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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6101

    기유년 5월 8일에 상중에 있는 세남(世南)이 작성한 편지이다. 그는 먼저 상대방에게 지난번 자기 집을 찾아주었던 것과 이번에 편지를 보내주었던 데에 대한 감사를 드렸다. 이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02

    "1903년(고종 40)에 김민수(金玟洙)가 지인에게 보낸 감수(減數)와 봉표(捧標) 때문에 시비가 생겨 이를 해명하는 간찰이다. 이운경(李云京)편에 안부를 물으니, 장참의(張參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03

    인하생 조중구의 간찰 / 趙重九 / NULL
    "인하생(姻下生) 조중구(趙重九)가 보낸 편지로 수신자는 미상이다. 시권(試券)을 올리니 따로 힘써주기를 바란다는 사연이다. 서간의 형식을 갖추지 않고, 긴급한 사연만 적은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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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04

    "모년 민병석(閔丙奭)이 집안 조부에게 보낸 서신이다. 정치에 바쁘신 몸은 건강하신 지 본인은 치질 등으로 여러 날을 고생하고 있으며 가르침은 받았지만 좌우간 나가지 못한 것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05

    "1906년(고종 43) 2월 13일,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귀산종(龜山從)이 11일 아버지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받아보았다며 안부를 묻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06

    "1906년(고종 43) 1월 15일에 이용희(李容熙)가 보낸 편지이다. 일전에 보내준 편지를 받고 고마웠는데 계속해서 시끄러움을 당하여 곧바로 답장을 못해 죄송하다고 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07

    "오윤겸(吳允謙)이 보낸 간찰이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답안지는 응시자가 준비했다. 이 편지는 답안지용 종이를 구걸하는 내용인데, 앞부분은 떨어져 나갔다. … 종이는 가을 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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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08

    정년 9월 그믐날에 공복(功服) 상중이었던 병순(秉珣)이 쓴 편지이다. 그는 판서 종제(從弟)의 비극을 생각하면 억제하기가 어려우나 노인네가 오래 앓아 몸이 축나 숨이 장차 끊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09

    "1907년(고종 44) 3월 11일 박해창(朴海昌)이 아버지 박주현(朴周鉉)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 달 그믐에 인편에 부친 편지는 잘 들어갔는지와 건강과 안부를 묻고 자신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0

    "1871(고종 8)년 4월 26일에 신좌모(申佐模)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다. 그는 아들에게 계산(桂山)에 있는 친척을 통해 간찰을 보냈다고 하면서 식구들은 잘 지낸다고 안부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1

    1895년(고종 32) 2월 21일에 김준환(金俊煥)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그는 자신이 매입하여 살아왔던 전라도(全羅道) 임실(任實) 상북면(上北面) 주천리(舟川里) 소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2

    "병오년에 전라도(全羅道) 태인현(泰仁縣) 고현내면(古縣內面)에 사는 김형후(金炯厚), 김숙(金塾), 김곤(金坤) 등 20인이 성주에게 올린 소지이다. 관으로부터 홍문(紅門) 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3

    1888년(고종 25) 12월에 남원 둔덕방(屯德坊)에 거주하는 오영택(吳泳澤)과 오영극(吳泳極)이 작성하여 겸관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이 소지는 오씨문중의 선산에 이행연(李行淵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4

    1843년(헌종 9) 12월에 옥에 갇혀있는 죄수 오치형(吳致亨)이 작성하여 남원부에 제출한 소지이다. 둔덕방에 있는 오씨의 선산에 이섭(李涉)이 늑장(勒葬)을 하였고 이 일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5

    병신년에 全羅道(전라도) 務安郡(무안군) 一老面(일로면) 廣巖里에 사는 박찬오(朴燦五)가 함평군수(咸平郡守)에게 올린 소지이다. 함평(咸平) 식지면(食知面) 대안촌(大安村)에 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6

    "경인년 5월에 전라도(全羅道) 장수(長水) 계북면(溪北面)에 사는 화민 한상연(韓相璉)이 작성하여 전라도관찰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한상연의 할아버지 선산은 장수현(長水縣) 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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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17

    1852년(철종 3) 2월에 남원 둔덕방(屯德坊)에 거주하는 오치형(吳致亨) 등이 작성하여 남원부 제출한 소지이다. 둔덕방 대야촌(大也村)에 있는 오씨의 선산에 진전방(眞田坊)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8

