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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김중우이 왕경환에게 보낸 간찰 / 金仲祐 / 1911"1911년 12월 7일 김중우(金仲祐)가 왕경환(王京煥)에게 보낸 서간이다. 모금의 일은 몇몇 벗들에게 힘써 권해 보았는데 일에 호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비웃는 자가 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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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년에 김용겸이 보낸 간찰 / 金用謙 / NULL"정묘년(丁卯年)에 김용겸(金用謙)이 보낸 편지이다. 본인이 객지에 있으면서 송사얘기며 돈 관계 물품 심지어 칼, 허리띠, 물장화 등 외관직에 있으면서 여러 얘기들을 소상히 전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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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민병석이 보낸 간찰 / 閔丙奭 / NULL모년(某年)에 민병석(閔丙奭)이 보낸 편지이다. 정사에 종사하신 몸은 괜찮으신지 묻고 본인은 공무로 고뇌가 많다고 하며 부탁한 일이 조금 난처하다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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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정하원이 지인에게 보낸 간찰 / 鄭夏源 / NULL"정하원(鄭夏源)이 지인(知人)에게 보낸 서찰이다. 최근에 못 뵈었는데 어제 뵙고 그 사이 몸은 건강하시는지 묻고 이에 서찰을 올리나니 잘 봐주라고 말하고 설령 간섭한 바가 있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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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운가 지인에게 보낸 간찰 / 金相雲 / 1921"모년에 김상운(金相雲)이 지인에게 보낸 간찰이다. 첫머리에 수신자 아들의 재혼을 축하했다. 정월에 보낸 편지를 며칠 전에야 받았는데 아들이 그것을 목격했으니 가서 말할 것이라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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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에 왕이 학생 김필순에게 발급한 교지 / 國王 / 18931893년(고종 30) 5월에 왕이 학생(學生) 김필순(金弼淳)을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조참판(吏曺?判)에 임명하면서 추증(追贈) 교지이다. 김필순은 아들이나 손자가 통훈대부(通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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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박재희가 사돈에게 보낸 간찰 / 朴在禧 / NULL병진년 1월 28일에 박재희(朴在禧)가 쓴 간찰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이곳에 와서 10여일이 되었는데 외롭고 슬픈 마음 억누를 길이 없다고 하였다.생질의 혼사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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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 김륜근이 집안 어저씨에게 보낸 간찰 / 金輪根 / NULL정축년 김윤근(金輪根)이 집안 아저씨에게 보낸 편지이다. 양월에 글을 올리고 보셨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러다 한 해가 저물어가면서 생각나던 차에 추위가 시작되는데 몸은 건강하시는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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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 최명옥이 황생원에게 보낸 간찰 / 崔鳴玉 / NULL"정축년 11월 1일에 최명옥(崔鳴玉)이 황생원(黃生員)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는 우선 황생원에게 오랫동안 친분 맺기를 고대하다 드디어 친분을 맺었는데, 행색이 너무 바빠 평온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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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김종한이 보낸 간찰 / 金宗漢 / NULL모년(某年)에 김종한(金宗漢)이 보낸 편지이다. 지금 문서를 보니 은혜를 크게 입어 영화로운 발탁에 감축 드리며 형제간의 우애가 돋보여 우선 대신 축하를 전한다고 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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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나철이 보낸 간찰 / 羅喆 / 1900"1900년(고종 37) 나철(羅喆)이 서울에 체류할 당시의 편지로서 얼핏 보면 안부를 묻는 내용이지만, 행간 속에 뭔가 암시된 표현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범상하지 않다. 이를테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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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가 사돈에게 보낸 간찰 / 金智洙 / 1921"모년에 오래 앓고 있는 시집 간 딸의 병에 관하여 사돈에게 쓴 편지인 것으로 보인다. 딸의 병이 오래 끌어 어른들게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고 하고, 그 아이는 어릴 때 이미 홍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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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5년 윤유가 보낸 간찰 / 尹游 / 1725"1725년(영조 1) 윤유(尹游)가 보낸 간찰이다. 관직에서 삭출되던 해에 쓴 것이다. 