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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5651

    "기해년 12월 20일에 오수근(吳壽根)이 사돈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이별한 후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슬픔이 더해지고 있었는데 손자아이가 돌아오면서 편지를 가지고 와서 위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52

    을묘년 9월 28일 이제겸(李濟兼)이 6촌 형에게 보낸 편지이다. 원당(元堂) 인편에 편지한 뒤로 소식이 막혀 그립다 하고 첫 추위가 여러 날 풀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이를 그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53

    "某年에 수이(秀爾)가 김태화(金太和)에게 보낸 편지이다. 국화가 피었다 지는 40일 동안 하루도 태화를 기다리지 않은 날이 없고 하루도 태화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54

    "경인년 8월 8일에 기복상(朞服喪)을 입고 있던 정보현(丁補鉉)이 사돈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국상(國喪)으로 말미암아 슬픔이 퍼져 있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냐고 서두를 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55

    "모년에 신좌모(申佐模)가 아들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작성연월일은 미상이다. 진사(進士)가 오늘에서야 출발하였고, 일전에 예안(禮安) 이대감의 아들을 통해 간찰을 받았는데 영남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56

    1800년(정조 24) 2월에 국왕이 정길(鄭桔)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한 교지이다. 당시 정길은 70세로 장수하여 정조가 이를 기리기 위해 가자(加資)한 교지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57

    경오년 12월 26일에 홍진표(洪震杓)가 매부인 안(安) 형님 댁에 보낸 간찰이다. 그는 안 형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듣고 놀라고 슬펐던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한 뒤 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58

    "모년 모월 28일에 아버지가 아들 윤(玧)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그는 아들에게 잘 지낸다고 하니 기쁘며 동생을 보냈으니 잘 가르치도록 하고, 경작한 면화에 대한 송부문제를 논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59

    "모년에 김려(金麗)가 사돈에게 보낸 간찰이다. 벽정(碧亭)이라는 곳에 사는 김려가 만났다 헤어진 사돈의 편지를 받고 쓴 답장이다. 이증(痢症)이 낫지 않는 것을 걱정해주고,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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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60

    "경신년 10월 28일에 유충희(柳忠熙)가 중매쟁이로부터 결혼이 허락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사돈될 집에 사주단자를 보내면서 쓴 편지이다. 그는 한미한 자기 집을 허락해준 것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61

    정묘년(丁卯年)에 김용겸(金用謙)이 보낸 편지이다. 남의 선산에 투장한 사건으로 신관이 내려와 조사를 해서 관장을 능욕한 죄를 뒤집어쓰게 되면 우리 집안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62

    "간지가 신(辛)으로 시작하는 해 1월 11일에 신좌모(申佐模)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새해를 맞아 식구들과 화룡행(花龍杏) 각 가정의 안부를 묻고 세금을 납부를 물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63

    병진년 11월 이우성(李遇聲)이 그의 사돈(査頓)인 오모씨(吳某氏)게 보낸 답장(答狀)이다. 그가 동월(同月)에 오모씨에게 보낸 간찰이 2통 더 전한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64

    "계유년 10월 21일에 혼사를 무사히 마친 안종렬(安宗烈)이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쓴 서찰이다. 그는 오랫동안 공경하다가 지난번 뵈니 공경하고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며 깨끗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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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65

    "김수인(金壽仁)이 형에게 보낸 서신이다. 남쪽에 내려온 지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으며 고향을 그리는 심정을 표하고 새봄이 드는데 잘 지내시는지 본인은 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66

    "기해년 12월 20일에 오수근(吳壽根)이 사돈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진진(晉秦)간의 거듭 혼인처럼 중혼(重婚)은 옛날에도 있던 일이니 이는 양가 혼인이 혹여 옛 것을 좋아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67

    1983년(고종 30) 9월에 유인정씨(孺人鄭氏)에게 정부인(貞夫人)의 품계를 내려 준 교지이다. 당시 통훈대부행사헌부감찰(通訓大夫行司憲府監察)인 아무개의 고비(考?)이기 때문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68

