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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6351

    갑오년에 소라면 집강으로 있던 崔氏가 수령에게 보고한 서목이다. 최씨가 보고한 내용은 본 면인 소라면에 부과한 세금과 관련된 글이 도착하였음을 알리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52

    을묘년에 周浦坊에 面任 李 아무개가 관에 올린 書目이다. 그는 이 서목에서 주포방의 房氏 집안의 山訟 사건과 관련하여 판결에 따라 鄭桂煥을 査問한 결과 그로부터 이후 풀 한 포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53

    계유년에 광양현 인덕면의 풍헌 김아무개가 계유년 6월에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서목이다. 이 문서를 통해서 풍헌 김아무개는 私奴 哲金이 농사짓던 곳의 제방 둑이 밤새 흘러든 조수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54

    갑오년 정월 10일에 소라포면의 집강으로 있던 崔氏가 수령에게 보고한 서목이다. 최씨가 보고한 내용은 수령이 소라포면에 분배한 경저리 조납전(京邸吏 助給錢) 300냥을 거두어 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55

    "임오년 8월 12일에 고부군의 좌수가 관에 올린 서목이다. 座首인 殷某는 金麟奎의 山訟과 관련하여 겸관으로부터 현장 조사를 지시받고, 刑吏 殷邦燮을 현장에 파견하여 圖形을 작성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56

    1886년(고종 23) 봉환(鳳煥)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봉환은 장자(章字) 삼간(三間)을 10냥에 종중에 팔고 매매문서를 작성하였다. 이때 유학(幼學) 송병연(宋柄蓮)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57

    계축년 7월 초1일에 남촌면 일변의 풍헌 서(徐)가 관에 제출한 서목이다. 같은 면에 사는 이세숭(李世崇)의 딸이 효행이 지극하다는 것을 관에 보고하는 내용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58

    병진년 11월에 남촌면 일변의 풍헌 서(徐)가 관에 제출한 서목이다. 같은 면에 사는 이세숭(李世崇)의 18세 된 딸의 효열이 타의 모범이 되자 다사(多士)들이 정소하고 있다는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59

    1874년(고종 11) 6월에 강원도(江原道) 평해군수(平海郡守)가 관찰사(觀察使)에게 올린 서목(書目)이다. 평해군수는 관찰사의 밀명에 따라 이인수(李寅秀)와 이장유(李璋裕)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0

    계묘년 정월에 전라도(全羅道) 보성군(寶城郡) 미력면(彌力面) 도개촌(道開村)의 주비(朱批)가 군수(郡守)에게 제출한 서목(書目)이다. 주비는 촌장(村長)으로 추정되는데 그는 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1

    병술년 2월28일 재임(齋任) 김(金)이 도유사(都有司) 최명하(崔命夏)을 부벽(付壁)하는 일에 대한 처분을 바라는 내용이다. 관에서는 의례대로 시행하라고 답변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2

    "계해년 12월에 남원 둔덕방(屯德坊)의 면임(面任) 김(金)이 작성하여 남원부에 제출한 서목이다. 둔덕방의 오씨양반이 올린 소장의 제음(題音)에 근거하여 적간(摘奸)한 결과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3

    "신유년 6월에 경상도(慶尙道) 함양군(咸陽郡) 유림면(柳林面) 웅평리(熊坪里) 존위(尊位)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서목이다. 웅평리 존위는 ‘웅평리와 국계촌(菊溪村) 나무꾼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4

    "1853년(철종 4) 9월에 강원도에 있던 보안도(保安道, 조선시대 강원도 역도(驛道)) 찰방(察訪)이 영문(營門)에 보고한 서목(書目)이다. 찰방은 도망친 횡계역(橫溪驛)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5

    정해년 6월13일 도유사(都有司) 최정순(崔正淳)을 부벽(付壁)하는 일에 대한 처분을 바라는 내용인데 관에서는 지실향사(知悉向事)라고 하였다. 서목(書目)이란 상사(上司)에 올리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6

    병진년 8월 25일에 도리면에 사는 풍헌 김(金)이 관에 제출한 서목이다. 장응권(張應權)이 제소한 소송의 처분에 따라 원고와 피고를 함께 데리고 가 도형을 작성하였음을 보고하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7

    1901년(고종 38) 12월 29일에 이찬서(李贊瑞)가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이찬서는 지난 3월에 매수인에게 100냥을 빌린 일이 있다. 그런데 이자를 포함한 140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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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68

    "1888년(고종 25) 3월 14일에 남원부겸임행오수도찰방(南原府兼任行獒樹道察訪)이 순상(巡相)에게 제출한 서목이다. 이 서목은 남원부의 오성모(吳成模)와 이기백(李起白) 사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69

    "을묘년에 진상한 간장과 소금을 기록한 것이다. 아마도 흥양군에서 할당하여 거두어들인 간장과 소금의 납부 해당자와 양에 관한 목록이다. 할당된 양의 기준은 ‘말되(斗升)’였는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0

    "정사년에 진상한 장염 문건이다. 아마도 흥양군에서 각 마을에 할당하여 거두어들인 간장과 소금의 양의 목록이다. 할당된 양의 기준은 ‘솥(釜)’이었는데, 많은 곳은 세 솥을 적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1

    1871년(고종 8)에 濟州牧使가 肇慶廟에 올린 진상단자이다. 새로 수확한 唐柚子를 진상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2

    1794년(정조 18)에 예조의 당상관이 全羅道 靈光郡에 사는 奇偶星에게 발급한 별단이다. 왕은 기우성의 효행이 특출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격려하는 의미에서 음식물을 내려주라고 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3

    1798년(정조 22)에 예조의 당상관이 全羅道 南原府에 살았던 崔天奎의 후손에게 발급해 준 별단이다. 이보다 4년 전에 왕은 최천규의 효행을 전해 듣고 정려를 세우도록 명령한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4