기대하고 있던 중 보내준 편지를 받았으며 무더운 여름 날씨에 새로 맡은 일은 잘 되는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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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고용주가 운초선생에게 보낸 간찰 / 高墉柱 / NULL"모년 고용주(高墉柱)가 운초선생(雲樵先生)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매천집(梅泉集) 간행의 일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참작함이 좋을 것이라고 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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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조병덕이 선생에게 올린 간찰 / 趙秉悳 / 1833"계사년 조병덕(趙秉悳)이 선생에게 올린 간찰이다. 며느리 잃으신 슬픔이 어떠하신지 비통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부인 제사가 겨우 지났는데 또다시 이런 일을 당했으니 걱정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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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임위가 형에게 보낸 간찰 / 林瑋 / NULL"모년에 위(瑋)가 6일에 형에게 보낸 서찰이다. 그는 형의 기체가 어떠한지 안부를 묻고 본인은 앓고 있는 병이 날마다 약간씩 차도가 있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또 그는 이번 해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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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에 국왕이 정류에게 발급한 교지 / 國王 / 1848"1848년(헌종 14) 5월에 정류(鄭?)를 어모장군(禦侮將軍) 행용양위부사직(行龍?衛副司直)으로 임명하는 교지이다. 어모장군은 조선시대 무신 정3품 당하관의 품계이다. 당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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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억이 친구에게 보낸 간찰 / 檍 / NULL"갑술년 3월 21일에 억(檍)이 친구에게 보낸 간찰이다. 친구의 편지를 받고 쓴 답장이다. “꾀하던 일은 아쉽게도 수포로 돌아갔으나, 촉영(矗營) 막부(幕府)에 가까운 친척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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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미년 강상필이 안동댁에 보낸 간찰 / 姜相弼 / NULL"계미년 6월 27일에 상포(上浦)의 강상필(姜相弼)이 시동(?洞)의 안동(安洞) 댁에 회신한 것으로 주 목적은 우(宇) 조카의 소식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안동 댁이 옆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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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중옥이 군옥에게 보낸 간찰 / 仲玉 / NULL"모년 중옥(仲玉)이 군옥(君玉)에게서 보낸 간찰을 받고 쓴 답장이다. 작성연월일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다만 ‘즉선(卽旋)’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군옥에게서 받은 즉시 답장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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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에 김간이 보낸 간찰 / 金侃 / NULL정미년(丁未年)에 김간(金侃)이 보낸 편지이다. 노년의 기력이 쇠해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겠냐고 하며 늙은 몸을 한탄하고 집안의 여러 일들이 겹쳐 고뇌가 많으며 삼척에서 노비를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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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이건승이 보낸 1919년 이건승이 보낸 간찰 / 李建昇 / 1919"1919년 윤7월 15일에 이건승(李建昇)이 쓴 간찰이다. 이건승은 천안 동쪽 지역에 괴질이 일어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음을 개탄한 뒤《천소일기(泉小日記)》의 착오를 고치는 것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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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윤월 3일 이승오의 간찰 / 李承五 / 1876"1876년(고종 13) 윤월 3일 이승오(李承五)가 보낸 편지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상대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서찰을 받고 매우 위로가 된다고 하며, 더위에 잘 지낸다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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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장영규가 보낸간찰 / 張永奎 / NULL"기묘년 3월 13일에 장영규(張永奎)가 보낸 간찰이다. 