    "1901년 12월에 서이면(西二面) 성남리(城南里)에 거주하는 홍종록(洪鍾祿)이 여산군수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홍종록의 선산에 이문영(李文榮)이 투장(偸葬)한 일로 시작된 소송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19

    "기묘년에 김규민(金圭玟) 등이 같은 고을의 양수장(楊秀樟)을 효자(孝子)로 포창하여 줄 것을 수령에게 청하면서 올린 소지이다. 이에 따르면 양수장은 태어난 지 석달만에 아버지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20

    신사년 삼월에 전라도(全羅道) 곡성현(谷城縣) 우곡면(牛谷面) 장성동(長城洞)에 거주하던 김노(金奴) 연임(連任)이 그의 상전을 대신하여 순천부사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의 상전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21

    "1864년(고종 1년) 5월에 광주(光州) 충효리(忠孝里)에 사는 김성현(金聖鉉) 등이 관에 올린 소지(所志)이다. 김성현 등이 살던 충효리는 10대조 참판공 때부터 400여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122

    "1854년(철종 5)에 발급된 공명첩(空名帖)으로 장언권(張彦權)의 아버지를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임명한 것이다. 통정대부는 문신 정3품 상계(上階)의 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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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23

    1864년(고종 1) 유학(幼學) 김익선(金益善)이 작성한 가옥전답매매문서이다. 김익선은 충청도(忠淸道) 보은군(報恩郡) 내북(內北) 산대원(山大員)에 있는 포자(飽字) 대전(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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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24

    "정해년 3월에 일서면(一西面) 서당촌(書堂村)에 사는 한재리(韓栽履)가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한재리는 이희연(李喜淵)에게 평월리(平月里)에 있는 산지를 매득하였고, 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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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25

    "계사년 3월에 경상도(慶尙道) 진주목(晋州牧) 설매곡리(雪梅谷里)에 사는 강우덕(姜宇德)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그는 선산이 마을 웅곡(熊谷) 후록에 있어서 수 십년 동안 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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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26

    "기미년에 유생(儒生) 권유도(權有道), 하재규(河在奎) 등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소지의 내용은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은데, 전라도(全羅道) 무주부(茂朱府) 풍동면(豊東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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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27

    경진년 8월에 천서면(川西面) 양곡리(陽谷里)에 사는 이생원댁 묘노(墓奴) 김옹골쇠(金瓮骨金)이 상전을 대신하여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김옹골쇠는 신양동(新陽洞)에 있는 이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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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28

    경인년에 전라도(全羅道) 장흥부(長興府) 회령면(會寧面) 모원리(茅原里)에 사는 변종규(卞宗圭)가 부사(府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는 7개월 전에 부친상을 당하여 회령면 남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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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29

    "정미년 4월에 전라도(全羅道) 김제군(金堤郡)에 사는 임치준(林致俊)이 김제군수(金堤郡守)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는 전주에서 세거하다가 5,6년전에 김제로 이거하였으며, 고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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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0

    갑오년 10월에 전라도(全羅道) 고창현(高敞縣) 부안면(富安面)에 사는 이종완(李鍾完)이 고부군수(古阜郡守)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는 60여년 동안이나 수호하고 금양해 오던 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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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1

    무인년에 양남(陽南) 동촌리(東村里)에 살던 임인상(任仁常)이 자신의 선대 어른인 풍기공(豊基公) 산소(山所)와 관련하여 수령에게 올린 글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투장사건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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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2

    "경자년에 오서면(五西面)에 사는 임수열(林守悅) 임재강(林載崗), 임인옥(林仁玉) 등이 연명하여 수령에게 올린 등장이다. 임수열들은 수 백 년 지켜 온 자신들의 선산을 문중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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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3

    경진년 4월에 전라도(全羅道) 전주부(全州府) 와리(瓦里)에 사는 유댁(柳宅) 노(奴) 영준(永俊)이 상전을 대신하여 고산관(高山官)에 제출한 소지이다. 영준의 상전이 고산 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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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4

    1867(고종 4)년에 조규채(趙逵采)가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조규채는 전라도(全羅道) 구례현(求禮縣) 토지면(吐旨面) 파도리(把道里)에 있는 인자가대(鱗字家垈) 2칸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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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5