    정축년 12월 16일에 김재남(金在南)이 아들을 훈도하고 있는 사람에게 쓴 감사 편지이다. 그는 섣달 추위에 기체가 더욱 만강하기를 기원한 뒤 본인은 별다른 일 없이 예전과 같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69

    무자년(戊子年)에 김상옥(金相玉)이 보낸 편지이다. 가뭄 뒤 단비처럼 서신을 보내주셔서 고맙다하며 잘 지내시는지 안부를 묻고 본인은 별일은 없고 조카가 조금 아프지만 다행이며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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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70

    신유년(辛酉年)에 자부(子婦)가 시부(媤父)에게 보낸 서간문(書簡文)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면) 문안알외오고이러?동?에/긔쳬후일아옴시닛가복모구구무임/하사이다이곳?부?하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71

    모년 3월 10일에 아버지가 아들 양(敭)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래지 않아 서울로 올라갈 것이므로 답장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72

    "작자 미상의 편지이지만 서체(書體)로 보아 이재곤(李載崑)이 보낸 별지(別紙)로 추증된다. 철수(哲洙)의 혼인 문제로 광산(光山)김씨 가문 여러 곳에 의논을 통했다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73

    "을유년 7월 18일에 장한두가 화촌(和村)으로 보내는 간찰이다. 그는 노형을 비롯한 아들과 며느리에 대한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고 여름인데도 한가한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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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74

    1857년(철종 8) 4월 9일 이돈영(李敦榮)이 보낸 간찰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다만 피봉에 남성령좌(南省令座)라고만 기록이 되어 있다. 피봉으로 보아 이돈영이 지금 호판(戶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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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75

    "모년에신좌모(申佐模)가 보낸 간찰이다. 작성시기와 수신자는 알 수 없다. 다만 문맥으로 보아 사돈댁에 보낸 것으로 추측된다. 윤랑(胤郞)이 전교를 받은 것에 대해 자시의 의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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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76

    무자년에 석영이 친 / 錫泳 / NULL
    무자년 2월 9일에 석영(錫泳)이 보낸 편지이다. 자신이 다스리는 관아(官衙)는 시끄러운 일이 없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아우의 장례(葬禮)지내는 날이 이번 달 22일로 정해 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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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77

    경인년 2월 23일에 인제(姻弟) 송백룡(宋白龍)이 쓴 간찰이다. 그는 중당(重堂)과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부모님께서 평안하게 지내서 다행이라고 전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5678

    "1898년(광무 2) 7월에 중추원(中樞院) 의장서리(議長署理) 부의장(副議長) 신기선(申箕善)의 이름으로 9품 종사랑(從仕郞) 황원묵(黃源?)을 중추원(中樞院) 삼의관(三等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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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79

    1756년(영조 32)에 국왕이 신승만(申承萬)을 절충장군(折衝將軍) 행(行) 용양위부호군(龍?衛副護軍)에 임명하면서 발급한 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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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0

    신미년(辛未年)에 김대근(金大根)이 당숙 집에 보낸 편지이다. 기체 만안하신지 당숙모의 걱정은 별고 없으신지 먼 곳에서 마음으로만 걱정할 뿐이며 10여세 나이에 당한 일이라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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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1

    신축년 4월 초8일에 류석영(柳碩永)이 쓴 간찰이다. 하룻밤 함께 보낸 것이 10년보다 낫다고 하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어서 별 달리 할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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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2

    계축년에 모인(某人)이 전라감영(全羅監營) 등에 보낸 간찰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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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3

    "모년에 아버지가 아들 치(緻)에게 전하는 간찰이다. 작성연월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는 아들에게 광주 매주(妹主)가 지난달 27일에 병을 얻었는데 아주 위중하며, 사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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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4

