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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에 대해 총641,751건의 자료가 검색되었습니다.
  • 86401

    아무개의 시권 / NULL / NULL
    孔子曰上知與下愚不移 孟子曰人皆爲堯舜에 대한 질문에 답한 아무개의 답안지이다. 이 답안지의 주인은 3등 32인으로 합격하였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2

    시험장에서 써낸 시문으로 賦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성적은 次下를 받았다. 앞부분이 없어져서 누가 어떤 자리에서 지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3

    문서가 잘라져 나가 누구의 과지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시과목중 이 응시자는 소과 진사시에 응시하여 시 부분의 답안지를 작성하였는데 차하의 성적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시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4

    1894년(고종 31) 式年文科 殿試에서 남원에 사는 進士 朴海昌이 작성한 科紙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이며 本貫은 竹山이고 龍?衛 副司直 朴周鉉의 아들로 3년 전인 189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5

    "1848년(헌종 14)에 실시된 增廣試에서 朴順陽이 생원시에 응시하여 제출한 시험 답안지이다. 박순양은 字가 景和, 1829년(순조 29)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潘南, 당시 거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6

    "남원에 사는 沈鎭杓가 20세 때에 작성한 과거시험 답안지이다. 오른쪽 상단에 나이와 본관 거주지와 四祖의 이름이 쓰여있다. 채점은 성적에 따라 一, 二, 三, 次, 更, 外 등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7

    아무개가 作成한 試驗答案紙이다. 답안지의 앞부분이 떨어져서 누가 적성한 답안지인지 알 수가 없다. 답안지는 詩文으로 제목은 ‘代懷王諸將請遣長者入闕詩’이었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8

    "1888년(고종 25)에 幼學 金錫奎가 進士試에 응시하여 작성했던 시험 답안지이다. 시험지 우측 상단에 본인의 인적사항과 사조(부·조·증조·외조)의 직함과 성명을 기재하는 난을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09

    扶安金氏 家門에 소장되어 전래되었던 對策文草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에 실시된 문과시험에서 시험과목의 하나로 策問이 치러졌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현실의 시급한 문제(時務)에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0

    "조선시대 때 사마시를 볼 때 작성하였던 시험답안지, 즉 과지이다. 그러나 누가 언제 쓴 답안지인지는 알 수 없다. 시험의 제목은, “車在馬前” 즉 수레가 말 앞에 있다는 것이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1

    1902년(고종 39) 11월 27일에 이재인(李載仁)이 작성한 가옥·산지 매매문서이다. 이재인은 흉년으로 인하여 생계가 어렵게 되자 상대방인 족형(族兄)에게 100냥을 꾸어 쓴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2

    전라도 장수현 계남면에 살던 梁思職이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그는 ‘문에서 웃으며 맞이한다’라는 제목의‘賦’를 지어 제출하여 ‘三上’의 성적을 받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3

    "1717년(숙종 43)에 幼學 李宇恒이 生員試에 응시하여 작성했던 試券이다. 이우항이 1717년(肅宗43)년 式年試에서 生員 3등 72인으로 입격한 기록이 사마방목에 보이고 있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4

    백일장 시권 / NULL / NULL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시권이다. ‘구양수가 나온 뒤로 세상은 절차탁마를 다투었다(自歐陽子出天下爭自濯磨)’라는 제목의 詩를 지어 三下의 점수를 받았다. 작성자의 신원이 쓰인 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5

    작성자와 출신지를 적은 오른쪽을 잘라내었기 때문에 누구의 것이지는 알 수 없는 과지이다. 이 책문 답안지의 앞머리에는 질문의 내용을 적었으며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응시자가 적고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6

    靈巖 場岩에 사는 文明鎬가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명호는 ‘登車攬?慨然有澄淸天下之志’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제출했는데 이때 三中의 성적을 받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7