    "신해년 12월에 고부(古阜)에 사는 나두채(羅斗采), 나택엽(羅宅燁) 등이 작성하여 태인수령에게 올린 소지이다. 나두채는 지난 4월 이성대가 투장한 일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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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6

    병진년 8월 전라도(全羅道) 임실현(任實縣)에 사는 진우영(陳禹榮)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산송소지이다. 진우영은 누대에 걸쳐 남원(南原)에 있는 선산을 산지기까지 정해놓고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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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7

    신해년 2월에 전라도(全羅道) 김제군(金堤郡)에 사는 임치준(林致俊)이 작성하여 전주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임치준의 선산에 전주 이서면(利西面)에 사는 박순이(朴順伊)가 투장(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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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8

    "1894년(고종31년) 3월에 보성의 안기환(安琦煥), 안장환(安璋煥), 안종묵(安鍾?) 등이 전라도 관찰사에게 올린 진정이다. 선조인 우산(牛山) 문강공(文康公)의 묘소가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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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39

    "경자년 3월 충청도(忠淸道) 은진군(恩津郡, 현 충남 논산) 고산면(高山面)에 사는 손제목(孫濟穆)이 작성하여 여산수령(礪山守令)에게 올린 소지이다. 은진에서 이성천(李性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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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0

    경진년 5월에 양양(襄陽)의 정동면(丁洞面) 조산리(助山里)에 사는 권명수(權命洙)가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에게 올린 소지이다. 그는 자신의 종답을 하남면(河南面) 이인기(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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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1

    임술년 12월에 이남면(二南面) 비대리(鼻大里)에 사는 백치회(白致會)가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백치회는 주비(注非)가 담당하여 소작 중에 남자종 신금(申今)이 대동전 4량을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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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2

    1905년(고종 42) 4월에 전라도(全羅道) 무안군(務安郡) 일로면(一老面)에 살고 있는 박희봉(朴凞奉)이 함평군수(咸平郡守)에게 올린 소장이다. 아무리 함평군수에게 소장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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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3

    "계축년에 전라도(全羅道) 나주목(羅州牧) 도림면(道林面) 쌍봉리(雙峰里)에 사는 정재린(鄭在麟)이 올린 산송 소지이다. 정재린은 이 소지에서 서원동(書院洞)에 사는 임흥서(林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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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4

    "1888년(고종 25) 2월에 남원에 거주하는 오성모(吳成模)가 겸관(兼官)인 운봉현감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남원 둔덕방 대야촌(大也村)에 있는 오성모의 선산에 이행연(李行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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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5

    1900년(고종 37) 노생원댁노(盧生員宅奴) 유금(有今)이 작성한 논 매매문서이다. 노생원은 충청북도(忠淸北道) 보은군(報恩郡) 내북면(內北面) 중치(中峙) 산대평(山垈坪)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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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6

    1904년 10월 전라남도(全羅南道) 무안군(務安郡) 일로면(一老面) 동암(東巖)에 사는 박희봉(朴熙奉)이 함평군수(咸平郡守)에게 올린 소지이다. 투장자 안덕함(安德咸)이 이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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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7

    "신묘년 10월에 전라도(全羅道) 임실현(任實縣)에 사는 김경적(金慶?)이 순창군(淳昌郡)에 제출한 산송소지이다. 순창군 아동면(阿東面)의 용골산(龍骨山) 기슭에 선산이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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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8

    갑인년 정월에 경상도(慶尙道) 함양(咸陽)에 사는 박효일(朴孝一) 등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소지이다. 박효일 등은 자신들이 공신(功臣)의 자손으로서 천역(賤役)을 면제받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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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49

    무술년 9월에 경상도(慶尙道) 진주목(晋州牧) 설매곡리(雪梅谷里)에 사는 강우덕(姜宇德)이 관에 올린 소지이다. 그는 여러명에게 돈을 빌려 주었는데 이를 이해 저해 미루면서 값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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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150

    "1901년 10월에 서이면(西二面) 성남리(城南里)에 거주하는 홍종록(洪鍾祿)이 작성하여 여산군수(礪山郡守)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홍종록의 선산에 낭산(朗山)에 사는 이문영(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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