    갑진년(甲辰年)에 김간(金侃)이 보낸 편지이다. 정치에 임한 몸은 편안하신지 묻고 본인은 노병으로 행보가 여의치 않으며 사위와 외손자 얘기를 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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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5

    "계해년 6월 25일에 집안의 맏형이 주촌(舟村)에 보낸 답장 서한이다. 그는 지난달에 상경하였을 때 만나 담화를 나눠 위로가 되었다면서 장마에 잘 지내시는지 식구들 모두 평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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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6

    "무인년 4월 15일에 조병응(趙秉應)이 부안 용와동 김생원에게 보내는 간찰이다.그는 병자년 봄에 서로 만난이후 소식이 없어 보고 싶었고 올해 흉년이 다른 해보다 심하며 부모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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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7

    정미년 12월 26일에 박재열(朴在烈)이 사돈댁에 쓴 감사 편지이다. 그는 세모(歲暮)에 기후와 신체는 왕성한지 안부를 묻고 본인은 부모님의 기후가 대강 편안하고 본인 또한 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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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8

    모년 10월 초2일에 청탁(請託)받은 사람이 청탁인(請託人)에게 보낸 간찰이다. 전라도 관찰사 자리를 두고 청탁하는 사람에게 주는 편지다. ‘다만 전라 감영의 일은 바빠 나도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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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89

    "모년 16일에 조부인 신좌모(申佐模)가 손자 봉휴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식구들과 증아(曾兒)·유아(乳兒), 대가(大家) 각 가정의 안부와 용휴의 공부정도를 물었다. 철우(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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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0

    1860년(철종 11) 정월에 국왕이 정류(鄭?)를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 겸경연참찬관(兼經筵參贊官)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으로 임명한 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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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1

    말에서 떨어진 사람을 문안하는 글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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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2

    정사년(丁巳年)에 김병운(金炳雲)이 보낸 편지이다. 서찰을 받고 부모 모신 몸은 편안하신지 묻고 바깥일로 나갔다가 보름 만에 돌아온 것은 다행이며 본인도 부모 모신 입장이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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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3

    "계유년 12월 10일에 한진석(韓晋錫)이 부안 용동 김생원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김생원의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변변찮게 지내고 있으며, 며느리 상을 만나 비통함을 견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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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4

    "모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의백은 손자의 이름이다. 그는 아들에게 병환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에 기쁨을 전하고 그래도 삼갈 것을 당부하였다. 의백의 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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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5

    "1912년 10월 16일에 권정식(權鼎植)이 「매천집(梅泉集)」을 받고 난후 왕수환(王粹煥) 등에게 보낸 서간이다. 자신은 무무(貿貿)한 야인(野人)으로 밭두렁이에 엎드려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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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6

    "1655년(효종 6) 3월 23일에 김집(金集)이 상대방이 보내준 간찰을 받고 쓴 답장이다. 그는 예판의 행차를 통해 간찰을 받아 위로가 된다고 하면서 자신은 위가 좋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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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7

    "1565년(명종 20) 이항(李恒)이 형님에게 보낸 간찰이다. 명경행수(明經行修)하는 선비로 뽑히기 전 해 작성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골몰한 나머지 병이 들어 아이들이라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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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8

    계해년 9월 5일에 성현(星炫)이 사돈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사돈이 지난번 와서 단란하게 대화를 채 미처 나누기도 전에 갑자기 작별하였다는 섭섭함을 이야기하고 돌아갈 때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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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699

    "갑진년 12월 2일에 사돈의 편지를 받은 정창원(鄭昌源)이 답한 서찰이다. 그는 사돈에게 편지를 받은 감회를 이야기하고 기체가 왕성하고 두루 평안하다니 위안이 된다고 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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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5700

    임년 2월 28일에 화계(花溪)의 이창술(李昌術)이 강생원(姜生員) 사돈집에 보낸 편지이다. 그는 서두로 사돈의 인연을 맺게 된 감회를 피력하고 봄이 한창인 이때 기체가 왕성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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