    "淳昌에 사는 幼學 楊鍾麟이 45세에 작성한 시권이다. ‘欲因以陰求天下奇士’라는 제목은 歐陽修가 秘演의 시를 모아 수록한 釋秘演詩集의 서문에 나오는 구절로, 이 시권에는 천하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18

    "1710년(숙종 36)에 實施된 進士試에서 金守宗이 作成한 試券이다. ‘壽民詩謝王佺期寄丹詩’와 ‘國事屬晦叔賦’라는 제목의 시와 부 2수가 기재되어 있다. 김수종은 이 시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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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19

    "高宗 연간에 淳昌郡 阿東面 龜尾里에 사는 楊鍾麟이 작성한 試券이다. 순창에 살았던 남원 양씨의 고문서 가운데에는 호구단자류 이외에도 과지가 여러 장이 포함되어 있다. 칠언절구의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20

    양종린이 백일장에서 제출한 답안지이다. 칼과 관련된 내용을 칠언고시의 형태로 기술하였다. 제목은 유차리를 지나며 개섭과 검에 대하여 논하다이다. 양종린은 이 시험에서 三上의 성적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21

    아무개의 시권 / NULL / NULL
    앞부분이 빠져있어서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는 아무개의 답안지이다. 내용은 詩義 ?黎百姓?爲爾德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인 듯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22

    1882년(고종 19)에 유학(幼學) 이순두(李淳斗)가 작성한 매매문서이다. 그는 전라도(全羅道) 익산군(益山郡) 남일면(南一面) 모촌(母村) 매교리(梅橋里)에 있는 2칸짜리 가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23

    박준호가 작성한 시권 / 朴準昊 / NULL
    "茂長에 거주하던 朴準昊의 科紙이다. 7언절구의 詩로, ‘郡人數萬會于湖上活羽毛鱗介稽首仰祝千萬歲壽詩’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러나 어느 해에 어느 과거에서 작성된 답안인가는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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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24

    "남원에 사는 沈鎭杓가 20세 때에 작성한 과거시험 답안지이다. 오른쪽 상단에 나이와 본관 거주지와 四祖의 이름이 쓰여있다. 채점은 성적에 따라 一, 二, 三, 次, 更, 外 등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25

    文明欽이 작성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명흠은 ‘箕踞讀訖日君房素癡’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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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26

    임실에 사는 沈鎭杓가 26세 때에 작성한 과거시험 답안지이다. 오른쪽 상단에 나이와 본관 거주지와 四祖의 이름이 쓰여있다. 沈鎭杓가 을사년 5월 13일에 치러진 增廣試에 합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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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27

    場巖에 사는 文昌錫이 작성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창석은 ‘吾州之俗有近古者三’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제출했는데 三中의 성적을 받았다.
    출처 : 호남기록문화시스템
  • 86428

    전라도 순창에 사는 楊鍾麟이 47세때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그는 “땅에 드리운 사람그림자가 우러러 명월을 바라본다(人影在地仰見明月 ) ”라는 제목의 7언절구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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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29

    "양종린이 백일장에 참여하여 제출한 답안지이다. 답안지를 작성한 시기, 가계, 출신 지역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백일장 대회에 나가 「平明建大將旗鼓鼓行出井陸口」라는 제목의 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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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0

    순창에 사는 양종린이 三百有餘年而得歐陽子라는 제목으로 쓴 시이다. 당시 45세였고 본관이 남원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양재보이다. 차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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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1

    "순창에 사는 유학 楊鍾麟이 작성한 試券이다. 詩題에 보이는 王俊民의 字는 康候이며, 중국 宋나라 仁宗 景祐 2년(1035)에 萊州掖縣(지금의 山東萊州)에서 태어나서, 仁宗 嘉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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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2

    "누군가가 生員試에 應試하여 提出한 試驗答案紙이다. 앞부분이 결락되어 있어서 작성자가 누구인지는 자세하게 알 수 없으나, ‘醴酒之用玄酒之尙’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과거시험답안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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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3