그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이어 자신은 예전처럼 지내고 있으며, 마필(馬匹) 값으로 보낸 50냥을 돌려달라고 청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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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창이 아버지 박주현에게 보낸 간찰 / 朴海昌 / NULL"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복직처분이 누차 있었으나 요사이의 술렁이는 기미로 보아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으며, 빈 관직자리가 없어 분경(奔競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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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장씨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 / NULL / NULL어머니 장씨가 광주에 살고 있던 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아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병이 날 지경인데도 서로 소식도 자주 못 전하고 얼굴도 보지 못하는 심정을 간절하게 적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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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년 양재홍이 사돈에게 보낸 간찰 / 梁在鴻 / NULL"신미년 12월 15일에 양재홍(梁在鴻)이 사돈댁에 쓴 서한으로 사위를 늦게 본댁에 돌려보내는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그는 먼저 하늘의 도움으로 좋은 때에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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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에 국왕이 최경태에게 발급한 교지 / 國王 / 1795"1795년(정조 19)에 국왕이 학생(學生) 최경태(崔景台)를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 겸동지의금부사(兼同知義禁府事) 오위도총부(五衛都總府) 부총관(副總管)으로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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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김명진이 집안 어른에게 보낸 간찰 / 金明鎭 / NULL"모년 김명진(金明鎭)이 집안어른에게 보낸 서찰이다. 비가 내린 요즘 몸은 건강하신지 묻고 본인은 하루 하루 일이 힘들어 공사간에 고민이다 하고 오랫동안 한양성에 있었지만 지금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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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 권술이가 안생원에게 보낸 간찰 / 權述伊 / NULL임오년 12월 15일에 본동(本洞)에 사는 권예동(權禮東)이 안생원(安生員) 댁에 보낸 혼인택 일지가 동봉되어 있는 편지이다. 동봉한 봉투는 안동(安東) 권술이(權述伊)가 딸아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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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신좌모가 손자 찬좌에게 보낸 간찰 / 申佐模 / NULL"모년에신좌모(申佐模)가 손자 찬좌(贊佐)가 보낸 간찰을 받고 쓴 답장이다. 팔십 평생에 아이가 진사(進士)가 되는 것은 기이한 일이니 화룡(花龍)에 모두 모여서 기쁨을 나눌 것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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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집에 화재가 난 사람에게 보낸 간찰 / 知人 / NULL"집에 화재가 난 사람을 문안하는 글귀다. 울유(鬱攸)는 화기(火氣)를 말하고, 회록(回祿)은 불의 신을 말한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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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민계호가 외종형에게 보낸 간찰 / 閔啓鎬 / NULL"민계호閔啓鎬)가 외종형(外從兄)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내주신 글을 받고 위로를 드립니다. 안반의 억울함에 대해서 이미 이해해 주었겠지만 해당 고을에서 만일 다시 형벌 문제가 나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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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윤규가 보낸 간찰 / 潤圭 / NULL간지가 기(己)로 시작하는 5월 9일 윤규(潤圭)가 쓴 간찰이다. 그는 지난번에 찾아줘서 감사했으며 더운 날씨에 건강은 어떤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늘 병을 달고 지낸다고 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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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 한두가 화촌 지인에게 보낸 간찰 / 漢斗 / NULL기유년 4월 18일에 장한두가 화촌(和村)으로 보내는 간찰이다. 그는 지난번 자신을 찾아줘서 매우 기뻤는데 이별한 후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다면서 그 사이 복을 입은 몸으로 잘 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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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이병두가 사돈에게 보낸 간찰 / 李秉斗 / NULL"임년 12월 27일에 이병두(李秉斗)가 사돈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그저께 사신이 돌아가면서 서서 재촉을 하였기에 인사를 갖추어 다 닦지 못했다면서 지금까지도 땀이 다 난다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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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이순의가 안생원에게 보낸 간찰 / 李淳儀 / NULL신해년 4월 19일에 두곡(斗谷)의 이순의(李淳儀)가 신흥(新興)의 안생원(安生員) 댁에 보낸 서찰이다. 