 같은 달 27일에 吳某氏에게 띄운 편지가 한통 더 있는데 서로 만나보기를 간절히 원하나 병이 많고 人事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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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년에 왕사필이 장생원에게 보낸 간찰 / 王師弼 / NULL을미년에 王師弼이 그의 妻祖父인 張生員에게 보낸 서한이다. 손녀 사위로서 그의 처조부에게 예를 갖추어 안부를 묻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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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내용의 간찰 / NULL / NULL상대방의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내용의 간찰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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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에 시영이 보낸 간찰 / 時永 / NULL경인년에 時永이란 사람(姓은 未詳)이 경인년 8月 5日에 吳某氏에게 보낸 答狀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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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모씨가 족인에게 보낸 간찰 / NULL / NULL吳某氏가 그의 친척에게 보낸 간찰로서 선조의 비석을 수립하려 하자 문중의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을 들어 이에 대해 반대의 의사를 표명하는 내용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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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년에 김지백이 이 아무개에게 보낸 간찰 / 金之白 / 16691669년 1월 26일자로 金之白이 아들의 상을 당한 이 아무개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를 위로하고 목편 1필을 보낸다는 편지이다. 김지백은 부안 사람으로서 사후에 蓼溪書院에 봉안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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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에 임경상이 쓴 간찰 / 林敬相 / NULL무자년 3월 임경상이 그의 사돈인 吳某氏에게 보낸 안부의 편지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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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에 족형인 현기가 상중에 있는 족제에게 보내는 간찰류의 위소 / 族兄 炫基 / NULL정미년 11월 4일에 族兄인 炫基가 상중에 있는 族弟에게 보내는 慰訴이다. 族叔主의 終祥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잘 감당하고 있는지 위로하면서 본인은 그 동안에 바쁘고 겨를이 없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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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도와 이재도에게 보낸 간찰 / NULL / NULL"작성자를 알 수 없는 간찰로, 安載道와 李載燾에게 각기 보낸 것을 누군가가 다시 한 종이에 옮겨 쓴 것이다. 전자는 신미년 9월에, 후자는 갑술년 7월에 각각 작성된 것이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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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에 성습이 쓴 간찰 / 聖習 / NULL무술년 6월 5일에 聖習이 쓴 편지이다. 상대방이 보내준 편지에 답장하는 글이다. 상대방의 딸아이가 滿産의 증세가 있는 것에 대해 신중하라는 말과 함께 가죽신 네 켤레를 化瑞편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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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국왕이 유인김씨에게 발급한 추증교지 / 國王 / 18941894년(고종 31)에 국왕이 유인김씨(孺人金氏)를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追贈)하면서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아들이 자헌대부(資憲大夫) 형조판서(刑曺判書)에 임명되자 법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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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최우형이 완영의 집사 영풍에게 보낸 간찰 / 崔遇亨 / NULL정묘년 9월에 崔遇亨이 完營의 執事 寧豊에게 보낸 간찰이다. 안부와 지난번 편지에서 묻던 南原의 崔鳴九와 그 從弟 殷九에 대해 학문이 뛰어나고 秀才라고 답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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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증직 경축 초청장 / NULL / NULL"丙子胡亂시에 倡義하여 난을 평정했던 先祖 判官公, 主簿公, 司果李公에게 贈職의 은전이 내려졌기에 이번에 조상의 증직을 경축하는 자리를 열게 되었으니 安相鼎이 참석해 주시기를 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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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에 송종대가 보낸 간찰 / 宋鍾岱 / NULL정사년 1월 13일에 송종대가 그의 사돈인 吳某氏에게 보낸 답장이다. 그가 같은 달 27일에 위 오모씨에게 띄운 편지가 한통 더 현존하는데 서로 만나보기를 간절히 원하나 병이 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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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에 김병식이 보낸 간찰 / 金秉植 / NULL기유년 6월 20일에 金秉植이라는 사람이 그의 사돈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농사의 豊凶에 관하여 묻고 고르지 못한 날씨에 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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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에 이정규가 쓴 간찰 / 李鼎奎 / NULL계사년 2월에 이정규가 영광성주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정규는 영광군수에게 茂長士人 吳鎭朝와 常漢 金宗得과의 사이에 벌어진 소송 사건을 잘 처리해서 명분을 바로잡고 기강을 세워 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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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있는 오빠가 조선에 있는 여동생에게 보낸 간찰 / NULL / NULL"일본에 가 있는 오빠가 조선에 있는 여동생에게 보낸 한글간찰이다. 오빠는 전쟁통에 일본으로 끌려가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래서 부모님을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죄송함을 피력하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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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에 남궁윤이 보낸 간찰 / 南宮潤 / NULL갑자년 8월에 남궁윤이 그의 장인인 吳某氏에게 보낸 편지이다.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관계로 오랫동안 장인을 뵙지 못했음을 사죄하고 부모의 병환에 차도가 있는 대로 곧 찾아 뵙겠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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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에 시모가 며느리에게 보낸 간찰 / NULL / NULL"시어머니가 사돈의 서간을 받고 답례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친정에 가 있는 며느리에게 보낸 간찰이다. 큰시숙의 안부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으며, 며느리의 동서가 출산을 위해 친정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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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에 노장환이 쓴 간찰 / 盧長煥 / NULL"갑인년 1월 29일에 盧長煥이 누군가에게 써 보낸 답장이다. 상대방은 할머니의 초상을 당하였으므로 그에 대해 먼저 조문하지 못한 죄송함과 안부를 물었다. 노장환은 상대방에게 상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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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년에 사돈에게 보낸 간찰 / NULL / NULL친정어머니가 사돈에게 문안 및 감사의 뜻을 전한 간찰이다. 친딸같이 사랑해주는 사돈의 어진 마음과 은혜를 백골이 진토 되어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며느리의 동서가 출산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