    "기사년 9월 14일에 작성된 태학별단(太學別單)이다. 태학에서의 인사와 각종 행사에 관한 제반 규정을 담고 있다. 예컨대 장의(掌議)의 천거, 사학(四學)의 재임(齋任) 임명,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5

    이름을 알 수 없는 사람이 과거에 응시하여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권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6

    양종린이 작성하여 제출한 과지이다. 7언절구의 詩文으로 작성 연대는 미상이다. 양종린은 이 시험에서‘三下’의 성적을 받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7

    "고종 연간에 淳昌郡 阿東面 龜尾里에 사는 楊鍾麟이 작성한 시권이다. 순창에 살았던 남원 양씨의 고문서 가운데에는 호구단자류는 물론 여러 장의 과지가 포함되어 있다. 7언절구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8

    1780년(정조 4)에 천태금(千太金)이 번전(番錢)을 납부하기 위해 2칸의 초가와 전답을 노(奴) 서미(西未)에게 4냥에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79

    "누군가가 生員試에 應試하여 提出한 試驗答案紙이다. 앞부분이 결락되어 있어서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散軍而郊射’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과거시험답안지이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80

    부안김씨 시권 / NULL / NULL
    "부안김씨 시권이다. 증조가 경순, 조가 홍원, 부가 명열이고, 외조가 완산 李芳春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시험 답안지의 주인은 번(1639-1689)과 만(1644-?)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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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81

    "무신년 4월 27일에 대왕대비 육순을 기념하여 치러진 증광시에 김학성이 응시하여 제출한 과지이다. 증광시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된 임시과거지만 식년시와 마찬가지로 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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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82

    "임실에 사는 沈鎭杓(29세)가 작성한 과지이다. 오른쪽 상단에 본인의 이름, 나이, 본관, 거주지, 그리고 四祖의 이름이 쓰여있어서 과거시험 답안지가 분명하다. 그런데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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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83

    "을유년에 서울에 사는 ▒▒가 응시하여 작성한 科紙이다. 당시 28살의 나이로 한성초시에 응시한 이 시험에서 3등 21인으로 합격하였다. 과지의 오른쪽에는 응시자의 이름과 그 四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84

    1894년(고종 31)에 남원에 사는 진사 박해창이 문과에 응시하였을때 받은 講書採點紙이다. 박해창은 1894년에 치러진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본 문기는 바로 그 과거의 복시 초장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85

    靈巖郡 場巖面에 사는 文昌錫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창석은 ‘能言拒楊墨者聖人之徒’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제출했는데 이때 삼하의 성적을 받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86

    文明欽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명흠은 ‘乃?一花’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제출했는데 이때 三中의 성적을 받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87

    扶安金氏 家門에 소장되어 전래되었던 對策文草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에 실시된 문과시험에서 시험과목의 하나로 策問이 치러졌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현실의 시급한 문제(時務)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88

    全羅道 靈巖郡 場巖面에 살던 文章錫이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했던 답안지이다. 그는 ‘楊墨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의 가르침을 받은 자이다’라는 율시를 지어 ‘三下’의 점수를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389

    "1831년(순조 31) 10월 26일에 김광일(金光日)이 소상봉(蘇相奉)에게 가옥과 전답을 팔면서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김광일은 자신이 사서 여러해 동안 살고 경작해 오던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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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0

    임실에 사는 沈鎭杓가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그는 “挑戰?雌雄”이라는 詩를 지어 제출하여 ‘三中’의 점수를 받았다. 조선후기에는 학문의 진작을 위해 백일장을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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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1

    "1691년(숙종 17)에 增廣進士試에 3등 58인으로 합격한 玄圭의 科紙이다. 그러나 문서의 서두에 ‘玄圭告成功詩’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실제의 과지는 아니며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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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2

    과거시험 응시자가 제출한 답안지이다. 중국 주나라 초기의 정치가인 태공망 여상을 제목으로 하여 賦를 지었다. 여상은 주나라 무왕을 도와 은을 멸하고 천하를 평정한 공으로 제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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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3

    "누군가 문과 초시에 응시하여 작성한 책문답안지이다. 과지의 오른쪽 상단에 본인의 이름, 나이, 본관, 거주지 및 그의 사조의 직함과 이름을 써넣는 이른바 錄名한 부분이 缺失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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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4

    "1873년(고종 10) 장수에 사는 李容臣이 진사시험에 응시하여 작성한 科紙이다. 당시 29살의 나이로 과거에 응시한 이용신은 이 시험에서 3등 185인으로 합격하였다. 이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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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5

    "양종린의 과지이다. 7언 절구의 시로, “後數日廣凌果奏仙人見于五色雲中詩”라는 제목이 붙어 있으나 어느 해 어느 과거에서 작성된 답안인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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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6

    場嚴에 사는 文章欽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장흠은 ‘吾州之俗有近右者三’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제출했는데 二下의 성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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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7

    전라도 장수현 계남면에 살던 양사직이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主人翁習知之’라는 제목의 賦를 지어 ‘三下’의 성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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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8

    全羅道 淳昌에 사는 楊鍾麟이 45세에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양종린은 본관이 南原이고 아버지는 在輔이다. 그는 ‘古之君子其王伯之略皆定於畝?之中’이라는 제목의 7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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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399

    文明欽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명흠은 ‘簫何高帝之良婦’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제출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0

    "1876년(고종 13) 8월 18일에 이씨댁 노 만억(萬億)이 이씨댁 노 종길(從吉)에게 작성해준 가옥 매매문서이다. 만억이의 상전인 이씨가 종길이의 상전인 이씨에게 빌어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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