그는 혼사에서 상대방의 사주가 적힌 경첩(庚帖)을 받고 이에 길일을 택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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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한계원이 상관에게 보낸 간찰 / 韓啓源 / 1848"무신년 한계원( 韓啓源)이 상관(上官)에게 보낸 간찰이다. 해가 저물어갈 무렵 보내주신 서신을 받았다 하며 요사이 날씨가 찬데 몸은 건강하신지 주위 여러분들은 잘 계시는지 묻고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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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에 국왕이 장석룡에게 발급한 교지 / 國王 / 1889"1889년(고종 26)에 국왕(國王)이 장석룡(張錫龍)에게 발급한 교지(敎旨)이다. 학생(學生) 장석룡을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하는 내용이다. 조봉대부는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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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김종한이 보낸 간찰 / 金宗漢 / NULL모년(某年)에 김종한(金宗漢)이 보낸 편지이다. 올려드린 뜻에 대해 잘 봐주시고 조재학(趙在鶴)은 친절한 사람이며 몇 년 동안 근고(勤苦)로 아직 보여드리지는 못했지만 널리 이해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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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규헌이 박해창에게 보낸 간찰 / 宋奎憲 / NULL"송규헌(宋奎憲)이 박해창에게 보낸 간찰이다. 제영록(題詠錄)을 교정할 때 시문 중에서 빠진 글자는 보충하고 시(詩) 또한 렴(簾:시문의 고저를 맞춤)이 맞지 않는 것은 고쳤으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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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에 민병석이 보낸 간찰 / 閔丙奭 / NULL모년(某年)에 민병석(閔丙奭)이 보낸 편지이다. 벼슬하신 몸은 두루 편안하신지 묻고 본인은 궁궐 안에 들어가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고 있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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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창이 아버지 박주현에게 보낸 간찰 / 朴海昌 / NULL"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최근 국채보상(國債報償)의 일로 고향에 내려가면 반드시 집집마다 배정하여 거두어들이는 폐단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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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4월 15일 박해창이 아버지 박주현에게 보낸 간찰 / 朴海昌 / 1908"1908년(순조 1) 4월 15일,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9일 우편으로 보내신 편지와 보따리를 14일 받았다며 안부를 물었다. 진사 종형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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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이정직이 보낸 간찰 / 李貞稙 / 1882"갑술년 이정직(李貞稙)이 지인(知人)에게 보낸 서찰이다. 천리의 먼길에서도 생각해주신 나머지 서신을 받고 난 뒤 한달 남짓 지났는데 봄바람이 꽃을 재촉할 무렵 몸은 건강하시는지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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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1월 9일 이승오의 간찰 / 李承五 / 1874"1874년(고종 11) 1월 9일 이승오(李承五)가 보낸 간찰이다. 자신은 병이 들어 크게 원력(元力:元氣)이 많이 상했다고 하면서, 새해 들어 매우 그립다는 소식과 함께 소기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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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아버지가 아들 양에게 보낸 간찰 / 父 / NULL"모년 1월 12일에 아버지가 아들 양(敭)에게 보낸 간찰이다. 공부를 위해 절에 들어간아들에 대한 걱정을 전하고 이어 사돈의 병세가 위중하다고 전해 들었는데 멀리서 염려되는 마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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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3월 14일 조희찬의 간찰 / 趙羲贊 / NULL"병오년 3월 14일 조희찬(趙羲贊)이 보낸 편지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상대가 잘 있다는 편지를 받았다는 말과 함께 알려온 상대 누이의 죽음에 대해 애석해 하며 자신은 그럭저럭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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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년 이민응이 지인에게 보낸 간찰 / 李敏應 / 1874"갑술년 이민응(李敏應)이 지인(知人)에게 보낸 서찰이다. 선조 목은선생에 관한 사실이 유시남사에 미비해 있음으로 조심스럽게 조야의 자료를 채집하고 하진산이 지은 신도비의 글을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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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왕이 고봉주에게 발급한 교지 / 國王 / 1891"1891년(고종 28)에 고봉주(高奉柱)를 홍문관(弘文館) 박사(博士)로 임명하면서 왕이 내려 준 교지(敎旨)이다. 고봉주는 왕이 능행(陵行)할 때 탁이한 행동을 보였는데, 그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