    1887년(고종 24) 유성환(柳成煥)이 작성한 가옥매매문서이다. 유성환은 집 3간을 18냥에 팔고 매수자인 유상태(柳相泰) 앞으로 매매문서를 작성하였는데 나중에 돈을 가져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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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4

    "고종 연간에 淳昌郡 阿東面 龜尾里에 사는 楊鍾麟이 작성한 시권이다. 양종린의 시권은 남원 양씨의 고문서 가운데 여러 점이 있으나, 이 시권과 마찬가지로 어느 시험에서 작성되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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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5

    을유년 5월에 목천에 사는 유학 윤상보(30)가 작성한 증광시 답안지이다. 답안지의 오른편에 윤상보의 4조가 적혀있는데 윤상보의 부와 외조는 관직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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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6

    楊鍾麟이 白日場에 참여하여 詩로 답한 答案지이다. 양종린은 ‘조기가 평원군 집에 있을 때(在趙?平原君客詩)’라는 제목의 시를 제출하여 3하의 점수를 받았다. 이 때에도 이름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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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7

    "고종 연간에 全羅道 淳昌郡 阿東面에 사는 楊鍾麟이 45세 때에 작성한 시권이다. 양종린의 시권은 남원 양씨의 고문서 가운데 여러 점이 있으나 이 시권과 마찬가지로 어느 시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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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8

    扶安金氏 家門에 소장되어 전래되었던 對策文草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에 실시된 문과시험에서 시험과목의 하나로 策問이 치러졌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현실의 시급한 문제(時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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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39

    靈巖郡 場巖面에 사는 文昌錫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창석은 ‘得英才敎育’라는 제목으로 論을 지어 제출했는데 이때 次上의 성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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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0

    靈巖郡 場巖面에 사는 文昌錫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창석은 ‘正名分立紀綱’이라는 제목으로 論을 지어 제출했는데 이때 次上의 성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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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1

    부안김씨 가문에 소장된 試券 중 하나이다. 앞 부분이 결락되어 어느 해에 누가 어느 과거시험에서 작성한 답안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對策 문제에 대한 답안으로 작성된 것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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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2

    文元錫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원석은 ‘卓氏宴席以琴心挑之’라는 제목의 시를 지어 제출했는데 三下의 성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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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3

    場巖에 사는 문창석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창석은 ‘宣上恩德與民共樂’라는 제목의 賦를 지어 제출했는데 三中의 성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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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4

    1906년(고종 43) 10월 25일에 김준명(金俊明)이 작성한 가옥 매매문서이다. 그는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살았던 임실군(任實郡) 상북면(上北面) 주천리(舟川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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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5

    "양종린이 작성한 과지로, 항우는 동쪽을 범증은 남쪽, 패공은 북쪽, 장양은 서쪽을 향하여 앉았다는 내용의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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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6

    김병두가 작성한 시권 / 金炳斗 / NULL
    金炳斗가 作成한 試驗答案紙이다. 답안지는 詩文으로 제목은 ‘惟司馬綽綽從容於山水詩酒間詩’로 성적은 ‘三下’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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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7

    아무개의 시권 / NULL / NULL
    "앞부분이 빠져 있어서 누가 작성하였는지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는 아무개의 시권이다. 내용으로 미루어 본다면, 前漢 文帝 때의 文臣 賈誼에 관련하여 논한 문제라고 추정된다. 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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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8

    "1891년(고종 28)에 南原에 사는 朴海昌이 進士試에 覆試에 應試했을때 제출한 詩答案紙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이며 本貫은 竹山으로 龍?衛 副司直 朴周鉉의 아들이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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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49

    양종린이 작성한 과거시험 답안지로 작성 년대는 미상이다. ‘以足受之笑而去’란 제목으로 시를 지은 것으로 채점자로부터 三下의 성적을 받았다.‘以足受之笑而去’는 ‘신발을 주워 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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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6450

    문명흠이 작성하여 제출한 백일장 답안지이다. 문명흠은 ‘史記一部在名山大川’라는 제목으로 시를 지어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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